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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두 덩이

소요유 : 2011.07.28 16:21



풀방구리 녀석은 아마도 마음의 큰 상처를 갖고 있을 것이다.
집안에서는 절대 오줌을 싸지 않는다.
종일 놔두면 오줌보가 터질지언정 결코 오줌을 싸지 않을 태세다.
해서 서울 집에서는 하루에 두세 차례는 꼭 산책을 시켰다.
(※ 참조 글 : ☞ 2010/01/26 - [소요유] - 풀방구리(강아지))

여기 농원에 와서는 좀 환경이 좋아진 셈이지만,
요즘 비가 계속오니 밖으로 나가기가 여의치 않아,
이 또한 여전히 오줌 가리기가 쉽지 않다.
비가 잠깐이라도 그치면 녀석을 데리고 부리나케 산책을 시켜야하니,
녀석보다 내가 더 안달을 부려야 한다.

오늘 비가 그친 틈에 서둘러 강아지를 끌고 길을 나섰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있는데,
세 갈래길 저쪽 편에 휠체어 하나가 보인다.
우물 사건의 할머니인 게다.
(※ 참고 글 : ☞ 2011/05/12 - [농사] - 급수공덕(汲水功德) - (2))
그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자락 길을 같이 걷게 되었다.
그 집 앞께를 지나 내 길을 가자자니 소리 하나가 설핏 들려온다.

“개를 끌고 가는 아저씨~”

내가 길을 돌아가자니

“개를 끌고 가는 아저씨~”

한 번 더 들린다.
고개를 돌아보니,
그 할머니가 나를 부르고 있음이다.

개를 끌고 가고 있으니,
맞는 소리이긴 하나,
이것이야말로 완전히 무기질(無機質)한 호칭이요,
무례한 외침이다.
나는 나인 것.
어찌 사물에 의지하여 그 한사람의 인격이 대변될 수 있겠음인가?

“호박 두 덩이 가져 가실려우?”

“됐습니다.”

농사에 있어 물은 생명수와 같은 것.
남의 멱줄을 거머쥐고 농단을 부린 것이 엊그제인데,
호박 두덩이로 허물이 덮어질쏜가?

항차, 그간 밭을 거저 빌려주면서도,
내가 그 집 소출 중 배추 하나라도 탐을 내본 적이 없었음인데.

의로예문(義路禮門)

의(義)의 길,
예(禮)의 문.

의(義)는 사람이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이어야 한다.
길 아닌 길을 걸으면 사람이 사람 노릇 제대로 할 수 없다.
예(禮)는 문으로 들고 나는 것,
문 놔두고 담장을 타넘는다면 밤손님일 터,
무뢰배(無賴輩)에게 남의 문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기사 대도무문(大道無門)이란 말도 있으렷다.
온(全)길에 어찌 문이 있겠음인가?
(※ 참고 글 : ☞ 2008/03/07 - [소요유] - 공진(共振), 곡신(谷神), 투기(投機) ①)

내가 농원을 조성하면서,
혹 기르는 과수에 병충해라도 더할까봐,
일체 다른 작물을 심지 않았다.

허나 이제부터는 조금이라도 밭작물을 심어보려한다.
우선은 심심풀이도 될 터이고,
놀리는 땅도 활용할 겸.

명년 봄엔 호박도 심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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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은유시인 2011.07.28 19:21 PERM. MOD/DEL REPLY

    우리 강아지 예삐는 하루에 한두 차례 용두산공원 산책을 시켰더니
    응가를 꼭 밖에서 보는 버릇이 생겼나 봅니다.
    전에는 하루 한 차례씩 화장실 바닥에 응가를 싸더니
    그제 어제는 남포동 동물병원에 다니는데
    길에서 싸지 뭡니까.
    휴대하던 비닐봉지에 담아 휴지통에 버리긴 했는데
    신통방통하다기보다는 조금은 성가시렵더군요.
    ***
    할머니가 호박 두덩이를 드린다 함은
    화해 제스츄어가 아닐런지요.

  2. 사용자 bongta 2011.07.29 10:53 신고 PERM. MOD/DEL REPLY

    호박이 문제가 아니라,
    멀쩡한 우물은 저 홀로 버려진 채 놀고 있는데,
    화해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최근 우연히 밭가에서 종친회장을 만났습니다.
    관련 측량 서류를 확인하니 우물이 종중 땅에 속한다고 하였더니,
    조만간 종친회를 열 예정이니,
    증빙 서류 갖고 오면 처리해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러거나 말거나,
    저로서는 별도의 조치를 강구하였기에,
    이 우물을 사용하지 않아도 별반 어려움이 없은즉,
    그냥 놔두고 지켜만 보고 있습니다.

    저 할머니가,
    그리 말 트고 접근하려고 하는 것이 그게 다 제 마음 편하려고 하는 것이지,
    행여 상대를 우정 생각해서 그리 하려는 것입니까?

    게다가 뜻도, 길도 다르고,
    피차 무슨 괸 정이 깊기에,
    다시 복원할 건덕지나 있겠습니까?
    평소 제가 무엇을 구하려고 저이를 공대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도리로써 그리한 것일 뿐,
    진작부터 저런 무뢰한 자와 얽히는 것조차 사양하고 싶었음인즉,
    외려 시원하니 잘 되었다 싶어 놔두고 맙니다.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이란 고사가 있습니다.
    흔히 우리나라에선 강태공이라 알려진 태공망 여상(呂尙)의 이야기입니다.
    주나라를 세운 무왕의 아버지 문왕 즉 서백창이란 인물이 있습니다.
    위수에서 곧은 낚시질을 하는 여상을 만나고는 이 자를 스카웃합니다.

    그동안 여상은 말 그대로 글만 읽는 백수이니,
    살림이 곤궁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의 처 마씨는 이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서백창을 버리고 친정으로 도망갑니다.
    후에 서백창이 출세하자 마씨는 다시 나타나 잘못을 빕니다.
    그러자 서백창은 물동이에 담긴 물을 땅에다 쏟고는 마씨에게 다시 주어 담으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쏟아버린 물을 어찌 다시 주워 담겠습니까?

    한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어 담을 수 없는 것.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임이라.

    문제는 용서하고 하지 아니 하고가 아닙니다.
    이런 흉한 마음보를 가진 자와는 다시 장래를 이야기 할 수 없지요.
    호박 두 덩이가 미래를 담보할 수는 없습니다.

    나비 베 끊어 절연하였으면,
    각자는 이배향지(以背向之) 등 돌려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일 뿐.

    내가 잘났고 네가 못났다는 것이 아닙니다.
    새 문을 내고, 새 길을 닦아 자기 길을 가는 것이지,
    비릿한 내음 맡으며 그 골목 길을 다시 찾아갈 까닭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미 밑천 다 드러난 형편인데,
    버린 헝겊데기라도 주어,
    벌건 치부를 가리지지도 않고,
    좇아 나서며 팔장을 끼려 덤빈다면,
    이는 두 번식이나 거푸 義와 禮를 거스르는 것이지요.

    각행기로(各行己路)
    각기 제 길은 제가 알아서 갈 뿐인 것을.

    비구름이 하늘을 흘러갑니다.
    한바탕 지상으로 비를 쏟아냅니다.

    그 구름이,
    빗물을 주어 담겠다고,
    언덕 위로 다시 되돌아오지는 않습니다.

    구름은 진작 저 먼 하늘로 흘러가고 없습니다.
    복수(覆水)는 불반분(不返盆)한 것임을
    저 구름은 알고 있습니다.

    아니,
    지부지(知不知)가 아니라,
    행운(行雲)의 도가 그러한 것임이라.

    ***

    幾日行雲何處去 忘卻歸來

    며칠 떠돌던 구름은 어디로 갔는가?
    돌아올 것을 잊었나.

    시인은 구름을 두고 떠난 님을 이리 그리워 합니다.

    하지만,
    구름은 흘러가는 것일 뿐.
    悠悠夢裡無尋處
    꿈 속에서도 찾을 길이 없어라.

    ***

    鵲踏枝﹒ 幾日行雲何處去
    馮延巳

    幾日行雲何處去
    忘卻歸來
    不道春將暮
    百草千花寒食路
    香車繫在誰家樹

    淚眼倚樓頻獨語
    雙燕來時
    陌上相逢否
    撩亂春愁如柳絮
    悠悠夢裡無尋處

  3. 은유시인 2011.07.30 16:20 PERM. MOD/DEL REPLY

    저도 2년후쯤엔 시골에 정착하고자 합니다.
    그렇지만 뜻대로 될른지 걱정입니다.
    10년전부터 시골가야지....
    늘 그런 맘으로 살아왔지만,
    그게 쉬 맘 먹은 대로 되질 않더란 겁니다.
    바다가 눈앞에 탁 펼쳐지는 곳으로 갈까?
    아님, 계곡을 낀 산 기슭으로 갈까?
    그것부터 결정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4. 사용자 bongta 2011.07.30 21:15 신고 PERM. MOD/DEL REPLY

    뜻과 마음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지만,
    또한 뜻을 가지면 인연의 실타래가 그리 풀어지기도 하지요.
    저희는 나중엔 제주도나 강원도쯤으로 다시 옮겨갈 계획도 있습니다.

  5. 은유시인 2011.08.03 00:37 PERM. MOD/DEL REPLY

    봉타 선생님과 이웃하여 정겹게 살았으면 합니다.
    그러다 서로가 미워지면 피터지게 싸움도 하고...

  6. 사용자 bongta 2011.08.03 17:47 신고 PERM. MOD/DEL REPLY

    함께 살면 좋지요.

    전들 온전히 옳기만 하겠습니까?
    사람 살면서 서로 의견 충돌 생기고,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야말로 정상이지요.
    저의 경우 처신의 원칙은,
    상대의 잘못을 세 번은 참지만,
    세 번을 넘기면 곤란하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 우물 사건의 할머니 경우,
    저희는 근 20여 년간 일방적으로 양보하고, 덕을 폈습니다.
    그러한 것인데 저 패악질을 당하고 나니,
    온갖 정이 다 떨어지고 더 이상은 보고 싶지 않더군요.
    저희 온 집안 식구가 모두들 입을 모아,
    저이를 그르다고 하고, 흉한 이라고 낙인을 찍었으면서도,
    그동안 거래를 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자주 올 형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땅을 맡겨두면 그런대로 건사를 하겠거니 여긴 것이 하나,
    나이 많은 이라 그저 참고 양보하며,
    모르는 척, 어리석은 양 이리 대하고 말지 하는 게 둘입니다.

    살면서 이리 경우 없는 이를 딱 두 번 만나보았습니다.
    예전 신혼 시절 전세를 사는데,
    거기 집 주인이 꼭 이 할머니 수준의 막무가내였지요.
    세든 이들을 알겨먹으려고 갖은 패악질을 다 벌였는데,
    꾹꾹 참고 해달라는대로 다 해주었지요.
    그런데 그 집을 나가는 날,
    처음부터 고장 난 것을 저희가 고장 내었다고 수리해놓고 나가라고 하더군요.
    이것 처음에 들어올 때 확인까지 시켜주었던 것인데,
    이리 억지를 부리는 것을,
    제가 용서를 하지 못하고,
    대판 싸운 기억이 납니다.

    그래 지금도,
    나쁜 인간을 두고는,
    제가 집사람 보고는 ‘칠봉이’같은 이이어던가 이리 묻습니다.
    그 집 주인 이름이 칠봉이였거든요.
    이런 경우 이제는 하나 더 추가하여 다루지요.

    끔직하지요.
    칠봉이,
    그리고 이 우물 사건의 주역 서가 할머니.

    실은 이외에도,
    겪은 바 야비한 인간은 적지 않지요.
    하지만,
    살면서 칠봉이, 그리고 서가 할머니 같은 도를 넘는 이는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반면 두 번 째 세 살던 집은,
    보기 드문 양반이라,
    지금도 우리 부부는 그 분들 이야기를 나눕니다.
    노부부가 사셨는데,
    바깥어른은 그 연세에도 늘 공부를 하셨지요.
    저희는 잊지 않고 나중에도 몇 번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었지요.
    그 인연으로 지금은 그 지역으로 이사를 와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곳에 모여 사는 것은,
    실로 삼세(三世) 숙연(宿緣)의 소치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저부터 덕이 얇고, 아는 게 얕아,
    주의를 아우르지 못하고 살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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