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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전참묘(南泉斬貓)

소요유 : 2010. 1. 6. 17:16


길을 나서 언덕을 오르는데 약간은 낯선 고양이 소리가 들린다.
나도 따라 야옹~ 하며 녀석을 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바로 나타나련만 아무리 불러도 보이질 않는다.
지나쳐 온 저쪽 아래 우리 아파트 쪽에서 들리는 것 같은데,
이젠 되돌아가기엔 조금 성가시다.

홀로 남은, 돌보는 강아지에게 먹이를 주고 나서는데 또 다시 소리가 난다.
그 때 마침 고물 할아버지 집에서 손자 놈이 나온다.
그 집 내력이 그러하듯 녀석은 모른 척 그냥 지나친다.
사는 이들이 모두 도인의 경지에 이른 셈이다.
나는 고양이 소리에 이끌려 다시 아파트 쪽으로 가보기로 한다.

한참 이리저리 출처를 찾다가 문득 위를 쳐다보니,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5층 높이 창문에 매달려 소리를 내지르고 있다.
생긴 모습이 근처 절에서 보던 아기 고양이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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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리나케 그리로 올라갔다.
계단에 올라 녀석을 보니 섣불리 다가설 수가 없다.
잡으려 들 때, 혹여 아래로 뛰어내리기라도 하면 크게 다치고 말리.
119에 전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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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처에게 절에다 전화를 하라 이른다.
듣건대 기르던 고양이가 야생 아기 고양이를 여러 마리를 데리고 들어왔다고 하는데,
그들을 가끔씩 보았기에 그들 가운데 하나로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불목하니 아주머니가 받더니만 그들은 모두 나가버려 지금은 없다고 한다.

소방구급대원 아저씨들이 막대기를 저어 계단 안으로 유도하였다.
한 때는 계단 안쪽으로 들어오기도 하였으나,
이내 되 뛰어올라 창문가에 다시 매달리고 말았다.
저 녀석으로서는 저것이 사지인줄도 모르고,
허공중에 뻥 뚫린 구멍자리를 애오라지 구처(救處) 활로(活路)로 알고 있음이다.
승강이질 끝에 종국엔 저 녀석이 밖으로 뛰어내렸다.
하지만 천행으로 모아둔 눈 더미 위로 떨어져 다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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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차비를 챙겨 산으로 오른다.
방금 말썽을 일으킨 고양이 녀석이 절 입구에서 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절 주지는 가래로 눈을 치우고 있다.
그는 아기 고양이가 바깥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전화를 받고는 이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로서는 절에서 돌보는 고양이니,
저들이 현장에 달려와 그 녀석을 어르며 구해줄 것을 기대한 것이었는데,
저리도 무심할 수 있음인가?

나는 주지와 말을 나눴다.
도무지 주지의 말이 종횡으로 달려가며 갈지자를 그리기 때문에 종잡을 수가 없다.
고양이 일부가 집을 나갔다고도 하고, 지금은 두 마리를 기르고 있다고도 하였다가,
하나만 기르고 있다고 하는 둥,
말품이 동가숙 서가숙하는 떠돌이 장돌뱅이 거지(擧止)를 방불하니,
사실 확인이 어렵다.
두어라.
어쨌건 최소한 두 마리 이상이 절 주변에 기식(寄食)하고 있는 것은 거의 틀림없다.
여름내내 보았고, 최근에도 간간히 내 눈으로 보았지 않은가 말이다.

절에는 야외에다 모신 관음보살 지붕을 최근에 다시 고쳤다.
지붕을 새로 해서 모셨기에,
천수천안 환난구휼 대보살 관음의 자비심이 미쳐,
아기 고양이가 오늘 무탈(無頉) 생환(生還)한 것이런가?

인연지은 유정물(有情物)에 저리 무심한 주지의 뚝심은 과시 목석보다 더 꿋꿋하니,
필시 저 중은 장차 큰 도를 이루고 말겠고뇨. 

산을 오르자니 눈발에 비치는 소리가 사드득사드득, 하마 곱기도 하구나.
그 소리에 취해 사르륵 공안(公案) 남전참묘 하나가 떠오른다.

南泉斬貓
南泉和尚。因東西堂爭貓兒。泉乃提起云。
大眾道得即救。道不得即斬卻也。眾無對。
泉遂斬之。晚趙州外歸。泉舉似州。州乃脫履。
安頭上而出。泉云。子若在即救得貓兒。

남전화상이 고양이 목을 자르다.

남전화상.
동당, 서당이 고양이 새끼를 두고 다투자.
남전화상이 고양이 새끼를 치켜들고는 말하였다.

“대중들이여, 도득하면(도에 합당한 말을 이르면) 구할 것이며,
도부득하면 참해버리고 말리라!”

대중은 누구하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화상은 고양이 목을 베었다.
나중에 늦게 조주 스님이 밖에서 돌아왔다.
남전이 조주에게 이를 말하니,
조주는 이내 짚신을 벗더니만,
머리 위에 이고 나갔다.
남전이 말한다.

“네가 있었다면 고양이를 구하였을 텐데.”

<無門關>

남전은 시줏밥만 축내는 먹충이 땡추들만 닦달하다,
공연히 가여운 고양이만 죽였다.
조주가 뒤늦게 나타나 짚신을 머리에 이며 허튼 짓을 하자,
“네가 있었다면 고양이를 구하였을 텐데.”
남전은 이리 말하며 입맛만 다셨다.
참으로 싱겁기 짝이 없다.

나라면 당장 조주 목을 참하고 말았으리라,
그날 불목하니에게 명하여,
저들 땡추들에게 술, 고기반찬으로 거하니 한 상 차려주라고 이르겠다.
거기 말석이나마 우리 동네 주지도 한 자리 끼어주었으면,
더욱 상 자리가 빛이 났을 터.

오늘,
대중(大衆)은 내가 조실스님이 아닌 것을 백년 한(恨)으로 품고, 천년을 탄(嘆)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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