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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와 貴

소요유 : 2008. 6. 27. 21:45


富와 貴

貴란 무엇인가 ?
貴는 賤과 대비되니, 원래 왕족, 귀족 출신의 신분을 가르키는 말이다.
왕족 자손으로 태어나면 왕족, 천민 태생이면 천민이 되고 마니,
피가름에 의해 귀천이 바로 정해질 뿐,
후천적인 개개인의 능력과 발분(發奮)에 의해 신분이 바뀔 여지는 거의 없다.
그럼, 과거엔 그랬는데, 현대는 아니 그런가 ?
이 물음에 나는 지금은 아니 그러하다고 자신있게 답할 용기가 없다.

간혹 왕의 비(妃)가 되어 자신은 물론 일족까지
일약 천민에서 귀인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라 하겠다.
가령 한문제(漢文帝)의 황후가 된 두씨(竇氏)는 원래 여태후의 시녀였다.
이리저리 팔리다시피 전전하다 인연이 풀려 황후까지 되었는데,
나중에 어려서 헤어진 동생인 소군(少君)과의 상봉장면은 제법 유명하다.
누나인 두씨가 동생과 헤어질 때, 음식을 사먹이고 쌀뜨물로 몸을 씻어 주었는데,
이를 단서로 동생임을 확인하게 되는 장면은 듣는 이를 모두 눈물 짓게 만든다.
한 때, 노예였던 소군은 이후 일약 장무후(章武侯)로 봉해진다.
한무제(漢武帝)의 황후인 위자부(衛子夫)도 원래 종복(舞姬) 출신이다.
그의 동생인 위청(衛靑) 역시 누나 덕에 장군이 되는데,
흉노 토벌에 혁혁한 공을 세워 위명이 높다.

이런 피의 도약(跳躍)이라든가,
또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는 피갈음(換血)의 특별한 형식을 통하지 않고는,
賤에서 貴로 신분이 바뀌는 것은 원척적으로 차단되어 있는 것이다.

富는 貴한 신분이면 자동으로 따랐으니,
고대엔 貴와 富는 짝으로 옮겨 다녔다.
이 貴가 나중에 아래로 나누어져 사대부까지 미치니
이들 역시 貴와 더불어 富를 누렸으나,
엄격한 기준으로 보자면 貴와 富는 모두 왕족 전유의 것이라 하겠다.

“예(禮)는 서민에게 내려가지 않고, 형(形)은 사대부(士大夫)에 올라가지 않는다.”
《禮記·曲禮》 「禮不下庶人,刑不上大夫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예는 사대부가 지켜야 할 것이고,
서민들은 지키도록 강제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예를 지키지 않아도 좋으니 외려 서민들이 편한가 ?
예를 지킴으로서 인간인 것이다.
예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이미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대부는 예악을 따라야 하지만, 대신 형벌은 받지 않는다라는 원칙하에
貴人은 특권을 누리게 되니 그들은 이미 인간 이상의 인간인 것이다.

富라는 것이 貴로부터 유출되는 결합재(結合財)의 성격을 갖기에
함께 작동하는 게 정상이나, 후대로 갈수록 이들은 분리되어 갔다.
사농공상이라 상인은 원래 천한 신분으로 취급되었다.
곧잘 상인 중에 수완이 좋아 거만의 부를 축적하는 사람이 등장하곤 한다.
하지만 이들 자력만으로는 힘이 들기에 적극적으로 귀인(貴人)과 결탁하지 않을 수 없다.
제 아무리 천인(賤人)이 富를 일군다한들 한계가 있다.
그 원천에 다가가려면 부득불 귀인(貴人)의 힘에 의지 하지 않을 수 없음이니,
아직은 富란 貴에 종속적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 까닭이다.

하지만 비록 천인라 하여도 거만의 富가 일궈지면 그 때부터는 사정이 조금씩 달라진다.
흔히 왕들이 벼슬을 돈을 받고 파는 예가 있다.
후한(後漢)의 영제(靈帝) 시절 매관매직이 성행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의 아버지인 조숭은 당시 태위(太尉)의 자리를 1억전에 샀다.
관직의 값은 당시 대략 봉록 1석(一石)에 대해서 만전(萬錢)이었다고 하니,
1억전의 자리라면 봉록 만석에 해당한다.
조숭은 대단한 부자였던 것이다.

貴가 富를 자동으로 창출하지 못하고,
사치가 극에 달해 부족해지니까,
외부에 축적된 富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끌어 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富가 貴의 통제를 벗어나 궐외에 적지 아니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형편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필경 돈으로 산 벼슬은 투자한 본전 이상으로 가렴주구로 뽑아내게 되니,
이 지경에 이르면 貴의 권위는 풍비박산이 나고 富가 독립하여,
스스로의 위엄과 세력을 한껏 떨치게 되는 것이다.

대승불교의 태동에도 부를 축적한 상인 계급의 부상에 따른 사회경제적인
압력이 작동하였다고 하니 이제까지의 귀인(貴人) 계급 중심의 소승불교가
대중 속으로 퍼져나간 것은 이 역시 貴에 예속된 富의 독립,
곧 파워시프트의 한 현상으로 이해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소승불교란 전문 출가승들이 그들만의 집단을 이루고,
폐쇄적으로 수도하는 형식이니, 대중은 다만 보시란 형식을 빌어 그들을 도울 뿐,
직접적인 수행, 연구 등의 참여가 제한된 형식이다.
그러나 후에 富란 파워를 기른 대중들이 등장하면서,
엘리트 중심의 불교 단위 집단과 대립하면서 대중화된 불교로 발전하게 된다.

貴와 富의 분리는 역사 발전 상 바람직한 것이지만,
이 양자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질 때는 서로 결탁도 불사하지 않았으며,
때로는 피를 부르며 대립하기도 하였다.
그 까닭은 貴와 富는 공히 세속적인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권력(權力) 내용 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실질을 이룬다 하겠다.

貴한 자는 본래 충분히 교육을 받고 신분에 걸맞는 소양을 갖추도록 키워진다.
이를 소위 문화(文化)라 부른다.
(※ 이런 것을 갖춘 이를 문화인(文化人)이라 부른다.)
하지만 賤한 자는 그럴 기회가 없다.
그들은 사회적으로는 이미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닌 인간으로 규정된 이에게 문화란 필요 없다.
문화를 배우면 오히려 사회 위험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다.
저쪽에서 보기엔 애저녁에 천인들을 문화로부터 철저히 소외시켜야 할 노릇이었으리라.

후에 賤人이 富를 일구었을 때, 그들은 부족한 문화적 소양을
급히 보충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요행 富를 일궈내었다한들 이를 지키고 불려 나가는데는 역시
문화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흔히 졸부(猝富)가 문제가 되는 것은
富의 크기에 걸맞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째지게 가난하던 이가 어느 날 횡재하게 된다.
그리고는 돌연 허물어지고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있다.
속말로 눈깔이 뒤집혀 기고만장하다가 거꾸러지고 만다.
정녕 富는 貴란 문화적 그릇에 담겨져야만 제 구실을 할 수 있음인가 ?
발복(發福)이라는 것이 오랜 시간 복밭(福田)을 일군 연후에,
자연스럽게 움터야 무리가 없는 것임이랴.

잠깐 여기서 죽림칠현(竹林七賢)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한말(漢末) 위진(魏晉) 교체기에 등장하는 소위 죽림칠현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
천하는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유교적 도덕이란 것은 현실적으로 아무런 쓸모가 없다.
자고 나면 영웅이 나타나고, 호걸이 스러져갔다.
세상을 탈 없이 건너고 命 보전하려면,
즉 안심입명(安心立命)하려면, 유교와 같은 허례가 아니라,
불교, 도교와 같은 허령(虛靈)한 세계를 이야기하며 - 청담(淸淡)
세상을 등지는 것이 나았던 것이다.
나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는 대외적인 외표(外表)가 필요했으리라.
이런 표상(表象)은 남으로부터의 경계를 늦추어 보신(保身)하는데는 그럴 듯한 방편이 된다.
이쯤에서 과연 그들의 마음이 대나무 숲처럼 그리 순수했을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죽림칠현의 하나인 왕융(王戎)의 얘기가 재미있다.
왕융은 고리대금을 하고 있으면서 이자를 계산하기 바빴다고 한다.
자기 집에 자두나무가 있어 그 열매를 따서 팔았는데,
그 씨에는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씨를 심어도 싹이 나지 않도록 하였다 한다.
왜냐하면 왕융의 자두나무는 품질이 좋아 외부에 씨앗을 유출하기 싫었던 것이다.
거기다 출가한 딸에게 돈을 빌려주고는,
이를 갚지 않으면 상을 찡그리고 있다가,
갚자마자 히죽거리며 웃었다고 한다.
통상 떠올려지는 죽림칠현의 이미지와는 너무 동떨어지는
이 이중의 캐릭터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
죽림칠현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저들이 세속을 등진 것은 貴, 富를 염오(厭惡)하였던 것이 아니라,
현실 정치에서 보신(保身)하기 위한 일종의 위장책이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즉, 이리 인색한 인간이니 큰 뜻을 도모할 만한 위인이 못된다.
이리 외부에 알려지게 되면 세상 사람들은 그를 견제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게 되리라.
실제 왕융은 나중에 출사하여 사도(司徒)란 벼슬에 오른다.
죽림칠현씩이나 된 사람들에게도 貴, 富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던 것인가 ?

현대에는 富가 아랫 저잣거리로 내려와 있다.
貴의 전속물이 아닌 것이다.
때문에 귀천불문 모든 천하인들이 나서 잠자리채 들고 富를 잡아채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 땅에선 그래서 갖은 의혹으로 얼룩진 이명박을
주저없이 대표 선수로 뽑아내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아, 우리 모두는 부자씩이나 될 수 있다라는 믿음은 얼마나 아스라하니 아프도록 처절한가 ?
죽림칠현도 저리 안팎이 부동한데, 대중들에게 무엇을 달리 구할 수 있단 말인가 ?

게다가 이젠 富가 貴를 일궈내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富가 貴의 종속적 권능이 아니라,
역으로 富한즉 얼마든지 貴할 수 있음이니, 이젠 주객이 바뀌었음이다.
그러기에 바로 엊그제 강부자 내각이 탄생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천하인이 경제에 몰빵해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상징적 증거를
우리는 청와대로부터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음이다.
썩이나 넉넉한 이 시대의 표상(表象)으로서 이명박이 北岳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음이다.

부귀복덕(富貴福德)
부귀는 신분 상 따라오는 것이니,
貴한즉 富를 자동 상속한다.
그러나 복은 덕을 쌓은 후 그 과보(果報)로서 주어지는 차이가 있다.
게다가 덕도 양지에 드러난 덕이 아니라 음지에서 편 덕을 더 귀히 여기니,
(남에게 알려지지 않고 행해진 덕)
이는 특별히 음덕(陰德)이라 하니,
적음덕(積陰德)이라야 복이 찾아온다고 생각했다.
이 때 복의 내용은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富가 될 수도 있고, 貴가 될 수도 있다.
발복(發福)은 이리 긴 우회로를 거쳐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 긴 과정을 참아낼 수 없는 사람은 바로 富에 집중하게 된다.
富로서 貴만 취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복덕도 미인도 모두 취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사랑도, 인격도 구매할 수 있다고 기염을 토하는 것이다.

富潤屋, 德潤身
부는 집을 겉보기에 윤택하게 꾸며 보일 수 있지만,
속으로 덕을 갖추면 몸 밖으로 자연 그 덕행이 젖어 드러난다.
이즈음엔 富나 貴를 말하는 이는 많아도,
도대체 福이나 德을 말하는 이가 사라져 버렸다.
하다 못해 그 흔하던 복덕방도 없어졌다.
토지 컨설팅, 투자상담 업소로 바뀐지 이미 오래 전인 것이다.
예컨대 富貴行, 富貴堂, 富貴房으로 바뀐 것이다.

반짝 거리며 윤기 흐르는 집을, 비싼 땅을 말하는 이는 많고,
제 얼굴은 물론 몸뚱아리 전체를 칼로 개비(改備)하기 바쁜 세상이니
도대체 덕을 축축하니 길러 복을 일굴 만큼 한가하지 않은 것이다.
潤屋이든, 潤身이든 富로서 충분히 도모할 수 있다고 믿음이니,
음덕 같이 비현시적이며, 지효성(遲效性)인 가치를 우러를 까닭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富와 德,
屋과 身이
안팎에서 인과론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형국이다.
벌건 욕망과 푸른 이상이 존재론적으로 충돌하고 있는 당대의 현실,
뒷골목 도색(桃色)보다 더욱 야릇하고뇨.
이명박이, 촛불이 벌이는 무대가
신물이 나도록 맛있고,
눈물이 나도록 흥겹다.
그래, 슬프도록 화려한 흥행이 썩이나 재미롭구나.
어절씨구 풍악을 울리거라,
시대와 불화하느니 차라리 온몸 던져 미쳐나 보자꾸나 !

***

조금 다른 얘기지만,
점을 치면 이런 점사(占辭)를 들려주는 경우가 있다.

“그대는 장차 某月某日 南方으로부터 붉은 옷 입은 귀인(貴人)을 만나 크게 형통하리...”

이런 봉귀인(逢貴人)의 점사에서 말하는 귀인은 이제까지 논한 신분에 따른,
그 귀천에 따라 갈라지는 이를 이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도움을 줄 사람을 말한다.
요즘 하는 말로 하면 멘토(Mentor)와 유사하다.

그러하니 정작 만나서 내게 중한 것은 신분 상의 귀인이 아니라,
(실효적으로) 내게 선종(善種)으로 작용할 귀인인 것이다.

일생에 귀인을 만날 수 있다면,
그를 만나 배움을 구하고, 도움을 얻는 것 못지 않게,
그런 당신을 만났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여간 흥분되며 기꺼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만남이 귀한 그런 이가 곧 귀인이 아닐까 ?

요즘은 귀인은커녕 주변인들이 모두 경쟁자로 포진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 않다면,
샛노란 어린 아이들은 어이하여 밤늦도록 잠도 재우지 않고
검투사 키워내듯 학원순례를 시키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가 ?
그래서 그런가 ?
있지도 않을 귀인을 찾느니 차라리,
로또로 봉귀인이라도 하겠다는 심사로,
일로 이에 매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옛 속담에 이런 것이 있다.

“삼정승 사귀지 말고 내 한 몸 조심하라.”

오지도 않는 귀인 진종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남의 귀인은 될 수 없을까 ?
이내사 나의 귀격(貴格)은 어느 나변(哪邊)쯤 머무르고 있을까 ?

늘 그러하듯,
길은 사뭇 멀다.
따라 밤은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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