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시린 얼굴

소요유 : 2009.10.17 21:15


청수폭포는 정릉쪽 북한산에서 가장 두드러진 랜드마크이다.
입구를 지나 미쳐 수 분도 되지 않아 계곡을 가로질러 자그마한 모습을 드러낸다.
우측 내원사로 오르는 극소수의 사람을 빼고는 누구라도 여기를 거쳐 가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직원이 말하길 요즘은 하루 5000명이 드나든다고 하였다.
주말엔 과시 오며가며 몸이 부딪힐 지경이라,
나는 가급적 주말엔 북한산 등행을 삼가곤 한다.

폭포를 마주 보고 얼핏 흉내를 내다만 홍예(虹霓)다리 하나가 걸려 있다.
거기 예닐곱이 넘는 일단의 사람들이 난간에 기대 히히덕거리고 있다.
나는 소리만 듣고도 얼추 사람들의 면면을 가늠하곤 한다.
웃고 즐기는 것이야 일상이되, 거기 방자하고 천박한 기운이 느껴질 때면,
영락없이 그들은 하다못해 돌멩이를 던지거나 침이라도 뱉고 만다.

멀리서 보니 분명 폭포를 향해 무엇인가를 던져 넣고 있다.
나는 다가가 그들 곁에 서 있는다.
그 중 하나가 휙휙 폭포 안으로 무엇을 던져 넣는다.

거기엔 버들치가 무리를 지어 산다.
나는 오갈 때마다 한 번씩 걸음을 멈추고는,
저들을 쳐다보며 자그마한 위안을 얻곤 한다.
그리 넓지도 않은 계담(溪潭) 안에서,
힘겨운 삶을 꾸려 가고 있는 저들의 안위를 걱정할 때쯤이면,
그게 곧 나의 이야기가 되어 돌아온다.
저들은 되레 나를 위로하고 있음이다.
한 겨울 아무도 보이지 않을 때는,
꽁꽁 얼은 얼음장 밑에 숨을 멈춘 채 은거하고 있으려니 하며,
나는 다리 위에 서서 악고(握固)를 짓고 숨을 길게 품고는 한동안 멈추어,
(※ 握固 참고 글 : ☞ 2008/03/06 - [소요유] - 공진(共振), 곡신(谷神), 투기(投機) ①)
저들과 함께 친구가 되어보기도 한다.

저 불한당 무리들이 던지는 것은 배껍질이었다.
공원 당국이 갖다 세운 팻말엔 아무런 것도 넣지 말라고 적혀 있다.
사람 손때를 타면 저들이 자연에서 적응하는데 외려 어려움이 있을 터이니,
먹이일지라도 넣지 말라고 타이르고 있다.
빵 조각이나 과자 부스러기를 던지는 것은,
저들에게 먹이를 주려는 가상한 마음이려니,
평소 나는 너그러이 대한다.
하지만 배껍질을 던지는 것은 영 볼썽사납다.

무엇인가 먹이가 들어오면
저들 물고기들은 우우 몰려든다.
하지만, 먹을 수도 없는 것이 떨어지면 이내 실망하고는 쉬이 흩어지고 만다.
공연히 놀림을 받고 마는 것이다.
이쯤이면, 어린 아이도 아니고 지각이 들 나이면 당연 부끄럽지 않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깨끗한 계곡물이 오염되고 만다.

나는 이젠 그냥 두겠지 하고는 참고 있었다.
그러자 일행 중 한 여자가 말한다.

“배껍질이 뭐야 먹을 것을 던져 넣지?”

이 말을 받자,
남자가 비닐봉지를 주섬주섬 뒤지더니,
팔뚝만 한 뼈다귀 하나를 꺼내든다.
살은 모두 뜯어 먹고 뼈만 남은 족발쯤 되어 보인다.
그리고는 던지려고 폼을 잡는다.
나는 순간 놀라 바로 제지를 하였다.

“던지지 마세요.”

풍덩~

간발의 차이로 이미 뼈다귀는 던져졌다.
나는 이와 거의 동시에 생각할 틈도 없이 되우 호통을 쳤다.

그 자는 처음엔 고개를 숙이는 듯 주억거리더니,
이내 내게 대들 참이다.

그 자는 기어이 자청하여 벌주(罰酒)를 원하고 있음이다.
그리 원하고 있음인가?

나는 공원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어떤 인간이 내 팔 소매를 잡으며 참으라고 한다.
감히 내 몸에 손을 대고 있음인가?

사람 몸엔 대략 관절이 100여개 된다.
나는 사람 관절을 꺾는 기술을 배운 적이 있다.
내가 주먹질은 혹여 서툴런지 몰라도,
상대가 내 몸에 손을 대는 것은 외려 내겐 득편(得便) 즉 편한 기회가 된다.
내 몸 어디가 되었든 섣부르게 손을 대면 맞되젖혀 상대를 바로 제압할 수 있다.
나는 상대를 꺽지는 않았지만 팔소매 자락을 휘뿌리며 버릇없는 그 자를 허공중으로 잘라버렸다.

일행이란다.
자신들이 주어올 테니까 참으란다.
그런 작자가 감히 불경스럽게 내 옷자락은 어이 잡는가 말이다.
무엄한 작자다.

물속에 어떻게 들어가려고 그러는가?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다.
그 행색, 몰골들에 그래도 신고는 무서운가 보다.
이 정도면 그래도 착한(?) 사람들이다.
개중엔 삿대질에 멱살잡이로 대드는 무식한 치들도 항다반사다.

청수폭포에서 관리사무소까지는 가깝다.
늘 그러하듯이 저들은 신고 전화를 받고도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그저 변함없이 ‘알았다’는 응대가 고작이다.
현장 확인, 수습을 위해 바삐 서두르거나,
추적을 당부하는 말은커녕,
그 흔한 신고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도 없다.
책임 당사자로서 주체적으로 일을 처리하려는 의지가 전혀 읽혀지지가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 그저 군일거리 하나가 생겼다는 기색 일편이다.
feedback도 당연 없다.
그야말로 혁명적으로 저들 직임 편제를 새로 갈아 엎어야 한다.
저 안일하고 게으른 공무 담임자들.

이 사품에 저들 일행들은 슬금슬금 게걸음으로 뺑소니를 친다.
하루 5000명이면 거의 바글바글 수준이다.
청수폭포변에는 사람들이 여간 모인 것이 아니다.
사정이 이러한데,
대명천지 밝은 세상,
중인환시리(衆人環視裡) 태연히 계곡에다 물건을 던져 넣는 짓을,
그 누구인들 생각할 수 있으랴.

그런데도 쉼 없이 이런 일이 자행된다.
도대체 저런 불한당들은 어느 궁색한 곳으로부터 예까지 흘러들은 것인가?
뻔뻔함의 당체(當體)들.
천격(賤格)들.
저들은 그저 쓰레기 밭에서나 머물러야 어우러질 것들이다.

폭포를 지난 계곡 바람이 얼굴을 샤하니 스친다.
나는 소맷자락을 떨치고 이내 바람에 흔들리는 추수(秋袖)가 되어 버리기로 한다.
내쳐, 늘 다니는 계곡 변을 찾아 들어갔다.
고적한 그 곳.
내가 머무는 계곡변 너럭바위 곁.

추수(秋水)
가을물.

거기 언제나처럼 시린 얼굴이 있다.

그 누가 추수를 미녀의 일렁거리는 눈이라 하였음인가?
요즘에도 미인이 있단 말인가?
백주대낮 TV고 포틀이건 가리지 않고,
요분질을 흉내 내며 천박한 몸짓을 일삼거나,
칼질한 쌍통 들이밀며 삯밑 팔기 바쁜 세상이 아니더냐?

아,
추수(秋水)라,
거긴 언제나 시린 얼굴이 떠있다.
가만히 손을 넣고 그 얼굴을 어루만진다.

물이 일렁거린다.
마음이 흔들린다.

내가 사랑하는 미녀는 오직,
여기 가을물, 그 시린 얼굴이어라.

단풍 잎 하나,
가을물에 일렁인다.

오늘,
가을 한 점.
별사(別辭)를 이리 흘려보낸다.

(※ 참고 글 : ☞ 2008/08/17 - [소요유/묵은 글] - 추수(秋收)와 추수(秋袖)
                   ☞ 2008/08/17 - [소요유/묵은 글] - 추수(秋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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