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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3000과 조루

소요유 : 2008.07.26 13:18


식객(食客) 3000과 조루(早漏)

제(齋)의 맹상군(孟嘗君),
조(趙)의 평원군(平原君),
위(魏)의 신릉군(信陵君)
초(楚)의 춘신군(春申君)

이들은 소위 전국시대의 4군(君)으로 불리운 자들이다.
이들에 대한 평가는 구구하지만,
이들을 그저 한낱 건달 정도로 치부하는 견해가 있다.
절대군주하에서 식객 3000명을 거느릴 정도면 여간 대단한 권세가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들을 건달 정도로 폄하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

식객 3000 정도를 거느릴려면 대략 십만호 이상의 식읍(食邑)에 봉해져야 한다.
식객 3000에다가, 이들을 수발 드는 하인들,
그리고 자기 세력 유지에 필요한 병사, 관리 등등을 부양하려면,
십만호도 빠듯할 판이다.

산업이라야, 농업이 모두인 형편이며,
게다가 당시의 열악한 농업기술 수준으로는 농민들 자신들 입에 풀칠 하기도 버겁다.
이런 형편에 갖은 부역에다, 세금 등으로 수탈은 오죽 당하였는가 ?
거기다 홍수, 가뭄 등의 천재가 닥치면 그야말로 초근목피로 연명할 때도 많다.

그런 사정인데, 식객을 3000이나 부양한다는 것은
농민 입장에서는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니다.

식객이란 게, 이들을 거느린 주인 입장에서는 만방에 위광(威光)을 떨치는 일이지만,
따지고 보면 정식 관리가 아니라, 개인의 사랑방에 든 손님에 불과하다.
그들은 구체적인 하는 일 없이 그저 주인하고 한담(閑談) 또는 정담(政談)을 나누는 게 일상이다.
그러다, 위급시에 지혜를 내고, 용력을 발휘하여 주인에게 봉사하는 무리들인 것이다.

이들 4君들은 대개는 왕족들이지만,
왕의 입장에선 이들의 세력 부상이 탐탁치만은 않은 것이다.
하기에 이들 양자는 갈등을 불러 일으키곤 한다.
그들간의 다툼에 초점을 맞춰도 훌륭한 이야기 거리가 된다.
하지만, 지금은 이게 주제가 아닌즉 여기서는 미루기로 하자.

***

왜 그들은 3000씩이나 식객을 키운 것일까 ?
우선은 식객 3000씩이나 키울 실력이 되어야 하겠지만,
천하의 인재를 구하려면 이리 힘껏 선전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저 사람에게 가면 일단 먹여주고 재워준다.
하니 뜻을 품은 사람들이 자연 모여 들게 된다.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 일단 무리를 모아야 학이든 꿩이든
그럴듯한 인재를 얻을 수 있음이다.

전국시대엔 후대의 과거제도 같은 것이 없었음이니,
이리 양적으로 일단 인재들을 많이 끌어 모아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인재 pool을 질적으로 필터링하기 전에,
우선 규모로 대응하여 크게 만들고 보아야 한다.

대단히 비효율적인 것이지만,
너른 땅에 걸쳐 효과적으로 알릴 마땅한 광고 방책도 없는 것이니 이리 양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다.
게다가, 세를 외부에 과시하기 위해서는
이리 한껏 뽐내어 위세를 부리는 것도 제법 그럴 듯하였으리라.

3000이라지만 그중에 상급 인재는 1푼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그저 밥이나 축내는 형편이다.
개중(個中)에 주인의 위세를 믿고 여염(閭閻)에 내려가
사단을 일으키고 말썽을 일으키는 일도 비일비재하였으리라,
하니 이들 무리들을 건달이라고 평한들 과히 틀린 말도 아니다.
선비만 모이겠는가 ?
범법자, 협잡꾼, 불한당 등 온갖 인물들이 다 꾀었다.
하지만, 주인 입장에선 이들을 홀대 할 수 없었음이니,
잘못 소문이 나면 애써 모은 이들이 흩어지기 때문이다.
그저 적당히 어루고 달래, 성가(聲價)가 훼(毁)하지 않고,
명성(名聲)이 기울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했다.
그러니, 이 품에 봉읍(封邑)내 백성들의 시달림은 오죽 하였겠는가 ?

후에 사기의 저자 사마천이 맹상군의 터전 제나라의 설(薛)을 방문했는데,
그곳 풍속이 선비들과 함께 난폭한 폭력배들이 많았다 한다.
하여 그 연고를 물으니, 답하여 가뢰대,
"맹상군이 천하의 임협들을 초치하였으니, 여러 간악한 이들이 설에 들어와, 6만여 가(家)를 이루었다."
세상 사람들이 맹상군이 손님을 맞기를 즐겼다는 말이, 과히 명불허전이라.
이리 밝히고 있듯이 그곳은 맹상군의 비호하에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太史公曰:吾嘗過薛,其俗閭里率多暴桀子弟,與鄒、魯殊。問其故,曰:“孟嘗君招致天下任俠,姦人入薛中蓋六萬餘家矣。”世之傳孟嘗君好客自喜,名不虛矣。

(※ 鄒, 鲁 : 추(鄒)의 맹자(孟子)와 노(鲁)의 공자(孔子)를 뜻하니, 곧 선비를 말함.)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제20권 고금인표(古今人表)는
옛 인물들의 인품을 상상(上上)에서 하하(下下)까지 9 등급으로 나누어 기술한 것인데,
맹상군, 여불위를 중중(中中)에 넣었다.
여불위 역시 진나라 재상으로 3000 식객을 거느린 위인이다.
(※ 참고 글 : ☞ 2008/02/11 - [소요유/묵은 글] - 여불위(呂不韋) - 기화가거(奇貨可居))
반고는 이들 3000씩이나 식객을 친 사람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았음이니,
기실 이들 밑에 기숙한 식객들 수준이야 일러 무삼하리요.

하여간, 이들 무리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위계질서를 세우지 않을 도리가 없었으니,
가령 맹상군의 경우,
이들을 위한 객사를 짓되, 1, 2, 3 등급을 매겼다.
1등 객사를 대사(代舍), 2등 객사는 행사(幸舍), 3등 객사는 전사(傳舍)라 했다.
1등 객사를 대사라 한 것은,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은 맹상군을 대신해서 모든 일을 처리할 만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상객(上客)들은 모두 1등 객사에 머물렀다.
그들은 식사 때면 고기 반찬을 먹고, 출타할 때는 가마를 탔다.
2등 객사를 행사(幸舍)라 한 것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다행이 모든 일을 맡길 수 있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중객(中客)들은 다 2등 객사에 머물렀다.
그들은 식사 때에는 고기 반찬을 먹지만, 출타할 때는 가마를 타지 못하고 걸었다.
3등 객사를 전사(傳舍)라고 부른 것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심부름이나 시킬 수 있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객(下客)은 모두 전사에 기거했다.
이들은 그저 밥이나 얻어 먹는 축이었다.

양(量)으로 임하니, 인재를 거르는 장치가 거칠지만,
그리고, 도외시 할 수도, 하여서도 아니 되지만,
농민들의 고통을 잠깐 도외시 한다면,
한편으로는 호기롭고 은근히 낭만적이까지 하다.

현대처럼 학벌, 경력으로 인재를 선발하는 환경하에서는,
설혹 재능이 있더라도 이것들을 불비(不備)하면, 입신출세(立身出世)할 경로가 대단히 협소하다.
하기에 재능도 재능이지만, 이를 포장하고, 상품화하는 데,
가외의 정력을 기우리는 폐단이 노정되고 있다.
리쿠르트 사회에서는 ‘경력 만들기’라는 주제의 강연도 실시되고,
몇몇 관련 책들도 으젓하니 책방 판매대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기를 쓰고 명문대학에 들어가려는 이유 중의 하나가,
실력을 배양하는 것외에 좋은 학벌을 만들기 위함이요,
그럴듯한 회사를 자주 바꾸며 드나드는 것도,
경력관리를 위한 방책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강태공(姜太公)은 주문왕(周文王)을 만나기까지 위수(渭水)에서 세월을 낚았다.
드디어, 그가 문왕에게 발탁되어 상부(尙父)로 삼아진 것이 80세다.
또한, 진목공(秦穆公)에게 발탁된 백리해(百里奚)는 70세였으며,
함께 등용된 그의 의형(義兄)인 건숙(蹇叔)은 그보다 한 살 위이니,
모두 인생 말년에 재상으로 쓰임을 받았다.
  (※ 참고로 백리해는 아래 소개될 영척처럼 소 치고, 말 키우던 일까지 한 사람이다.
  한 때, 망국 우(虞)에서 벼슬을 살기도 했지만, 본격적인 활동은 진(秦)에서부터 시작된다.
  고대인즉, 관리가 아니고, 야인으로 돌아가면 뻔히 할 것이라고는
  소 키우거나 흙투성이 농사 일이기 십상인 것이다.
  이 가운데, 주경야독(晝耕夜讀) 책을 읽고, 지략과 덕행을 닦아 기르니,
  가히 이들은 대단히 훌륭한 인물이라 할 것이라.
  하기에 건숙, 백리해 콤비는 진나라가 후에 천하를 통일하는데,
  주춧돌을 놓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게 요즘 현대에서는 거의 일어날 확률이 없다.
꽉 짜여져, 구조화된 사회이기에 가외의 통로가 막혀버린 것이다.
현대사회가 얼핏 효율적인 것 같지만,
자유로운 창조성을 발휘하기에는 상당히 경직된 구조인 것이다.
그저 끝 모르게 몰아 다구쳐야 존립하는 가여운 현대인 것이다.

내게 한 생각이 떠오른다.
이게 농업으로 치면 관행농 같은 게 아닐까 하고.
비료를 밭에 더 쳐넣으면 소출이 더 많이 나온다.
농약, 제초제를 치면 손이 덜어지고, 품이 적어지니 제법 효율적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요소 투입에 비해 소출은 체감하고,
점점 지력(地力)은 피폐하여 더욱 대단위 처방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전통농법은 땅을 생각하고, 환경과 타협하고 공생을 꾀하였다.
땅의 여력내에서 길러먹고, 더 이상 쥐어 짜 착취하지 않았다.
하기에 누천년이 지나도 지심(地心)은 한결 같고,
농심(農心)은 건듯 부는 동풍에 살랑거리는 강아지풀처럼 한가롭다.

이런 여유 속에서,
길가는 소치는 늙은이를 스카웃하는 낭만적인 장면이 펼쳐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 주인공은 곧 영척(寧戚)이니 소치는 목부였던 그를
관중이 제환공에게 천거하여 대부로 삼았다.

3000 식객이 일구어내는 이야기 공간이,
얼핏 거친 것 같으면서도 계명구도(鷄鳴狗盜)의 실(實)이,
또한 이리 들(野)에서도 인재가 낚여지는 낭만이 있었음이니,
어즈버, 효율지상주의의 현대인이 적이 우습구나.
(※ 鷄鳴狗盜 :
맹상군이 진(秦)나라 소왕(昭王)에게 죽게 되었을 때,
식객(食客) 가운데 개를 가장하여 남의 물건을 잘 훔치는 사람과 닭의 울음소리를 잘 흉내 내는
사람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빠져나온 고사.
)

***

내 가끔 느끼는 바 있으니, 이를 적으면서 두서 없는 글을 마치고자 한다.
나는 포토샵을 독학으로 배웠다.
다행이 요즘은 강의 동영상을 구하기 쉽다.
한국인 강사의 것과 영어가 설어 서투나마 외국인 강사의 것을 두루 몇 편을 보고 공부를 했다.
한국인 강사는 모두 파릇파릇 젊은 강사 일색이다.
하지만, 외국인 강사는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 적지 않다.

저 은발의 노객은 포토샵의 대가가 아닌가 말이다.
하니, 포토샵 하나 가지고 저리 나이 들도록 정열적으로 강의를 하고 있음이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늙은이는 실력은 고하간에 우선은 신뢰를 하지 않는다.
이게 IT 산업같이 첨단 영역에서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스킬(skill)이 중요한 영역에서까지 한국에서는 늙은이를 꺼려한다.

이게 양편 모두의 책임이 있겠다.
우선은 나이 든 이를 무조건 배척하는 수용가의 태도가 있을 테고,
다른 편으로는 늙으면 공부를 접고 마는 조루현상 때문이 아니겠는가 ?

은발을 날리면서도 제 전문 분야에서 한평생 갈고 닦으며 축적한 경험과 실력을
아낌없이 펴고, 가르치는 세상,
이 아니 아름다운 세상인가 말이다.
여기 한국은 조루(早漏)의 세상이다.

내가 산동네에 들어와 직접 접하며, 가장 놀란 것은,
노인네들이 이리도 한심스러운가 하는 것이다.
대개 종일 경로당에 죽치고 앉아 TV 보고, 화투치는 것으로 소일하거나,
산에 올라 화투치고, 담배 피고, 쓰레기 투기하는 것으로 하루를 지운다.
제 잘난 짓거리인즉 무엇을 하든 다 좋다.
다만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산에 올라가 쓰레기 투기하는 짓거리다.
이런 쓰레기 같은 인간들은 도저히 용서가 아니 된다.

하기에 내가 늘 주장하는 게 무엇인가 ?
“늙어 죽을 때까지 공부하여야 한다.”
이게 아니 되니까
늙은이가 종내 푸대접을 받게 된다.

늙은이란 무엇인가 ?
존재 자체가 위엄이 되고 덕스러운 분.
하기에 그 분이 앞에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절로 고개가 숙여지며,
허리를 굽혀 지나치게 되는 존경스런 분이 아니겠는가 ?
이러하지는 못할 망정,
늙은이라고 무슨 특권이라도 가진 양,
쓰레기를 국립공원 안에다 무단히 버리는 천박스런 짓거리를 하여야 하겠는가 ?

노소(老少)간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상대를 인정하지 못하는 세상,
그래서 한국 사회는 조루(早漏) 병증을 앓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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