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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배운 것 하나

소요유 : 2011. 1. 11. 22:53


군대에 입대하여 젊은 날의 그 푸르디푸른 청춘을 삭힌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씁쓸한 감정을 거둘 수 없다.
당시에 신체검사 결과 1급 갑종이란 판정을 받고
나는 '나 아니면 누가 병역을 짊어지랴' 하며 기꺼이 군역의 길에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순진하거나 조금은 철이 없었던 것일까?
상하좌우 가리지 않고 이 핑계, 저 구실로 병역을 면탈하는 재주가 승(勝)한 세상이 아니더냐?

입대하자,
여긴 별건곤(別乾坤)였다.
구타, 기합으로 점철된 생활이 이어지고,
사병들 간의 알력, 불합리한 지휘, 명령, 불가항력적인 무조건 복종 따위로 휩싸인
군대 분위기는 참으로 견디어내기 어려웠다.

이게 수십 년 전 이야기이니 지금쯤이면 한결 합리적으로 개선되었으리란 기대가 있다.
실제 시골 농원 밭 앞에 위치한 부대 병사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우리 때와는 다르게 사뭇 형편이 좋아진 것으로 보인다.
겉보기에도 그들은 한결 표정에 여유가 있고 당당해보여,
나 역시 아주 반갑고 덩달아 기분이 편해진다.

내가 지금도 군대라면 별로 기억하기 싶지 않은 곳이지만,
거기서 배운 것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하나를 꺼내본다.
실은 오늘 느지막하게 전화 한 통을 받고,
이 묵은 이야기를 다시 되살려 보고자 하는 것이다.

어제 옥션을 통해 물건을 주문했는데,
그날 물건을 발송했다는 메일을 바로 받았다.
오후 2시경에 주문을 했으니 잘하면 당일 발송할 수 있겠거니 내심 기대를 했는데,
용케 발송했다는 메일을 접하고는 오늘이면 받아 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오늘 오후 06시 경에 물건 판매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주문한 물건이 없다며 다른 물건을 제시한다.
내가 한참 집중하여 글을 들여다보고 있던 참인데,
이리 방해를 받으니 귀찮기 짝이 없다.

제시한 물건이 offline 상에만 있는 것이라,
물건을 확인할 수가 없으니,
그저 판매원의 물품정보에 의지하여 가부를 정해야 하니 이 또한 썩 내키지 않는다.
게다가 메일 상으로는 어저께 발송하였다는 물건이 아직도 보내지지 않은 것이니,
이 또한 해괴한 노릇이다.
이게 어찌 된 것이냐 하니 응대하는 판매원은 말한다.

"그 메일은 옥션 측에서 보낸 것이다."

내가 출타하였다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집사람에게 택배 왔느냐고 물어보기까지 하였는데,
저녁 6시가 다 되도록 아직까지 물건은 보내지지도 않은 상태다.
게다가 그 물건발송 확인 메일은 옥션 측에서 보낸 것이지,
판매사가 책임질 노릇은 아니란 격이 아닌가?

몇 차 이야기가 되풀이 되어도,
판매원의 이야기는 같은 말의 반복이다.
재고가 떨어져 다른 물건을 선택하게 된 사정보다,
정작은 물품 발송 확인 책임을 엉뚱한 다른 이에게 떠넘기는 태도가 나는 심히 못 마땅하다.

말인즉슨, 판매사는 송장을 옥션으로 보냈고,
옥션은 이를 근거로 물품 발송 확인 메일을 보낸 것이리라.

옥션은 판매사로부터 송장을 받았으니 당연 발송확인 메일을 보냈을 것인데,
당연한 처사라 이에 무슨 책임이 있으랴.
송장이라 하면 판매자가 물건을 보냈다는 신용을 보증하는 문서가 아닌가 말이다.
그러하다면 이 자리에 옥션이 불려내져 욕을 당할 이유가 없다.
송장을 발행한 판매사가 물건을 보내지도 않은 상태에서,
물건을 보냈다는 신용을 거짓으로 남발한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그러하다면 이 자리에서 애꿎은 옥션을 끼어 팔 것이 아니라,
바로 판매사측이 잘못을 시인하여야 도리일 것이다.

그러함에도 판매원은 몇 차 옥션에서 보냈다며, 그리로 책임을 떠넘기는 자세를 견지한다.
메일을 옥션에서 보냈다한들 그들이 무작정 보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보낸 송장에 의거해 행동한 것인데,
왜 판매사의 책임이 은근슬쩍 이리 은폐되어야 하는가?
나는 이게 도대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일응 사태의 진상을 못 알아챌 정도로 답답한 위인이 아니다.
짐작컨대,
판매사는 한 시라도 빨리 옥션 측에 물건을 발송한 사실을 알려야 할 사정이 있을 수 있다.
이게 혹여 옥션에서 활동하는 판매사의 신용등급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면,
욕심이 솟아 슬쩍 이리 무리를 할 수도 있겠거니 싶다.
만약 이게 아니라면 판매사가 내부적으로 업무 처리의 편의를 위해,
발송유무를 불문하고 저녁에 일괄 송장을 무조건 남발하였을 수도 있으리라.
이 경우 이게 판매사 사장의 지시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담당자 임의로 그리 처리했을 수도 있겠다.

사정을 이리 뻔히 짐작하고 있는데,
이야기 과정 상 두어 차 되돌아 발송확인 메일 이야기에 이르르면,
판매원은 송장을 보냈을 뿐 옥션에서 발송한 것이란 이야기를 되풀이 강조한다.
이게 무지렁이 촌부에게나 씨알이 먹힐런가?

내부 사정이야 어떠하든,
소비자인 나는 공연히 이틀을 허공중에 버린 셈이다.
제 아무리 빨라도 내일 보내야 할 터인데,
결국 나는 오지도 않을 물건을 기다리고 있은 폭이 되지 않는가 말이다.
소비자가 왜 판매-발송 라인 상에 그들만의 편의를 위해 조작된 구조 밑에서,
인내하여야 하고 저들에게 공연히 낭비되어야 하는가?

게다가, 애꿎게도 아무 잘못도 없는 택배사는 처리가 더디다고 소비자로부터 지청구를 듣게 된다.
자신의 부담을 남에게 전가하는 이런 몰염치한 작폐가 내게 다 드러난 마당이 아닌가?  

그러하다면,
판매원은 빙 외돌아가며 문제의 본질을 휘갑칠 할 것이 아니라,
바로 사실을 고하고 사과를 했어야 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 실수도 일어나고, 사고도 터지고, 차질이 발생하는 것은
누구라도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게 아니다.
그 사태가 터지고 나서 어찌 수습하느냐?
이게 우리가 얼마나 성실하고 당당한 사람이냐를 가르는 시금석이 된다.

(수십 년 전 나의 경우)
군대에 갓 입대하였을 때,
여차하면 기합도 받고, 구타도 당하기에,
병사들은 잔뜩 주눅이 들어 있기 십상이다.

어쩌다 실수라도 하게 되면,
대개는 상사 앞에서 변명하기에 바쁘다.
여차저차 죽 핑계를 늘어놓는다.
그러자면,
상사는 더 들어보지도 않고 즉각 군홧발을 들어 이를 응징하고 만다.
실제로 병사가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하여도,
저들은 책임을 묻는 것을 거두어들이지 않는다.

이게 처음엔 심히 불합리하게 보인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에선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예컨대,
상사가 부하들에게 xx고지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해보자.
만약 부하가 임무를 수행하지 못해서,
상사 앞에 끌려갔는데 이리들 복명한다면?

"적의 화기가 워낙 강해서 ..."
"총알이 다 떨어져서 ..."
"막 돌격해 들어가는데 팬티 끈이 끊어져서 추켜올리느라고 ..."

죽고 사는 문제인데 어찌 변명이고 핑계가 있겠는가?
상사가 부하에게 임무를 맡겼으면,
그 다음은 부하가 사태를 전격 장악하고, 임기응변 전권적으로 처리해내어야 하는 것임을.

"죄송합니다."
"제가 전적으로 부족해서"
"저의 책임입니다."

마땅히 부하는 이리 상사에게 복명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부대 내, 낱낱의 단위들이 이런 자세로 전쟁에 임할 때라야,
적군을 물리칠 힘이 배가될 것이다.
이 때라면,
상사의 부하에 대한 사랑도 깊어지고,
부하의 상사를 향한 신뢰가 싹틀 것이다.

"핑계",
"변명"

어떠한 경우라도 이 말만은 하지 말아야겠다.
나는 군대에서 이것만은 확실히 배운 셈이다.
내가 나한테는 몰라도,
최소한 내가 남 앞에 서 있을 때만이라도.

단, 정히 저 말이 필요하다면,
시간이 흐른 한참 후,
사건 현장을 벗어난 곳에서,
"핑계"와 "변명"으로서가 아니라,
사태의 진상을 밝히는 과정상 사실, 진실이란 이름으로 노출은 될 수 있으리라.

그러하다면 사회는 군대와 다르니까 아니 그러한가?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상사로부터 일을 맡은 이상,
그 일에 관한 한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이런 자세를 가질 때라야 힘차게 일 처리는 추동되고,
나라는 인간은 한껏 자존(pride)을 확보한 한 인간이 된다.

왜 아니 그런가?
책임의 단위 주체가 될 때라야,
내가 일 위에 서서 하나의 인격체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거니와,
그러하지 않다면 나는 일 밑에 치인 비굴한 객체로 전락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상사에게만 보여질 까닭이 없다.
그가 상대하는 외부 거래원, 고객에게도 역시 책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런 확고한 주체적 책임을 가진 사람을,
맹자식 표현을 빌면 대장부(大丈夫)라 이름할 수 있겠다.

이런 당당한, 떳떳한 사람이라면, - 즉 주체적 책임을 가진 자.
설혹 과오나 실수를 하였다 하여도,
그의 거래 상대로부터,
양해 또는 용서를 이끌어내는데,
구차함이 적을 것이다.

맹자식으로 이런 사람을 대장부라고 부를 수도 있겠으나,
한편으로 나는 그저 '스마트'한 인간이라고 부르겠다.
구질구질하게 남을 팔아,
제 자신의 안위를 사지(도모) 말고,
좀 정갈하게 살았으면 싶은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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