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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愛的心)

소요유 : 2008. 12. 27. 09:47


설악산 십이선녀탕을 하나하나 맞이하며 위로 오르다보면,
복사(복숭아)탕이라는 하트 모양의 아름다운 계담(溪潭)을 만난다.
거기를 가로지르다 하마터면 물속으로 빠질 뻔하기도 했지만,
왜 하필 자연은 하트 모양의 형상을 곧잘 보이는 것일까?

3년전엔 십이선녀탕을 다 내려와서는,
바위에서 미끄러져 한 길 낭떠러지로 구른 적이 있다.
뒤로 일회전 이상 공중제비를 한 폭이지만,
떨어진 곳이 몸 하나 딱 받아들일 정도의 공간이었다.
주위엔 삐죽삐죽 솟은 돌들도 많았는데,
요행이 그 안으로 딱 떨어진 것이다.
다른 곳은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손가락이 두어 개가 뒤튕그러져 수개월 고생을 했다.

그 때도 복사탕은 여전히 아름다운 전설을
물소리와 함께 은하(銀河)되어 흘려내렸다.
나는 언제나 그들을 기억하고 있다.

북한산에도 이런 모양을 간직한 암벽이 하나 있다.
불규칙의 무정형 굴이라면 하등 이상할 것도 없지만,
자연이 왜 하필 저런 형상을 지어냈을까 하는 경탄을 자아낸다.

누군가 탄지신공(彈指神功)이라도 발휘했음인가?
점화지(點花指)로 바위에 꼭꼭 꽃도장 찍듯 파낸 것인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참으로 자연은 경이롭고 아름답다.
그 앞에 서면 인간이란 얼마나 누추한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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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조그마한 공혈(孔穴)을 보고는
나는 순간 딱 황순원의 단편 ‘소나기’ 정도 분량의 이야기 하나를 구상했던 적이 있다.
그것을 한번 글로 써내놓을까 하다가, 멋쩍은 일이라 그냥 내버려두었다.
‘소나기’와 같은 순정 이야기로되,
내 단편 애련(愛戀)은
슬픔을 넘어선 차라리 저 안짝 깊숙히 은거한 아픔이기에,
바위 안에 고이 묻어두기로 했다.
공연히 주책 떤다고 욕이나 들어 먹을 일도 없으니까.

하트(愛的心)는 사랑이란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저게 심장을 본떴다고 하지만,
그래서 사랑이란 심장에 들어 있다고도 말하지만,
나는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한다.

제번(除煩)하고,
형상화된 에로스(eros,性愛)의 표식(標式)으로서 복숭아가 딱 적합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love)이 아닌 단지 성애(性愛)의 기호로서 말이다.

“‘마돈나’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려는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水蜜桃)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너라.”

시인 이상화의 퇴폐(頹廢)도
물꿀(水蜜) 뚝뚝 떨어지는 복숭아를 빌어서야 노래가 되지 않던가?

저것의 형상이,
여인네 가슴을 유감(類感)하든, 엉덩이를 상사(相似)하든
근원적으로 사랑(love)보다는 차라리 농밀한 육욕(肉慾)을 자극하여 불러내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보다도 더 깊고 그윽한 육체의 시샘이요.
자비보다 더 솔직한 초사(焦思)의 애련(愛戀)이라니.
바로 여기 터하고 있음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저것은 경화수월(鏡花水月)의 몽환경(夢幻境)일지니,
거울 속의 꽃이요, 물속의 달님이라,
어느 해, 임의 손목을 잡아 볼거나?
몽환포영(夢幻泡影),
몽환의 물거품, 그림자
그 그리움일 뿐.

그러하니,
그 거죽만 체화(體化)되어 덩그란히 하트 그 기호만 남은 것이 아닌가?
저 화해할 수 없는 불임, 거만한 시위(示威), 그리고 끝내 남은 상실(喪失), 체념(諦念)의 기억.
그 때 홀연히 남겨진 앙상한 뼈로 쓰여진 기호.
이게 하트의 상징 표식이 아닌가?

달콤한 초코렛으로 만들어진 하트 따위는
그래서 우리시대의 집단으로 위장된 기만이다.

사랑 또는 자비의 기호라면 하트 모양이 아니라,
원 또는 차라리 방(方)이라야 가깝다고 생각한다.
하트 모양은 사랑이 아니라 정념(情念), 사련(邪戀), 음일(淫佚)을 지시함이 아닌가?

부적(符籍)은 경면주사(鏡面朱沙) 또는 영사(靈砂)로 쓴다.
경면주사는 수은과 유황을 섞어서 만든다.
이들로써 신의 영검(靈驗)을 빈다.
한의원에 가면 신경쇠약, 우울증 환자에게 이 주사(朱沙)로써 처방을 삼기도 한다.

요즘 사랑의 부적이라도 된다는 듯이,
하트에 갖가지 칠갑을 하며 호들갑을 떨고 있지 않는가?
초콜릿도 모자라, 금박을 올리고,
만원짜리도 부족하여 수십만원짜리도 철에는 동이 난다.

부적 역시 잘못 걸리면,
단돈 몇 천원짜리가 수십, 수백만원짜리로 둔갑을 부린다.

이쯤 되면 하트, 부적에 영검을 빌 수 있을까?
소박한 기대라도 남아 있다면 정성이 갸륵하여
혹간 Eros가, 신령(神靈)이 고개라도 잠깐 돌려 주실까나?
이젠 그 기대조차 아예 없다.
뜀박질 경주하듯 아해들은 다만 요상한 것, 비싼 것 사기 위해, 알바를 뛴다.

부박(浮薄)스런 세태다.
말간 정화수 한 그릇으로 집안의 안태(安泰)를 빌고,
백지 하나에 다만 먹으로 둥그런 원 하나(一圓相) 짓고 궤좌(跪坐) 틀어 법(法)을
구하던 그들은 다 어디메로 가셨는가?

그에 비하면,
부처의 수인(手印)처럼 
하트를 짓고 있는 천년(千年) 침묵의 바위는
차라리,
저 묵적(默寂) 만큼이나
경외(敬畏)롭지 않은가?
온전(穩全)히.
(※ 默寂 : 침묵의 정적)

지상에 오로지 하나 남은 하트.
나는 저 고독한 바위에서 목격한다.

전일에 주위상(走爲上)을 적은 까닭은,
무엇이든간에 어려워 힘든 사람들에게 ‘뜻’ 하나를 새겨보자 함이요,
오늘은 ‘사랑의 표지’인 하트 모양의 원형(原形)으로서 남겨진 굴바위를 함께 느껴보고자 함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른쪽 능선을 넘으면 그리움의 계곡이 잠자고 있다. 내년 가을까지. 別離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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