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피로(披露)와 피력(披瀝)

소요유/묵은 글 : 2008. 2. 14. 15:31


피(披)는 헤칠 피니 곧 헤쳐 연다는 자의(字義)를 갖고 있다.
개(開) 정도의 자의를 거머쥐고 임해도 바쁜 세상에 얼추 맞추어갈 수 있다.

로(露)는 드러낼 로인즉, 겉으로 이슬을 맞추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니
도리없이 스스로를 드러낸 이미지를 추상해내면 자의에 사뭇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그러하니 피로란 속에 감추지 않고 온전히 겉으로 드러낸다라는 의미가 있다.

이쯤 해두고 피력을 살펴보자.

력(瀝)은 거를력이니 곧 걸러 낸 찌거기를 연상하시면 되겠다.
죽력(竹瀝)할 때 죽의 찌거기쯤을 연상하시면,
바로 그것이 대나무 기름이라 불려질 때, 감을 잡을 수 있다.
역청(瀝靑), 한방에 자주 나오는 소변임력(小便淋瀝) 등도
바로 이 걸죽한 찌거기 정도 연상하시면 바로 료해(了解)할 수 있다.
하지만, 쏟는다 라는 뜻도 아울러 새겨 두어야 이 글자 뜻을 온전히 새길 수 있다.

이리 살펴봄에, 피로, 피력 이 둘 다 숨김없이 겉으로 드러낸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러나 피력이 보다 강력하다.
아낌없이 쏟아 부어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고자 하는
동적인 액션이 어의에서 읽혀지지 않는가 말이다.

우직스런 이들은 사실 피로고 피력이고 따질 것도 없다.
항시 진심으로 대하고, 진심을 토로하니 새삼스러이 속을 뒤집어 내놀 바도 없다.

그러나, 겉 다르고 속 다른 이들이 막상 몰려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
내 진심을 알아 달라고 울부짖고 매달리며,
피로, 피력한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곤 한다.

간담(肝膽)을 피로한다.
복심(腹心)을 피로한다.
간담(肝膽)을 피력한다.
본심(本心)을 피력한다.

등의 사용사례가 옛 책에 보면 자주 목격된다.
이렇듯 고인들은 마음을 내장에 주처(住處)한 것으로 보았다.

은나라 마지막 왕 주(紂)는 충신 비간(比干)의 심장을 갈라 꺼냈다.
주왕은
‘내가 듣건대 충신의 심장에는 구멍이 아홉 개가 있다 하였는데,
진짜 충신인지 확인해 보겠다.’
이리 비아냥거리며 신하 비간의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냈다고 한다.

과연 마음은 오장육부에 있는가 ?
오행론에선 각행마다 장부가 배속되어 있다.
한의학의 장부론은 기실 해부학적 소견이라기 보다,
심인론에 가깝다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내 우스개 소리로 그대의 팔목을 내게 내주면,
그대 마음보의 실상은 이내 내 손안에 들게 된다라고 말한다.
이게 뭣이냐 하면 손목 부근의 맥박 뛰는 곳,
한의에서 촌구맥(寸口脈)이라 부르는
촌관척(寸關尺) 맥진처를 취처하면, 오장육부의 허실을 짚어낼 수 있다.
오장육부와 희노우사비공경(喜怒憂思悲恐驚) 칠정이 상호 배대되어 있는 바이니,
지삭遲數), 부침(浮沈), 홍세(洪細), 장단허실 등을 살펴낸다.

bongta는 이 정도의 아홉바닥(九候) 깊은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간단히 짚어내며 농짓거리를 겨우 할 정도이다.
너무 신기하지 않은가 말이다.
손목 하나로,
상대의 몸과 마음을 다 읽어낸다는 것.
놀랍다.
촌관척법뿐이랴, 인영혈, 태연혈을 비교하며 맥을 짚어내기도 한다.
내 예전에 알던 어떤 이는 태충혈만으로도 훌륭히 진맥하곤 했다.

혈맥만으로 심신상태를 읽어내는 術을
밝힌 고인들의 예지가 떨리도록 외경스럽다.

요즘 한의원에 가면, 맥진기 등의 기계로 맥을 살피기도 한다.
하지만, 애초에 고인들이 경락을 어찌 알아냈을까 하는 의문 앞에 서면,
그들은 마음의 눈으로 몸에 흐르는 기를 읽어내었다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
하여 소시적에 한의는 백발에 허연 수염을 날리는 이에게 깊은 신뢰가 솟았다.
지금은 반대로 젊고, 씩씩한 이가 대접을 받는다.
이젠 그깟 심안(心眼)은 소용없고, 기술 재주만이 의짓거리가 된 세태인 까닭이다.

한의는 약성  연구합네 하며, 실험실 속에서 데이터 흝어내고,
양도락, 맥진기 등을 도입하여 한방의 과학화를 부르짖고 있는 한에 있어,
마음의 눈으로 읽어내었던 선인들의 예지에서 멀어지고들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제초제, 농약, 비료가 농토에 투입되고부터,
그 땅에 모든 생명이 아작이 나고,
돋아나는 풀이라는 게 怪草요,
꿈틀거리는 게 毒蟲이 아니겠는가 ?

눈은 잠거두고,
손만이 분주하다.
하여 주머니가 제법 불룩해질런지는 몰라도,
영혼의 무게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이제 이들은 쏟아낼려야 쏟아낼 마음도 다 고갈되버렸다.
그러하니, 피로니 피력이니 할 건덕지도 없다.
다만,
丹心의 피력이 아니라,
黑心의 선전만이 난무한다.

허니, 정작 진실로 披瀝하고자 하는 이는 외롭다.
당사자에겐 피 끓는 절규일 테지만,
남의 披露는 내겐 여흥질, 구경거리에 불과하다.
그래서 세상은 슬프지만, 한편 재미있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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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력이란 말을 들다 보니, 흔히 접하는 간담상조(肝膽相照)란 말도 떠오른다.

이 말은 원래 당송팔대가의 하나인 한유가 그의 文友인 유종원의 묘비명에 쓴 말이다.
이를 인용해둔다.

"..... 사람이란 곤경에 처했을 때라야 비로소 절의(節義)가 나타나는 법이다.
평소 평온하게 살아갈 때는 서로 그리워하고 기뻐하며 때로는 놀이나 술자리를 마련하여 부르곤 한다.
또 흰소리를 치기도 하고 지나친 우스갯소리도 하지만 서로 양보하고 손을 맞잡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이며(肝膽相照)'
해를 가리켜 눈물짓고 살든 죽든 서로 배신하지 말자고 맹세한다.
말은 제법 그럴듯하지만 일단 털 끌만큼이라도 이해 관계가 생기는 날에는
눈을 부릅뜨고 언제 봤냐는 듯 안면을 바꾼다.
더욱이 함정에 빠져도 손을 뻗쳐 구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이 빠뜨리고
위에서 돌까지 던지는 인간이 이 세상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

그 외
申聞鼓, 吐露, 披露宴, 絶叫, 披肝瀝膽 .. 등 말의 열차가 가슴을 쏴 지난다.

이중에서 마지막으로
피로연(披露宴)이란 말만 음미해보기로 한다.
이게 얼핏 잘 헤아려지지 않는 조어인 듯 보인다.
무엇을 드러내 보이는 연회인가 말이다.
사전적인 뜻은 “기쁜 일을 피로(披露)하기 위해 베푸는 연회”라고 한다.
기쁜 일이 있는 사람으로서는 홀라당 다 드러내놓고 잔치 벌일 만하다 하겠다.

남의 기쁜 일을 함께 축하해준다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노릇이다.
그러나, 거기 참예(參預)한 사람 모두 그럴까 ?
개중엔 낯 세우려고 억지로 참석한 이도 있을 것이다.

특히 휴일에 남의 잔치에 동원된 이들에겐 後次로 이어지는
피로연(披露宴)은 피로연(疲勞宴)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고 보니,
피로(披露)는 피로(疲勞)를 내게도, 네게도 유발하고 있질 않은가 말이다.
하니, 물러나 쉼만 못한 所以가 예에 있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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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모음

bongta :

mmm님의 글을 읽으면, 중광스님이 생각납니다.
언젠가 같이 공부하던 여자분이 중광스님을 잘 아니 한번 찾아 뵙자고 하더군요.
그 당시 신설동인가 창신동 인근에 거처하고 계신다고 하였는데,
여러 사정 때문에 뵙지 못했습니다만,
mmm님은 중광스님과 인연이 계시니,
아마도 그 분 風格이 시나브로 전해지지 않았는가 싶군요.
제가 그 때 뵈었으면, 지금 쯤 중노릇하고 있었을런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키우던 강아지들은 지금 수목장을 한 편인데요.
저는 mmm님처럼 산골장(散骨葬)을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설악산 지경에 미련없이 바람에 날려 가고 싶은 것입니다.

어느 해, 용대리 앞에서 팔뚝을 스쳐가던 그 감미로운,
아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운 바람.
그를 닮고 싶습니다.

『설악산 한계령을 넘다가
입을 벌리고 단풍을 본다.

바람은 어떤 기막힌 영혼을
품었기에
푸른 산허리에 닿아
저렇게 흐드러지게 꿈이
풀리고
줄에 닿으면 소리가 되고
물에서는 은빛 춤이 되는가

나는 도대체 얼마만큼 맑고
고은 영혼을 품어야
그대 가슴을 만나
단풍처럼 피어날까.

언제쯤이나
언제쯤이나 나의 아픔은
그대 마음 줄을 울리는
소리가 되고
저렇게 기막힌 영혼이
될 수 있을까.』

( 任文赫 作 -- 「단풍을 본다」 全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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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자 공부를 고등학교 때 얼추 기초를 닦았습니다.
국어 책에 나오는 한자는 모두 옥편 찾아가며 무작정 외웠습니다.
머리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무식할 정도로 반복하여 익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그 때보다 실력이 줄었습니다.
당시만 하여도 쓰고 적고 하는데 별로 놓치는 바가 없었는데,
요즘은 연필로 적을 일이 없으니, 점점 쓰는 법을 까먹고 있습니다.

문자생활에 눈만 동원되고, 손은 컴퓨터가 대신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에 따라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라, 글자를 모아(集字) 맞추는 방식이니
저만 해도 이런 생활이 벌써 수십년이 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온전한 쓰기 실력이 남아 있을 턱이 없지요.

예전에 인쇄소에 가보면 식자기라고 하는 게 있었습니다.
80년대 초반 이 기계 한 대 가격이 500만원 정도 되었는데,
유리판을 돌려가며 글자를 찾아내 그 글자를 심어 내었지요.
이게 지금은 값싼 컴퓨터가 대신하고 있지요.
당시 소규모 인쇄소는 식자기 한두 대씩만 갖추고도 먹고 살았습니다.
지금은 모두 쓰기능력이 거세된 植字 인생들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한자는 뜻 글자이기 때문에 한자를 익히면 문장이 입체적으로
읽혀오는 공덕이 있습니다.
예컨대 子宮이라고 할 때, 바로 “아기가 사는 집”이라는 이미지가
형상화됩니다.
만약 자의를 모른다면, 자궁이란 평면적인 기호 이상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궁궐, 별궁 등 단어에 임하면 이를 궁궐, 별궁의 별단의 새 기호로
새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宮이란 한자를 알고 있다면 대번에 집을 떠올리며 宮闕, 別宮 등의
語義가 친근하게 살아옵니다.
그 외 重義는 묘한 신비의 세계로 이끕니다.
이게 애매모호한 폐단도 있습니다만,
소리글자가 갖지 못한 한자만의 특성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말이 대부분 한자어로 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만약 한글 전용으로 간다고 하면,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이냐라는
대단히 골치 아픈 문제에 봉착합니다.
한자로 되어 있는 그 수많은 문화 전적들은 어찌 할 것인가 ?
소리글자 전용도 좋은데,
그리 하자면 북한식으로 한자말인 宮闕, 別宮을 버리고,
차라리 순수 우리말로 새로 조어해 나가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과업을 누가 부담할 것이며, 그 실익이 있을 터인가 ?
한편, 소리글자인 영어만 하더라도, 라틴어 등으로부터 파생된 뿌리 어원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
저는 한자와 한글간의 관계를 이들간의 관계로 이해한다면,
모든 언어에는 이런 얽히고 설킨 생성, 발전 단계를 긍정내지는 적극 수용하는 방향으로
문자생활을 영위하였으면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sss에서 겪었습니다만,
요즘 아이들은 한자를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가 봅니다.
아니면 부끄러움이 없는 것인지 ?

ooo님의 철학 편력은  hhh님과의 대화에서 잠깐 엿들었습니다.
저는 서양 쪽이 아니라, 동양쪽으로 oriented되어
ooo님을 통해 부족한 공부를 즐겁게 보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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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이 어렵다고 느끼신다면, 이는 전적으로 저의 부덕입니다.
글쓰는 이력이 일천한 까닭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아 천상 아마추어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한편 그러하기에 어디 매이지 않아 마음 편하게 유유자적할 수도 있겠거니
스스로 여기기도 합니다.

ggg님의 열정이 저는 부럽습니다.
사물에 부딪혀 뜻을 일으켜 세우시며,
생산적 가치를 일구어내시려는 자세가 아름답고 존경스럽습니다.

제가 고전을 자주 읽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이런 분들은 곁에 좋은 보좌(補佐)를 널리 구하여
뜻을 완성합니다.
권청컨대, 주변에 믿을만한 소임자를 구처하여
補處케 하면 한결 도모하시는 일이 수월하리라 생각해봅니다.
영웅호걸 곁에 기라성같은 인재들이 벌려 있는 이야기.
그 이야기속으로 잠깐 걸어 들어가 보았습니다.

“대수의 법칙과 물태우의 법칙”
여기 덧붙인 이미지는 너무 멋집니다.
아주 힘이 불끈 솟는군요.
고맙습니다.

아참 그리고,
글읽기 페이지에 드래그 차단 코드를 새로 삽입하였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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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묵은 글 : 2008. 2. 14. 1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