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상상(想像)

소요유 : 2010. 2. 13. 22:43


오늘 산에서 내려오는데,
마침 막 오르시는 K 선생님을 만나뵙다.

배낭을 뒤적이시더니,
쪽지 하나를 건네신다.

일흔 중반에 가까우신데도,
눈밭을 아이젠 없이 오르실 정도로 등산을 즐기신다.

얼마전 선생을 모시고 가사를 새기며 노래를 함께 감상한 적이 있었는데,
손수 가사를 적으신 후 내게 선물을 하신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바로 얻을 수 있는 가사지만,
나로서는 귀한 선물인즉 이리 남겨 기념한다.

나는 백수(百壽)를 축원드렸다.

선생님 역시 그리 말씀하셨듯이,
모두 이 가사처럼만 살 수 있다면,
세상은 한결 아름다우리.

사용자 삽입 이미지

Dust in The Wind

I close my eyes only for a moment
And the moment's gone
All my dreams
Pass before my eyes, a curiosity

Dust in the wind
All we are is dust in the wind

Same old song
Just a drop of water in an endless sea
All we do
Crumbles to the ground tho we refuse to see

Oh~

Don't hang on
Nothing lasts forever but the earth and sky
It slips away
And all your money won't another minute buy
Dust in the wind
All we are is dust in the wind (All we are is dust in the wind)
Dust in the wind (Everything is dust in the wind)
Everything is dust in the wind
The wind
Ooh~


Imagine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Imagine no possessions
I wonder if you can
No need for greed or hunger
A brotherhood of man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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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은유시인 2010.02.14 17:45 PERM. MOD/DEL REPLY

    저도 올드팝을 즐깁니다.
    이상하게 국내 가요보다 더 좋아합니다.
    물론 몇몇 국내 가수들의 노래를 좋아합니다만,
    올드팝은 언제 들어도 질리지가 않습니다.

    사용자 bongta 2010.02.14 18:58 신고 PERM MOD/DEL

    올드팝이 좋지요.
    제게 쪽지를 건넨 분은 영문학을 전공하셨다고 하시는데,
    매일 영어 공부를 하십니다.
    종이에 깨알같이 영어 단어를 적어 익히시는데,
    팝송도 꿰고 계시지요.

    산에 오르다 보면 쓰레기 버리지 않는 노인네들이 드문데,
    이 분 만큼은 그러시지 않는 것을 보고는 인품을 짐작하였지요.
    몇 번 만나 보지도 않은 저를 위해 디카를 사주시겠다고 하질 않나,
    (※ 이 사연은 http://bongta.com/261 참조)
    사업을 같이 하자고 하시질 않나,
    그 이상까지도 ...
    저를 전폭적으로 신뢰해주시는 분입니다.

    제가 컴퓨터, 인터넷을 가르쳐드리겠다고 하자,
    바로 컴퓨터를 장만하시기까지 하셨지요.
    지금 연세에도 공부를 거르지 않는 대단한 분이십니다.
    뵙기 드문 분이시지요.

    제가 앞에서 쓴 글,
    http://bongta.com/483
    여기 등장하는 분이시기도 한데,
    제 글을 보고는 어떤 이는 구차스럽게 보였다고 하더군요.
    글쎄요?
    신발 수선하는 것이 구차하게 보였을까요?
    실인즉 저 글의 중심 주제는 그게 아니고,
    '우정'인데.
    조그만 우정이지만,
    저로서는 귀하겨 여겨져 남겨두고 싶었을 따름이거든요.

    저는 한 때 동물가죽을 피하려고 싸구려 중국제 신발만 신었을 때도 있었지요.
    그런데 이게 6개월도 버티지 못하여 오히려 공해를 유발하는 문제가 있어,
    어쩔 수 없어 일반 신발로 다시 돌아온 적이 있지요.

    신발이 망가지면 고치는 것이,
    왜 부끄러워야 하는 일인지 지금도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2. 은유시인 2010.02.15 00:58 PERM. MOD/DEL REPLY

    저는 빵꾸난 양말도 예사롭게 신고 다닙니다.
    게을러서 양말을 꿰매신지는 않습니다.
    발 따스하면 그걸로 된 겁니다.
    체면차릴만큼 내가 두려워해야할 인간도 없고요.

    신발 고쳐신는거 뭐가 어떻다는 겁니까?
    하긴 똥차 끌고다니면서도 차 없는 사람 우습다 깔보는 인간들도 꾀 많더군요.

    사용자 bongta 2010.02.15 18:06 신고 PERM MOD/DEL

    경차를 몰고 다니다가 주변에 괄시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기어이 차를 바꾼 분을 알고 있습니다.
    형편이 모자란 것도 아니면서,
    오불관언(吾不關焉) 꿋꿋하게 버티던 분인데,
    어느 날 호텔에서 거지 취급을 받고는,
    결국 지고 말았지요.

    누구나 속물근성을 조금씩은 갖고 있겠지만,
    우리네 습속은 과도하게 면치레에 구속된 편이지요.

  3. 은유시인 2010.02.16 18:07 PERM. MOD/DEL REPLY

    전, 남의 시선을 잘 의식 못하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염치없는 짓은 안하지만요.

    가장 꼴불견이
    큰 차 타고다닌다는 자랑과
    큰 집에 산다는 자랑....
    그리고 떼돈 벌었다는 자랑이지요.

    스스로 노력해서 분수만큼 번 사람들은 그런 자랑을 부끄럽다 여겨 하지 않는다 봅니다.

    사용자 bongta 2010.02.22 13:40 신고 PERM MOD/DEL

    - 20100222 오타 수정.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돈이 아주 많다면,
    경차를 타고 다녀도 속이 든든하니 꽈 차서 절대 주눅이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충분치 못한데 무리를 하게 되면,
    허장성세(虛張聲勢) 거짓 품을 넓혀 소리를 지르게 되지요.
    부족한 것을 아우성 그 소리로 채워 메우게 됩니다.

    제 아는 사람 중에 사채업에 밝은 사람이 있습니다.
    돈 굴러가는 소리, 그 향방에 민감하니 그 기미를 읽어내곤 합니다.
    그가 말하길 진짜 부자는 절대 밖으로 제 돈 자랑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아닌 게 아니라 진짜 부자는 돈 자랑 하는 게 그쯤이면 별로 흥도 나지 않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 태권도를 배우지요.
    그런데 도장 밖을 나서 폼 잡고 으스대는 녀석들은,
    대개 몇 개월도 배우지 않은 초짜들이지요.
    고수들은 자랑할 이유가 도무지 없지요.
    어린 시절 그동안 자랑한 것도,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그렇듯 이젠 무서리 내린 침잠의 계절로 들어서기 때문일 것입니다.

    게다가 세상엔 얼마나 고수가 많습니까?
    까불다가 철퇴라도 맞으면 얼마나 무참한 노릇입니까?
    이 두려움,
    곧 겸손함을 마저 갖추었을 때,
    우리는 그를 이제 비로소 고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화교의 사정 이야기를 들으면 이를 넘습니다.
    보통 한국 음식점 상인은 돈을 벌면 단층집에서 이층집을 짓고,
    이층집에서 돈을 더 벌면 3층집을 짓는다고 할 때,
    중국집 주인은 돈을 아무리 벌어도,
    집을 크게 짓는다든가 단장하는데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벌은 돈은 장궤(掌櫃)에 차곡차곡 넣어지지요.
    오래된 건물은 기름 때로 절어 번질거리고 궁색해보이지만,
    돈은 착실히 장궤에 잠겨 년년세세 불어납니다.
    우리가 중국집 주인을 짱깨라고 하시(下視)하지만,
    이는 실인즉 돈궤이니 이게 어찌 놀림의 대상이 되겠습니까?
    그들에겐 장궤(掌櫃)가 곧 성궤(聖櫃)와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음식점에 불이 나면 한국 주인은,
    전 재산을 털어 넣은 건물이,
    순식간에 홀라당 타고 남은 잿더미에 서서 우두망찰 갈 곳을 몰라 하지만,
    중국집 주인은 어차피 낡은 집 타버려도 크게 손해가 나지 않을 뿐더로,
    벌은 돈은 그대로 남아 있으니 차후를 도모하는데 큰 어려울 것이 없지요.

    헌데,
    정작 내 마음의 장궤(掌櫃)란 화두는 성성(惺惺)하니 챙기고나 있나?
    선사들은 애오라지 화두(話頭)에 엎어져 순사(殉死)하질 않았던가?
    항차, 까까머리 중놈도 저리 절절한데,
    나란 물건은 얼마나 게으른가?

    그러한데,
    기껏 저라는 물건은 이리,
    객설(客說) 만장(滿場)
    눈밭의 꿩 발자욱처럼,
    점점(點點) 마음밭을 흐리고 있으니 ...

    산에나 들어야겠습니다.
    적적성성(寂寂惺惺)한 그 마을 뜨락 안으로.

  4. 은유시인 2010.02.22 17:20 PERM. MOD/DEL REPLY

    저는 요즘 동화만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샘터사에 공모하려는 글들입니다.
    26일이 마감이라 몇 편은 더 쓸 것 같습니다.
    마감이란, 상금이란 목표가 있어서 잘 써집니다.
    목표없이 글을 쓰는 것보다 훨씬 글 쓰기가 낫더군요.
    그리고 200자 원고지 20매 분량이라 금방 쓸 수 있어 부담도 적습니다.
    그렇게 하루 한두 편씩의 동화를 써왔습니다.

    저는 그간 써놓은 글들로 곳간에 곡식을 그득 쌓아놓은 기분이 듭니다.
    얼마나 불출입니까?
    도대체 그렇게 글을 쌓아놓으면 그게 무슨 의미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거나
    유명 작가로 인정받아 교과서에 몇 개의 글이 실린다면 모를까...
    죽으면 저와 함께 묻혀버릴 글들을 왜 쌓아놓아야 하는가 의구심이 일 때가 많습니다.

    잘하는 짓일까요?

    사용자 bongta 2010.02.22 19:55 신고 PERM MOD/DEL

    저는 소싯적부터 쌓아 두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무엇이든 간에 자료란 자료는 제 손에 잡히면 일단 보관을 해두지요.
    원래는 제 성정이 그러한 편이었는데,
    이게 영 번거롭고 지나친 집착인 게라, 몇몇은 덜어내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사진과 책이 있는데, 이들은 많이 덜어내었습니다.
    어렸을 때 찍은 사진을 잘 보관해두었었는데,
    이젠 그게 어디에 처박혔는지도 모르겠고 관심도 없습니다.
    게다가 새로 찍는 것도 극력 꺼려 이젠 제 사진은 거의 없다 할 것입니다.
    책도 틈나는 대로 솎아서 내다버려 이젠 별로 남은 것도 없습니다.

    그러고 사는 데, 이젠 대신 하드디스크에 별별 자료들이 차고 넘치네요.
    바로 그저께도 1.5T 하나를 추가로 장만했습니다.
    이것들은 책장처럼 부피가 큰 것도 아니어서,
    자료축적 욕심이 제 아무리 커도 별로 저항이 없지요.
    그래서 무한질주하며 폭발하듯 늘어납니다.
    작년엔 관상 공부한다고,
    중국 측 자료를 엄청나게 모았습니다.

    살아 있는 한,
    제 아무리 버린다고 한들,
    다른 한편으론 또 늘어날 것입니다.
    여전히 새로운 과제와 의욕들이 생겨나는 한,
    제 주변에 자료는 필경은 또 늘어날 것입니다.

    언제나, 버린 것보다 들인 것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리 욕심 부리는 만큼 번뇌도 따라 늘어났을 것입니다.

    저는 어느 날 블로그도 폭파시켜버릴 작정을 하고 있습니다.
    진작부터 그러리라 작정하고 있었던 것인데,
    외려 점점 늘어나 세를 불리기 시작하더니,
    저것들이 외려 저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버리지 말라고 말입니다.

    게다가 애초에는 없던 새로운 조건, 환경이 만들어지니까,
    이런 인연 때문에 폭파도 점점 어려워지는군요.
    마치 늪처럼 그리 빨려 들어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아, 이 끈적끈적 해파리 같이 달겨드는 괴물들의 정체란 도대체 무엇인가?
    십중팔구 아마도 이것들은 미망(迷妄), 번뇌(煩惱)의 한 종류가 아닐까 싶습니다.

    스님들이 머리칼을 무명초(無明草)라 이르며 삭발을 하지요.
    역시나 우리 주변에 끈끈이주걱처럼 들러붙는 이런 자료, 정보란,
    어떠한 일의 사정(事情)을 밝히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만,
    우리가 종내 이 세상을 떠날 때,
    되돌아보며 그게 한낱 무명초(無明草)에 불과했다는 자탄(自嘆)에 빠져들는지도 모릅니다.

    지금부터 서서히 준비해가려 합니다.
    법정 스님은 책을 다 살라버리셨다고 하던데,
    역시나 책 곧 글은 분명 번뇌의 소산인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책을 통해 정신이 고양되고,
    글을 통해 배우고, 깨우치고, 교류하고 …….
    이러고들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하다면 정작 저것들 즉 번뇌야말로 지혜가 아닌가요?
    도대체 이게 무슨 야릇한 조화 속인지?

    어쨌건 저는 갈 때는 남김없이 버리고,
    아니 남길 것도 없음에 이르도록 준비한 후,
    세상을 등지려 합니다.
    혹여, 그 전까지는 때로는 남 보다 더 사납게 욕심을 부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게 버리기 위한 준비일 수도 있지요.
    그 사정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저 말고 나머지는 늘 타인이지요.
    그러한즉 역으로 타인의 속을 알려고 할 필요도 없지요.
    그를 진정 존중해준다면.

    오늘도 약수터에 보니 쓰레기를 버리고 간 흔적이 있더군요.
    항차 죽을 때에 이르러서도 모든 것을 남기지 않고 가려는 심산인 사람도 있는데,
    저들은 살아 있음에도 무슨 집착이 저리도 많기에 쓰레기를 버리고 있음입니까?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것은 곧 그 아닌 것을 남겨 지니겠다는 것에 다름이 아닙니다.

    자취를 남기되 쓰레기가 아닌 것을 남긴다면,
    이는 곧 자신의 것을 외부로 버리는 것이 아닐런지요?

    그러하다면 ‘왜 쌓아놓을까’ 하는 의구심을 해소하시려면,
    만인의 다투어 구하길 원하는 글을 써내놓으시면 자연 해결되지 않을까?
    문득 이런 건방진 생각이 떠오르네요.

    문(文)이 빛(光)으로 화하는 역사를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제가 보기에 선생님은 솔직하니 거침없이 세상을 걸어가시고 계시거니와,
    이런 태도를 가지시는 한 기필코 빛이 나는 문(文),
    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짜배기 문채(文彩)어린 글을 지어내실 것입니다.

    저는 그럴 재주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저 소요유(逍遙遊)나 하며 한 세상 살 주제인가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소요유 하나,
    진작 어느 곳에서 썼던 글귀를 토막 쳐 가져왔습니다.

    “어렸을 때, 기다란 유리 판 3개를 모아 삼각기둥을 만들고,
    한쪽 끝을 셀로판 종이 같은 것으로 막은 기구를 만들고 놀았지요.
    그 안에 색종이를 조그맣게 찢어 넣고 돌려주면
    멋진 기하학적 무늬가 나타납니다.

    이름하여 만화경(萬華鏡)이니,
    천만 꽃 거울이란 뜻이 아닙니까?
    어렸을 때, 이보다 더 환상적인 놀이가 있었겠습니까?
    한번 돌리면 이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자꾸 자꾸 취해 만화경을 돌리면,
    거기 초코렛 기둥, 과자 지붕으로 만든 동화의 나라라도
    까무룩 빠져들게 됩니다.”

    그런데, 형편이 이런 팔자 좋은 소리를 지껄일 정도인가?
    미치지 못한다면 그러하듯이 살고자 하는 것이지요.

  5. 은유시인 2010.02.23 21:00 PERM. MOD/DEL REPLY

    작년5월경 사무실을 정리하면서 수천권의 디자인칼라화보원서를 고물상에게 넘겼습니다.
    누굴 줄려해도 신경이 쓰여 그냥 15만원인가에 넘겼지요.
    아마 책값이 구입가격으로치면 수천만원대는 족히 넘을 겁니다.
    물론 책장이며 비품도 몽땅 누굴 줘버렸지요.
    책들 때문에 사무실을 꾸려올 수밖에 없었고,
    그로인해 불필요한 신경을 쓰고 비용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러길 아마 20년은 족히 지내온 듯 싶습니다.
    이사하면서 정리하고, 또 이사하면서 정리하기를....

    이젠 마음이 편합니다.

    그동안 써놓은 글들이 수천 편은 됩니다.
    웬만한 작가들보다 훨씬 많은 양입니다만,
    어느땐 참 부질없는 데 시간과 신경을 소모했구나 싶습니다.
    남들이 읽어주지 않는 글들이야말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싶군요.

    사용자 bongta 2010.02.24 00:10 신고 PERM MOD/DEL

    사실 블로그만 하여도 이게 원래는 개인 일기가 아닙니까?
    그러한데도 요즘 블로그는 사적비밀 기록으로서의 역할은 다 퇴색하고,
    공적 교류, 선전, 주장 따위의 공간으로 변하고 있지요.
    해서 블로그를 만들어놓고는 주인은 방문객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덕담으로 블로그 번창하라고 말하질 않나,
    손님을 꾀이려고 블로그 주인이 별 수단을 다 부리기도 하지요.

    이게 저는 현대인의 외로움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외부인을 제 마당으로 끌어들여 무엇인가 도모하려는 욕망이 있기도 하고,
    자기의 사상, 주장을 펴서 자존감을 확인하려 들기도 하지요.

    긍정적으로 보면 얼마든지 좋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발출된 글의 무게만큼 자기 책임을 가질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야,
    그리 글을 쓰시고 도전도 하시니 앞으로 좋은 기회가 있지 않겠습니까?

  6. 은유시인 2010.02.24 01:32 PERM. MOD/DEL REPLY

    오늘도 변변찮은 내용과 실력이지만,
    두 편의 동화를 눈 비벼가며 완성했습니다.
    근데 쓰다보니 자꾸 동심을 잃어버리고 풍자에 기울여지더라는 겁니다.
    이래선 안되는데 싶지만,
    요즘 초등학교 4학년만 되더라도 말귀를 다 알아듣더라고요.

    사용자 bongta 2010.02.24 11:48 신고 PERM MOD/DEL

    요즘 아이들은 정말 머리로는 다 자랐지요.
    풍자는 좋은 것인데,
    그게 자신의 줏대가 서 있지 않은 상태라면,
    그저 비꼼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지요.
    머리가 다 자랐다면 분별력의 기초가 갖춰졌다는 것인데,
    거기다 따스한 감정이 갖추어졌다면,
    이로써 건전한 한 사람의 인격이 만들어지겠지요.
    그렇다면 머리가 크는 것 뭐 별로 문제될 것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 같은 분이 그런 방면의 동화를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7. 은유시인 2010.02.25 16:41 PERM. MOD/DEL REPLY

    이달들어 모두 20편의 동화를 완성했습니다.
    본격적인 동화는 처음 써봤는데
    생각보다 제 취향에 맞는 것 같았습니다.
    글을 써나가면서 한편으론 신춘문예 당선작인 200여편의 동화를 읽어봤지요.

    원래 소설을 쓰다가 동화를 쓰면서 느낀 것은
    내용이 짧아 쓰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물론 동화를 우습게 여겨 드리는 얘기는 아닙니다.
    황순원의 '소나기'라든가, 알퐁스 도데의 '별'이라든가,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같은 명작은
    저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경지의 글입니다.

    글이라는 것이 유독 잘 써질 때가 있습니다.
    요즘은 하루 한두 편의 동화를 쓰고 있습니다만,
    늘 그렇게 쓸 수는 없습니다.
    도통 안 써질 때도 있거든요.
    수백 편의 글을 쓰다보면
    단 한 편이라도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이 나오리라 기대합니다.

    사용자 bongta 2010.02.27 08:30 신고 PERM MOD/DEL

    놀라운 필력이시군요.
    하기사 재주도 없으면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글을 짓는다면,
    십리도 못가서 다리에 병이 나겠지요.
    그저 슬슬 글이 되어 나와야 작가라 할 수 있지요.

    타고 나신 것 같습니다.

  8. 은유시인 2010.02.27 22:21 PERM. MOD/DEL REPLY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분명 타고난 재능이지요.
    그리고 그 어떤 기술이나 능력보다 더 우위라 봅니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선 그런 능력은 전혀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그로인해 얼마만큼 유명한가?
    얼마만큼 그로인해 돈을 버는가?]

    전 글을 쓰는 작가로서 유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돈도 전혀 벌지 못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전국적으로는 자신없습니다만,
    최소 사하구에서는 제일 글을 잘 쓴다 확신합니다.
    사하구 인구가 40만명입니다.
    그리고 부산권에서도 심판관 앞에서 글쓰기 경주를 하자면 뒤지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나다니는 개나소나 저를 비웃습니다.
    그래서 결심한 겁니다.
    아주 유아틱하고 유치찬란한 짓거리인줄 압니다만,
    올해중에 문학관련 전국적인 상을 30개 이상 따자!
    내년 1월 전국 신문사 신춘문예에 동시에 10개의 상을 따자!
    이게 제 계획입니다.
    아마 그 정도면 기네스북에 충분히 오르리라 봅니다.
    어느 기성작가든 문학상 열 개 이상 탄 사람 못봤고,
    신춘문예에 동시에 세 개 이상 당선된 작가를 못봤기 때문입니다.

    물론 계획입니다만,
    가능성이 전혀 없어보이지 않습니다.

    사용자 bongta 2010.03.01 10:11 신고 PERM MOD/DEL

    “그런데 우리사회에선 그런 능력은 전혀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그로인해 얼마만큼 유명한가?
    얼마만큼 그로인해 돈을 버는가?”

    이리 말씀해주셨는데요,
    그런데 이런 사회를 비판하시면서,
    용케도 그런 세상의 힘을 빌리실 생각을 하고 계시군요.

    불을 불로써 끌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 혹 몸을 다친다면,
    혹여 일시 불길을 잠재울 수는 있지만,
    잠깐새 다시 불길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습니다.

    만약 선생님의 시도가 성공을 했다고 하여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을 터이니,
    이것은 아주 불행한 노릇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령 선생님을 따르는 후배도 역시 이를 갈며,
    그 길을 따라야 할 터인데 이때는,
    선생과 그 후배가 서로 적대자로서 마주쳐,
    상대를 경계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씀하신 취지, 울분, 안타까움을 저 역시 모르는 바가 아니나,
    혹시 저들이 유명하게 된 것 중에는,
    상을 많이 타서, 또는 돈을 잘 벌어서가 아니라,
    글을 잘 써서 상을 많이 타게 되고,
    돈도 덩달아 잘 벌게 된 경우도 있지 않을까요?

    선후와 인과(因果)가 뒤집힌 사회는 누구에게나 불편하고 힘듭니다.
    그렇다고 하여도 그를 인정하고 거기 뛰어들게 되면,
    세상은 더욱 힘들어지겠지요.

    앞에서 말씀 드린 서정주도,
    시비(是非)와 인과가 뒤집힌 세상을 '대세'라고 생각하며 살아갔지요.

    (※ 저는 누군가 대운하사업을 '대세'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한 것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제법 오래 전 일인데도 이 말이 화두처럼 떠오르곤 합니다.
    그의 속 뜻을 뻔히 알고는 있지만,
    이를 태연히 말하고 있는 그 때 그의 마음 자리를 가만히 쳐다보며,
    세상의 구조를 생각해보는 것이지요.
    서정주 역시 그런 세상의 구조에 대해 생각하도록 저를 이끕니다.)

    제 민족을 수단으로 삼아 한세상 호의호식하다가,
    나중 새 세상이 오자 그는 다만 말했습니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

    그의 바람은 수상쩍고 괴이하기 짝이 없습니다.
    정작, 그의 시를 믿고 바람을 가르며 비행기를 몰고 미국 배에 공중재비를 하며
    꽃처럼 떨어진 송정오장(松井伍長)의 넋은,
    지금 어디, 어느 바람 따라 흐르고 있습니까?

    죽고 없는 서정주가 과연 이 물음에 답할 수 있을까요?
    다시 나타나서도 그는 바람 타령을 할까요?

    부처는 이를 일러 무명(無明)이라고 하였으며,
    그런 세상을 고해(苦海)라고 하였지요.

    여기 제가 사는 곳에 물 묻은 손에 깨알 붙듯 사찰들이 골골마다 즐비합니다.
    제가 몇몇 주지하고는 안면을 트고 거래를 하고,
    그 외는 멀찌감치나마 저들 살림살이 내막을 얼추 짐작하고 있습지요.
    그런데 저들이야말로 무명(無明)의 당체(當體)이며,
    고해(苦海)에서 질척거리며 삶을 농탕질 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에 들 때가 적지 않습니다.

    물론 개중엔 제가 존경하는 스님도 계시지만,
    정작은 고해 속에서 속인들보다 더욱 곡진하니 삶을 아파하고 있는 게 저들 아닌가,
    이리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한 때는 정각(正覺)을 이루겠노라고 검은 머리 잘라 푸르디푸른 구도(求道)의 길로
    뛰어들었을 저들이야말로 우리 속인들이 꼭 껴안아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감히 주제넘은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날, 잿빛 승복이 외롭게 보일 때,
    저는 저들이 속인들의 아픔을 대신 감당하느라 저리 애를 쓰는 게 아닌가?
    아니 우리네 속인들보다 더욱 여리고 가여운 중생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특히 시주(施主) 모시기 위해,
    속인들 보다 더 동분서주 바쁜 저들을 보자하면,
    어떤 때는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하기사 저들이 보기엔 못난 제가 더 가엽게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러하니 삶이란 아스라하니 모두에게 아픈 '거울'이 아닌가 싶습니다.

  9. 은유시인 2010.03.01 16:41 PERM. MOD/DEL REPLY

    지극히 유치찬란한 제 댓글을 흉보시지 않고 타이르시는데 감사드립니다.
    솔직히 신춘문예 당선 어렵습니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지요.
    다시말씀드려 빽이 없으면 신춘문예 당선 어렵습니다.
    글을 잘 써서 당선되기 어렵다는 겁니다.
    현재까지 단 한번도 신춘문예에 응모해보지 않은 제가 제 작품을 근거로 어찌 투정하겠습니까?
    2005년 7월경 월간 노벨문학을 발행하면서 신춘문예 역대당선작품에 대해 분석해보았습니다.
    당선자들 대부분이 문예창작과 출신이고, 심사위원 역시 문예창작과 교수였습니다.
    당시 대한민국국전 대상작을 3천만원에 샀더란 언론의 보도가 무성했을 때입니다.
    그즈음에 부산시 사진대상작도 상금 5백만원을 포기함과 동시에 웃돈 3백만원을 얹어 주고 탔다는 후배도 있었습니다. 저희 신문에도 크게 보도해주었습니다.
    하물며 신춘문예엔 나이도 영향을 많이 미칩니다.
    이왕이면 젊은 작가에게 상을 주려하지요.

    "유명=돈"으로 볼 때
    글을 잘 써서 상을 타게 되고 그로인해 유명해진다는 선생님의 말씀 공감합니다만,'
    현실은 반대입니다.
    단지 글만 잘 써서 유명해지긴 어렵다는 겁니다.
    어찌됐든 상을 많이 타서 그로인해 유명해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사용자 bongta 2010.03.02 21:08 신고 PERM MOD/DEL

    우리가 ‘조중동’이라며 한데 묶어 저들을 치지도외(置之度外)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그 대척점에 흔히 통칭 진보매체라는 것들이 있지요.

    그런데 이들 중 어떤 언론기관이 돈을 받고,
    “oo대상”, “oo우수회원”, “oo모범농가” “ooTV방송 출연”
    따위의 딱지를 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저이들이 쓴 것 중에,
    [조중동은 부동산 폭등을 방조할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저들이 부동산업자들 광고를 많이 받고 있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이 식으면 타격이 와서 곤란하다.
    그런즉 저들 조중동은 아파트 가격이 안정되고 있는데도,
    외려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따위로 작문을 쓰고 있다]는 투의 기사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들 진보매체 중에 일부이겠지만,
    한 유명 언론사가 거죽으로는 의젓하니 폼을 잡고는,
    뒷전에서는 이름을 팔고 있는 것을 제게 들켰습니다.

    저들이 내준 상패를 제가 읽어보았는데,
    이게 문법도 어긋나고 말이 뒤죽박죽이었습니다.
    어차피 대상을 주기 위한 것일 뿐,
    상대를 제대로 평가한 것도 아니니,
    그저 대충 때우듯 꾸며 새긴 것이 역력하더군요.

    명색이 언론기관인데 이리 文을 시궁창에 내던져버릴 수 있음인가?
    이는 文이란 곧 문심(文心)으로부터 길어 올려져,
    글로 표상(表象)되는 것인즉,
    文이 直하고 正하지 않다면,
    바로 心이 삐뚜르고 바르지 못함을 징표(徵標)합니다.
    그러한즉 제 이름을 팔아 호구책을 마련하고 있는 저들 신문사들은
    가히 바른 언론이라 할 수 없지요.

    기백만 원을 받고 상패 하나와, 상장(賞狀) 따위를 주었던 것인데,
    돈 치루고 사놓은 기업 입장에서는 이게 제법 제 몸값을 해내고 있더란 말입니다.
    떡하니 그 상패를 자신의 사무실에다 걸어놓고는,
    오가는 손님들 눈을 호리고,
    홈페이지 이마빡에다가도 껌딱지 붙이듯 엠블럼을 떡하니 박아놓으니,
    멋모르는 사람들은 그게 진짜배기인줄 알고 속아 넘어가지요.

    저게 따지고 보면 바로 조중동 수법이라면 수법인데,
    싸우다가 닮아간다고 저들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작태지요.
    아니 실인즉 거죽과는 다르게 내심으로는 원래부터,
    저들도 동취(銅臭)를 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백주대낮엔 의젓하니 도포자락 젖히며 천하대사를 논하고,
    헛기침 소리도 요란하니 조중동의 비리를 논단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야밤엔 몰래 과부 호리러 다니느라 물레방앗간 출입이 저리도 잦았던 것이지요.

    저들이 이로 인해 그저 돈만 버는 것이면 참아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것을 믿고 상까지 받은 업체라고 소비자들이 물건을 구매하게 된다면,
    이는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입니까?
    그들은 최소 두 가지 죄를 지은 것이지요.

    첫째는 저들 이름을 신뢰한 소비자들을 속이는 것이요.
    둘째는 저로 인해 다른 정상적인 경쟁 업체를 자유로운 시장으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이지요.

    백주대낮엔 넥타이 매고 출퇴근하며 정의로운 군자 행각을 해대고는,
    야밤엔 백바지 입고 계집 후리는 일에 열심이라면,
    저들이 어찌 진보매체임을 자처할 수 있음이며,
    정의의 필봉을 휘두르는 언론이라고 할 수 있음이겠습니까?

    저는 그 이후,
    저 신문사를 북마크 맨 하단으로 내려놓았습니다.
    요 조그마한 몸짓을 통해서 저는 저항합니다.
    지금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이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 일을 모든 사람이 알고,
    저마다 이런 식으로 저자들을 백안시 한다며 효과가 좀 나겠지요?
    이게 무망(無望)한 노릇일까요?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롱가리트사탕, 낙동강 페놀 방류사건, 라면 우지파동(무혐의) 따위가 벌어져도,
    그 때만 잠시 출렁일 뿐 기업체는 불사신처럼 되살아나는 한국 현실입니다.
    저 정도라면 그냥 앉은 자리에서 기업체가 빠지직 소리를 내며 공중분해되어야 합니다.
    죄값을 제대로 치뤄야지요.
    그래야 다음번에 유사한 사건이 생기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 때 뿐, 소비자들은 다시 그 기업체 물건을 구매합니다.
    역시나 우리네 습속으로는 무망(無望)한 기대지요.

    하지만,
    현실이 그러하다고 그 길을 좇느냐 않느냐 하는 것은,
    역시 각 개인의 숙제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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