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기시감(旣視感)

소요유 : 2010. 4. 4. 22:50


불어로는 dejavu라고 하는 기시감.
어떤 때, 어떤 장면에 임하여,
‘이미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를 윤회의 증거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리 본다면 그것은 그의 소관사일 뿐,
나는 그런 확신을 가질 정도로 마음이 옅지 못하다.

정보 교란, 착오로 보는 사람도 있다.
뇌 정보 관리 측면에서 볼 때, 기억의 집적, 보관, 재생하는 과정 중에 있어,
무엇인가 오류가 생긴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게 전자에 비해선 조금 더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러나 내 견해 아니 짐작이라도 좋은데 그것은 이러하다.
유사한 상황(situation)을 접하자,
기히 접했던 과거의 기억이 환기되는 것일 뿐,
이를 윤회의 증거라든가, 기억의 오류로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설혹 이러한 따위가 진실이라 한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금 이 땅의 형편에선,
그리 믿을 증거가 충분치 않다.
나는 어떠한 경우일지라도 증거가 충분치 않을 때는,
우리의 확신을 유보하는 겸양을 갖는 것이 덕스런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물의 이치라는 것은 동일한 상황이라면,
대개는 동일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따라서 기시감을 느낄 때,
현재 맞이하고 있는 상황이 어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암시를 득(得)할 수 있다.

기시감(旣視感)이라는 것이 서양에서 들어온 말이지만,
기실 이는 암시(暗示), 예감(豫感), 예시(豫示), 예징(豫徵), 예조(豫兆), 징조(徵兆) 따위로,
우리네 사회에서도 이미 사용되어 온 폭이다.
다만 전자가 개인의 주체적 해석에 치우친 반면,
후자는 저러한 느낌이 외부에서 내게 주어지는 수동적인 것으로 처리한 차이가 있다.
또한 전자는 과거 해석 지향적이나,
후자는 미래 예정 지향적이다.
자신이 의욕한 것은 아니로되 자동으로 내 머릿속으로 떠오른 것이니,
이것이 하늘이 내게 응험(應驗)하신 것이오,
땅이 내게 응감(應感)하시온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네 사고방식이란 늘 이리 조신하니 겸손하다.

나 역시 기시감을 느낀 적이 적지 않다.
내 처는 나보다 더 기시감이 좋다.
말하길 자신은 닭띠라 그러하다고 우긴다.
닭은 새벽을 미리 알리지 않는가 말이다.
늙은 닭은 봉이 된다든가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다는 말도 있듯이,
닭은 예로부터 영물(靈物)로 대하지 않던가?

나는 행여 미생지신(尾生之信)의 정도일까 마는 그런대로 약속을 내 얼굴인 양 잘 지킨다.
(※ 참고 글 : ☞ 2008/02/15 - [소요유/묵은 글] - 배반의 장미)
아니 그럴 까닭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장차 어찌 어찌 하자고 미리 맺은 것인데,
무엇이 부족하다고 그 약속을 어기겠는가?
그게 단지 시간만 잘 지키어도 될 수준의 것이라면,
더더욱 어려울 것이 있겠는가?

반면 약속을 어기는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겠다.
물론 살다보면 피치 못하게 약속을 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
그럴 경우라면 사전에 상대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다면,
이 또한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그러한데도 이런 노력을 게을리 하여 약속 상대를 저버리게 된다면,
이는 몹시 고약한 노릇이라 할 것이다.

미생은 목숨을 잃었지만,
나는 상대에 대한 신뢰를 접는다.
미생에 비해 나는 아직 죽기에 조금 미련이 남은 폭일까?

흔히 장자방이라 불리우는 장량은 황석공을 만나,
황석공소서(黃石公素書)를 얻는다.
이 때 황석공은 약속 시간을 어겼다는 미명하에,
몇 번이고 장량에게 헛걸음을 시킨다.
장량은 황석공이 기인임을 알아보고,
첫 닭이 울 때 만나자는 약속시간을 어기지 않기 위해,
아예 한밤중에 길을 나서 기다린다.
이에 황석공의 신임을 얻고 뜻을 일으킬 수 있게 된다.
(※ 참고 글 : ☞ 2009/08/11 - [소요유] - 귀인(貴人))

그날,
나는 약속 시간을 지키기 위해 새벽 03:30에 일어났다.
오전 07:00 약속인데 아무리 먼 곳으로 간다한들,
이쯤이면 거의 장량의 행례(行禮) 수준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 장소에 나갔는데 상대는 3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그리 늦게 도착한 그는 아침을 먹지 않았다고 식사를 하고 오겠다고 한다.
그리고는 감감무소식이다.
그 후 4시간이나 늦게 연락이 왔다.
다른 일을 하느라고 늦어지고 있다고.

30분이나 늦게 도착한 그를 대하자,
나는 문득 이거 어디서 겪은 일이구나 싶었다.
약속을 거푸 깨면서도 이리저리 그럴듯한 변명으로 일관하던 당시의 某씨,
某씨의 인정에 끌려 설마설마하며 믿다가 낭패를 당한 경험이 있다.

그는 약속 전일에 말하길 자신은 남과 다르게 아침 일찍 일을 나선다고 했다.
그리고는 아침 07:00에 만나자고 자신 있게 말했다.
나는 이를 듣고 그에 대한 성실성을 다시 확인하는 신뢰의 표징으로 받아들였었다.

그가 늦게 돌아오자 나는 기시감을 혹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알지 못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더 나눌 기분이 아니다.
나는 그만 말을 그쳤다.

이쯤에서 나는 사마양저(司馬穰苴)의 이야기를 다시 새기지 않을 수 없음을 느낀다.
제(齊)나라에 장군 3인이 있었다.
이 자들은 공로가 있음을 기화로 나라로부터 대접을 잘 받았다.
그러자 이들은 안하무인 방자하게 놀아났다.
재상 안영(晏嬰)은 이들을 2개의 복숭아를 빌미로 모두 죽음에 이르도록 한다.
그러자 이웃 나라들은 이를 얕보고 쳐들어왔다.
안영은 이 때 전양저(田穰苴)란 사람을 천거한다.
제왕은 이를 장군으로 내세워 적군을 무찌르도록 한다.

전양저는 자신의 신분이 미천하므로,
혹여 인심이 복종하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감독을 하나 딸려 줄 것을 요청한다.
그 감독으로 선발 된 자가 장가(莊賈)란 이다.
전양저는 장가에게 내일 출정을 오시(午時)에 할 터이니,
시간을 엄수하여 군중(軍中)에 도착하라고 다짐을 두었다.
그러나 장가는 평소의 임금 총애만 믿고,
환송하는 친지들과 술판을 벌이며 약속시간을 어겼다.

전양저는 미시(未時)가 지나자,
군리(軍吏)에게 이리 분부했다.

“遂吩咐將木表放倒,傾去漏水”
“장대를 치워버리고, 누수를 쏟아버려라”

추상같은 이 말씀을 대하자,
나는 모골이 송연해지며,
한편으론 주먹이 절로 불끈쥐어진다.
아,
저리 가을 서리처럼 단호할 수 있음이라니,
절로 양저에게 고개를 숙여 존경심을 드리고 싶어진다.
여기서 장대란 그림자 길이를 재기 위해 새워둔 것이니 곧 해시계의 일종이며,
누수 역시 물로서 시간을 재기 위한 것이니 물시계에 해당된다.

뒤늦게 장가가 도착했다.

전양저가 묻는다.

“감군(監軍)은 어째서 늦었소?”

“오늘 원행을 떠난다고 친척과 친구들이 술로서 전송을 해주었기에 이리 지체가 되었소.”

이러자 양저가 말한다.
이 장면은 내가 감동을 크게 받은 곳이다.
하기에 다시금 가슴으로 새겨가며 읽어본다.

“무릇 장수된 자는 명령을 받은 날로부터 자기 집을 잊고,
군중에서 약속을 하면 자신의 가족을 잊으며,
북채를 잡으면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다.
금번 적군이 침범으로 변경이 소란한즉, 우리 임금께선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시고,
음식을 잡수셔도 그 맛을 모르시고 계시다.
그래서 삼군을 우리 두 사람에게 내주시고,
속히 공을 세워 백성들의 위급을 구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하거늘 어느 여가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즐길 수 있음인가?”

이리 꾸짖고는 그 자를 참해버리고 만다.
약속을 어기면,
옛 사람들은 가차 없이 목을 쳐냈다.

‘當斬’

이 소문을 듣고는 적군들은 놀라 스스로 도망을 가버리고 만다.
이에 제왕(齊景公)은 전양저에게 사마(司馬) 즉 지금으로 치면 국방장관에 임명한다.
하여 이후론 전양저는 흔히 사마양저라 부르곤 한다.

도대체가 약속을 어기는 인간처럼 누추한 자가 또 있을까?
모름지기 남과 약속을 하는 자는,
목을 길게 늘여 사마양저의 추상같은 군도(軍刀)의 서늘함을 잊지 말아야 할사.

但問:「監軍何故後期?」莊賈拱手而對曰:「今日遠行,蒙親戚故舊攜酒餞送,是以遲遲也。」穰苴曰:「夫為將者,受命之日,即忘其家;臨軍約束,則忘其親;秉枹鼓,犯矢石,則忘其身。今敵國侵淩,邊境騷動,吾君寢不安席,食不甘味,以三軍之眾,託吾兩人,冀旦夕立功,以救百姓倒懸之急,何暇與親舊飲酒為樂哉?」莊賈尚含笑對曰:「幸未誤行期,元帥不須過責。」穰苴拍案大怒曰:「汝倚仗君寵,怠慢軍心,倘臨敵如此,豈不誤了大事!」即召軍政司問曰:「軍法期而後至,當得何罪?」軍政司曰:「按法當斬!」莊賈聞一「斬」字,纔有懼意,便要奔下將臺。穰苴喝教手下,將莊賈捆縛,牽出轅門斬首。唬得莊賈滴酒全無,口中哀叫討饒不已。左右從人,忙到齊侯處報信求救。連景公也吃一大驚,急叫梁邱據持節往諭,特免莊賈一死;吩咐乘軺車疾驅,誠恐緩不及事。那時莊賈之首,已號令轅門了。梁邱據尚然不知,手捧符節,望軍中馳去。穰苴喝令阻住,問軍政司曰:「軍中不得馳車,使者當得何罪?」答曰:「按法亦當斬!」梁邱據面如土色,戰做一團,口稱:「奉命而來,不干某事。」穰苴曰:「既有君命,難以加誅;然軍法不可廢也。」乃毀車斬驂,以代使者之死。梁邱據得了性命,抱頭鼠竄而去。於是大小三軍,莫不股栗。穰宜之兵,未出郊外,晉師聞風遁去。燕人亦渡河北歸。苴追擊之,斬首萬餘。燕人大敗,納賂請和。班師之日,景公親勞於郊,拜為大司馬,使掌兵權。

이리저리 생각의 끄나풀이 끊임없이 이어져 글이 어지러워졌다.
허나 꼭 이러한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다.
묵묵히 약속을 지키는 사람을 허술히 대하지 말아야 한다.
사마양저의 시퍼런 법도(法刀)는 늘 그대 목 가까이 있음이다.

자,
다시 돌아가 간단히 마무리한다.
하여간 여느 일반적인 해설과는 다르게,
나라면, 기시감이란 정보해석 프로세스에서,
노력의 절약이란 측면에서 보아주고 싶다.

먼젓번 일어난 일의 과정과 결과를 참고하며,
쉬이 이번 일의 앞일을 미리 짐작해볼 수 있다.
기시감이란 이리 새롭게 정보를 해석하는 노력을 아끼게 되는 공덕이 있다.

동양에서 많이 거론하곤 하는 징조(徵兆), 서징(瑞徵) 따위들.
이게 정치사회적 목적을 위해 동원된 혐의가 적지 아니 발견된다.
하지만, 이번 논의의 한계를 넘어서므로 여기서는 다루지 않는다.

'소요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과(大果)  (6) 2010.08.03
화가 난다.  (12) 2010.06.28
민들레  (13) 2010.05.06
천보봉(千步峯)  (6) 2010.03.31
풍두선(風頭旋)  (18) 2010.03.14
지모신(地母神)  (0) 2010.03.11
Bongta LicenseBongta Stock License bottomtop
이 저작물은 봉타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3.0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행위에 제한을 받습니다.
소요유 : 2010. 4. 4. 22: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