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두려움

소요유 : 2008. 12. 22. 23:34


어떤 사람이 하나 있다.

산에 버려진 강아지들을 1년 반 동안 돌보시던 아주머니 한 분.
그런 그녀를 두고,
이웃들은 이리 쑥떡 거렸다고 한다.

“저 여편네, 지 시어머니한테는 잘 못할 것이야,
미쳤다고 강아지들에게 저런 정성을 보여.”

저들이 언제 그 이후를 보기나 보았는가?
지레 짐작으로 저리 재단(裁斷)하는 저들 저 심보는
흥부전에 나오는,
오장육보(五臟六腑) 다음에 덧붙은 칠보,
왼편 갈비 밑에 주먹만하게 딱 붙어 있다는 그 심술보란 말인가?

원래 앵두나무 우물가는 시끄럽다.
남에 대한 칭찬, 멸시, 질투가,
개수물통 속의 설거지 그릇과 함께
쨍그랑 요란한 소리를 낸다.

강아지 사랑하는 것 하고,
인간사랑은 절대 양립할 수 없다는 저들의 태도란 도대체 무엇인가?

안간힘을 쏟는다.
이 양자를 갈라놓기 위해.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아무 허물도 없는 사람을
비웃는 심리의 저변에 무엇이 숨어 있을까?
두.려.움
텃세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두려움의 일종이다.
내 영역이 타자에 의해 침탈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이 솟는다.
이내, 이빨을 드러내놓고 으르렁 거리며, 위협하며 상대를 몰아낸다.
이게 겉보기에 집중하면 공격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저변에는 불안과 공포의 심리가 갈피마다 숨어 있다.

제들끼리 패를 지어 무리를 만드는 것도,
형태를 달리 할 뿐, 뿌리는 같은 데 터한
동일한 심리기제의 작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이치를 동물들을 통해서 더욱 확실히 알게 되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개가 으르렁 거리며 무섭게 대들면,
놀라 피하면서 이르길 ‘그 녀석 몹시 사납군! 하고 평한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겁쟁이 녀석인 경우가 적지 않다.
자신이 두려우니까 이리 뒷덜미 털을 세우며 한껏 긴장하는 것이다.
이런 개를 만나 무섭다고 뒤돌아 냅다 뺑소니를 치면,
이내 따라와 뒷 종아리를 문다.
이럴 때, 잘 타이르고 어르면 진정이 되는 수가 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을 때는 눈길을 거두지 말고,
엄하게 마주 응시하면 어지간한 경우에는 눈을 못 맞추고 피하게 된다.
천하에 사람 눈처럼 매서운 게 또 있을까?
이러면 얼추 사태는 진정되고 내가 거기 마당의 주인이 된다.
그래도 통하지 않을 때는 발을 구르며 호통을 치면,
어지간한 투지가 없는 한, 꽁무니를 빼며 도망가게 된다.

내 우리 집식구에게 타이르길,

“산속에 들어가 혹 사나운 개를 만나면 무섭다고 절대 등을 보이지 마라,
(산속엔 가끔 버려진 개 떼들이 나타난다.)
등을 보이면 지는 첩경이라 곧 위험에 빠지게 된다.
아무리 무서워도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며 승부해야 한다.
사람이 개를 무서워 하는 것보다 더 많이,
실인즉 개들은 사람을 무서워한다.
그렇지 않든, 이 세상에 사람보다 더 독하고 무서운 게 어디에 있는가?”

“그 보다 적의를 보이지 않고 부드럽게 어르면,
제 아무리 사나운 개라도 결코 먼저 공격하는 경우는 드물다.”

“가끔 신문에 나는 개가 주인 물어 죽이는 사건은 그럴 만하니까 벌어진다.
내가 돌보는 고물할아버지네 시베리안 허스키는 덩치도 어지간한 송아지만하고,
눈빛도 매서워 처음엔 경계를 많이 하였지만,
보아라, 이제는 나를 보면 좋다고 얼굴에 미소까지 보이며,
온통 내게 허물어지지 않더냐?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말이다.
그러하니, 세상에 오죽하면 제 주인을 물어죽이겠는가?
보지 않아도 그들이 그동안 얼마만큼 모진 학대를 받으며
세상을 향해 독기를 품었을까 뻔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저 뺑덕어미의 후예들,
자신들이 하지 않는 것을 접하자, 저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 안에서는 풀지 못하는 그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는 순간,
화를 내며 트집을 잡고 끝내 공격하기에 이르른다.

그런데 왜 그래야하지,
나 같으면 내가 이해하지 못하겠으면,
차라리 그냥 내버려두고 내 길을 가겠다.
아니 누가 상대의 이해를 구하고, 동정을 구걸이라도 했단 말인가?

겨울철에 반팔 옷을 입고 나서거나,
여름철에 두터운 외투를 입고 나타나면,
어쩔 텐가?
그냥 그려러니 내버려두면 어디 덧나는가?
그저 안달을 하며 손가락질 하며,
비웃고, 돌팔매질을 해대야 직성이 풀린다.

만약 누군가,
“인간에 대한 사랑도 펴지 못하면서, 동물을 어찌 사랑하느냐?”
이리 말한다면,
그 말을 받아, 한번 이리 되물어 보는 것은 어떨까?
“동물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인간은 사랑 할 수 있겠느냐?”

이런 물음의 구조에는 경(輕)하고 중(重)함의 차별이 기초를 이루고 있다.
전자는 중한 것을 놔두고 어찌 경한 것을 먼저 챙기느냐 하는 것이고,
후자는 경한 것도 보살피지 못하는 주제에 중한 것인들 챙길 수 있으랴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따위의 물음은 전후 모두 그야말로 우문(愚問)이다.
나로서는 원천적으로 이런 물음을 제기할 수조차 없다.
왜냐하면,
최소한 사랑이란 그리 분절로 나누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그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저런 우문을 생산해낸 사람들은 필시 머리가 좋거나 가슴이 약한 사람일 것이다.
머리가 좋으니 사물을 잘게 쪼개 분절화 시켜 이해하길 좋아할 터이고,
가슴이 나약하니, 나 외의 것으로 감정의 대상을 넓혀갈 여유가 없는 것이다.

우리 동네엔 버려지고 학대받는 동물을 보살피는 아주머니가
또 한 분 더 계셔, 모두 두 분 계시다.
나는 이게 너무 고맙고 경이롭다.
이번 여름에도 밭에서 거둔 농작물을
나는 저 분들에게 몇 번이고 전해드렸다.
집식구의 오해를 받을 정도로.
하지만, 내 처도 그들을 사랑한다.

이젠 겨울이라 나눌 농작물도 없다.
나는 처에게 가끔 말한다.

“저 분은 귀한 분이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나만이라도 격려해드려야 해.”

그러자, 내 처도 수긍을 하며,
언제 방앗간에서 떡이라 쪄서 나누겠다고 말한다.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저 가련한 동물들에게 인정을 베풀 수 있는 마음을 가지셨다는 게,
너무 귀하고 훌륭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저 그 자리에 머무르면 족하지,
알지도 못하면서 다음의 물음이 왜 제기되어야 하는가?

“저 여편네 시어머니 제대로 봉양하지 못할 걸.”
이런 의문이 왜 유발되어야 하는가 말이다.

이런 마음보들이 나는 정말 단작스럽고 치사스럽게 보인다.

그런데 말이다.
저 강아지들 유기하고 학대하는 족속들은 누구인가?
비웃던 저들 무리 가운데 정작 그들이 나왔지 않은가?
저들이 저지른 패악질을 뒤치닥거리하는 것이
정녕 그리도 마땅치 않단 말인가?

왜 이리 마음들이 흉할까?
아니 불안의 징조로 읽히운다.

열등감, 콤플렉스,
그 얽힌 갈등의 전사(轉射), 전이(轉移)가 외부를 향해 독화살로 난다.
그 독화살을 날림으로서 그들은 도착(倒錯)된 안전을 겨우 확보한다.
이리 보면, 이들은 실인즉 가여운 인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大人不記小人過'라 하는데,
아직은 나 역시 수양이 부족한가 보다.

끝으로,
속칭 미국의 강아지 공장에서 최근 1000마리를 구출한 기사 하나를 소개한다.
동영상 내용은 구출한 후 사람들이 축하하는 장면이다.

지난 8월 미국의 West Virginia 주에서 1,000마리의 강아지들이 구출이 되었습니다. 그 강아지공장 주민들에 의하면 폐기물이나 오물을 불법적으로 버리고, 동물권리를 무시한 공장이라는 신고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결국 보호단체와 경찰들이 검사를 시행했으며, 한국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닭장같은 곳에 강아지들을 가득 채워넣고, 최악의 위생과 관리시설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강아지 분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강아지들의 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주인의 포기를 얻어내어서 1000마리를 구출했지만, 감당하기 힘들정도의 숫자로 인해서 많은 곳으로 분산 수용이 되었고, 제가 사는 곳에서 그나마 가까운 워싱턴디씨에 있는 Washington Animal Rescue League에는 100마리가 보호가 되었습니다.
(출처:KARA,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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