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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추사(靈鷲寺)

소요유 : 2009.03.27 12:20


나는 북한산에 위치한 영추사란 절에서 내는 소음을
여기 블로그를 통해 지상 고발한 적이 있다.
(※ 참고 글 : ☞ 2008/12/13 - [소요유] - 노이즈)

북한산 입구를 벗어나 조금만 오르면 시도 때도 없이,
사찰에서 틀어 논 명상음악 등속이 계곡을 타고 아래로 퍼져내려왔다.
처음엔 웅웅 하며 뭉그러진 소리가 온 산하를 더럽히고 있는데,
차츰차츰 위로 올라갈수록 그 소리는 그럴싸하니 깔린 목소리로
뜻을 헤아릴 수 있는 음성으로 크게 들린다.

내가 불교도는 아니라하더라도,
선지식(善知識)을 모시고 배우며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기도 하고,
그 뜻을 좇아 짚으며 지금도 공부를 끊이지 않고 하는 형편이다.
그러한즉 불교 그 자체에 아무런 기휘함이 없을뿐더러,
되려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명색이 국립공원 경내에서 저리 오만방자하게 확성기를 틀어놓고,
온 산하를 유린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저것은 정녕코 불성(佛聲)도 아니요 길음(吉音)도 아니며,
그저 사찰을 알리기 위한 방편인즉,
한낱 세일, 판촉행위에 다름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음이다.

한즉, 나는 단언한다.
저것은 그저 소음에 불과하다.
망령된 짓임이다.

하여 한 20일전에 내려오면서 공원 당국에 신고를 했다.

공원 직원 왈.

“저희들의 고충을 이해해 주십시오.”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말인가?
듣건대 나 말고도 신고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하는데,
연일 소음이 그치지 않은즉 소임껏 단속하면 될 것을 저들에게 무슨 고충이 있을쏜가?

신고한 다음 날인데도,
여전히 골짜기는 저들 소음으로 더렵혀지고 있었다.
나는 금번 북한산 관리소장을 만났을 때,
저들 소음을 제재하여 줄 것을 요청했다.
(※ 참고 글 : ☞ 2009/03/22 - [소요유] - 생강나무)

“말로만 하지 말고, 정식으로 공문을 띄어 처리해라.
1차, 2차 이리 문서로 결과를 남겨두어야 한다.
그 축적된 사실관계 서류로서 앞일을 예비하며, 저들을 단도리하여야지,
때마다 전화로 처리한들 아무런 효과가 없다.”

하지만,
시집보낸 막내딸 장 담그는 법 가르치듯,
이리 알뜰히 깨우쳐주었음에도,
그 후 소음은 여전하였다.
다음 날 내게 접촉한 담담직원에게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으니,
유의해서 처리할 것을 은근히 힘주어 부탁했다.

그 후 우연히 산에서 만난 그 직원은 내게 말한다.

“문서를 사찰에 보냈습니다.”

내 짐작이지만,
이번 내 훈수를 거듭 듣고 처음으로 문서를 보낸 것이리라.
저들의 안일함 그리고도 공직을 버티어 견디는 믿음의 정체를 정녕 알 수가 없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 날 이후부터 사찰측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 날 이후, 산에서 비로서 불음(佛音)이 내 귀에 들린다.

숲 속에서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거리며,
계곡 물은 졸졸 흘러 이내 불음(佛音)이 되고 계심이다.

얼마나 우스운가 말이다.
문서 한방이면 끝날 것인데, 도대체 저들 공원직원들은 그간 무엇을 했단 말인가?

“저희들의 고충을 이해해 주십시오.”

시민들에게 이리 엄살을 떨 일이 아니라,
거꾸로 시민들이 불편할 것을 먼저 생각할 수만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결할 생각을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저들이 무슨 고귀한 신분이기에 감히 고충씩이나 시민에게 토로할 입장인가 말이다.

그러한 것을 내가 수년전부터 수차례,
사건을 해결하려면 역사적으로 추적 관리하고,
문서로 통제하여야 한다고 훈수를 두지 않았던가 말이다.

문서 한방으로 꼬리를 내릴 정도라면 제법 순진한 구석이 있는 사찰이다.
다음부터는 여느 세속의 장사꾼처럼 판촉행위로 신도를 모으려 할 것이 아니라,
불해(佛海)란 큰 바다에 일신(一身)을 홍로점설(紅爐點雪) 던져 넣어야 할 것이로되,
다만, 닦은 법력으로써 중생을 제도하고, 위로 보리(菩提) 구함을 법으로 삼아, (上求菩提 下化衆生)
행여라도 소소한 이해에 종사하지 말기를 기대한다.

이해를 여읜 자를 불러 불제자, 불승(佛僧)이라 함이 아닌가?
하기에 백의(白衣) 벗고 납의(衲衣) 걸치며,
백팔번뇌 무명초(無名草=머리카락)를 미련 없이 삭도(削刀)로 밀어버리지 않았던가?

기억하는가?
양지바른 어느 날,
법당 뜰앞엔 불두화(佛頭花)가 고슬고슬하니 피어오르던 날,
젊음이 베일듯 싯푸르게 빛나던 그날.

계사(戒師) 스님 전에 무릎 궤고,
잘라버린 무명초는 문득 창공을 날아올라 이내 청학(靑鶴)이 되었으며,
벗어버린 백의(白衣)는 백호(白虎)가 되었음이니,
이는 곧 납자(衲子)의 앞날을 외호(外護)하며 불도(佛道)의 성취를 기약함이 아니던가?

반본환원(返本還源).
성(聖)이든 속(俗)이든
무릇 영원을 만나려면 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영추사(靈鷲寺)
신령스런 독수리(靈鷲)가 깃들어,
법화(法華) 불설(佛說)의 은덕이 무궁 흘러내리길 삼가 축수(祝手)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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