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농단과 시장

소요유 : 2009. 5. 21. 15:23


일부는 제가 다른 곳에서 이미 적었던 내용이나,
약간의 손질을 가하여 이곳 블로그에 새로 소개합니다.

농단(壟斷)이란 말이 있습니다.
우선 글자 풀이 좀 해볼까요.
농(壟)이란 언덕 또는 밭두둑을 뜻한다고 새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진(秦)나라 때는 무덤(冢)이란 뜻으로도 쓰였지요.
한국에서는 밭두둑으로 새기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중국에서는 밭이랑으로란 뜻으로 적지 아니 사용됩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그저 언덕으로 새기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농단’의 농도 여기서는 언덕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단(斷)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잘 아시다시피 당연 끊는다란 뜻이지요.
설문해자를 보면, 斷,截也 이라 하였음이니,
이는 곧 ‘자른다’란 의미입니다.
‘농단’에서의 단은 땅이 잘라져 깎아지른 듯한 모습을 형용합니다.

그러하니 농단이란 곧 주변 땅보다 깍은 듯 높이 솟은 언덕을 뜻합니다.
그런데, 농단이란 말은 현실의 세계에서는 ‘농단한다’라는 용례를 보더라도,
언덕이란 말로 쓰이지 않습니다.
즉 이는 제 이익을 홀로 독차지 하려는 작태를 지칭하는 데 사용됩니다.

농단이란 원래 맹자(孟子)가 출전입니다.
이게 사뭇 재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예전 글을 기초로 잠시 추려 소개를 하고 다음을 잇고자 합니다.

맹자는 왕 앞에서도 할 말은 바로 거침없이 쏟아내는 성품입니다.
왕의 신하로서가 아니라,
대등한 사내장부로 마주하고자 하는 호연지기의 기상이 넘쳤으니,
사내장부 중에 장부라 할 만한 사람입니다.

제선왕(齊宣王)과 맹자 사이에 선약이 있었습니다.
후에 연락이 오기를,
지금 선왕이 감기가 들어 만나기 어려우니 차후 다시 만나자는 기별이었습니다.
맹자는 마침 입궐 할 채비를 갖추고 있었으나, 이런 연락을 받자
“나도 아파서 입궐할 수 없다.” 라고 말합니다.
맹자의 자존심이라니...

그런데, 이튿날 제나라 대신인 동곽(東郭) 집에 상사가 나서 조문을 가야했습니다.
맹자는 이에 상갓집에 가려고 나섰습니다.
이 때 제자가 이르길, 어제 왕에게 병중이라 하였던 것을 상기시키며 삼갈 것을 권합니다.
그러자 맹자는

“어제는 아팠으나 오늘은 나았어”

하며 길을 떠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마침 왕으로부터 맹자를 돌볼 의사가 파견됩니다.
이에 집안 식구가 이르기를 어제는 아팠으나, 이제 나와서 입궐하였습니다라고
거짓으로 얼버무리고, 맹자한테 급히 가서 사정을 설명하며 입궐할 것을 재촉합니다.
하지만 맹자는 이를 무시하고 동곽 집에 태연히 머무릅니다.

이러저러한 일로 제왕과 맹자는 사이가 편치 않아져,
결국 맹자는 제나라를 떠나고자 합니다.
하지만 제왕은 맹자에 미련이 남아 대폭 녹을 올려 대접할 테니
남아 있을 것을 제안합니다.비록 왕과의 사이가 버성거리지만,
맹자 정도의 명성이면 제나라에 붙들어 두는 것만 하여도,
적지 아니 나라에 보탬이 됩니다.

쉽게 비유하건대,
마치 김연아를 붙잡아두고 갖은 요령을 피워대는 고려대학교 총장처럼,
제법 이문이 남는 장사인 것입니다.
실제로 공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맹자처럼 아성(亞聖)으로 추앙되는 이가 어떤 나라에 머무르고 있으면,
탈이 날까봐, 감히 적국이 침범하는 것을 삼가게 됩니다.

어쨌건, 맹자는 이를 거절하며
“농단으로 사적 이익을 꾀하지 않는다.”라는 취지의 말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농단의 출처가 바로 예입니다.

옛날에 시장이란 있는 자와 없는 자끼리 물건을 그저 교환하는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천한 자가 나타나 혼자만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시장 전체를 두루 살피며,
시리(市利)를 홀로 독식합니다. 즉 홀로 높은 이곳이 농단인 게지요.
그러니 모든 사람이 그를 천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세금을 징수하게 됩니다.
商人에게 세금을 부과하게 된 것은 이 때부터라 합니다.

그전에는 관리가 있어 그저 시장 사람들끼리의 분쟁만을 조정하였는데,
그 천장부(賤丈夫) 이래로 세금이 부과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지요.
이게 중간에 관리가 나서 질서를 잡는다는 구실이었겠지만,
실인즉 숟가락 하나 덤으로 더 얹겠다는 수작질에 다름 아닙니다.

(※ 원래 10척을 1장(丈)이라고 하는데,
이를 상(商)나라 기준으로 보면 169.5cm 정도로 대략 사람 키에 상당합니다.
장부(丈夫)라고 이르는 말은 사실 이에 유래합니다.
천장부라 함은 비루하고 천박한 이를 이름입니다.)

***

시장이 제 필요에 따른 물물교환의 장소였는데,
어느 날 사익을 탐한 천장부가 나타나,
저 홀로 언덕에 올라 정보를 독점하게 됩니다.
시장을 단순한 교환의 장소가 아니라,
사적 이익을 창출하는 장소로 적극 도모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시장의 농단화,
그리고 농단의 사물화(私物化).
거칠게 말하자면, 이게 요즘 식으로 말하면 경제발전입니다.

혹간 조그만 사이트내에 회원장터가 개설된 경우가 있습니다.
개설자 입장에서는 애초엔
기존의 외부 시장 유통 경로를 통하지 않고,
회원들 간의 수평적인 재화 또는 용역 나아가 정보가 교환되리란
조촐한 기대가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늘 그러하듯이 여기라고 천장부가 아니 나타나겠습니까?
하기사, 저 맹자에서 말한 본래의 의미의 순수한 교환 장소로서의 시장이
현대에는 사라진지 이미 오래전입니다.
오직 있다면 형형색색 알록달록 저마다 판 벌린 농단이 있을 뿐입니다.
진즉 본색은 농단이로되 그를 일러,
우리는 그럴싸하니 시장이라고 부르고 있을 따름이지요.

마치 사치품이라는 것이 이즈음엔,
슬쩍 이름을 바꾸어 명품으로 불리는 현상과 비슷할런가?
사치품이 거래되는 시장에 내가 서성거리면 악덕을 짓는 양 송구스럽지만,
명품이 매매되는 현장에 서 있으면 나는 제법 고상한 인간씩이나 됩니다.

여기 시장터에서,
저마다 높이 단을 쌓고 그 농단 위에 올라,
가진 재주를 마음껏 발휘하며,
돈을 벌기 위해 분주합니다.
이게 맹자가 보기에는 모두 천장부이겠지만,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경쟁력 있는 유능한 경제인들입니다.
게다가 정부에서는 신지식인, 벤처기업인, 신지식농업인이니 하며,
적극 독려하고 상을 쥐어 주며 농단의 주인이 되라고 부추깁니다.

세금이라는 것이 원래 농단에 선 사람에게 부과한 것이 유래이듯이,
천하인이 모두 농단인이 된다면,
정부 입장에서도 세금을 신나게 거두어들일 수 있겠지요.

맹자가 지금 세상에 다시 돌아온다면,
천하 사람들을 모두 천장부라고 싸잡아 나무라실까요?
위에서 맹자는 제선왕의 제안을 물리치며 부르짖었습니다.

“나는 결코 장사꾼이 아니다.
아무리 대저택을 지어주고, 1만종(鐘, 1종은 6섬4말)의 녹봉을 준다한들,
나는 거들떠도 보지 않겠다.”

이리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장부(丈夫)가 아무리 많다한들,
맹자 나 홀로 대장부(大丈夫)임이랴,
이리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펴는 것이지요.

***

세상은 천하인이 모두 농단에 서 있고,
서 있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또한, 이것을 나무랄 수도 없고,
그리고 나무란들 별 도리도 없고,
우선은 나부터 그리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지만,
그런 가운데 비온 뒤 죽순 올라오듯,
물물교환 장터에도 간간 농단 위에 더 높이 층층이 망루를 세우고,
농단을 사물화 하는 사람들이 출몰하곤 합니다.

시장에서 농단을 짓고 그 위에 올라,
손을 동그랗게 말아줘 입에 대고는 외칩니다.

‘나는 퍽이나 괜찮은 사람이야.’

늘 그러하듯이,
분칠하고 면전에서 그럴싸하니
착한 척 하는 사람을 경계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꾸밈 뒤에 복심이 숨겨져 있기 일쑤이기 때문이지요.
그대를 허무는 것은 은근하게 다가오는 어여쁜 이로부터 인 것을.

농단,
이게 얼마만큼 더 올라갈지 아무도 모릅니다.
바깥세상은 어떠합니까?
잠실엔 555m의 제2롯데월드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지방자치단체마다 눈에 불을 켜고,
예컨대, 지리산 천왕봉에 쇠줄을 걸고 케이블카를 설치하려고 합니다.

高高頂上立 深深海底行
‘고고정상립 심심해저행’
(높이 서려면 산꼭대기에 서고, 깊이 가려면 바다 밑까지 가라)

이게 원래는 높은 웅지를 품고 의기를 펴고,
깊이 웅거하며 뜻을 기르고 사무치게 사물에 임하라는 뜻이지만...

요즘에는,
장대로 달 따듯 쇠줄, 시멘트로 창을 만들어 쑤셔대며 하늘을 희롱하고,
온 산하를 파재껴 뱃구레에 구멍을 내려고 혈안이 되고 있습니다.

高高, 深深
상하, 그저 있는 대로 쳐 바르고, 삽질하여,
온 국토를 농단화하고,
농단을 사물화하려고 극성일 따름입니다.

저들은 이를 불러,
제법 우아하니 말합니다.

‘녹색성장’

단단(斷斷),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노릇이지요.
멀쩡한 강을 파헤치고,
신령스런 산에 쇠말뚝 박고 쇠줄 걸어 케이블카 설치하려는 패악질,
도대체 얼마나 천하디 천한 천장부 망나니 짓거리란 말입니까?

저는 감히 그러나 단호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소요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죽부대에 든 똥 덩어리  (0) 2009.05.27
나는 울지 않는다.  (2) 2009.05.24
한 사람의 죽음  (3) 2009.05.23
종교 이제(二題)  (0) 2009.05.18
빈함옥(殯含玉)  (2) 2009.05.16
기우제문(祈雨祭文)  (0) 2009.05.16
Bongta LicenseBongta Stock License bottomtop
이 저작물은 봉타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3.0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행위에 제한을 받습니다.
소요유 : 2009. 5. 21. 1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