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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心術)

소요유 : 2011.03.21 01:30


심술(心術)

내가 오늘 북한산을 오르는데,
한 아이가 골이 난 표정으로 산길을 내려온다.
심술(心術)이 난 게로다.
엄마가 저쪽 아래에서 한참을 기다리는데도 짐짓 지체하며,
마지못해 끌리듯 발걸음을 뗀다.

그런데 심술이라 할 때 술(術)이라는 게 ‘재주 술’자가 아닌가?
그러하다면 심술이란 ‘마음의 재주’이니,
마음으로 재주를 부리고, 꾀를 내고,
또는 아이디어, 좋은 방법을 내놓는다는 뜻으로 쓰여져야 할 터인데,
어찌하여 고약한 마음보를 갖고 있다든가, 억지로 고집을  피우는 것을 뜻하게 되었는가?

원래 술(術)이라는 것이 자의(字意)대로 좋은 뜻으로만 새겨지는 것이 아니다.
술사(術士)란 술을 부리는 사람이란 게일 터인데,
나는 대표적으로 서복(徐福)을 들고자 한다.
이 자가 원래는 우리나라 사람이란 이야기가 있다.
어쨌건 이 자는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고자 할 때,
배짱 좋게 시황을 속여 만금을 알겨내고는,
차일피일 시간만 끌며 골탕을 먹였었다.
풍랑을 견딜 큰 배 만든다고 거금을 뜯어내고,
큰 배 만든다는 핑계로 지체하며 시간을 끌고 이리저리 농간을  부렸다.
(※ 야사에선 이 돈으로 장량에게 뒷돈을 대주었다고 하는데,
알다시피 장량은 한고조를 도운 책략가였다.
후에 한나라가 세워지자 자진하여 벼슬 자리를 내놓고,
벽곡(辟穀) 수련하여 신선이 되었다든가?)

이러하니 술수(術數)를 부린다는 것은 법(法)을 어겨 농간을 부리는 재주를 일컫게 된다.
여기서 법(法)이란 영어로 하자면 law가 아니라,
정당한 이치, 도리, 진실,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니,
불교에서 말하는 다르마(Dharma)에 차라리 가깝다하겠다.

현실의 세계엔 법(法) 따로 술(術) 따로 나뉘어 있는 게 아니다.
그러하니 술(術)없는 법(法)은 부화(浮華), 공허(空虛)하고,
법(法)없는 술(術)은 삿되어 위험할 수밖에.

우리가 흔히 법술(法術)이라고 양 글자를 함께 아울러 쓰기도 하나,
이 경우는 법(法)과 술(術)이 잘 조화를 이룬 경우라 하겠다.
법(法)이란 fundamental, basic한 것이니 사물의 기초가 되는 이치, 원리(principle)에 해당된다면,
(혹은 존재(存在)를 의미할 때도 있다.)
술(術)은 이를 기반으로 하여 실제에 적용하는 즉 applied, practical한 것에 當하는 것이다.
즉 그저 무색투명한 기술(技術), technique, art인 것인데,
쓰임에 따라 한편으로는 환술(幻術), 요술(妖術), 귀술(鬼術)이 되고,
또 한편으로는 신기(神技), 재주(材操), 인술(仁術)로 나투게 된다.

제번(除煩)하면,
법(法)은 체(體)요, 술(術)은 용(用)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러하다면 체(體)란 도대체 실재하는가?
체(體)란 기실 용(用)으로써 세상에 드러나는 것일 뿐.
체(體)를 찾는 과정은 늘 혼란스럽고 아득하다.
해서 지친 사람들은 언제나 가까이 익숙해진 일상의 세계, 즉 가상의 세계에 안주하고 만다.
해서, 술(術)이란 늘 아지랑이처럼 흐늘거린다.
때문에, 다같은 술(術)이되, 이게 때론 도술(道術)이 되고 혹은 요술(妖術)이 되는 까닭이 이러함이다.

思通造化,策謀奇妙,是爲術家。又心術。
생각이 조화를 부리고, 책략을 꾸밈이 기묘한즉 이를 일러 술가(術家)라 한다.
또한 심술(心術)이라고 한다.

《人物志》에 나오는 말인데,
심술(心術)이란 게 우리가 요즘 사용하듯 단순히 심통을 부리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법(法)을 잃지 않고 현실에 알맞게 재주를 부릴 수만 있다면,
심술(心術)이란 것은 궁통(窮通), 궁달(窮達)하는 실로 요긴한 것이라 할 터.
요즘 일본의 지진에 따른 원전사고에도,
심술(心術)을 법(法)에 맞추어 일찍이 잘 낼 수 있었다면,
일본인들의 고생을 한결 덜어줄 수 있었으리라.

술(術)이 조리에 맞을 때,
비로소 업(業) 즉 과업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삿된 제 욕심을 위해 세상을 해(害)하고 장난을 치게 되면,
이게 곧 권모술수(權謀術數)요, 기술(奇術), 사술(邪術), 사술(詐術)이 된다.

그러한즉 심술(心術)이란 선악(善惡)이 실로 마음보 갖기 나름이다.

應感起物而動,然後心術形焉。
《樂記》에 나오는 글귀인데,
감정이라는 게 항상 일정한 게 아니라,
외물에 반응해서 느낌이 일면,
그에 따라 마음이 일어나 일정한 형(形) 즉 희로애락이 생기게 된다는 말이다.

여기서는 심술(心術)을 외적 자극에 대한 반응 양태로 보고 있다.
음악처럼 이를 듣고 마음이 감정을 일으키는 수동적인 것으로 일단 파악하고 있지만,
이 단계를 넘게 되면,
거꾸로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주고 나아가 천지자연의 기(氣)에도 미치게 되니, 
심술(心術)은 과히 우주적 음향을 담는 거대한 오동나무통 같은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네가 흔히 쓰는 의미의 심술이란,
이 오동나무통이 이지러져 외물에 반향(反響)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제 결기(結氣) 때문에 고집스런 외통 소리를 제 홀로 내는 상태를 이르는 것이리라.

오동나무통 같은 심술(心術)이라.
내가 내놓은 바이지만 제법 아름다운 표현이다.

통통, 텅텅 ~

내 마음보가 울려 그 소리가 하늘가에 닿고,
이윽고 가없는 우주를 유영(遊泳)하는
법(法)답고, 실(實)다운,
저마다의 미성(美聲)을 낼 수만 있다면,
이 별땅이 한결 아름다우련만.

죄 많은 이내 중생들은,
찰나간도 못 참고
잔나비처럼 마음을 억 천만 번 뒤치니(飜),
번뇌만 무성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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