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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秋水)

소요유/묵은 글 : 2008. 8. 17. 11:34


가을 물.

가을하면 먼저 단풍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단풍은 가을 길섶을 조금 지나쳐야 만나게 됩니다.

가을 문턱에 들어서면,
계곡물은 만져보지 않아도 절로 서늘한 기운을 비치고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가을이 왔음은 정작 바위틈을 흘러내리는 물소리로 듣습니다.

물은 지상에서 그 누구보다
햇빛 앞에 정직합니다.
그래서 그의 체온을 오롯하게 기억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인식의 전령(傳令)

여름이 식어가고 있는 그 자리에
가을은 찰랑 은방울 소리를 내며 가슴섶으로 내려 앉습니다.
여름에 지쳐 닫혔던 인식의 창은 이 때 비로서 눈 뜹니다.
하니, 가을 물은 정녕 傳令이자 傳鈴인가 합니다.

***

목증파사(目曾波些)

안사추파쌍검횡(眼似秋波雙臉橫)

추파횡욕류(秋波橫慾流 )

모두 미녀의 눈길을 표현한 싯귀절들입니다.

목증파사는 굴원의 시에 나옵니다.

美人既醉 朱顏酡些
娭光眇視 目曾波些

미인이 진작 취하니, 얼굴은 바알갛게 달아오르네,
가슴프레 눈 찡긋, 교태(희롱)짓는 모습이라니,
눈·물결 겹쳐 파문을 일으키네...
<bongta 拙譯>

안사추파쌍검횡(眼似秋波雙臉橫)은 노랫 가사인데
역시 날아갈 듯이 춤추는 기녀의
양 눈매를 가로 질러 가을 물결처럼 파문이 지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을 물속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거기엔 절제의 미학이 있습니다.

봄 냇물의 기약,
여름 샛강의 열정,
그리고, 겨울 호수에서 황량함이 추상된다면,

가을 계곡물에서는
호젓한 길에서 만난 청순한 여인네 눈길처럼
철렁 가슴을 흔드는 정조(情操)가 무늬져 번집니다.

살쩍곁을 지나는 은은한 바람 소리에
사향 낭자 하나가 사르르 다가섭니다.

아차 하는 순간 지난 세월을 순식간에 허물어버린
변양균, 그 역시 어느 지난 가을 秋波가
가슴팎을 저르르 지났을런가요 ?

부인과 자식들에겐 씻을 수 없는 폭력으로 귀결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 백호구미(白狐九尾)를 만났음이라.
♂♀ 익정(溺情)이라,
정이란 감은(黑) 바다같이 깊어라.
빠지면 뉘라서 헤어나리.

현대에는 추파라는 게,
음탕한 계집의 눈꼬리치는 모습을 가르킵니다.
미인의 눈·물결이 천박한 유혹의 짓거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아름다움은 이리 쉬 다치고 마는 것일까요 ?
가만히 있으려도 끌어내려 이리 흠을 내고 맙니다.

지난 여름 버려진 비닐 조각에
가을 물이 흐르던 발길을 멈칫 거리며
소녀처럼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징검다리 건너는 그녀에게 
낯 붉히며 손을 내어 밉니다.
전 차마 부끄러와,
뒷전으로 슬며시 조각을 집어냅니다.

秋波를 다시 복권시키고 싶습니다.
비릿한 유혹이 아니라,
맑고 서늘한 아름다움의 은령(銀鈴)
잊혀진 그 은빛 방울 소리로.

가을은 그래서 인식의 전령입니다.

가을 밤 호롱불 심지 올려 책 읽다,
설핏 궤상(机上)에 잠이 고입니다.
삽짝문에 살며시 기대어
서시(西施)가 눈을 찡그리자(嚬目)
문득 가을 물결이 귓가에 찰랑입니다.
깜짝 놀래 깨어난 방안 가득히
달빛만이 출렁입니다.

올 가을엔 봉숭아 꽃물 들이듯
모든 여인네가 층층(層層) 秋波를 일으켰으면 합니다.
그 가을 물결속에 몸을 안기고 싶습니다.
이내, 지는 단풍잎 하나가 날아들어
가을 남자 이마에 얹힙니다.

가을은 그리 깊어갑니다.

(2007.09.27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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