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붉은 부담

소요유 : 2008. 2. 19. 16:00


예수라면 적어도 기독교 신자에겐
신처럼 떠받들여지는 존재다.
하지만, 그의 생전은 가시 면류관 쓴 고통의 연속이었다.
종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언젠가 얘기하였던
위대한 수학자 칸토르도 살아 생전
세상과 불화하고 정신병자가 되고 만다.

수많은 독립운동가 역시 당대에 모진 핍박 속에 살다 스러졌다.
광복이후에도 이승만 정권에 의해 홀대 받고,
지금까지 음지에 밀려 지내고 있다.

이렇듯 수많은 영웅호걸, 위인 중에는
생전엔 갖은 핍박과 고난 속에 지내다가,
세월이 흘러 뒤늦게나마
이름일 망정,
높이 우러러 추앙 받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이들이 숭앙 받고 있음은 웬 일일까 ?
당대에는 그리 모진 시련 속에 살던 이들이,
시대가 바뀌자 갖은 달콤한 칭사와 어여쁜 이름을 빌어
모셔지고 있는 사연은 무슨 까닭일까 ?

아마도 사람들은 제 주머니 헐어,
비용을 지불하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예컨대, 일제 시대에 독립운동가를 돕거나,
가담하는 것은 목숨까지 담보하고
나서는 일이었을 터.
하니 미래의 대가(?)가 불확실한 위험을 두고
그런 부담을 먼저 지불하는 것이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
독립운동가를 소리 높이 칭송하는 일은
목숨을 거는 것도 아니라 위험 부담도 없다.
그 뿐이랴,
남에게 제법 착한 사람이란 평을 들을 터니,
체면도 한껏 서는 일이다.
게다가 광 헐고, 쌀독 부어 독립자금을 보탤 일도 없다.
그저 입 품만 팔면 된다.
식은 앙가슴 덮히기에 이보다 더 수지 맞는 게 있을까 ?

하지만,
돌 들어내자 우르르 흩어지는 냇가의 가재처럼,
이들도 막상 저들과 다투며,
제 이해를 셈하게 될 처지에 놓이면
태반은 흩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러하니,
살면서,
조청 바른듯 달디단 혓바닥 놀리며,
다가와 그대를 칭찬하는 사람을 만나면 조심하라.

“넘어진 그대 앞에 와서,
손을 내미는 자가 가장 위험하다.
언제고 너를 가장 먼저 거꾸러뜨리리라 !”

예수가 이 땅에 다시 되돌아 오셨을 때,
또는 광복군이 지금 다시 돌아오신다면,
이런 우리들을 용서하실까 ?

셈하는 순간
부끄러움에 든다.
셈을 모른다면
푸르게 살게 된다.

지금,
세상은 모두
셈꾼이 되기 위해
일로 내닫고 있다.

치열하게,
붉게 살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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