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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군

소요유 : 2011.01.20 01:00


동장군

연일 맹(猛)추위가 지속되고 있다.
맹(猛)은 본래 건장한 개를 뜻한다.
내가 풀방구리를 데리고 산에 오르면,
가끔 어린 계집아이가 무섭다고 징징거리며 그 자리에 멈춰 얼어붙는 경우가 있다.
풀방구리처럼 소형견도 그러한데 항차 맹(猛)이라,
체구가 크고 힘이 세게 보이는 개라면 오죽하랴.
어른이라도 덩치가 큰 개를 보면 오금이 저리곤 한다.
한즉 맹(猛)이 '사납다'라는 뜻으로 전의(轉意)된 것이 하나도 이상할 바 없다.

맹한(猛悍)
맹이나 한이나 모두 사납다라는 자의(字意)를 갖는다.
금년 추위는 가히 맹한하구나.

내가 오늘 시골에 급히 내려갔다 왔다.
원래는 주말쯤 가보려고 하였는데,
어제 수도가 터졌다는 기별을 듣고 서둘러 나섰다.

현장을 보자하니,
이건 완전히 설동(雪洞 - 눈 동굴)이 아닌가?
바로 맹한(猛悍)이란 글자가 떠오른다.
게다가 뒤이어 까마득히 떠내려간 세월,
수십 년 전에 배웠던 글 조각들이 의식의 바다 위에 떠오른다.

'The Frost .....'

정통종합영어에 나오는 글귀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요즘은 어떠할지 모르지만 내 고등학교 시절엔 이 책을 주로 보았다.
frost가 서리를 가리키지만,
정관사 The가 앞에 붙고, 첫 글자 f를 대문자 F로 표기하게 되면,
의인화 되어 동장군(冬將軍)이 된다.

맹한(猛悍) 동장군(冬將軍)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림 왼쪽 편에 싱크대가 있는데 거기 터진 수전(水栓)으로부터 물이 쏘아져,
5m 높이의 하우스 어깨께까지 얼음 절벽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가운데 탁자 위에는 40cm 가량 얼음 이불이 봉긋 솟아 있다.
동장군이 이리 연강년부(年强年富) 힘이 넘치고 사나우니,
정이월 다 보내고 삼월 해토(解土)머리께나 저 얼음이 녹을까나?

하지만,
저 기이한 얼음 조형물을 보니 이 또한 여간 진귀한 게 아니다.
미인을 두고 옥기빙부(玉肌冰膚)라 하는데,
저 얼음 결도 옥처럼 맑고 시리다.
얼핏 푸른 기운까지 어려 신이(神異)하기까지 한 데,
톡톡 건드리면 청량(淸亮)한 소리가 날 것 같다.

터진 수전을 조사하니,
주물 쇳덩이 부분이 말 그대로 쭉 찢어져 있다.
아무리 춥다한들 열선까지 두른 상태에서 저리 무참히 발기울 수 있겠는가?
국산이고 KS마크까지 있던데 아무려면 수압테스트도 하지 않았을까?
나는 혹 이게 불량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인입파이프인 그 얇은 스텐주름관도 멀쩡한데,
명색이 주물 쇳덩이가 저리 맥없이 쩍 벌어져 버릴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 근처에 있는 다른 수전들은 모두 멀쩡하다.
샤워꼭지, 물받이용 일반 수도꼭지 따위는 이상이 없다.

제 아무리 동장군이 맹한한 것일지언정,
국산 KS 주물을 저리 능욕할 수 있음인가?

지인 한 분은 동네 철물점에 의뢰하여 고장 난 수전을 바꿨는데,
이게 얼마 아니 가서 줄줄 새서 알아보니 중국산이었다 한다.
그래 국산으로 다시 바꿔 달았는데,
알았으면 중국산을 달지 않았을 터인데 그저 설치해주는 대로 따르다가,
그리되었다고 혀를 차신다.
좀 비싸더라도 국산을 쓰지 중국산을 쓰면 재미없다고 이르신다.

중국산 아냐 국산이라도,
인연이 닿지 않으면 재미가 없을 뿐인 것을.

물건뿐이랴,
사람은 아니 그러한가?

언젠가 찍어두었던 가창오리떼 이미지를 덧붙여둔다.
미지의 세계를 한 걸음 한걸음 닫자하니 조심스러웠던가?
제 동료를 빗겨 앞세우고 지뢰 탐지병이 탐침(探針)을 찔러 넣듯 딱 한 땀씩만 따라간다.
겨울 궁창(穹蒼)은 꿔워~ㄱ 따르는 소리 한 땀, 한 땀,
기약없는 잿빛 무늬 조각보로 기워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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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은유시인 2011.01.28 15:23 PERM. MOD/DEL REPLY

    최근 여러 번 다녀갔습니다만,
    일부러 댓글은 올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지난해 10월26일 전격 구속되어 3개월간 옥살이 하고 나왔습니다.
    공갈협박으로 금품을 갈취했다는 죄명입니다.
    광고비 일부를 받은 것이 공갈에 의해 돈을 뜯겼다는데야...
    그러고보면 모든 신문사들이 이에 해당되겠네요.
    "협박에 의해 광고를 내줬고, 광고비 또한 협박에 의해 뜯겼다"는 식으로....
    참으로 억울합니다만, 하소연할 데도 없고....
    그저 힘 없음 죽은 척이라도 해야겠지요?

  2. 사용자 bongta 2011.01.29 22:39 신고 PERM. MOD/DEL REPLY

    놀랐습니다.
    그동안 그런 고초를 겪으셨군요.

    君子以明庶政,無敢折獄
    ‘군자는 일상의 정사를 밝히 펼치고, 함부로 형옥을 결정하지 않는다.’
    이러함인데 판사가 된 이 중에는 군자가 아닌 사람이 많은 실정입니다.
    고시라는 것이 육법전서 달달 잘 외우는 대표선수를 뽑는데 능할런지는 몰라도,
    인격을 갖춘 제대로 된 인간을 선발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은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품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한데 어쩌란 말인가?
    지금 하늘가에 칼바람은 매섭게 불고, 들녘은 꽁꽁 얼어붙은 것을.

    제가 지난해 농원 일을 하느라,
    서울에서 간간 돌보던 들고양이를 도리 없이 남겨두고 떠난 적이 있습니다.
    겨울이라 제가 현재 서울에 머물고 있는데, 녀석이 아직도 명을 붙여 산기슭을 배회합니다.
    어쩌다 만나면 녀석은 제게 ‘야옹’ 하며 서너 차 인사를 차립니다.
    그리고는 보채는 것도 없이 제 갈 길로 의연히 사라집니다.
    이 엄동설한을 저들은 어이하여 저리 견디어내는 것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아지 못합니다.
    저들은 모진 시련을 홀로 이겨내며 억겁을 건너는,
    지상에 남겨진 마지막 ‘고독한 수행자’임을.

    사라진 그의 자취를 무연히 쫓다가,
    저는 환영을 봅니다.

    그들 발걸음마다 바람이 일어납니다.
    바람 따라 꽃비가 나립니다.
    遍地開花
    온 땅에 꽃이 피어납니다.

    선생님.
    새해엔,
    지난해의 어려움은 개울물처럼 다 흘려보내시고,
    발걸음마다 꽃이 피어나는 공덕을 일구어내시길 축원 드립니다,

    제가 최근 컴퓨터가 고장이 나서,
    당분간은 넷에 접근하는 것이 여의치 않습니다.
    제 처 컴퓨터를 빌려 잠깐 들렸습니다.
    컴퓨터가 정상화된 후, 밀린 이야기는 차차 나눠 갖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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