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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썰기

소요유 : 2009. 9. 11. 18:20


떡 썰기

쌀통에 보관한 쌀에 벌레가 나기 시작했다.
우리 어렸을 적에는 쌀 뿐인가 밀가루에도 벌레, 날벌레가 살았었다.
이런 것은 체로 거르거나 물에 잘 씻어야 먹을 수가 있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도통 벌레가 생긴 곡식을 대하기 어려워졌다.
보관 방법이 발전하였겠지만, 필경은 무엇인가 약을 쳐대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새로 산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얼마 전부터 쌀통에 벌레가 생기기 시작하더니 나방까지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처는 몇 차례 견디어 내는 양 싶더니만,
남은 것을 모조리 잘 씻어서는 방앗간에 가서 떡을 쪄왔다.
가래떡을 만들어 온 것이다.

그러더니만,
얼만 전 나를 부르더니 떡이 너무 딱딱해서 썰기 힘드니, 나 보고 썰라고 청한다.
서너 개 썰다 보니 팔목도 아프고 제법 힘이 든다.
한 손으로는 떡을 잡고 나머지 한 손만으로 썰자니,
힘이 엔간히 들어간다.

두 손으로 칼을 잡고 위에서 누르면 한결 힘이 들지 않으나,
도마 위에 놓인 떡이 흔들려 겨냥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한쪽을 고정 시키면 좋으련만 무엇으로 고정할지 구처가 마땅치 않다.
강아지 사료부대를 봉해 놓은 커다란 집게를 사용하려니 이것도 충분하지 않을 듯싶고,
무엇이 과연 적당할 것인가?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전광석화처럼 꾀 하나가 떠오른다.

가래떡 한쪽에 조그만 과도를 박아 도마 위에 누여 놓으면 지지가 될 성 싶다.
해서 그림과 같이 한 쪽 끝을 슬쩍 칼로 찔러 눕혀  놓았더니,
위에서 칼로 썰어도 움직이질 않는다.
나는 처를 불러 큰 소리를 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반도 5천년 주방 역사에 내가 처음으로 큰 획을 그었다.
떡국 끓이려고 부녀자들이 좀 용을 써가며,
밤을 새가며 가래떡을 썰지 않았는가 말이다.
하지만 이런 아이디어를 그 누구인들 내었던가 말이다.
주방 일도 역시나 머리 좋은 사람이 맡아야 해!,
아니 지도를 받아야 해.”

맡으라고 하면,
잘못하다가는 내내 담당하게 된다.
해서 나는 말을 급히 바꾸어 가르침을 청해야 한다고 바꾼다.

모자른 것은 남정네에게서라도 배워야 한다.
모름지기 부덕(婦德)이란 이러해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 하니 수십 개 가래떡이 순식간에 썰어진다.
시간도 노력도 근 반은 절약되는 양 싶다.

하여 여기,
무릇 어린 백성을 어여삐 여겨 전격 공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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