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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돌이는 없다.

소요유 : 2010. 8. 23. 09:51


얼마 전 서울집에 갔더니,
풀방구리가 그간 수개월 떨어져 지냈는데도 나를 반가이 맞이하며,
내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다.
처가 여간 잘 대해주지 않는데도,
이 녀석이 나를 아직 잊지 않고 있음이다.

지난해 12.31 데려온 풀방구리.
그 전에 고물할아버지네 집에서 거의 버려진 채 방치되어 있었다.
당시 나는 그를 근 1년 반이나 건사했었다.
(※ 참고 글 : ☞ 2010/01/26 - [소요유] - 풀방구리(강아지))

며칠 전 처가 그 녀석을 안고 마을 아래로 내려가는데,
젊은 부부가 녀석을 보고 ‘깐돌아’라며 부르더란다.
풀방구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쳐다보고,
처는 의아해서 서있자니 이런 사연들이 묵은 고름처럼 배져 나왔단다.

그 젊은 부부는 우리 풀방구리 옛 주인이었다.
고물할아버지 옆집은 예전에 마라토너 s씨가 살던 곳이라는데,
그 옆에 대지(袋地-자루형 토지) 하나가 긴 뱀처럼 산기슭을 따라 자리 잡고 있다.
그 곳에 할머니 한 분이 사시는데 부부는 그 집 자손이란다.
그들은 한 때 그곳에 함께 살았는데, 변인즉슨,
기르던 진돗개가 워낙 사나와 깐돌이를 함께 두면 필시 물려 죽을까봐,
고물할아버지에게 부탁하여 넘겨주었다고 한다.

맙소사.
바로 이웃인데 고물할아버지가 밥은커녕 물도 주지 않는 것을 몰랐단 말인가?
기르던 강아지를 의탁하였을진대 그동안 한 번도 살펴보지 않았단 말인가?
그간 사료 한 봉지라도 고물할아버지에게 전하지 않았단 말인가?
개미지옥 아니 개지옥같은 고물할아버지를 저들은 정녕 몰랐단 말인가?

그들은 우리가 맡아 키우고 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더란다.
우리는 저들을 모르는데 저들은 우리를 잘 알고 있음이라.
참으로 해괴망측한 노릇이 아닌가?

알고 보니,
고물할아버지네 집을 드나들며 나처럼 강아지들을 돌보던 아주머니가,
이런 사연을 저들에게 전하였던 게다.
아주머니와 저 집 할머니 사이는 사뭇 가까운 모양이다.
그러하니 저 아주머니는 내막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시침을 뚝 떼고 모른 척 한 것이다.

예전 ‘새벽 신음소리’ (http://bongta.com/300) 글을 올렸던 당시,
아주머니와 저 집 할머니가 나타나서는 차나 한잔 하자고 권하였으나,
나는 폐가 될 터라 그냥 고사한 적이 있다.
그 때 저 할머니는 좋은 일 한다고 미소를 지으며 나를 대하였다.

그런데,
그 후 그들 아들 부부는 강아지를 고물할아버지에게 떠맡긴 것이니,
참으로 세상일이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저 할머니 집은 산기슭에 터를 잡아 제법 마당도 넓고 크다.
그러하니 깐돌이 하나 건사할 공간이 없을 수 없다.

진돗개를 핑계 삼을 일이 아닌 게다.
세상 사람들아,
변명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
그럴 양이면 차라리 침묵함으로서 잿빛 바위 틈에 갇힌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진저리나는 세상,
모두들 저러하니 사는 것일 뿐.

사정이 이러하니,
그 날 내게 흘린 저 미소란 도대체 무엇인가?
변검(變臉) 천태(千態)라,
아아, 사람처럼 조석변개(朝夕變改) 마음이 얇은 짐승이 어디에 또 있으랴.

그 때 권하는 차를 함께 마시지 않은 게 다행이 아닌가 말이다.
아니, 옛말에 이르길 차는 양성(養性)에 좋다고 하였으니,
저 이와 함께 차를 자주 많이 마셨으면 좋은 성품이 길러졌을런가?

우리 풀방구리는 사실 우리 집에 온 날,
아니 앞서 나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진작 그의 이름 깐돌이를 버렸다.
그래, 깐돌이는 없다, 죽은 게다.
다만 풀방구리, 우리 풀방구리로 다시 태어났을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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