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뻐꾸기

소요유 : 2009.09.24 16:22


뻐꾸기는 알을 제 둥지에 낳지를 않고 다른 새의 둥지에 낳는다.
그러면 그 둥지에 깃든 원래의 어미 새는 그게 제 알인 줄 알고 열심히 품고 부화시킨다.
뻐꾸기 새끼는 어느 정도 자라면 아직 부화하지 않은 본래의 새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 땅에 떨어뜨린다.
그것도 모르고 어미 새는 그게 제 새끼인줄 알고 먹이를 열심히 날라다 먹인다.

사뭇 끔찍스런 모습이다.
여름마다 숲 속에서 들리는 뻐꾸기 소리는 제법 그럴 듯하지만,
이런 패륜지조(悖倫之鳥)라니,
어찌 하다 이 새는 이런 길을 걷게 된 것일까?

뻐꾸기는 한자로는 포곡조(布谷鳥)라고 한다.
포곡에 무슨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단순히 발음을 취한 것이다.

‘布谷布谷,布谷布谷’ 
(※ 布谷 [bù gǔ ])

내가 오늘 새삼 철 지난 뻐꾸기를 새기는 까닭은 다른 것이 아니다.
정운찬 총리후보자의 청문회를 지켜보자니,
병역문제도 석연치 않았지만,
미국시민권 가진 아들의 사연에 이르르자,
불현듯 뻐꾸기 소리가

‘뻐꾹 뻐꾹’
‘布谷布谷,布谷布谷’
‘bù gǔ bù gǔ’

귓가에 들리는 게 아닌가 말이다.
매 해 이리저리 남의 둥지를 바꿔 자신을 속이고는,
포란(抱卵)의 의무는 면하고,
위포(喂飽,배불리 먹이다)는 남의 신세를 지는 뻐꾸기가
포르륵 깃털 두엇을 떨어뜨리고는 내 생각의 안뜰을 지나고 있음이다.

김기협은 정운찬을 향해 이리 말하고 있다.

조조를 놓고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란 말이 회자되거니와, 형님껜 "치세의 능신, 난세의 등신"이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http://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922143104&Section=01

후한(後漢) 삼국시대 때,
조조(曹操)가 인물 평론가인 허소(許劭)를 찾아 갔다.
허소는 월단(月旦)이라 하여 매달 초하루에 인물평을 했는데,
당시는 이게 꽤나 인기가 있었다.
이 허소의 인물평에 끼이지 못하면,
유명인사가 아니니,
외려 그 대상이 되기를 다투어 원했다.
마치 포틀 사이트에 여자 연예인들이 벌거벗은 제 모습을 올리려고,  
포달을 부리며,
안간힘 기를 쓰는 것과 매한가지였으리라.

조조가 허소에게 이리 물었다.

“是個什麼樣的人物”
“나는 대체 어떤 인물이 되겠소?”

허소는 처음엔 묵묵부답이었으나, 거듭되는 추궁에 이리 답했다고 한다.

“子治世之能臣,亂世之奸雄也”
“선생은 치세엔 능신, 난세엔 간웅이 되겠소.”

조조는 이 말을 듣고는 크게 웃고는 돌아갔다 한다.

대개는 허소가 인물평론가라 하지만,
상학계(相學界)에서는 관상가라고 짐짓 말하기도 한다.
지금이야 관상가를 무릇 하시(下視)하지만,
당시에 상학(相學)은 학문하는 이들의 필수 과목이었으며,
왕가에선 상자(相子)를 대동하고 인물들을 가려 뽑았다.
그러하니 허소에게 어찌 상법(相法)이 없겠는가?
하여간 이들에 의하면 이 때,
허소는 조조의 관상을 보고는 이리 짚었다 한다.

‘龍準虎眉 丹鳳之相’
‘용코에 호랑이 눈썹을 가진 붉은 봉황의 상.’

김기협은 정운찬 후보를 보고,

“치세의 능신, 난세의 등신”

이리 말했지만,

나는 그를 보고 이리 말하고 싶다.

“치세에 용인 듯,
난세에 혹시 호랑이 노릇이라도 할까 싶었으나,
이제와 보니,
깨진 질그릇, 찌그러진 양푼이니,
꿈이란 이리 다 부질없음이라.

사람이 어찌 용호를 닮을 수 있으랴,

지난여름 앞산에서,
‘布谷布谷 布谷布谷’
울던 뻐꾸기 소리가, 
누항의 골목길을 훑는 을씨년스런 바람이 되어,
어이 이 가을을 지나고 있는가?

참으로 괴이쩍고뇨.”

***

말이 나온 김에,
뻐꾸기 사례를 하나 더 소개한다.

전국시대에 황헐(黃歇)이란 사람이 있었다.
사기(史記) 열전에 나오는 이야기 한토막이다.

당시 전국 4군(君)으로 이름을 날린 이들이 있다.

제(齋) 맹상군(孟嘗君) - 田文
조(趙) 평원군(平原君) - 趙勝
위(魏) 신릉군(信陵君) - 無忌
초(楚) 춘신군(春申君) - 黃歇

황헐은 춘신군을 말한다.
이들은 모두 공자(公子)니 왕의 혈족들이다.
물경 식객만 3000씩 거느리고 있었으니,
왕 못지않게 천하의 부와 귀를 다 거머쥔 팔자 늘어진 자들이다.

춘신군 황헐의 문하에 사인(舍人) 이원(李園)이라는 자가 있었다.
이원에게는 이언(李嫣)이라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자색(姿色)이 아주 고왔다.

이원, 이 자가 엉뚱한 생각을 품었다.
즉, 당시 초고열왕(楚考烈王)에겐 자식이 없었는데,
여동생 이언을 바치고 한 몫 잡을 궁리를 한 것이다.
하지만, 초왕에게 여동생을 바치고 나서 역시나 자식을 두지 못하게 되면,
총애를 잃을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한 동안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꾀를 내었다.
먼저 춘신군에게 여동생을 바치고, 임신을 시킨 후,
이를 다시 빼돌려 초왕에게 바치자는 계책을 세운 것이다.
다행이 여동생이 사내아이를 낳게 되면,
자신은 일약 태자의 외삼촌이 되며,
그가 나중에 왕이 되면 권세를 한껏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는 춘신군을 교묘히 꾀어
이대로 일이 되도록 추진했다.
결국 이언은 춘신군의 아기를 밴 채, 초고열왕에게 바쳐졌고,
쌍둥이 아들 형제를 낳게 된다.
초고열왕은 크게 기뻐하며,
이언을 황후로 삼고 장자 한(捍)을 태자로 삼았다.

초고열왕 25년,
이 해에 왕이 병이 났다.
이원은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여동생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춘신군밖에 없다.
장차 태자가 왕이 되는 날엔 춘신군이 비밀을 밝히고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러니 먼저 춘신군을 죽여 버려 후환을 없애는 도리밖에 없다.
이원은 힘센 장사를 자기 문하에 두고 일을 도모할 준비를 했다.

이 때, 춘신군 문하에 주영(朱英)이란 자가 있었다.
그가 춘신군에게 아뢴다.

“세상엔 미쳐 그러리라 예상치도 않았는데 다가오는 복이 있으며,
또한 화도 있습니다.
이제 대군(大君)은 이런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 처하여,
예상할 수 없는 임금을 모시면서,
어찌 예기치 않은 인물이 없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이 장면은 제법 유명하니 다시 재우쳐 새겨본다.

世有毋望之福,又有毋望之禍。今君處毋望之世,事毋望之主,安可以無毋望之人乎?

여기서 毋는 無와 통한다.
望은 바란다는 의미와는 약간 다르게 새겨야 한다.
즉, 내가 의지를 가지고 기대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온 '예측불가한'이란 뜻을 가진다.

毋望之福
毋望之禍
毋望之人


다시 고삐를 바로 잡고 가던 길을 재촉한다.

춘신군이 말한다.

“무엇이 예상치 못한 복이란 말이오?”

주영이 답하여 아뢴다.

“대군께선 20여년 초나라 정승으로 계셨습니다.
명색이 승상이지만 실인즉 초왕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제 초왕이 병으로 불원간 세상을 떠나실 것입니다.
그러면 대군은 어린 왕을 받들어 이윤이나 주공처럼 섭정을 하시게 됩니다.
장차 왕이 장성하시면,
남면(南面)하여 신하로 남아 계실 수도 있고,
초나라 왕이 되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를 일러 예상치 못한 복이라 합니다.”

춘신군이 말한다.

“그럼 화(禍)에도 예상치 못한 것이 있다 함은 무슨 말이오?”

주영이 답하여 아뢴다.

“이원은 아직 나라 정사에 나서진 않고 있습니다만,
실로 대군(大君)의 원수입니다.
병권을 갖고 있지 않지만 ‘죽음을 불사할 군사’를 기르고 있은 지 사뭇 오래 전입니다.
초왕이 돌아가시면 이원은 반드시 먼저 들어와 정권을 잡고,
대군(大君)을 죽여 입을 막으려 할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예상치 못한 화라는 것입니다.”

춘신군이 말한다.

“그렇다면 예기치 않은 인물이란 무슨 말이오?”

주영이 답하여 아뢴다.

“대군(大君)은 저에게 낭중(郎中) 벼슬을 주십시오.
초왕이 돌아가시면 이원은 필경 먼저 궁궐로 들어올 것입니다.
저는 이 때 대군(大君)을 위해 이원을 죽이겠습니다.
이게 이른 바, 예기치 않은 인물이란 뜻이옵니다.”

춘신군이 말한다.

“그대는 그냥 놔두시오.
이원은 약한 사람이고,
나를 잘 섬긴 사람이오.
그가 어찌 그런 짓을 하겠소?”

주영은 자기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 화가 몸에 미칠 것을 염려하여,
몰래 도망가 버렸다.

그 후 열이레가 지나자 초고열왕이 세상을 떠났다.
이원은 과연 제일 먼저 궁중으로 들어가서는,
극문(棘門)에다 장사를 매복시켰다.
(※ 棘門 : 창을 늘어세운 고관이나 궁궐 문)

뒤늦게 기별을 받고,
춘신군이 극문에 들어서자,
매복한 장사들은 춘신군을 찔러 죽이고는 목을 잘라 극문 밖으로 던져버렸다.
이에 사람을 시켜 춘신군 집안까지 모두 멸절시켜버렸다.

이원은 여동생과 춘신군 사이에서 임신하였다가,
나중에 왕의 소생으로 바뀐 태자 한(捍)을 받들어 왕으로 모셨다.
이게 바로 초유왕(楚幽王)이다.

朱英謂春申君曰:“世有毋望之福,又有毋望之禍。今君處毋望之世,事毋望之主,安可以無毋望之人乎?”春申君曰:“何謂毋望之福?”曰:“君相楚二十餘年矣,雖名相國,實楚王也。今楚王病,旦暮且卒,而君相少主,因而代立當國,如伊尹、周公,王長而反政,不即遂南面稱孤而有楚國?此所謂毋望之福也。”春申君曰:“何謂毋望之禍?”曰:“李園不治國而君之仇也,不為兵而養死士之日久矣,楚王卒,李園必先入據權而殺君以滅口。此所謂毋望之禍也。”春申君曰:“何謂毋望之人?”對曰:“君置臣郎中,楚王卒,李園必先入,臣為君殺李園。此所謂毋望之人也。”春申君曰:“足下置之,李園,弱人也,仆又善之,且又何至此!”朱英知言不用,恐禍及身,乃亡去。

后十七日,楚考烈王卒,李園果先入,伏死士於棘門之內。春申君入棘門,園死士俠刺春申君,斬其頭,投之棘門外。於是遂使吏盡滅春申君之家。而李園女弟初幸春申君有身而入之王所生子者遂立,是為楚幽王。

이와 유사한 사례가 또 있으니,
그것은 진(秦)나라의 일이라,
이는 이전에 이미 이곳에 적었던 적이 있다.
(※ 참고 글 : ☞ 2008/02/11 - [소요유/묵은 글] - 여불위(呂不韋) - 기화가거(奇貨可居))

흉칙한 것이라며,
뻐꾸기만 나무랄 노릇이 아니다.
실로 고금(古今)을 불문 인간세에도 뻐꾸기가 적지 않음이다.

알라!
명년 봄,

‘뻐꾹 뻐꾹’
‘布谷布谷,布谷布谷’
‘bù gǔ bù gǔ’

이리 뻐꾸기 소리가 들리면,
그날 그 때의 사연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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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4 20:15 PERM. MOD/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bongta 2009.09.24 21:46 신고 PERM MOD/DEL

    대충 어떠한 정황인지 짐작이 됩니다.
    하지만, 제가 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대신 얼핏 생각나는 저의 글들을 소개해 드립니다.

    凡說之難,在知所說之心,可以吾說當之。
    이것이 중심어입니다만,
    언제 시간이 나시면 다음 글을 재미 삼아 읽어봐 주세요.

    ① 세난(說難) http://bongta.com/674
    ② 소통(疏通)과 변비(便秘) http://bongta.com/47
    ③ 배반의 장미 http://bongta.com/67

    ②, ③은 같은 이야기가 중복됩니다만,
    여기 등장하는 미자하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입니다.
    고대에 왕들 중에는 적지 아니들 남색을 즐겼습니다.
    하여간 미자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한비자란 책의 세난(說難)편의 핵심 사항입니다.

    당시 한비자가 상대로 하는 것은 왕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보스가 되겠습니다.
    제 아무리 좋은 의견을 가졌다한들,
    보스에 의해 채택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보람이 없지요.
    특히나 절대군주의 시대이니 오죽하였겠습니까?

    현대가 아무리 민주주의라 하여도,
    보스는 역시나 권세(權勢)가 대단하지요.
    이 때 이 권세를 건드리면,
    한비자는 이를 역린(逆鱗)이라고 부릅니다만,
    크게 반발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주 조심하여야 합니다.
    제 블로그에 ‘역린’으로 검색하면 어딘가에 이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상대의 신뢰가 아직 충분하지도 않은데,
    설득하려는 사람이 눈치도 없이 지혜를 다하여 지껄이거나, 나대게 되면,
    설혹 그 의견대로 일이 잘 진행되어 나간다 하여도,
    덕(德)으로 여겨지지 않을 우려가 있습니다.
    반대로 그 의견이 채택되지 않거나, 채택되었다 하여도 실패로 끝나면,
    일부러 방해했다고 의심받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때문에 한비자는 설득 의견의 질이 문제가 아니라,
    설득할 상대방으로부터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라야,
    왕임에도 불구하고 미자하처럼 먹던 복숭아를 주어도 총애를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한들, 총애가 식으면 벌을 받을 핑계가 되고 맙니다.

    사기에는 범수(范睢)라는 사람이 특별히 열전(列傳)의 형식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왕의 신임을 얻기까지 등용되고 나서도 5년간 핵심 의견을 내놓지 않고 꾹 참았지요.
    결국 나중엔 크게 신임을 얻어 마음껏 제 정책을 펴서 성공을 하게 됩니다.
    두어 번 죽을 잘못을 저지르고도,
    용서를 받을 정도로 신임을 얻은 것은,
    아마도 최초 5년간 신뢰를 얻기까지 노력과 인내를 아끼지 않은 결과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도 나중엔 위험을 깨닫고는 채택이라는 사람에게 재상 자리를 양보하고,
    유유히 은퇴를 합니다.

    참으로 설득이란 어렵고 어려운 과제입니다.
    하기에 한비자는 세난(說難)이라 하여 별도의 한 챕터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게 한비자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지요.

    여기서는 설득이라고 편의상 번역해두었습니다만,
    세(說)란 설득, 주장, 의견, 그리고 말씀 중에 등장하는 나의 개성 등을 상대에게 먹히게,
    혹은 꾄다(seduction, persuasion)라는 의미입니다.
    그러하기에 ‘설’이 아니고 ‘세’로 읽지요.

    하기에 제가 드릴 말씀은,
    설득의 내용이 아니라,
    설득의 기반, 즉 이름하여 ‘신뢰’를 어떻게 확보하느냐 이게 관건이란 말로 요약되겠습니다.

    이것은 실인즉 한비자의 이야기이지만,
    살아오면서 체득한 제 깨달음의 중요한 내용을 이루고 있습니다.

    거기 서양의 풍토는 어떨지 모르겠으니,
    그냥 참고만 해 두시기 바랍니다.

    저는 내일 밭으로 달려갑니다.
    그동안 방울토마토, 오이, 가지 따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습니다만,
    이제는 거의 끝나가고,
    알타리 무, 들깨가 남았습니다.
    이것들은 아직은 추수할 때가 아니라,
    이것 저것 잔 일로 소일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지금 시각 21:46
    사뭇 아름다운 밤입니다.

  2. 2009.09.25 03:51 PERM. MOD/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3. 2009.09.25 18:27 PERM. MOD/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bongta 2009.09.27 08:33 신고 PERM MOD/DEL

    말씀을 들으니,
    결과가 그리 귀결되었다니 다행스럽군요.
    그런데, 바로 한비자의 다음 일화가 떠오릅니다.

    한비자란 책이 10여만 자 정도입니다.
    예컨대 여씨춘추처럼 백과사전식 편저도 아닌데, 이 정도라면,
    대단히 방대한 양입니다.
    진시황은 이 책을 읽고는 이 책을 지은 자를 만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라고 감탄합니다.
    한비자란 ‘거울’엔 세상만사 비추이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월왕 구천이 화가 난 개구리를 보더니 예식을 올렸다.
    ....
    ....”

    이리 쭉 쓰다 보니 제법 길어졌습니다.
    해서 별도의 본 글로 잘라 올려둡니다.
    '상은 불속에 있다.' ☞ http://bongta.com/759

    다만 '일장공성만골고' 이 부분은 **님께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본 글을 완성하려니 **님과 나누려는 댓글과는 상관없는 부분이 덧붙여졌습니다.
    무릇 글은 놓여 있는 자리에 따라 별도의 글격을 가지고,
    고고(呱呱) 제 소리를 내기에,
    이리 바깥에서 한 자락 잘라 인용될 때는,
    소용(所用)에 한정하는 등 사뭇 주의하여야 하지요.

    그런데,
    일에는 과정과 결과가 있을 터인데,
    먼저 번에는 과정을 탓하고,
    이번엔 결과를 찬하였다면,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자세한 것을 알 수 없는 입장이니,
    저로서는 이 부분이 석연치 않군요.
    이 상태라면,
    앞으로도 똑같은 상황이 재현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지 않은가?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그 때마다 다음 날 일찍 퇴근할 수만 있다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네요.

    조금 친해졌다고,
    스스럼없이 농담 한번 해보았습니다.
    주말 잘 지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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