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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취(詐取)? 지취(智取)?

소요유 : 2011. 4. 11. 00:54



사취(詐取)? 지취(智取)?

우리 소싯적엔 무전취식, 무전여행이라는 게 있었다.
가령 이런 거였다.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 때,
방학쯤 틈을 내어 땡전 한 푼 없이 주유천하(周遊天下)하는 것이다.
주유천하란 기실 공자가 천하를 돌며 직(職)을 구하는 것이었되,
그는 변변한 것 하나 구하지 못하고 결국은 실패했다.
그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상갓집 개’란 모멸적인 말까지 들었지만,
그의 구직활동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하니 주유천하란 말을 내가 꺼내들 때면,
그게 그리 향기롭지 못한 상황을 암암리에 예정하고 있음이니,
이게 비웃음이 아니라 실인즉 애통, 절통함을 바닥 자리 밑에 한 자락 깔고 있음이라.

어줍지 않은 청춘,
덜 익은 젊은이들,
기차를 몰래 숨어 타고,
식당 음식도 거저 취하고는 뺑소니 치고,
돌아와,
이리 달포 이상 만행(萬行)을 하고 나서는 한껏 거드름을 피고는,
동네 꼬마들을 불러 모아놓고는 서푼짜리 무용담을 늘어놓고 한껏 기염을 토하곤 했다.
그래도 이게 먹혀들어가곤 했다.

마치 참외, 수박 서리처럼,
사회적으로 저들의 호기로움인지 만용인지를 용서하는 분위기,
그런 여유로움, 혹은 무지 속에서 우리네 삶은 복잡하게 교직(交織)되었다.
이게 권장하여야 할 것인지,
말려야 할 것인지,
우리는 늘 망설였다.
누질르자니 젊음이 안타깝고,
권장하자니 찜찜하니 민망했다.

그런데 말이다.
어떤 이가 있어 부동산, 경매 따위로 제법 재미를 본 이가 있다 하자.
이자가 입을 열어 떠벌린다.
내가 여기 갑부(甲富)다.
내가 재테크의 귀재(鬼才)다.

나는 짐짓 묻는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지혜지요.”

오호 지취(智取)고뇨?

그런데 나는 지취(智取)와 사취(詐取)를,
묘책(妙策)과 도취(盜取)를 헷갈린다.
과연 현실에서 이게 지혜인지, 사기인지 도무지 쉽게 알아차릴 수가 없다.

내가 주식투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게 돈을 벌 욕심인 것은 틀림없지만,
지취(智取)와 사취(詐取)의 경계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아니 실인즉 그 경계 자체가 애저녁 존재하질 않는 것이다.
원론적으로 자본주의, 그리고 주식회사, 나아가 주식공모,
이 일련의 꽉 짜여진 공인된 시스템이 나의 창백한 윤리의식을 자유롭게 하였고,
거긴 지취(智取)와 사취(詐取)의 고민이 조금 태만하여도 용서가 되었다.
이게 실인즉 속 편한 셈법,
그래 그냥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일런지도 모른다.
책임으로부터의 면피(免避)라 궁박할 분도 있을 터.

하지만,
부동산 투자, 또는 commodity, exchange, money, security 투기도 그렇지만,
장사를 하면서 거래 상대를 교묘하니 속이고, 키 까불었다 놓아,
사익을 취하는 데 있어, 내 자의식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하고,
그 결과 특정된 상대는 그 반향(反響)의 직접적 피해자가 되어야 한다.

지취(智取)와 사취(詐取).
그래, 자신에겐 지취(智取)가 될는지 몰라도,
상대에겐 사취(詐取)라 여겨진다면,
과연 그게 무엇인가?

우리가 전쟁을 한다면,
손자병법의
‘兵者, 詭道也’에 이르는 것처럼,
속임 수를 여읠 수는 없을 것이다.
전쟁터에서 펼쳐지는 송양지인(宋襄之仁)은 아연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러하다면?
이 삶이 전쟁터라면,
모든 사취(詐取)가 지취(智取)일 터니 무엇을 나무랄 것인가?
만약 이 삶이 매양 전쟁터가 아니라면,
지취(智取)와 사취(詐取)는 엄연히 그 궤를 달리할 터.

문제는?
과연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은 전쟁터인가?
아니면 수양의 장소인가?

진실은 무엇이냐?

만약 이 세상이 전쟁터라면,
사취(詐取)야말로 지취(智取)일 것이며,
아니라면,
지취(智取)라야,
윤사월(閏四月) 꾀꼬리 소리를 알 사.

여기 전곡 우리 밭 위로,
때로 가창 오리 떼가 시옷자 대형을 짓고는 날아간다.
기막히게 장관(壯觀)이다.
나는 삽질을 멈추고 그들 자락 끝까지 한참을 치어다본다.
저 대열 앞에 인간들은 너무 부끄럽기 짝이 없구나!

‘눈 먼 처녀’,
문설주에 귀 대이듯,
한참이고 그들이 사리질 때까지,
삽을 허공에 꽂아두고는,
무정철한(無情鐵漢)도
송화가루를 듣는다.

윤사월(閏四月)
 
- 박목월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그런데,
기실 이런 고민의 현장을 진즉 영악하게 떠난 자,
아니 번민조차 필요 없는 자,
그 자는 이미 세상을 저 멀리 분치(奔馳)하고 있다.

이자는 송홧가루가 무엇이지도 모른다.
다만 송홧가루로 만든 다식(茶食)을 돈으로 살 뿐인 것을.
돈을 많이 모으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일 뿐.
송홧가루라니,
개뿔일 뿐인 게라.
과연 이자를,

사취자(詐取者)라 불러야 하는가?
지취자(智取者)라 불러야 하는가?

영웅호걸(英雄豪傑)인가?
소인서배(小人鼠辈)인가?

맙소사(老天爷)!
호걸(豪傑)이 쥐새끼(鼠辈)일 따름인가?
쥐새끼(鼠辈)가 호걸(豪傑)일 따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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