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병(病)과 죄(罪)

소요유 : 2008. 11. 17. 23:45


날씨가 추워지다.

아파트 밖 한 귀퉁이에 마련된 옷가지 수거함에는 옷이 넘치지 않는다.
혹간 수거함이 넘쳐, 옷들이 밖에까지 널려져 있곤 한다.
나는 몇 점을 거두고자 그 때를 노리고 있다.
집에는 얼마 전에 헌옷을 다 정리하였기에 남은 것이 없다.

오늘 마침 밖에 버려진 이불 한 덩어리가 눈에 띈다.
하지만, 이불 속에 무엇인가 한 꾸러미 잔뜩 넣고는 끈으로 동여맨 모습이다.
저것을 해체하려니 조금 꺼림직 하다.
그냥 참고 며칠 더 기다리기로 한다.

여기는 산동네다.
저 아랫녘보다는 겨울엔 5도 정도 낮다.
저녁이 되자 제법 춥다.
내일부터는 기온이 많이 떨어질 테고,
오늘 밤엔 더욱 춥겠다.
필경은 산동네엔,
빙점(氷點) 영하(零下)의 밤이 도적처럼 다가오고 있으렷다.

고물할아버지네 강아지들이 마음에 걸린다.
(※ 참고 글 : ☞ 2008/11/02 - [소요유] - 강아지집)
밤이 깊어가자, 불현듯 이대로는 아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있는 옷들을 다시 점검해봐야겠다.

강아지 집 바닥에 깔 것으로 러그(rug)를 하나 챙기고,
잠바를 하나 헐기로 한다.
아내의 도움으로 우선은 이리 급히 채비하였다.

고물할아버지 집은 산기슭에 위치한다.
밤공기가 제법 싸늘하다.
밖으로 나서자 머리께로 휑하니 찬바람이 지난다.
잠바 뒤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썼다.

그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설 때까지 녀석들이 조용하다.
아마도 너무 추워 눈을 꼭 감고 모든 것을 잊자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것일까?
개집 가까이 가자 그제야 강아지가 인기척을 느끼고는 요란스럽게 반긴다.

저들은 이 추위에도 어찌 저리 발랄할까?
하지만, 이는 아마도 사람이 그리 느낄 뿐일 것이다.
털가죽에 감추어져 잘 모르는 게지,
실인즉 어둠 속에서 추위와 두려움에 한참을 떨고 있었으리라.

방 안에서 나온 불빛이 호박 빛으로 마당가로 삐져나오고 있다.
따스하게 느껴져야 할 저 빛조차 이 집 뜨락에선 왠지 이질적이다.
아마도 이는 방벽을 사이로 안팍이 심연처럼 깊게 단절되었기 때문이리라.
그 사이론 늘 차디 찬 물이 죽음처럼 흑빛으로 흐른다.

저 방안에 든 이들 역시 오늘 저녁엔 제법 추운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데 놔둔 강아지의 추위와 아픔을 정녕 모를 수 있음인가?

방바닥에 지펴진 따뜻한 온기가 몸으로 전해질 때,
제집 마당가에서 떨고 있을 강아지가 연이어 생각나는 게
보통 인간들의 마음이 아닌가?

인간의 혈관에 흐르는 피가 정녕코 따뜻한 것이라면,
한번 이리 믿어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단 백년 살기도 버거운 처지에,
무슨 천년 영화(榮華)를 기대하기에 저리 인색할 수 있음인가?

인간의 마음을 과연 믿을 수 있음인가?

이것은 의문이 아니라,
차라리 ‘인간의 병(病)’으로 접근하여야 할 것인가?

나는 잠시 혼란에 빠진다.
병이라고 생각하는 게,
인간의 죄를 덜고자 동원한 위선의 수사가 아닐까?

유마힐(維摩詰)도,
지장보살(地藏菩薩)도
사람이 병을 앓고 있다고 하였지만,
그리고 그들을 다 구할 때까지, 자신도 앓고 말겠다고 선언하였지만,
이러할 때는 차라리 원죄(原罪)라고 말하고 있는 기독교가
훨씬 정직한 것이 아닐까도 싶다.

병은 무슨 값 싼 병이란 말인가?
저것은 억겁을 짊어지고 건너야 할 죄업(罪業)이 아닐런가?

죄를 병이라 부르는 저 안타까움이란,
도시(都是) 차마 지켜보기 겨울세라.

아아,
유마, 지장의 어처구니 없도록,
가없는 그래서 차라리 못내 위대한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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