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문.무(文.武)의 진실과 그 화해를 위하여

소요유/묵은 글 : 2008.02.15 20:56


이 글은 앞선 제 글 "기우(杞憂)"에 인연 닿아 모처에 썼던 글을 전재한 것입니다.
그저 재미로 대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

문.무(文.武)의 진실과 그 화해를 위하여
(또는 원리와 실천의 간극 극복을 위하여)

저는 이곳 OOO에서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며칠전의 제 글과 관련되어 흘린 낙수(落穗)를 주어보니
한 웅큼이라 부득이 패를 맞춰 채우 듯 글을 이어봅니다.
그러나 다는 주어 섬길 수 없고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것
하나를 끄집어 내어 보고자 합니다.
이런 얘기가 이곳에 허락될런지 모르지만,
제 생각으론 전혀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 자리가 자유게시판이니 조금 마음을 놓아 봅니다.

제 얘기의 순서는 이렇습니다.

화씨지벽(和氏之璧)
인상여(藺相如)
문경지교(刎頸之交)

글이 길기에 나누어서 올려 볼까 하였으나 번거로울 것 같아 맘을 바꿔 한데 이어 둡니다.
그러나 옛날 얘기이니 조금 재미를 느끼는 분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드러내고자 하는 제 의견내지 감상은 역시 제 예대로 말미에 두겠습니다.
지루하신 분들은 바로 3. 문경지교(刎頸之交)으로 직행하셔서 짐작대로 읽으셔도 되겠습니다.
대개 여성분들은 이런 류의 얘기들은 별로 흥미를 갖지 않는 경우가 많더군요.

사전 참고 정보
중국의 전국시대는 중원에 자리잡은 대국인 진(晋)이라는 나라를
그 나라 중신이 분할하여  각기 한(韓), 위(魏), 조(趙)로 독립한
기원전 403년부터 진(秦)이 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하는 기원전 221년까지의 182년간을 말합니다.
바로 앞의 춘추시대에 비해서 이 전국시대는 혼란이 더 극에 달했던 시대입니다.
이 전국시대는 전국7웅이라 하여 앞에서 말한
한(韓), 위(魏), 조(趙), 진(秦), 초(楚), 제(齊), 연(燕)의 다툼이 치열했습니다.
이들간에 패권을 둘러싼 적자생존의 싸움은 수많은 인물들의 전략, 전술의 경연을 방불케 합니다.
마침 "ooo"님이 전략, 전술의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하셨기에 소개의 보람이 조금은 있을 듯 싶습니다.

1. 화씨지벽(和氏之璧)

아시는 분이 많을 것이니 간단히 소개합니다.
차후 말씀의 기초 정보로서 이 얘기를 건너 뛸 수 없기에 다룹니다.
이 얘기는 한비자라는 책이 출처입니다.

초나라에 화씨(和氏)라는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초산(楚山)이란 산에서 조옥(粗玉)을 발견하고 이것을 왕인 여왕에게 헌상했습니다.
여왕은 보석 감정사를 시켜 감정을 시켰습니다.
그랬더니, "이것은 그냥 돌일 뿐입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왕은 인군(人君)을 기롱했다 하며 발을 자르는 형벌을 내리고 그의 왼발을 잘랐습니다.
여왕이 죽고 이어 무왕이 즉위했습니다.
화씨는 또 같은 옥을 헌상했습니다.
무왕도 역시 감정을 시켰는데,
그 감정사 또한 "돌이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왕은 화씨를 사기꾼이라며 크게 나무라며 남은 오른발을 자르게 합니다.

무왕이 죽고 문왕이 즉위합니다.
이번엔 화씨는 조옥을 안고 산기슭에서 계속 울고 있었습니다.
사흘 밤 사흘 낮 계속 울었기에 눈물이 말라버리고 피가 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문왕은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들여 묻습니다.
"세상에 발을 잘린 죄인이 천하에 그득한데 너는 어째서 그리 슬피 우는가"
"저는 발을 잘린 게 슬픈 것이 아닙니다. 보석을 가르켜 돌이라 하고,
정직한 사람을 사기꾼으로 몰아 야단 맞은 게 슬퍼서입니다."
문왕은 보석사에게 돌을 갈게 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과연 그것은 보석이었습니다.
그 보석은 그의 이름을 따서 화씨(和氏)의 벽(璧)이라 불렀습니다.
그 이후로 천하의 명옥으로 칭찬을 받게 되었습니다.

갈 길이 바빠 거칠게 죽 흩었습니다.
참고로 벽(璧)은 옥을 평평하게 간 것으로 한 가운데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가장자리의 폭이 내공(內孔) 지름의 배가 되어야 한다고 하지요.
현대에도 "아프리카의 별(Great Star of Africa)", "코이누르(Koh-I-Noor)" 같은 다이어몬드는
세계적으로 알려졌듯이
당시 전국시대에 등장한 이 화씨지벽(和氏之璧)은 성 15개와 견주는 명옥이었던 것입니다.

자 이제 두번째 얘기로 이어 갑니다.

2. 인상여(藺相如)

때에 화씨의 벽은 돌고 돌아 조나라의 혜문왕의 수중에 있었습니다.
이를 안 진(秦)의 소왕이 15성(城)과 바꾸자고 제안을 합니다.
당시는 진의 천하통일 직전으로 그즈음 진나라는 최강의 국가였지요.
약육강식의 세상이니 과연 15성을 내놓을지는 누구도 장담을 할 수 없는 형편이지요.
벽도 빼앗기고 성도 받지 못한다면 이것은 완전히 강탈을 당할 판입니다.
이에 조나라는 전전긍긍 고민에 싸입니다.

이 때 등장한 인물이 인상여입니다.
그 시절 인상여는 내시 두목의 식객이었는데,
그 내시의 신임을 받고 있었기에 얘기가 풀립니다.
이 난국을 풀 사람으로 인상여가 마땅하니 그를 사절로 보내자고 그 내시가 왕께 추천을 합니다.
이에 인상여를 사절로 파견하기로 결정합니다.

이제 인상여는 화씨지벽을 가지고 진나라로 들어 갑니다.
인상여가 그 벽을 진의 소왕에게 전해주자 왕은 그것을 궁녀들에게 보여줍니다.
그들은 인상여를 무시하고 기뻐 날뛰고 만세를 부릅니다.
애초부터 15성과 교환할 의사는 전혀 없었던 것이지요.
이 때 인상여가 조용히 말합니다.
"사실은 그 벽에 흠이 있습니다. 가르쳐 드리지요."

그렇게 하여 벽을 되찾아오자 인상여는 재빨리 기둥에 가서 이리 외칩니다.
"조왕께서는 닷새 동안을 목욕재계하고 이 벽을 소인한테 맡겼습니다.
그럼에도 대왕께서는 그것을 궁녀에게 보여주시며 장난을 하고 계십니다.
15성을 할양할 의향이 없으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벽을 되찾았습니다.
만약 벽을 빼앗으려 하신다면
소인은 소인의 머리를 이 벽과 함께 기둥에 부딪혀 부수어 보이겠나이다."
이에 놀란 진왕은 지도를 내보이면 당장 성을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을 수가 없으니 인상여는 이리 제안을 합니다.
"대왕께서도 우리 조왕처럼 닷새 동안 목욕재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연후에 올리겠습니다."
억지로 빼앗을 수 없는 것을 안 진왕은 하는 수 없이 목욕재계를 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인상여를 최고의 저택에 체재시킵니다.

그렇지만 인상여는 이 역시 공수표인 것을 알기에 시종에게 벽을 몰래 주고,
조나라로 돌아가게 한 다음 혼자 시침을 떼고 진나라에 머물렀습니다.
이제 날짜가 5일이 지났습니다.
진왕은 최고의 예를 갖추어 인상여를 인견합니다.
인상여는 진왕에 나아가 이리 아룁니다.

"귀국의 왕은 목공이래 20여대가 되지만 그 동안 신의가 두텁다는 분의
이름을 여태까지 한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저는 대왕에게 속아 조왕의 신뢰를 배반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 우려되어
몰래 벽을 조나라로 도로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진나라는 강국이고 조나라는 약국입니다.
대왕께서 사자를 보내기만 하면 조나라는 벽을 즉시 헌상할 것입니다.
하물며 강국인 진나라가 먼저 15개의 성읍을 준다면 조나라는 벽을 아껴
대왕의 원한을 사는 따위의 일은 저지르지 않을 것입니다.
대왕을 속인 죄가 죽음에 해당된다는 것은 물론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설사 삶아 죽이는 극형을 당할지라도 후회는 없습니다.
다만 그러기 전에 가신 여러분과 충분한 심의를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저는 인상여의 이 장면에 이르러, 그 비장함,
당당함에 매료되어 소시적 외우기까지 하였습니다.
지금은 왜 이리 질척이는지, 책을 펴놓고 음미하며 다시 정서해봅니다.

이 때 진왕의 측근들이 일어나 그를 체포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역시 일국의 왕인지라, 달라도 무엇인가 하나는 다릅니다.
이들을 말리며 이리 말합니다.

"여기서 인상여를 죽인다 하여도 벽이 손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조나라와의 우호관계까지 손상될 것이다.
이번에는 인상여를 후하게 대접해서 귀국시키는 것이 득책이다.
조왕도 벽 하나 때문에 진나라를 배신하거나 하지는 않겠지."

인상여는 무사히 귀국하였습니다.
조왕은 그의 공로를 치하하여 대부로 등용합니다.

완벽(完璧)이란 말은 이 고사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완전무결이란 말로 쓰이지만,
원래는 벽을 온전히 돌려받다란 의미였던 것이지요.

이야기가 조금 더 남았습니다.
지금 제가 말하고 싶은 지점으로 빨리 가야하니깐 다음 이야기는 축약하여 바삐 전합니다.

그후의 일입니다.
진나라는 조나라를 공격하여 조나라 군사 2만을 죽입니다.
그후 진왕은 조나라에게 회담을 제의합니다.

조왕은 겁을 먹고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에 인상여와 염파(廉頗)가 함께
"가지 않으면 비굴함을 천하에 알리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하고
간했으므로 마지 못해 응하기로 합니다."
조왕은 인상여를 대동하고 회담장소에서 진왕을 만납니다.
주연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 진왕이 말을 끄냅니다.
"전부터 조왕이 음악을 좋아하신다는 말을 듣고 있는데 한 번 거문고를 타서 들려 주시지요"
조왕은 거문고를 탔습니다.
그러자 진나라 기록관이 앞으로 나와서
"모년 모월 모시 진왕은 조왕과 회담하고 조왕에게 거문고를 타게 하다" 라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조왕 옆에 시립하고 있던 인상여가 앞으로 나와서
"진왕께서는 진나라의 음악에 뛰어나시다고 듣고 있습니다.
모처럼의 기회이오니 분부(盆장구부)로 장단을 맞춰
장기인 목소리를 들려 주시면 함께 즐기고자 합니다."
진왕은 발끈하여 거절합니다. 그러자 인상여가 달려들며 재차 간합니다.
그래도 진왕이 사리니까,
"끝까지 승낙하지 않으면 목숨을 빼앗겠습니다"라며 큰소리로 외칩니다.

진왕 측근이 나서지만 인상여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은지라 어쩔 수 없이 분부를 칩니다.
그러자 인상여는 조나라 기록관을 불러
"모년 모월 모시 진왕은 조왕을 위해 분부를 치다." 라고 기록하게 합니다.
이어 이런 유명한 대작응수도 있었습니다.
진왕의 측근자가 "우리 왕의 장수를 축하하는 뜻으로
귀국에서 성읍 15개쯤 헌상하시면 어떻겠소." 하고
말을 꺼냈던 것입니다. 완전 깡패 협박 수준입니다.
이 때도 인상여는 이리 당당히 응합니다.
"귀국이야말로 우리 왕의 장수를 위해 함양을 헌상하시지요."
(*함양은 진나라의 수도임)

이렇게 해서 주연이 끝날 때까지 진왕은 끝내 조나라를 굴복시키지 못하게 됩니다.
회담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하자 조왕은 인상여의 공적을 인정해서
상경 대신으로 발탁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상경인 장군 염파보다도 윗자리에 앉혔습니다.
(인상여와 염파의 갈등 조건을 눈여겨 주세요.)

자 이로서 기초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바삐 서두느라고 고갱이만 챙기고 살을 붙이지 못하여 맛이 좀 가셨습니다.
다음 결론부로 함께 옮겨 가 보시지요.

3. 문경지교(刎頸之交)
(* 문(刎)은 찌르다, 경(頸)은 목이니 죽고 살기를 함께 할 정도의 벗 사이를 이르는 말입니다.)

이제 서서히 마지막으로 달려 갑니다.
염파는 조나라 천하에 이름이 알려진 역전의 용사요.
조나라의 대들보로 나라를 지켜온 장수입니다.
그런 염파보다도 인상여가 상석에 떡하니 앉혀진 것입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 격이라 염파가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겠지요.

염파는 보는 사람마다 인상여를 만나기만 하면 그냥 두지 않겠다고 공언했습니다.
한편 인상여는 소문을 듣고 염파와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어느날 인상여가 외출했다 멀리서 오는 염파를 보고는 황급히 옆집으로 도망쳐 들어 갔습니다.
이런 지경이자 인상여 가신들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저희들이 고향을 버리고 당신을 섬기고 있는 것은 오로지 당신을 경모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당신은 염파보다 더 높은 지위입니다.
그런데도 염파의 갖은 욕설을 견디어 내시며 필부조차 치사해서 꺼리는 도망을 치십니다.
그리고도 태연하게 부끄러워 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다니 도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이젠 더 참을 수가 없습니다.
저희들을 물러가도록 해주십시오."
인상여는 가신들에게 이렇게 반문합니다.
"그대들은 염장군과 진왕 중 어느 쪽이 벅찬 상대라고 생각하느냐 ?"
"물론 진왕입니다."
"그런 진왕이지만 나는 궁정에서 당당하게 논전(論戰)했다.
가신 따위는 어린애 다루듯이 했다. 그런 내가 어째서 염파 장군을 무서워 하겠는가 ?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도 강한 진나라가 우리나라를 감히 넘보지 못하는 것은
염파장군과 내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두 사람이 싸우면 어느 한 쪽이 상처를 입는다.
내가 이런 행동을 취하고 있는 것은 개인의 싸움보다는
국가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알겠느냐"

저는 이 부분에 이르면 몇번이고 되뇌이며 눈을 감고 인상여를 생각합니다.
나이 들면서 공연히 이리 쉽게 감상에 젖어 들 때가 있더라고요.

이 말을 전해 들은 염파는 빈객의 주선으로 인상여의 집을 찾아가서 웃옷을 벗고 사죄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옷을 벗는 것은 죄인의 징표입니다.
(한나라 여후에 얽힌 左袒, 右袒 고사가 있습니다만,
하여간 여기서는 어깨를 드러내는 것이 죄인의 경우에 해당한다는 정도로 이해를 하시면 되겠습니다.)
"이 어리석은 놈을 자세히 보아 주십시오. 장군의 관대한 마음도 모르고 이런 꼴입니다."
두 사람은 이것을 기회로 화해하고 그 다음부터는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었다고 합니다.

관포지교는 학교 다닐 때 배워 기억하시는 분이 많으시겠지만,
문경지교는 그리 널리 알려진 얘기는 아니지요.

사마천은 인상여를 이렇게 평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면 용기가 솟는다. 죽음 그 자체는 어렵지가 않다.
죽을 장소를 가리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참으로 지(智), 용(勇)을 겸비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는 염파를 이리 평합니다.
"만부지망(萬夫之望) 무용(武勇)을 가졌으나 부끄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 부끄러움 드러내  인상여와 짝을 이뤄 나라를 지켰으니
이를 일러 어찌 절세지용(絶世之勇)이라 하지 않을손가"

오늘의 이야기는 이제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요번 "군자대로행 운운"
제하의 제 글에 스스로 되 감상을 하는 중 불현듯 이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ooo"님의 윤리와 실천의 문제 제기가 아마도 격발(triggering)의 역할을 하였다는 생각입니다.
여기에 이르러서 이 이하는 결론부이지만 사실은 사족에 불과합니다.
그냥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문제환기 또는 방향만 제시하는 선에서 그치렵니다.

일장공성만골고(一將功成萬骨枯)란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
장수 하나가 공을 이루기 위해선 일만명의 뼈다귀가 말라 비틀어지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결국 공은 하나가 다 취하고 해골은 만개나 들에 나뒹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중원의 쟁패를 위하여 병졸들은 수없이 소모되었습니다.
전 소시적 이 구절에 임하여 만골의 아품에 치를 떨며
저 기득권들의 민초 수탈에 주먹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각도로 이해한 제 생각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소시적 제 감상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만골(萬骨)이 일장(一將)을 손가락질 하며 이리 말합니다.
"너는 단지 입으로만 우리한테 명령하였다.
우리는 풍찬노숙 황토바람을 맞으며 모래밥을 먹었다.
갑옷도 없이 헤진 군복을 입고, 녹슨 창으로 창칼의 숲을 내달려,
목숨을 버리며 적군을 벼히고 드디어 승리를 얻어냈다.
우리 만골의 피와 눈물이 없었다면 승리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공은 네가 모두 다 가져갔다.
우리의 살은 늑대가 취하고 넋은 구천을 떠도는 가련한 신세가 되었다."

일장(一將)은 만골(萬骨)을 보며 점잖게 목소리를 가다듬어 이리 말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부하들아.
당신들의 고통은 즉 나의 고통이여, 당신의 배고품은 곧 나의 배고품의 다름 아니었다.
나 역시 그대들의 처지를 몰랐던 것이 아니다.
내가 당신들의 발과 손을 빌렸던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 손발을 승리를 위해 조직하고 부리며, 꾀를 내어 적을 기만하고,
적장을 함지로 유인한 것은 나의 지혜에 의한 것이다.
神策究天文하고 妙算窮地理한 것 또한 나의 공덕이 아니더냐 ?(을지문덕-인용)
갓(冠)은 찢어지고 낡았어도 반드시 머리에 쓰는 것이고,
신발은 아무리 아름다운 색으로 장식이 되었어도 반드시 땅 위를 밟는 것이다.(費仲-인용)"

손발은 자신의 수고로움만 생각하지,
자신을 통제한 머리의 역할을 잘 알지 못할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이를 일러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의 갈등이라고 풉니다.
저는 이를 일러 문(文)과 무(武)의 갈등이라 풉니다.

유명한 오자병법의 오기와 위의 재상 전문의 문답도
역시 오기의 실적을 바탕으로 한 불만과
전문의 인적, 물적 자원관리 공덕간의 마찰에 다름 아닙니다.

무(武)는 늘 땀으로 말합니다.
땀처럼 진실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요.
땀처럼 실제성을 가시적으로 담보하는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반면 문(文)은 수면 밑에 숨어 수면 위의 사물의 통제 원리로서 기능합니다.
때문에 작용의 결과는 심대하나 비가시성 때문에 실제성을 평가받기 어렵습니다.

염파는 땀을 말했으나, 인상여는 지(智)로 말합니다.
어느 조직이나 이 양자가 존재합니다.
무는 땀으로 말하나, 문은 지로 말할 뿐입니다.
염파와 인상여의 관계처럼 역할이 다를 뿐 같은 배를 탔다는 것은 한결 같습니다.

지혜없는 땀은 수고롭기만 할 뿐입니다.
반면 땀없는 지혜는 공허롭습니다.

이곳 OOO에 계시거나, 오시는 분들에게서
염파와 인상여를 찾아내며 저 혼자 즐거워 합니다.
모두 고마운 분들입니다.

저의 오늘 밤 이야기는 이 정도에서 그칩니다.
이 이야기들 가운데 나머지 숨어 있는 가치들은 여백으로 남겨둡니다.

다음 번에는 고양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제 얘기는 원래 하지 않으렸는데 조금만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얘기를 듣고 가만히 있는 것도 조금 계면쩍은 일이더군요.
또 일부 오해도 있으신 것 같고요.

『이런 얘기도 내일 밤에 들려 드릴 얘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하라자드 처녀는 얘기를 끝낸 다음에 임금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런 재미있는 얘기를 들으면서 임금은 1천1회의 밤을 지냅니다.

밤에 쓰는 글 끝에는 늘 이리 말한 사하라자드 처녀가 생각납니다.
신비한 이슬람의 수피 댄싱 속에 너울같은 옷주름이 접신하듯
흔들리는 사하라자드 그녀를 생각합니다.

'소요유 > 묵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code - ③  (0) 2008.02.16
code - ②  (0) 2008.02.15
code - ①  (0) 2008.02.15
문.무(文.武)의 진실과 그 화해를 위하여  (0) 2008.02.15
기우(杞憂)  (2) 2008.02.15
어둠의 계조(階調)  (0) 2008.02.15
배반의 장미  (6) 2008.02.15
Bongta LicenseBongta Stock License bottomtop
이 저작물은 봉타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3.0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행위에 제한을 받습니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