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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석대

소요유 : 2009. 9. 28. 21:17


학창시절에 일도 아닌 것을 트집 잡아 기합을 주는 선생님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개중엔 학교 다닐 때는 그리 지겹고 괴로웠는데,
그래도 지금엔 그 선생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하는 친구도 있다.

어느 글에서 인용하거니와,
예컨대 이런 선생님 같은 유형을 하나, 둘쯤은 모두들 경험했을 것이다.

“ ... 그 교련 선생님은 특이한 이유로 반 전체를 기합 주는 걸로 유명했습니다. 여학생 손톱 하나가 길다고 저희 반 전체가 손들고 서있기도 했구요. .... 그런데 옥상에서 1시간동안 손들고 서있다가 교실에 오니 음료수 하나씩이 저희 책상 위에 있더라구요. 이해가 잘 안 되었던게 거기에 많은 학생들이 엄청 감동을 받는 거였습니다. 앞머리가 곱슬인 여자학생보고 파마를 했다면서 기합주시고, 항의하는 남학생을 목발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엄청 두들겨 패신 분인데, 그 교련 선생님 은근히 인기가 많았죠.”

혹여 있다는 교련선생 인기의 비밀은,
일종의 각인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음식점에서 내온 맵고, 짠 음식은 손님의 미각 중추에 쉽게 각인된다.
그 음식의 미향(味香)이 똑같은 수준의 음식점 두 곳이 있다 할 때,
실력에 자신이 없을 땐, 같은 값이면 맵거나 짜게 하는 것이 유리하다.
밍밍한 것보다 자극적인 것은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게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손님이 다음 회차에 또 그 집을 방문할 기회 확률이,
그렇지 않은 다른 음식점보다는 높다.

자극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역치(閾値, threshold)를 넘는 순간,
반응이 뒤따르고 사람의 뇌리에 쉽게 각인된다.

그러하니, 벌이나, 기합을 세게 주지 않는 선생님이,
학생들 기억에 남을 일이 없다.

군대생활 하면서도 무수히 빠따를 맞는다.
고참은 한참 줄 빠따를 때리고 나서는,
아주 의젓하니 폼을 잡고는 담배 한 개비씩 돌린다.

‘뭐 사내 녀석들은 이런 것이야,
내가 네들에게 다른 감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다 잘해보자고 그런 것이지.’

화랑 담배 연기는 허공에 머리 풀고 올라가며,
쓰라린 엉덩이들을 위무(慰撫)한다.
하지만 정직하게 말하면 그것은 비웃음의 일종으로 보아야 했다.
그렇지 않은가?
별 일도 아닌 것으로 빠다를 좃나게 맞고는,
담배 한 개비에 원통, 절통(切痛) 구비 서린 원한(怨恨)을 가볍게 팔아 던진단 말인가?

어떤 나약한 녀석은 매를 맞지 않으면 매일 저녁이 불안하다며,
은근히 빠따를 기다리기도 했다.
각인효과는 이리 개인의 영혼을 무두질한다.
생가죽처럼 노글노글해지는 것이 아니라,
실인즉 비굴한 노예가 되어갈 뿐인 것을.

하지만, 문제는 각인이 되었다고 ‘자극’이 마냥 옳다든가 합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화학조미료가 넣어진 음식에 익숙하다 보면,
점점 첨가 양이 많아야 맛을 느끼게 된다.
나중엔 급기야 천연 음식의 맛을 잃게 된다.
역치가 지속적으로 높아져 가기 때문에 중독이 되기까지 한다.
이런 엉터리 같은 상태를 어찌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는가?

저 교련 선생은 제법 영악하다.
잔뜩 기합을 주고 나서는,
음료수 하나로 끔찍스런 사태를 다시 원래의 상태로 reset 시켜 버린다.
재차 도래할 자극의 가능성이 상존한데도,
다만, 지금 현재만큼은 달콤 시원한 보상이 따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 순간 저 가여운 학생들은 그만 바로 앞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기억을 잊는다.
아니 제대로 말한다면 과거를 지우고 싶은 욕구가,
음료수란 제물(祭物)을 빌어,
부지불식간 의식(儀式)화 되고 있는 것이다.
즉, 일종의 제례(ritual)를 치루고 있는 것이다.

내가 전부터 챙겨둔 전형적인 사례가 여기 있다.
차마 그림을 인용하기 어려운 바 다만 링크만 여기 밝혀둔다.
http://www.bmezine.com/ritual/bme-ritu.html
(※ 심신박약자 열람 주의 !)
저들은 이를 ‘body modification and manipulation’이라 부른다.

교련선생의 린치(lynch)를
음료수 하나에 의지하여 용서하거나 오히려 굴복하며,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상대가 인기를 끌게 되는 이유를 나는 이리 규정하고자 한다.

‘soul modification and manipulation’

내가 보기엔 더도 덜도 말고 그저 린치에 불과한데,
깨지기 쉬운 어린 영혼은 이에 쉽게 복속하고 만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아련한 기억 속에서
그를 추상(追想)하는 것은 인간 정신의 불완전성,
조금 양보하여 말한다면 특이성(特異性),
아니 돌아갈 것 없이 바로 자학, 마조히즘(masochism) 같은 병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줄을 묶어서 키운 강아지는,
줄을 풀어 주어도 한참 놀다가는 주인이 부르면 다시 되돌아와 스스로 묶인다.
하지만 고양이는 주인이 부른다고 그저 오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제가 오고 싶은 기분이 들 때라야 주인에게 다가온다.

천하의 모든 강아지들은 고양이를 배워야 한다.
특히 묶인 채 평생을 지내는 강아지들은 어느 날 모두 모여,
만적처럼 반역을 역사(役事)하여야 한다.
그 날 그들은 모두 일떠 일어나 주인의 손등을 물고,
매인 줄을 끊고는 연기처럼 풀려 산야로 흩어져 돌아가야 한다.
그 축복된 날이 기적처럼 나타나길 기도한다.

교련 선생은 폭력에 길들인 학생을 키워낼 뿐이다.
바람직한 선생은 학생을 길들이려 하지 말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도록 도와주는 것을 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학생 시절을 추상함에 있어 교련 선생은 폭력의 실재로서 기억되어야 한다.
살아남은 재생된 기억이란 이유 하나로 아련한 향수의 대상이 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들 역시 고양이의 자유로운 영혼을 배워야 한다.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동물들이
들판을 여유롭게 거니는 고양이, 삵 같은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를 꿈꿔본다.
하기사 요즘 세상엔 이런 고양이, 삵은 없다.
모두들 허기에 지치고, 살 자리를 잃어 방황하고 있다.
이게 대부분은 인간 때문에 저질러진 일이다.

특히나 교련 선생 같은 이들의 폭거에 태반이 기인한다.
이들은 동물뿐이 아니라, 선량한 인간도 황폐화시킨다.

‘일그러진 영웅’은
자유를 잃은 나약한 이들의 음습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역설적으로 요청되곤 한다.

‘엄석대’는,
그러하기에 약자의 오도된 우상일 뿐,
그가 전해주는 음료수는 결코 감로가 아니다.
이를 깨달을 때, 다소간 부담과 위험이 따르지만,
지상엔 평화와 자유가 도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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