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독영경(獨影境)

소요유/묵은 글 : 2010. 2. 15. 19:26


※ 어제 댓글 중 독영경이란 말이 나왔다.
    해서 예전 글 하나를 이리 덧새긴다.

유식철학은 불교의 한 분파다.

유식(唯識)은 얼핏 대단히 번쇄한 이론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음이란 게 본시 그러한즉,
백척간두 진일보, 비장한 각오로 마음자리 살펴보겠다는 학문이니
그러하지 않을 수도 없겠단 생각이 든다.
알고 보면 유식처럼 심오, 정치(精致)한 학문도 없다.
프로이트, 융의 무의식론은 발치에도 못 쫓아온다.
실제 융의 집단 무의식이라는 게, 이 유식학(아뢰야식)에서 힌트를 얻은 바 크다.

분신자살 비보를 듣고는 얼핏 독영경이란 말이 떠올랐다.
독영경이란 삼류경의 하나로서, 우리들이 보고 있는 세상을 3개로 나누어 설한 것 중 하나다.

독영(獨影)이란, 세상이 "주관이 마음대로 그려낸 망상", 이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주관의 환상.
그런 것은 있지도 않은 것이매, 홀로 마음대로 그려낸 그림자.

공화(空華)란 무엇인가?
눈병의 일종으로 눈에 꽃 모양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말한다.
그런 꽃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사람에게는 그 꽃이 실제로 있는 것과 같아 보인다.
야밤에 산에 가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에도 흠칫 놀란다.
귀신도 아니면서 귀신이 돼서 사람을 놀래킨다.

사랑하는 이.
진정 사랑하는 그 당체를 좋아하는가?
그 대상에게 마음속으로 그리는 이상형이 형이상(形而上) 덧씌워져 형성되는 이.미.지를 사랑하는 게 아닌가?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이건만, 결혼해서 2년 반도 되지 않아 사랑은 시들고 만다.
사랑의 묘약, 유효기간은 2년 반이란 보고도 있다.

자기의 주관, 사랑, 원망(願望)을 투영하면서 그 그림자를 절대화한 세상.
그를 일러 유식은 독영경(獨影境)이라 한다.

우리는 기실 이 독영경이란 늪을 건너고 있음이라,
삶이란 독영경이란 아득하니 멀고 검푸르게 깊은 호수를 일엽편주로 건너가는 것.
위대한 마음은 그 늪을 건너되,
인간성의 비상(飛翔)을 통해 미(美)를 창조한다.
이게 예술이다.
독영이되, 그 독영 속에 어린아이처럼 소꿉장난하며
창조적 자기표현, 곧 예술로 승화시킨다.

황은 독영경 내에 홀연히 나비인 양 나타나,
독충으로 우화(羽化) 아닌 충화(蟲化)한 망상체에 불과한 것.
그가 불교도라 하던데,
과업(過業)만으로,
명실 무간, 화탕지옥인들 어찌 감당할손가 ?

독충에 물려 스스로 산화한 저 중생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
망상 중에 망상이요,
환(幻) 중에 환(幻)이라.
그 마야(Maya) 환술에 갇혀 파득이다,
맥을 끊은 가여운 중생이라니 !

과시 중생들은 고해(苦海)에 갇혀 허우적거리고 있음이니,
그 여리고, 여림이요,
가엾고, 가여움이란,
애닯기 그지 없어라.

'소요유 > 묵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영경(獨影境)  (6) 2010.02.15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과 군자표변(君子豹變)  (4) 2009.12.31
세검(洗劍)과 만두(饅頭)  (0) 2009.07.22
문조(問弔)  (2) 2009.01.20
선생님과 님  (0) 2009.01.01
멱라수(汨羅水)에 잠긴 달 그림자  (0) 2008.12.17
아름품과 꽃바다(華嚴)  (4) 2008.12.12
Bongta LicenseBongta Stock License bottomtop
이 저작물은 봉타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3.0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행위에 제한을 받습니다.
  1. 은유시인 2010.02.16 17:44 PERM. MOD/DEL REPLY

    선생님 말씀처럼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쫓는 것이 부질없는 세속의 영화겠지요.
    허깨비같은 삶....
    아무리 많이 가져도 도무지 충족되지 않는 것이 세속의 영화라면
    그 영화만을 쫓다가 아까운 시절 다 보내고 마는....

    전 50이 넘어서야 그런 것들이 부질없음을 깨달았으니
    그래도 축복받은 인생이라 자위합니다.
    몇 번 되새겨 읽어도 감흥을 일깨워주는 글....
    잘 읽고 갑니다.

    사용자 bongta 2010.02.17 16:00 신고 PERM MOD/DEL

    제가 소싯적에 직장이 인사동 근처에 있었습니다.
    거기 저쪽 비원 정문 건너 알타이 하우스란 중국서적 전문책방이 있었지요.
    간절히 원하던 조주선사어록이라고 절판이 된 책을,
    구하려다가 누군가 일러준 대로 이곳을 방문했지요.
    지금이야 재주를 부리면 얼마든지 넷을 타고 구할 수 있지만,
    당시는 활자매체를 통하지 않고는 무엇이 간에 얻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당랑거철 감히 원문이라도 구하려고 대들었습니다.
    서점 주인은 4冊짜리 옹정어선어록(雍正御選語錄)을 권했습니다.
    다행이 조주어록은 여기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실력으로는 감히 이게 해석이 아니 되는 것이었습니다.
    한자야 얼추 짚어가며 쫓아갈 수 있지만, 한문은 또 다른 영역이었지요.

    그래서, 동대문운동장 근처에 즐비한 한적(漢籍), 한의(韓醫) 가게를 찾아 들었습니다.
    당시 제가 한의학을 취미 삼아 배우고 있던지라,
    무시로 드나들던 몇몇 서점 주인하고는 친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알타이 하우스에서 구한 책의 복사본을 맡기면서 사례는 얼마든지 할 터이니,
    이를 가르칠 선생님을 구해 주십시오 하고 청을 넣었습니다.
    얼마 후, 그 서점 주인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한문 선생 몇을 접촉하였는데,
    그 책은 불교관련 책이라 전문용어 해득이 어려워 도저히 곤란하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직접 해결하자.
    이리 뜻을 세우고 우선 한문 문법책을 사들였습니다.
    그 때 산 책이 한문대강(漢文大綱)이란 책 등속입니다.
    다른 책들은 다 방출했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이 책들만큼은 간직하고 있지요.
    마치 책갈피에 끼어 아직도 아련한 추억을 되일으키고 있는
    빛바랜 압엽(押葉)의 애상(哀傷)같은 것이지요.

    하여간, 저는 틈이 나는 대로 이 책을 끼고 독학으로 공부를 했지요.
    그런 틈틈이 조주선사어록을 뒤적이며 번역을 해 가는데,
    이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더란 말입니다.
    직장 생활하랴, 이것 공부하랴 이게 제 능력으로는 해결이 도시 난망이더군요.
    그리 그리 시간은 흐르는데 마침 조주선사어록이 나중에 몇 해 있다가,
    재간(再刊)이 되었습니다.
    그런 통에 영 진도도 나가지 않던 공부는 자연 소홀히 하게 되었지요.

    그 당시, 알타이 서점 주인은,
    인문학도도 아닌 어수룩하니 객쩍은 물건이 나타난 게 신기한지,
    주저리주저리 말씀을 풀어내는데,
    바로 유식학(唯識學)을 들면서,
    이게 달나라에 로켓 싸 올리는 것보다 더 위대한 학문이라고 이릅니다.
    그날 이후로 제가 관련 서적을 조금씩 보게 되었던 바,
    오늘 어줍지 않게 독영경을 되새겨내었던 소이연은,
    실로 그 푸르디푸른 그 날의 인연에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실인즉 관견(管見)인즉, 실로 대나무대롱 끝으로 겨우 쳐다본 실력에 불과한 주제에,
    독영경을 이리 허술히나마 기억해내고 있는,
    그리고 인생의 가을 계절쯤을 막 지나고 있는 오늘의 저는 또한
    가지 끝에 달린 마지막 감처럼 어찌나 처연한 것이온지 모르겠군요.

    독영,
    제 그림자에 젖어,
    감히 빛을 꼬나 겨누고 있는 인생들이라니,
    이게 얼마나 가엽고도 측은합니까?

    그러하니 사람들 하나하나 모두 보듬고 아끼며 살아야 하는데,
    엊저녁만 하여도 술에 취해 몇몇을 씹고, 질타하고, 비웃고 살았음이니,
    실로 저야말로 한참 가엽다고 일러야 하겠습니다.

  2. 은유시인 2010.02.17 18:47 PERM. MOD/DEL REPLY

    전, 오늘 12명이 고발한 사건 2차 조서를 꾸미고 왔습니다.
    담당수사관이 전체 사건을 분석해보니 별 문제될게 없다며 위로해 주더라고요.
    그러면서 제 밑에 일한 적 있던 경쟁신문사 발행인이 들쑤신게 맞다고 시인하데요.
    누구든 적대감을 갖고 덤벼들면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부처님이라도 그럴겁니다.

    선생님 성향도 저랑 아주 비슷해보입니다.
    제 느낌으론 말이지요.
    세상엔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이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집에 가면 자상한 어버이요, 가장일텐데....
    왜 그리 살까요?
    어쩌면 그들도 비슷한 경우를 많이 당해봐서 억하심정으로 그럴까요?
    고소건이 해결되면 조용히 글만 쓰며 살렵니다.
    행복한 순간들을 악귀같은 인간들 때문에 낭비할 수는 없습니다.

    사용자 bongta 2010.02.17 23:15 신고 PERM MOD/DEL

    무릇 사람들의 악한 바에는 드러나는 것과 드러나지 않는 것이 있다.
    드러나지 않는 악은 사람을 해치고,
    드러난 악은 사람을 죽인다.
    사람을 죽이는 악은 작고,
    사람을 해치는 악은 크다.
    그러한즉,
    연회 놀이 가운데 짐독(鴆毒)이 있고,
    담소하는 가운데 창과 방패가 숨겨져 있으며,
    방안에도 호랑이와 표범이 있으며,
    길거리엔 오랑캐 놈들이 있음이다.
    자기가 스스로 악의 싹이 트기도 전에 자르는 성현이 아닌 바에야,
    예의와 법도로써 미리 막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 해됨이 얼마나 크겠는가?

    凡人所爲之惡。有有形者有無形者。無形之惡害人者也。有形之惡殺人者也。殺人之惡小。害人之惡大。所以遊宴中有鴆毒。談笑中有戈矛。堂奧中有虎豹。鄰巷中有戎狄。自非聖賢絕之於未萌。防之於禮法。則其爲害也。不亦甚乎。
    (禪林寶訓)

    방안에도 호랑이와 표범이 있다하니,
    이 얼마나 놀라운 표현입니까?
    도도처처 주변에 도적, 사기꾼이 널려 있습니다.

    그런데 실은 더더욱 놀라운 것은,
    제 몸 안에 지닌 삼독(三毒) 곧 탐진치(貪瞋痴)를 지닌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실인즉 제가 성내고 골내는 독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어찌 해야 할는지?

    일모도원(日暮途遠)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먼데,
    번뇌만 무성하군요.

    “집에 가면 자상한 어버이요, 가장일텐데....”

    이 말씀 그대로 그러할진대,
    제가 늘 다니는 약수터를 보면,
    물이 떨어지는 바로 밑에 오물을 버리는 인간들이 꼭 나타납니다.

    “집에 가면 지아비요, 지어미일 터인데,
    밥상머리에 앉아 제 자식들 거느릴 염치가 있을런가?”

    이들 악행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불편을 겪고,
    저는 또 삼독을 일으키니,
    참으로 한 사람의 악은 면면 폐를 흩뿌리는 고약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덕분에 저의 심질(心疾)을 고치는 약이 되니,
    이 또한 세상 사는 묘한 이치인가 싶습니다.

  3. 은유시인 2010.02.18 01:10 PERM. MOD/DEL REPLY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거짓말이란 주제로 동화 한 편을 썼습니다.
    글세요~!
    제 주변에는 거짓말만 늘어놓는 사람들만 모이는가 봅니다.
    얼마든지 선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거짓말을 안하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말입니다.

    오늘 쓴 동화 한 편 올립니다.
    제가 느낀 바대로 쓴 글입니다.

    ***************

    [동화]

    거짓말탐지기



    “혹시 이 소문 들어보셨는지요? 저쪽 맛나라만두집의 만두에서 꿈틀거리는 구더기가 나왔다는데요.”
    대왕만두집 주인 박 씨는 동네 아줌마들을 상대로 경쟁관계인 맛나라만두집을 비방하는 거짓말을 흘리고 다녔다. 뜨거운 증기로 푹 쪄서 익힌 만두에 꿈틀거리는 구더기가 나올 리 없건마는 듣는 이들은 별다른 생각 없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눈치였다.
    “맞아, 맞아. 나도 그 집에서 산 만두를 먹다가 뭔가 꿈틀대는 게 있어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바퀴벌레의 남은 반쪽 몸뚱이였어. 어찌나 징그럽던지 토하고 난리 났었지.”
    어떤 아줌마는 한 수 더 떠서 더욱 그럴듯한 거짓말로 박 씨의 거짓말에 맞장구까지 쳤다.

    부도위기를 겪고 있던 중견사업가 최 씨는 동창회 모임에 갔다가 때마침 큰돈을 벌었다며 동창들에게 자랑을 늘어놓던 친구와 대면했다. 친구는 석 달 전에 최 씨로부터 돈을 빌려가곤 아예 떼먹기로 작정한 사람이었다.
    “이보게. 자네가 3일후면 꼭 갚을 수 있다며, 내게서 빌려간 3천만 원 도대체 언제 돌려줄 건가? 차일피일 미루어온 게 벌써 석 달이 지났잖은가?”
    “이 친구 참 딱하군 그래. 내가 언제 자네 돈을 빌렸다고 그런 거짓말을 늘어놓나?”
    “아니, 이젠 아예 돈을 떼먹겠다고 작정했군. 정말 내 돈 안 빌려갔다고 잡아뗄 건가?” “아…… 생각났다. 맞아, 내가 돈을 빌렸지. 3일후엔 꼭 되돌려주겠네. 이자까지 듬뿍 쳐서…….”
    원래 거짓말쟁이일수록 약속은 시원스레 하는 법이다.

    거짓말이란 처음엔 몇몇 악동들이 제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웃어른들의 처벌을 모면하려는 기회주의적인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일부 못난 어른들이 처세의 수단으로, 치부의 수단으로 남발해왔다. 그러던 것이 어느새 우리사회에 유행병처럼 번져가더니 이젠 국민들 사이에 거짓말이 일종의 유머라도 되는 듯, 사교계의 에티켓이라도 되는 듯 널리 자리 잡게 되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만난 순간부터 거짓말로 시작하여 헤어질 때까지 거짓말을 나누었다. 아이들은 대개 자기 집에 돈이 많다든가 자신의 아빠가 대단한 직위에 있다는 거짓말을 나누었다.
    “우리아빤 매일 퇴근하여 집에 올 때마다 승용차 트렁크에 돈다발을 그득 싣고 온다.”
    “우리아빤 돈을 너무 많이 벌어서 집에 갖고 오기 힘들대. 그래서 매일매일 일억도 넘는 돈을 가난한 사람들한테 그냥 나눠준대.”
    “우리아빤 대통령보다도 더 높은 사람이야.”
    “그래? 우리아빤 하나님이라 하던데…….”
    어른 또한 아이들 못잖게 거짓말에 능숙했다. 어른들의 거짓말은 대개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과대 포장하는 내용이었다.
    “어제는 대통령과 점심 먹었는데, 오늘 점심은 누구와 먹을까?”
    “은행에서 아무조건 없이 30억 갖다 쓰라했는데, 내가 돈 쓸 일이 어디 있겠나? 그래서 거절했지.”
    사람들은 일상에서의 대화 속에 이 따위의 말도 되지 않는 거짓말을 스스럼없이 내뱉었고, 또 거짓인줄 뻔히 알면서도 뭐라 따지려드는 사람들도 없었다.

    나라의 최고 어른인 대통령도 예사로이 거짓말을 지껄였고, 이제 겨우 말을 배우려드는 어린아이까지 거짓말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모든 국민이 그 모양이니 국가에서 거짓말쟁이들을 위해 해마다 4월1일을 만우절로 정해 단 하루만 거짓말을 허용했던 것이, 이젠 1년365일 모두 만우절로 둔갑을 해버린 상황이 되었다.
    거짓말이라 하여 무조건 다 나쁘다는 건 아니다. 선의의 거짓말도 있으니 남의 마음을 즐겁거나 행복하게 해주려는 거짓말도 있고, 병상의 환자에게 희망을 주려는 거짓말, 어떤 일을 긍정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거짓말 등은 좋은 거짓말이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거짓말 자체가 남을 속이려드는 기만행위이다 보니 남의 금품을 갈취하려는 욕심에서, 또는 자신의 입지를 위해 남을 모함에 빠뜨리기 위해 악의적인 거짓말이 더욱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국민들 간에 신용이나 믿음이 사라진지 오래였고, 그로인한 폐해가 말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그러한 상황을 바로 잡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누가 더 그럴듯한 거짓말을 잘하는지를 겨루는 거짓말대회가 전국적으로 독버섯처럼 생겨났고, 모든 국가시험에도 거짓말 겨루기 항목이 포함될 지경이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 5천년 역사를 지닌 단일민족이 거짓말로써 서로를 불신하다 보면, 결국 나라꼴이 뭐가 되겠나. 세계 1등 거짓말국가밖엔 더 되겠나.’
    생명공학을 전공해온 김의영 박사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김 박사는 전자공학을 전공해온 절친한 친구 조영철 박사를 만나 사태의 심각성을 얘기했다.
    “하도 거짓말만 지껄이는 풍조라 이젠 거짓말을 안 하는 사람이 병신으로 놀림당할 판이다. 이래가지고 이 나라가 앞으로 어찌 되겠나?”
    “그러게……. 세상이 뒤죽박죽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아.”
    “얼마 전엔 정부에서 국제적 행사를 유치해 놓고 빵꾸까지 내지 않던가. ‘이런 무례한 법이 어디 있느냐’라며 항의하던 미국대표에게 담당국장 얘기가 뭐? ‘거짓말인 줄 몰랐냐’라고 그러더래. 기가 막히잖아.”
    “이미 만연해있는 거짓말버릇을 어찌 고치겠나. 누구 말을 듣는 국민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대로 놔둘 수는 없잖은가. 우리가 힘을 합쳐 거짓말탐지기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나?”
    “이미 여러 종류의 거짓말탐지기가 나와 있잖아. 사용을 잘 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건 기존 거짓말탐지기의 정확도가 떨어져서 그래. 거짓말을 잔뜩 늘어놓고도 그를 탐지한 거짓말탐지기가 오히려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불신하려드는데 어찌하겠나. 그래서 우리가 정확도 100%인 거짓말탐지기를 발명하자는 얘기지.”

    김 박사와 조 박사는 2년여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정확도가 100%인 거짓말탐지기 ‘휴먼브레인이미지리사이클링시스템(Human Brain Image Recycling System : 약칭 HBIRS)’을 발명하는데 성공을 했다. 인간의 생각을 읽는 혁신적인 시스템으로 생명공학과 전자공학이 어우러진 산물이었다.
    HBIRS는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푹신한 의자와 등받이 위로 오토바이 헬멧처럼 머리에 덮어쓰게 되어있는 브레인 캡, 그리고 캡의 회로에 연결되어있는 멀티플레이어로 구성되어 있다.
    HBIRS기술의 핵심은 브레인 캡이다. 캡은 인공두뇌와 초감각센서, 음영상재생센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공두뇌엔 인간두뇌의 뉴런과 똑같은 기능을 하는 2천억 개의 마이크로세서뉴런이 내장된 칩이 사용되어 인간두뇌의 피질에 분포되어있는 뉴런수를 훨씬 능가했다.
    그리고 초감각센서는 인간두뇌의 뉴런에서 방사되는 극히 미세한 뇌파조차 감지할 수 있게 고안된 센서로 그렇게 감지된 센서를 인공두뇌의 마이크로세서뉴런으로 보내어 재생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이다.
    그리고 음영상재생센서는 마이크로세서뉴런에 재생된 음과 영상을 멀티플레이어로 표현할 수 있게 신호로 보내는 장치이다.
    이로써 그 누구든지 HBIRS를 이용하면 그가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는 영상이나 생각 따위를 숨길 수가 없다.
    거짓으로 꾸며서 얘기하기란 실제의 상황을 떠올리며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보다 몇 곱절 더 어렵기 마련이다. 거짓말이란 실제의 상황을 뒤집어엎고 거짓된 상황을 머릿속에서 그럴듯하게 재창조해야 하는 만큼 에너지가 더 소비되는 것이다. HBIRS를 이용하면 그런 과정이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거짓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HBIRS는 상용화단계부터 난항을 겪게 되었다. HBIRS 때문에 정치를 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정치인들이 늘어갔고, 또 사업을 못하게 될 것이라는 사업가도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사회 각처에서도 일을 못하게 될 것이라는 불만의 소리가 높아갔다. 뿐만 아니라 HBIRS의 실효성에 이의제기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갔다.
    “HBIRS를 어떻게 믿으라고요? HBIRS조차 거짓말하고 있는지 어찌 압니까?”
    마침내 거짓말을 족집게처럼 밝혀내는 HBIRS조차 믿을 수 없노라는 여론이 비등해졌다. 결국 HBIRS의 상용화에 대한 대대적인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찬성표는 불과 4%에도 못 미치고,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사용해선 안 된다는 반대표를 던졌다. 반대이유란,
    “솔직히 말해서, 거짓말을 못한다면 무슨 재미로 살겠냐?”
    따라서 HBIRS는 등장 7개월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고, 국민들은 마음 놓고 거짓말을 다시 주절거리게 되었다.


    - 끝 -

    (200자 원고지 22매 분량)

    사용자 bongta 2010.02.18 23:24 신고 PERM MOD/DEL

    거짓말을 주제로 동화 한편을 지어주셨으니,
    아시고 계시겠지만,
    거짓말의 종류에 대하여 잠깐 생각해보렵니다.

    신구의(身口意)로 짓는 삼업(三業)이 있지요.
    신구의(身口意) 몸뚱이, 입, 의지(意志) 각각에 대해,
    이를 (악)업을 짓는 창구로 보는 것이니 뒷덜미가 선듯해지는 말씀입니다.

    신삼구사의삼(身三口四意三),
    이리 각기 업의 종류가 배대되어 있습니다만,
    구사(口四)만 살피자면 이에는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이 있습니다.

    말로 짓는 악업들인데,
    망어(妄語)는 허망한 말,
    기어(綺語)는 화려한 말,
    악구(惡口)는 욕설 따위의 험한 말,
    양설(兩舌)은 두 혓바닥이니 곧 일구이언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삼업(三業)은
    선업(善業) 또는 악업(惡業) 둘 중에 하나 일 터인데,
    신구의(身口意)로 짓는 것은 보통은 악업(惡業)으로 보지요.
    따라서 신삼구사의삼(身三口四意三)은 도합 10가지 악업이 되는 셈인데,
    살아 있는 사람은 모두 신구의를 가지고 있은즉,
    이쯤 되면 살아 있음이 곧 악을 짓는 근본이 되고 있다 할 것입니다.

    글을 짓는 사람에겐,
    특히나 구업(口業)을 조심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입조심을 글조심으로 바꾸어 보면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그대로 적용됩니다.
    예컨대 기어(綺語) 아니 기문(綺文)을 지어 잔뜩 허사를 늘어놓으며,
    공허한 글들을 허공중에 흩뿌리지나 않은 것인지 사뭇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입 밖으로 내놓은 말은,
    그 소리의 정혼(精魂)이,
    우주 끝까지 흘러흘러 나아갑니다.
    끝없이 진동(振動)하며 억겁 영원 속으로 잠영(潛泳)합니다.
    실제 소리 파동의 dissipation이 영화(零化)되는
    그 무한소의 끝을 그 누가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즉 입으로 지어낸 말씀이란,
    그 책임을 우주만한 무게로 영속토로 자신이 짊어져야 합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하기에 묵언(黙言)은 차라리 기어(綺語)보다 백천만배는 죗값이 가볍지요.

    제가 어디선가 적어놓은 글을 다시 지피어 올려봅니다.

    ///

    옴마니반메훔.

    소리가 옴에서 훔까지 진동하며 시방삼세를 건넙니다.
    소리, 진언(眞言), 만트라
    그 알파요 오메가 곧 옴이요 훔입니다.
    한 조각의 소리일지라도,
    입에서 내뱉어지면, 이내 얼음 지치듯 영원을 향해 가없이 나아갑니다.
    저녁 종소리가 우주를 가로질러 가여운 중생을 구하는 이치가 이러합니다.
    옛날 제 선생님한테 배운 귀한 말씀입니다.
    소리 하나 허투루 내지 말라는 가르침이지요.
    글이라고 한들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러하니 이미 내놓은 것은 이미 저를 떠나 저 홀로 유영할 따름입니다.
    다만, 저의 망집 소산으로 그를 훼할까 적이 두려울 뿐입니다.

    ///
    ///

    “제 글은 몸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나아간 이상 이미 제 것이 아닙니다.
    허공중에 바람 타고 나르는 날개처럼,
    물을 따르는 외로운 돛단배와 같이 쉬이 지나가는 인연의 터럭 실줄인 것이지요.
    우리가 말을 밖으로 내놓으면 "옴마니반메훔" 알파와 오메가
    그 소리의 영혼이 가없는 우주를 끝없이 떨며(振動) 나아갑니다.
    그런즉 그 끝줄을 움켜지고 제 것이라 우김은 얼마나 구차한 노릇이겠습니까?”

    제 글이 sourcer는 커녕 connector로서가 아닌
    그저 평범한, 처처(處處)에 質料化, 無化 되기를 소망한 것이지요.

    ///

    남의 글을 누군가 보고는 스크랩하여 가겠다고 청합니다.
    이 때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렸었지요.
    이미 발설한 것은 제 것이 아닌 만인의 것이 됩니다.
    하지만, 발설한 이상 그 책임은 화자(話者)를 여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말이든 글이든
    칼날 밑의 혀처럼,
    참으로 두렵고 두려우며,
    위태롭고 위태로운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하면서도,
    우리는 말을 뱉어내고,
    글을 지으며 살아갑니다.

    아마도 이리 영원을 향해 삿대를 저어 가는 것이겠거니 싶습니다.

    (※ 文에 대한 참고 글 : http://bongta.com/151 )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