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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장도(笑裏藏刀)

소요유 : 2008. 10. 10. 14:58


짧은 인생이지만,
그 짧은 가운데서도 온갖 풍상(風霜)을 다 겪어야 한 세상을 마칠 수 있다.

사람이 부귀하면, 주위에 사람들이 꾄다.
(※ 참고 글 : ☞ 2008/06/27 - [소요유] - 富와 貴)
산이 깊으면 온갖 잡새가 모이듯이,
돈 많고, 지위가 높아 귀해지면 누가 부르지도 않아도 모여든다.
하지만, 돈 잃고, 자리를 잃으면 감히 가까이 범접도 하지 못하던
하찮은 소인배까지 꺼려 가까이 하지 않는다.

상대가 부귀하면 내게 떡 하나라도 더 떨어질까 싶은 것일까?
설혹 해는 입지 않는다 한들, 자신이 별 자랑할 것도 없는 처지라면,
비굴함만 더 보탤 뿐, 별 실속이 없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함에도 부나방처럼 무작정 부귀한 이와 친하려 덤벼듦은
이리 함으로써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자기 예언적 주술을
스스로에게 거는 것이 아니겠는가?
주술을 거는 것은 그게 반드시 효과를 일으키리라는 확신보다는
외려 가만히 앉아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경우,
생겨날 모종의 불안감에 떨고 있을 자신을
사전적(事前的)으로 위로하기 위한 안타까운 몸부림은 아닐까?

여기 두 가지 고사(古事)를 떠올린다.

***

먼저 합종연횡술의 주인공 소진(蘇秦) 이야기다.
소진이 처음에 주유천하하며 출세 길을 모색하지만,
세가 궁하고, 뜻을 이루지 못하여, 거지꼴로 낙향한다.
집에 돌아오니 온 집안 식구는 마구 욕설을 퍼부어댄다.
소진의 아내는 남편이 돌아왔건만 베틀에 앉아서 베만 짤 뿐 내다보지도 않는다.
그나저나 소진은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형수씨 몹시 시장하니 밥 좀 지어 주오”
“땔 나무가 없어 밥을 못 짓겠네.”

富貴途人成骨肉
貧窮骨肉亦途人
부귀하면 남도 형제처럼 나를 따르고
가난하면 형제도 나를 남처럼 대하는구나.

후에 다시 유세 길에 오른 소진은
마침내 뜻을 이루어, 6국 재상의 인수를 받고, 출세를 한 후,
금의환향(錦衣還鄕)한다.
길거리로 마중 나온 집안 식구들은 감히 쳐다도 보지 못한다.

소진이 웃으며 형수를 보며 말한다.
"어찌하여 전에는 거만하더니 오늘날에는 이토록 공손하십니까?"
蘇秦笑謂其嫂曰 何前倨而後恭也

"도련님의 지위가 높고 황금이 많은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嫂季地浦服 以面掩地而謝曰 見季子位高金多也

소진은 인심이 이러한 것을 뼈 속 깊이 알기에,
가족들을 다 용납하고 만다.

***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이 진(秦)나라 위앙(衛鞅)의 책동에 의해,
국내에서의 정치적 입지를 잃고 설(薛)땅으로 추방당한다.
당시 식객 3000을 치고 있던 맹상군으로서는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에 처하고 만다.
거느리고 있던 식객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진다.
하지만 빙환(憑驩)이란 사람은 떠나지 않고 맹상군 곁에 남았다.

빙환은 진소양왕(秦昭襄王)과 제민왕(齊湣王)을 교묘히 경쟁적으로 충동질하여,
맹상군을 중용하여야 한다고 설득한다.
진소양왕은 빙환의 헌책을 좇아 맹상군을 재상으로 초빙하려고 사절단을 설 땅으로 파견한다.
이에 제민왕은 적국에 맹상군을 빼앗길 수 없기에,
중간에서 가로채 다시 제나라 정승으로 삼게 된다.

맹상군이 다시 정승이 되자,
지난날 뿔뿔이 떠났던 선비들이 다시 모여 들었다.
맹상군이 빙환에게 말한다.

“나는 일찍이 한 번도 문객(門客)들을 허술히 대접한 일이 없었소.
그런데 전날 내가 정승 자리에서 떨어지자, 그들은 다 나를 버리고 가 버렸소.
이제 선생의 힘으로 내가 다시 정승이 되었구려.
그런데, 저 선비들은 무슨 면목으로 나를 찾아왔을까요?”

빙환이 대답한다.

“대저 영욕성쇠(榮辱盛衰)란 것은 세상에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대군(大君)은 이 큰 도시를 보십시오.
조금이라도 이익이 있으면 모든 사람은 어깨를 비비며 다투어 성문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나,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이 큰 도읍도 무변 황야처럼 쓸쓸해집니다.
즉 모든 사람은 그들이 구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대저 사람이 부귀영화하면 아는 사람이 많아지고,
가난하고 천해지면 찾아오는 친구도 없어집니다.
그러하거늘 대군은 뭣을 탄식하십니까?”

맹상군이 일어나서 재배(再拜)한다.

“선생의 말씀을 명심하겠소.”

맹상군은 전처럼 다시 모든 선비를 받아들였다.

***

항차 골육지간에도 결과가 없으면 등을 돌리고,
황금이 많으면 아양을 떤다.

천하인이 모두 부귀귀천에 따라 이합집산 하는 것이라면,
그래 과연 인심이 그러한 것이라면 말이다.
도대체,
끝까지 주군 곁에 남아 있던 빙환은 누구란 말이며,
예양(豫讓)은 어떤 사람인가 말이다.
(※ 참고 글 : ☞ 2008/02/12 - [소요유/묵은 글] - 주리(主理)와 주리(主利) - 남녀의 code)

맹상군이 모든 선비를 예전처럼 다 받아들였다 하지만,
실각, 복위 전후의 맹상군은 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3000 식객이라지만,
이들 역시 예전의 자신과 무엇이 어떻게 달라진 것일까?

믿음이 사라진 그 자리에,
맹상군은 한참 성숙한 인간으로 자랐을까?
아니면, 그 역시 믿음을 저버린 2999명과 다를 바 없는 사람으로 따라 변했을까?

용렬한 인간들은 처음부터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해(利害)로 살아간다.
친구도 마찬가지다.
평온무사(平穩無事)한 자리에선 친구를 가릴 수 없다.
긴박(緊迫)한 이해(利害)의 현장에서라야,
그가 신의(信義)를 가진 진정한 친구인지 아닌지 가려진다.
(※ 참고 글 : ☞ 2008/02/15 - [소요유/묵은 글] - 배반의 장미)

소리장도(笑裏藏刀)
웃음 뒤에 숨은 칼을 주의하라.
시퍼렇게 꺼내든 칼은 하나도 무섭지 않다.
내 앞에서 함빡 웃음을 터뜨린 그 모습 뒤에 감춰진 은도(隱刀)가 무서운 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src : http://back.mine.nu)

어스름한 숲길에서
참빗처럼 반으로 쪼개진 조각달을 본 적이 있는가?
저 시린 월도(月刀)에 가슴을 그저 베이고 싶은 충동이 일었던 적이 없는가?
왜 달은 저리도 처연하니 매혹적(魅惑的)인데,
사람에겐 웃음조차 두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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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08. 10. 10. 14: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