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 국파군망(國破君亡)

소요유 : 2008. 12. 15. 23:54


토목공사 뉴스에 국파(國破)를 떠올리다. 

國破山河在,城春草木深。
感時花濺淚,恨別鳥驚心。
烽火連三月,家書抵萬金。
白頭搔更短,渾欲不勝簪。

나라는 깨졌으나 산하는 여전하고,
성에 나린 봄에 초목 무성하구나.
꽃만 봐도 눈물이 흐르고,
이별의 한에 새소리에도 가슴이 놀란다.
봉화는 연 삼개월 피어오르고,
집에서 오는 소식은 만금(萬金)만큼 보기 어렵다.
흰 머리 긁으니 머리카락은 다시 짧아져
이젠 비녀도 감당하지 못할 지경이구나.

당(唐)나라 두보(杜甫)의 춘망(春望)이란 시다.

두보는 당시 안록산(安祿山)의 난을 당해 숙종(肅宗)을 찾아 헤매다가
적군에게 붙잡힌 몸이 되어 장안(長安)으로 압송되었다.

게서 목격한 장안의 실상은 가옥도 파괴되고, 백성들은 피폐해졌건만,
산하는 남아 봄이 돌아와 어김없이 초목이 무성하였단 말이다.
하지만, 스산한 마음에 꽃을 봐도, 새소리를 들어도
슬픔만 흐른다는 심회를 노래하고 있다.

나는 소위 ‘4대강 정비사업’이란 미명하에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필경 대운하를 예비하고 있는 토목공사를 대하며,
문득 이 시를 떠올린다.

고대에 토목공사를 벌이는 일은 온 국력을 기우려 퍼붓는 일이기에,
비장한 각오와 계획이 없으면 함부로 시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국부의 고갈은 물론이거니와,
백성들은 부역과 조세에 시달려,
모두 녹초가 되고 만다.
필경엔 엄청난 후유증이 나타나곤 한다.

국기(國基)가 흔들려 외적의 침입을 받거나,
반란, 폭동이 일어나는 게 보통의 말로(末路)다.

춘추시대 초령왕(楚靈王)이 스스로 패자(覇者)임을 자처하며,
장화궁(章華宮)을 지었다.
장화궁은 넓이가 사십 리며,
한가운데 높은 대(臺)를 쌓았기 때문에 사방을 맘껏 조망할 수 있었다.
그 높이가 삼십인(仞)이나 되었다.
그래서 세상에선 장화대(章華臺)라고도 하고,
일명 삼휴대(三休臺)라고도 했다.
즉 너무나 높아서 그 꼭대기까지 오르려면, 
누구나 세 번은 쉬어야 오를 수 있다고 해서 삼휴대라고 한 것이다.
또한 이 고대(高臺)를 중심으로 퍼져나가 궁실과 정자들도 모두 웅장하고 화려했다.

원래 초령왕은 괴이한 취미가 있었다.
그는 가는 허리를 가진 여자를 지극히 좋아했다.
뿐만 아니라, 남자라도 허리가 굵으면 싫어했다.
장화궁이 낙성되자 초령왕은 허리가 가는 미인만을 뽑아서 거처하게 했다.
그래서 장화궁을 일명 세요궁(細腰宮)이라고도 했다.
궁녀들 중에는 초령왕에게 허리를 가늘게 보이려고
음식을 조금씩 먹는 여자가 많았다.
심지어는 허리가 가늘어지기 전에 굶어 죽는 여자도 생겼다.
궁중에서 이 야단들을 하자,
마침내 초나라 모든 백성들 간에도 이것이 유행이 되어,
허리가 굵은 자는 여자나 남자나 모두 무슨 일이라도 난 양,
음식을 조금씩 먹었다.

이렇게 장화궁을 지었으나,
모든 나라에서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작금의 우리나라에서처럼 대운하인지, 4대강 정비인지,
돈을 왕창 벌어보자는 공사를 벌인 것이 아니라,
초령왕은 그저 위세를 과시하고 잔뜩 폼을 잡자고 하였을 뿐이다.
그런데, 아무도 거들떠도 보지 않으니 체면을 확 구겨버렸다.
초령왕은 분기가 탱천하고 말았다.

그가 이 분을 풀고자 한 일이라고는
기껏 약소국 채(蔡)와 진(陳)을 공격하여 없애버린 것뿐이다.

한편, 진(晉)나라의 진평공(晉平公)은
초령왕(楚靈王)이 장화궁(章華宮)을 지었다는 말을 듣고는 이리 말한다.

“초나라는 남쪽 오랑캐 나라에 불과하건만,
오히려 화려한 궁실을 지어 모든 제후에게 자랑하는데,
그래 우리 진나라는 오랑캐만도 못하단 말인가?”

이 때, 대부 양설힐(羊舌肹)이 앞으로 나아가 아뢴다.
(※ 참고 글 : ☞ 2008/09/02 - [소요유] - 시불망보(施不望報))

“자고로 패후(覇侯)는 덕으로서 모든 나라 제후를 거느릴 뿐,
화려한 궁실로써 천하를 거느린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초나라가 장화궁을 지은 것은 그들의 덕을 훼손한데 불과합니다.
그러니 상감은 아예 초나라를 부러워 맙시오.”

하지만, 진평공은 듣지 않고, 곡옥(曲沃)의 분수(汾水) 곁에다 궁실을 지었다.
그 궁실은 크기가 장화궁만 못하지만, 정묘하고 미려하기론 장화궁보다 월등했다.
진평공은 이 궁실을 사기궁(虒祁宮)이라 명명했다.

却説晋平公聞楚以章華之宮,號召諸侯,乃謂諸大夫曰:“楚,蠻夷之國,猶能以宮室之美,誇示諸侯,豈晋而反不如耶?” 大夫羊舌肹進曰:“伯者之服諸侯,聞以德,不聞以宮室。章年之筑,楚失德也,君奈何效之!”平公不聽,乃于曲沃汾水之傍,起造宮室,略仿章華之制,廠大不及,而精美過之,名曰蘋虒祁之宮。亦遣使布告諸侯。

염옹이 탄식하며 시에 이르되,
만백성의 수심으로 장화대는 지어졌는데,
진나라도 사기궁을 지어 못된 것을 본받았도다.
우습고뇨, 패자로서의 원려심모 없음이요,
기껏 한다는 짓이 토목공사를 일으켜 뭇 제후를 초청했구나.

髯翁有詩嘆云:
章華筑怨萬民愁,不道蘋虒祁復效尤。
堪笑伯君無遠計,却將土木召諸侯!

모든 나라 제후는 진나라에 화려한 궁성이 섰다는 소식을 듣고는
웃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모든 나라 제후는 위세에 눌려 사자를 진나라에 보내,
축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참으로 얄궂은 일이 벌어졌다.
위령공(衛靈公)은 새로 왕이 된 이래, 한 번도 진평왕을 뵈온 일이 없었다.
해서 이번 기회에 친선하는 뜻을 표해두는 것이
해롭지 않겠다 생각하여 진나라로 출발했다.
위령공이 복수(濮水)가에 이르렀을 때였다.
이 때 해는 서산에 지고 사방이 제법 어두웠다.
그래서 위령공은 하룻밤을 자고서 가기로 하고 역사로 들어갔다.
그날 밤에 위령공은 웬일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어느 덧 시간은 자정을 넘었다.
어디선지 묘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원래 위령공은 음악을 좋아했다.
당시 위나라 태사(太師) 벼슬에 있으면서 음악을 맡아본 사람은 사연(師涓)이었다.
위령공이 사연을 불러 이른다.
“그대는 저 음악 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라.자못 괴상하지 않은가?”

“신은 그 음악을 대략 짐작할 것 같습니다.
청컨대 내일 하루만 더 이곳에서 머물기로 합시오.
그러면 신이 능히 그 곡조를 기록하겠습니다.”

위령공은 그러하기를 허락했다.
이튿날 한 밤중이 되자 다시 그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사연은 그 음악 곡조를 완전히 익히고 체득했다.

드디어 위령공이 진나라에 강성(絳城)에 도착했다.
진평공은 위령공을 맞아 그를 사기궁으로 안내하고 잔치를 벌였다.

진평공이 위령공에게 말한다.

“과인이 듣건대 위나라에 사연이란 악사가 있어 곧잘 새로운 곡을 만든다던데,
군후는 이번에 그 사람을 데리고 오셨는지요?”

“예, 지금 저 뜰 앞에 와 있습니다.”

“그럼 시험 삼아 과인을 위해서 그 사람을 이 자리로 불러 줄 수 없겠소?”

위령공은 사연을 궁대 위로 오르게 했다.
진평공도 또한 진나라 태사인 사광(師曠)을 불러 오게 했다.
(※ 참고 글 : ☞ 2008/02/15 - [소요유/묵은 글] - 어둠의 계조(階調))

진평공이 사연에게 묻는다.

“요새 새로 지은 곡이라도 있는가?”

“이번에 강성으로 오다가 도중에 들은 곡조가 있습니다.
원컨대 거문고를 주시면 그 곡조를 탄주해드리겠습니다.”

이에 좌우 궁녀들이 사연 앞에 오동나무로 만든 거문고를 갖다 놓았다.
사연은 먼저 일곱 줄의 소리를 고른 뒤에 탄주를 시작했다.
거문고 소리가 몇 번 일어나자 진평공이 감탄한다.

“참으로 묘하구나 그 곡조요!”

하지만 그 곡조를 반도 듣기 전에 사광은 손으로 사연이 타는 거문고를 덮었다.

“중지 합시오.
이는 나라를 망치는 곡조입니다.
이곳에서 탄주해서는 아니 됩니다.”

진평공이 의아해서 묻는다.

“그대는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고?”

사광이 아뢴다.

“은나라 말년 때, 사연(師延)이란 악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주왕(紂王)을 위해서 음악을 지었습니다.
주왕은 그 음악을 듣고 권태를 잊었습니다.
지금 탄주한 음악이 바로 나라를 망치게 한 그 곡조입니다.
그 뒤 주무왕(周武王)이 주왕을 쳤을 때,
사연은 거문고를 안고 동쪽으로 달아나다가 복수(濮水)에 몸을 던져 자살했습니다.
그 뒤로 이 망국의 음악이 복수 물속에서 가끔 일어난다고 합니다.
사연(師涓)이 우리 진나라로 오다가 도중에서 들었다고 하니,
반드시 이 음악을 복수 가에서 들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위령공이 속으로 경탄한다.
진평공이 또한 묻는다.

“전대(前代)의 음악을 탄주한대서 무슨 나쁠 것이 있으리요.

사광이 대답한다.

“주왕이 이 음탕한 곡조 때문에 그 나라를 망쳤습니다.
그러므로 이 음악은 상서롭지 못한 곡조입니다.
상감은 듣지 맙시오.”

“과인은 원래 새로운 곡조를 좋아한다.
사연은 과인을 위해 그 곡조를 끝까지 탄주하라.”

사연은 다시 거문고 줄을 가늠하고 계속해서 탄주했다.
그 미묘한 억양은 호소하는 듯, 흐느껴 우는 듯 했다.
음악이 끝나자 진평공이 크게 기뻐하며 사광에게 묻는다.

“이 곡은 무슨 조(調)뇨?”

“소위 청상조(淸商調)라는 것입니다.

“그럼 청상조라는 것이 가장 슬픈 곡인가?”

“청상조가 비록 슬프되 청징조(淸徵調)만은 못합니다.

“그럼 그 청징조란 걸 한번 들을 수 없겠는가?”

“그건 안 됩니다.
자고로 청징조는 덕 있는 임금이라야만 들을 수 있습니다.
이제 상감은 덕이 옛 임금만 못하니 그 곡조를 들으실 수 없습니다.”

“과인은 그대도 알다시피 일찍이 듣지 못한 곡조를 좋아한다.
그대는 사양 말고 한번 수고하여라.”

사광은 부득이 거문고를 앞에 놓고
한 손으로 줄을 튕기며 한 손으로 줄을 짚기 시작했다.
음악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남쪽으로부터 한 떼의 현학(玄鶴)이 날아와 궁문 위에 모여 들었다.
이들은 줄을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춘다.
모든 사람들이 경탄을 금치 못한다.
곡조가 끝나자 진평공은 곧 백옥배에
아름다운 술을 가득 부어 친히 사광에게 주었다.
사광은 공손히 그 잔을 받아 마셨다.
진평공이 연신 찬탄한다.

“과인은 청징조보다 더 좋은 음악을 들어 본 일이 없도다.”

사광이 아뢴다.

“비록 청징조가 좋되 청각조(淸角調)만은 못합니다.”

진평공이 크게 놀라면서 묻는다.

“그럼 청징조보다 더 훌륭한 곡조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왜 과인에게 그걸 들려주지 않나뇨?”

사광이 대답한다.

“청각조는 청징조의 류(類)가 아닙니다.
그러나 신은 감히 탄주할 수 없습니다.
옛날에 황제(黃帝)께서 태산(泰山)에서 귀신들을 소집하실 때에,
코기리가 이끄는 수레를 타시고, 교룡(蛟龍)을 몰고,
필방(畢方)을 거느리셨습니다.
(※필방 : 괴조(怪鳥)니 주로 화재를 맡은 새다.
산해경을 보면 그 모양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푸른 바탕에 붉은 문(紋)이 있고 주둥이는 희다.
또한 文選 張衡賦注에 의하면 필방이란 새는 불을 입속에 머금고
인가에 화재를 일으킨다고도 하였다.)
그 때 치우(蚩尤)는 앞을 인도하고 풍백(風伯)은 먼지를 쓸고,
우사(雨師)는 비를 뿌리고 호랑(虎狼)이는 앞에서 달리고
귀신은 뒤를 따르고 등사(螣蛇)는 땅에 엎드리고
봉황(鳳凰)은 위를 덮었습니다.
황제는 이렇게 귀신들을 소집하신 연후에 청각조를 지었습니다.
그 뒤의 모든 임금은 덕이 박(薄)해서 아무도 귀신을 소집하지 못했습니다.
이젠 귀신을 부릴 만한 신인(神人)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청각조를 탄주하면 모든 귀신이 모여듭니다.
그러고 보면 불행이 있을 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진평공이 청한다.

“이제 과인은 늙었다.
진실로 청각조를 한번 들을 수 있다면 비록 죽어도 한이 없겠다.”

그러나 사광은 굳이 사양하고 거문고를 탄주하려 하지 않았다.
마침내 진평공은 자리에서 일어나 굳이 탄주하기를 명했다.
사광은 부득이 거문고를 끌어당겨 탄주하기 시작했다.

보라 검은 구름이 서쪽에서 일어난다.
곡조가 진행함에 따라 일진광풍이 휘몰아치면서 주렴과 방장을 찢었다.
음식상에서 그릇이 굴러 떨어지고 궁실의 기왓장이 어지러이 날아 흩어지고,
복도의 기둥이 기울어지고, 뇌성벽력이 일시에 진동하고, 큰 비가 쏟아졌다.
경각간에 대(臺) 아래로 물이 수척이나 괴었다.

대 아래 늘어섰던 시종배들은 비를 맞고 크게 놀라 달아난다.
진평공은 공포에 떨며 위령공과 함께 낭실(廊室) 곁에 가서 납작 엎드렸다.
한참 뒤에야 음악과 함께 바람은 자고 비도 그쳤다.
그날 밤에 진평공은 놀란 가슴이 병이 되어 신음하다가 잠이 들었다.
꿈에 내(能)란 괴물이 나타나 그를 괴롭혔다.

그 당시 어떤 나그네가 위유(魏楡)란 진나라 땅을 지났다.
그런데 산을 넘어 내려가는데,
산 밑에서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무엇인가 상의하는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분명히 들리진 않았으나 진나라 국사에 관한 것을 속삭이고 있었다.
그 나그네가 가까이 가 본즉 그것은 사람들이 아니고,
다만 돌 십여 기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나그네는 크게 놀라 곧 산을 뛰어 내려가
그 지방 백성들에게 이 이상한 사실을 말했다.
그 지방 백성이 대답한다.

“우리는 며칠 전부터 그 돌무더기들이
사람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요.
그러나 하도 괴이한 일이어서
이곳 사람들은 다른 지방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기로 했소.”

이런 소문은 결국 퍼져 강주성(絳州城)까지 퍼졌다.
진평공이 사광을 불러 묻는다.

“그대도 소문을 들어서 알겠지만 돌이 어찌 말을 할까?”

“돌이 어찌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돌에 귀신이 접했을 것입니다.
대저 귀신들이란 백성들을 의지합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원망(怨望)을 품으면 귀신들도 불안해집니다.
귀신들이 불안해지면 그 다음엔 반드시 요기(妖氣)가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이제 상감께서는 호화찬란한 궁실을 지어 백성들의 재력을 다 말려버렸습니다.
아마 그 돌들은 바로 이런 원한(怨恨)을 말했을 것입니다.”

진평공은 묵연(黙然)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광이 궁에서 물러나가다가 양설힐을 만나 말한다.

“귀신들은 노(怒)하고 백성들의 원망(怨望)은 높으니,
상감께서도 오래 살지 못할 것이오.
우리 상감께서 사치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실로 초나라 장화궁 때문이오.
그러니 초나라 임금인들 어찌 오래 가리요.
장차 불행이 닥쳐올 날을 넉넉히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게 됐소.”

아니나 다를까
한 달 남짓해서 진평공은 병이 재발했다.
그런지 얼마 뒤 마침내 진평공은 죽었다.
진평공이 사기궁을 짓고서 세상을 떠나기까지가 불과 삼년 사이였다.
진평공은 일시적 사치 때문에 백성을 가난으로 몰아넣고 병들어 죽은 것이다.
어찌 우습다 하지 않으리요.
후세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其時有人早起,過魏榆地方,聞山下有若數人相聚之聲,議論晋事。近前視之,惟頑石十餘塊,幷無一人。既行過,聲復如前。急回顧之,聲自石出。其人大驚,述于土人。土人曰:“吾等聞石言數日矣。以其事怪,未敢言也。”此語傳聞于絳州。平公召師曠問曰:“石何以能言?”曠對曰:“石不能言,乃鬼神慿之耳。夫鬼神以民爲依,怨氣聚于民,則鬼神不安,鬼神不安,則妖興。今君崇飾宮室,以竭民之財力,石言其在是乎?”平公嘿然。師曠退,謂羊舌肹曰:“神怒民怨,君不久矣!侈心之興,實起于楚,雖楚君之禍,可計日而俟也。”月餘,平公病復作,竟成不起。自筑蘋E祁宮至薨日,不及三年,又皆病困之中。枉害百姓,不得安享,豈不可笑。

사신(史臣)이 시로써 이 일을 읊은 것이 있다.

높은 대 넓은 궁실에서 새로운 곡조를 탄주하니
백성의 기름을 다 말리고 원한은 천지에 가득 찼도다.
괴물과 요기가 진평공의 목숨을 재촉해서 데리고 갔으니,
사기궁을 짓느라 공연히 재물만 탕진했도다.

史臣有詩云:
崇臺廣厦奏新聲,竭盡民脂怨黷盈。
物怪神妖催命去,虒祁空自費經營。

장화궁을 지은 초령왕이라고 말로(末路)가 어찌 다를 바 있으랴.
그 역시 후에 반란이 일어나,
쫓기다가 세궁역진(勢窮力盡)하여 자결하고 만다.

***

오나라에게 패한 월나라 왕 구천(句踐)은
칭신(稱臣)하며 때를 설욕할 때를 기다렸다.
그는 신하 문종(文鐘)을 시켜 오왕 부차(夫差)에게
큰 재목을 바치고 궁실을 건축할 것을 부추겼다.
이는 오나라의 국력을 피폐케 할 복심(腹心)이었다.

오왕 부차는 문종이 가지고 온 아름다운 재목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

오자서(伍子胥)가 곁에서 간한다.

“옛날에 걸왕(桀王)은 영대(靈臺)를 짓고,
주왕(紂王)은 녹대(鹿臺)를 지었기 때문에
백성의 힘과 나라 재물을 탕진하고 결국 망했습니다.
구천이 이런 재목을 보낸 것은 결국 우리 오나라를 해치려는 계책입니다.
그러니 받지 말고 돌려보냅시오.”

오왕 부차가 꾸짖듯 대답한다.

“구천은 이런 좋은 재목을 구했건만 일부러 과인에게 보냈다.
어찌 그의 호의를 물리칠 수 있으리요.”

이리하여 오나라에선 고소대(姑蘇臺)를 짓기 시작했다.
3년 동안 재목을 모으고 5년 만에 고소대는 준공됐다.
고소대는 상층(上層)에 올라서면 2백리 바깥을 내다볼 수 있었다.
이 거창한 고소대를 짓느라고 오나라 백성은 밤낮없이 중노동을 했다.
그간 병이 나서 죽은 자만해도 그 수효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후에, 오왕 부차 역시 월왕 구천에게  패하여 포로가 되고,
끝내 자결하고 만다.

***

국파군망(國破君亡)!
나라도 깨지고 임금도 망해 죽고 마는 것.
이런 고사는 마룻바닥에 엎어진 콩사발처럼
흩어진 콩을 주어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널려 있다.
물 묻은 손에 깨알 묻듯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자고로 영(靈)자는 포악한 정치를 펴고, 방탕하여
나라 일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왕에게 붙이는 시호(諡號)이다.
위에 등장하는 영(靈)자를 지닌 왕들은 물론,
정영공(鄭靈公), 진영공(晉靈公), 제영공(齊靈公), 진영공(陳靈公) 등
영공(靈公) 또는 영왕(靈王)이라 불려지는 왕들은 모두 사치가 질펀하고 정사를 돌보지 않았음이다.
누가 이 고습(故習)에 하나를 더 보태려 하는가?
바야흐로 여기 이 땅에도 수천년 뒤늦게 염려가 서리는데,
사뭇 삼가 근신하여 경계할 노릇임이라.

군망(君亡)이야,
백번 그러한들 하나도 아깝지 않다.
하지만, 애꿎은 만백성들의 고통은 어찌하는가 말이다.

두보가 장안으로 잡혀갈 때,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라 읊었다.
나라는 결단이 났을지언정 그래도 산하는 남아,
봄의 초목이 무성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경우 멀쩡한 온 산하가 파헤쳐질 운명이다.

어찌 된 것이 대통령만 바뀌면 거대한 산하가 하나둘씩 망가지냐 말이다.
새만금이 그렇지 않은가?
애초에 거기다 농업용지 만들겠다고 게거품을 물던 위정자들이,
슬그머니 되돌아와 골프장 200개를 짓자느니,
금융허브를 만들자느니 하며 탐욕의 붉은 혓바닥을 구시월 독뱀처럼 날름거리고 있다.
수천 년 걸려 만들어진 저 금싸라기 갯벌을 무참히 짓밟아 없애버리더니,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이제는 아예 전 국토를 뒤집어엎자고 난리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이날 청와대 회동에서 속도전을 강조하며 이 대통령에게 신속한 실천을 촉구했다. 박 대표는 청와대 회동에서 이 대통령에게 “(4대강 정비사업은) 전광석화와 같이 착수해 질풍노도처럼 밀어붙여야 한다”며 “전국 곳곳에 사회기반시설(SOC) 사업, 공공사업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착수해 전국토가 거대한 공사장처럼 느껴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박 대표는 “한반도 대운하는 국민이 원하지 않는 한 절대 안한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고 건의했으나, 이 대통령은 즉답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한겨레신문사)

전국토를 공사장화 하자는 저 말씀을 들어보라!
박희태!
마치 이름까지 박정희와 유사하다.
음울한 명자(名字) 그 이름이 다시 환청처럼 들려 오고 있음이다.
아, 나는 끝내 붉은 피가 용암처럼 끓고 만다.

나라가 풍전등화라
서민들은 단 한치 앞도 살피기 어둡고, 견디기 힘들다.
그러한데, 도대체 나라 곳간이 얼마나 충실하기에,
천금 만금을 헐어 멀쩡한 국토 뒤집어엎는 토목공사를 벌이자는 것인가?

저들은 말한다.
대운하가 아니라면,
관광산업을 일으키자고,
그러다가는 자고 일어나면 이제는 또 말을 바꿔,
4대강 수질을 개선하자고 기염을 토한다.
게다가 사업비 조달도,
세금에서 민자로 이젠 다시 세금으로 되돌아왔다.
국민을 완전 조삼모사(朝三暮四) 원숭이 다루듯 하고 있다.

얼마 전,
저들은 단 수개월 사이에 600억불을 허공중에 날려 버리지 않았는가?
게다가 경기를 부양하자고 금리를 막무가내로 내리다가,
이제는 여차하면 돈을 찍어내는 것도 불사할 듯한 기세다.  

노무현정권 당시 부동산이 폭발적으로 오르자,
그는 이리 말했다.

“분양원가 공개는 장사의 原理원리에 맞지 않는다.
장사는 10배 남기기도 10배 밑지기도 하면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시장을 인정한다면 원가공개는 인정할 수 없다. 이건 대통령의 所信소신이다.”

이명박정권의 부동산정책은 어떠한가?
종부세도 무력화되었고,
투기지역 완화, 전매제한제도 완화, 재건축 규제 완화, 양도세 등 세금 경감 등등...
부자, 토건업자를 위한 헤아릴 수도 없는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노든 이든 그 누가 정권을 잡든,
모두 부동산을 경기부양의 중심축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하니,
"좌파신자유주의", "대연정", "녹색성장" 등 모순어법이 백주대낮을 횡행한다.
노명박이란 이 허무한 조어(造語)가 하나도 허무하지 않은 당대의 역사현실이다.

누가 보더라도,
작금의 나라 살림은 절체절명(絶體絶命) 누란지위(累卵之危)에 놓여있다.

예컨대 가계경제라면,
설혹 한켠 허물어진 벽이 있다한들,
깨진 벽돌 주어 알뜰살뜰 땜질하여,
버티며 한겨울을 지나야 하지 않겠는가?
도대체 무슨 돈이 남아 있기에,
찬 바람이 쌩쌩 불어들어오는데,
그곳은 거뜰떠도 보지 않고 애매한 곳에 거금 쏟아 부으며,
연못을 파며, 고대광실 새 집을 지을 념(念)이 생기겠는가?

무슨 어려운 경제산술 풀어낼 것도 없이,
이치는 이리 간단하지 않는가 말이다.
도대체 저 재원은 어디에서 마련되는가 말이다.

저게 모두 남의 돈 빌려다 하거나,
종이돈 막 찍어내서 충당하지 않는 다음에야
어디에서 샘솟는 것이란 말인가?
게다가 바로 엊그제 부자들 주머니엔 감세란 이름으로 알뜰히 채워주지 않았던가.

만약 저게 그들이 그리 외치는 돈이 되지 않는다면 뒷감당을 어찌 할 것이며,
백번양보하여 설혹 몇 푼 돈이 된다한들,
제 처자식 팔아 빚내 호의호식하자는 격이 아니겠는가?

우리 어렸을 적만 하여도 삼천리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 하지 않았는가?
이게 단순한 감상이 아닌 것이,
바야흐로 세계는 환경이 중요한 가치로 대두대고 있는 마당인지라,
아무리 배를 곯는다한들, 장래를 기약하며 처자식 온 식구가 함께
힘을 내며 견디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음짐지갈(飮鴆止渴)
‘짐독을 마셔 갈증을 풀다.’
(※짐독 : 짐새란 독조(毒鳥)의 깃털로 만든 독을 말한다.)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온 나라를 공사판으로 만들어,
얼렁뚱땅 국민의 얼을 빼앗고,
넋을 홀려 눈 가리고 아웅 하자는
저들 위정자들이란 참으로 흉하고뇨.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라
비록 나라가 일시 다쳤다한들,
산하까지 팔아넘길 수는 없다.

아무리 욕심이 등천하는 토건족들이라한들,
영혼까지 저당 잡힐 수는 없지 않겠는가?
저들도 처자식이 있다면 말이다.

국파군망(國破君亡)!
역사속에 늘 되풀이 되는 이 말을 뼈에 새겨 기억하라!

이 말을 잊으면 이내 이리 피빛으로 재현되고 말리!
국파토건족망(國破土建族亡)!

귀신이 돌에 접해 말을 하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딱한가?

귀신이 사람에게,
사람이 귀신에게,
서로에게 여간 민망한 노릇이 아니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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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08. 12. 15. 23: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