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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회시(鼅鼄會豕)

소요유 : 2011.09.17 15:30



며칠 전 싱크대 안을 보니 커다란 거미 한 마리가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가만히 건져 밖에다 놔주었으나 다음 날도 역시 똑같은 장면이 목격되었다.
거미줄을 적당한 곳에 쏘아 붙이고는 줄 타고 빠져나와도 될런만
연신 탈출을 시도하지만 미끄러지며 실패하고 만다.

시골이라 과연 벌레가 참으로 많다.
어떤 귀농한 이는 벌레가 견디기 어려워 다시 도시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단순히 날아다니기만 하는 ‘날것’은 그런대로 봐주겠지만,
모기 따위의 ‘물것’은 실로 성가심을 넘어 괴롭기까지 하다.
요즘 세상엔 빈대니 벼룩이니 하는 것들은 거의 없어졌지만,
모기 외에도 파리는 쫓아대어도 집요하게 다시 대들며 살갗을 간지럽힌다.
과시 시골 파리는 뻔뻔하기가 촌무지렁이를 닮았음이지 않았는가 싶다.

나도 이들이 처음엔 귀찮기 짝이 없었지만,
차츰 견디어 내다보니 이젠 그려러니 하며 참아낸다.
무심한 경지까지는 아직 가지 못했지만 저들에게 한결 너그러워진 편이다.

연이틀 싱크대에 빠진 거미를 건져내 근처에 놔두다보니,
이상(李箱)의 지주회시가 의식 위로 물컥 다시 떠오른다.

싱크대를 우리말로는 개수대라 하지만,
싱크대란 말도 실은 제법 그럴듯하다.
source가 있으면 sink가 있을 터.
해가 뜨는 곳을 부상(扶桑)이라 하고,
해가 저무는 곳을 함지(咸池)라 한다.
해도 저 못에 빠지면 영원히 헤어나지 못하련만,
다음 날이 되면 윤회의 거대한 수레바퀴를 다시 굴리려고 나타난다.
그는 왜 그리 면면(綿綿) 부절(不絶) 그리 생사 간을 넘나드는가?

아마도 태양은 실체가 아니라,
윤회(輪廻)의 업력(業力)이 아닐까 싶다.
삼계 육도(三界六道)에 갇힌 중생(衆生)들은,
업연(業緣)의 상징인 태양으로부터 빛과 어둠을 저당(抵當)하고,
맞서 겨루며 영원을 향해 질주하고 있음일 것이다.

이상(李箱)의 오감도(烏瞰圖)에선,
이 장면을 이리 표현하고 있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태양은 그렇다하지만,
하지만 미약한 중생들은,
일단 이 현실이란 차안(此岸)에 설치된 sink에 빠지면 영원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거미 한 마리가 sink에 빠져 며칠을 그냥 놔두면,
아마도 그는 그가 겨눈 과녁인 그 영원 속으로 관중(貫中)되어 떠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애써 그의 운명을 훼방 놓으며,
그를 다시 이 차안(此岸)으로 끌어들인다.
아니라고?
그는 진정 차안(此岸)으로 귀환되기를 원했단 말인가?
그 누가 이리 말하는가?
썩 나서거라,
내, 네 녀석 뺨을 벼락처럼 냅다 갈겨주마.
나의 심술을 모독하지 말라.

이상(李箱)은 원래 지주회시를 鼅鼄會豕로 적어놓았다.
蜘蛛會豕만 하여도 일반인들은 잘 알아듣지 못할 터인데,
鼅鼄는 더욱 생경스러울 것이다.
鼅鼄나 蜘蛛는 모두 거미를 가르킨다.
蜘蛛는 虫이 들어가 있으니 그런대로 벌레란 것을 짐작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黽은 한자를 좀 안다는 이에게도 쉬운 글자가 아니다.
黽은 여러 음으로 읽지만 여기서는 ‘맹’이다,

在水者黽

물에 사는 것을 맹이라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개구리인데, 여기서는 맹꽁이를 뜻한다.
이게 뛰기를 좋아하고, 울기를 좋아하는데,
한번 울면 격렬하게 노한 듯 운다 했다.
주례(周禮)엔 괵씨(蟈氏)란 벼슬이 있다.
이들은 개구리나 맹꽁이를 잡는 게 주업이다.

한참 때 논에서 우는 개구리 소리가 어떤 때는 시끄러울 지경이긴 하나,
이는 잠시 잠깐이고 보통의 경우엔 풀, 물을 떠올리는 정겨운 소리이다.
시멘트, 비닐 따위로 둘러싸인 우리네에게 풀, 비, 구름, 바람을 자연 연상시키는,,
저들의 소리를 노명(怒鳴)으로 해독한 옛사람들은,
과연 무정하기 짝이 없었던 것일까?

개구리 아니더라도 자연을 운치 있게 느낄 만한 다른 것들이 더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저들이 보기엔 격렬하니 노해 우는 개구리 소리에 기껏 정을 붙이고 사는,
우리 현대인들이 구차스럽고 안쓰럽게 생각되지나 않을까?

별주부전(鼈主簿傳)의 별(鼈)은 자라를 뜻한다.
나는 학교 다닐 때 鼈을 보고는,
이게 개구리, 맹꽁이 두꺼비 족속이되 다만 거죽 껍데기에 갑주를 입은 것이로고,
이리 여기며 이것은 여간 별난 놈이 아니겠군.
하니 토끼를 교묘히 꾀어 용왕에게 데리고 갔지 않았음인가?
이리 나름 이야기를 꾸며 지으며 글자를 익혔었다.
나중 옥편을 뒤져보니,
자라를 일명 神守 또는 河伯從事라고 한다하니,
과연 그럴듯하지 않은가 말이다.

여하간 虫보단 黽이 덩치도 크며, 잘 뛰고 잘도 운다.
나만의 생각이지만 이쯤이면 큰거미, 왕거미로 보아주면 아니될까?
이상(李箱)은 이를 빌려 혹 거대한 부조리 아니 그냥 강고한 현실이라도 좋다.
이런 것을 꾸며 비춰보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蜘蛛보단 鼅鼄란 글자는 내겐 심미적으로 조금 거칠고 위압적으로 다가온다.
거기다 맹(黽)은 在水者黽이듯 물이 연상(聯想)되어 축축한 기운이 느껴진다.
거미 역시 음습하니 구석진 곳에 망(網)을 펴놓고는 먹이를 구하지 않던가?
자라는 갑주를 입었으되, 거미는 대신 입으로 거미줄을 뽑아낸다.
모두들 녹록치 않은 무기들을 채비하고 있음이다.
하나는 방패로 무장하고, 또 하나는 포승줄을 지녔으니,
저들이야말로 바다와 하늘 비밀을 지키며,
세상을 기찰(譏察)하는 신의 종사(從事)들이 아닐까 싶다.

심망구식(尋網求食)

거미줄을 쳐놓고 먹이를 구하다.

무릇 함정과 그물은 어둑하니 눅눅한 곳에 남몰래 마련하는 것.
그리 얻은 먹이란 말은 입에 들어가는 필요의 소산,
명을 부지하는 거룩한 목적 가치처럼 그럴듯이 여겨지지만,
실인즉 타자(他者)의 살과 뼈를 취한 것.
그 현장에 넘쳐흐르던 피와 아픔 그리고 울음은 어디에 갔는가?
마트에 가면 이들의 슬픔은 부재하고,
다만 거기엔 장사꾼의 교묘한 선동만이,
배시시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너를 맞이한다.
게걸스런 너의 혀는 타액으로 환호하며 너무도 쉽게 여기 무너진다.
너는 필시 '파브로의 개'인 게라.
실험실에 올라온 가여운 개.
써놓고 보니까,
파브로 이자가 여간 잔인한 인간이 아니군, 밉다.

먹이란 말을 두고 맛(味), 살(肉)을 떠올리는 그대들은 얼마나 천박하고 욕스러운가?
나는 ‘맛집 기행’이란 타이틀로,
장미여관에 스며든 암수가 야합(野合)하며, 살을 태우듯 좋아 죽겠다며,
요살을 떠는 기사들을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저들은 도대체가 천하다.
‘트루맛쇼’에서 보듯,
저들 천박한 치들은 기어이 거짓과 위선의 막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는가 말이다.

거미는 천고에 이 무거운 과업을 홀로 짊어지고,
천한 오명(汚名)을 뒤집어쓰고 살아간다.
하지만 저들이야말로 묵언 수행을 하며 천년 어둠을 낚는 것이 아닌가?
저들처럼 운명에 순응하는 이가 그 누가 있던가?
아니 그것은 순응이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항거인 게다.
아니라면 망 하나 쳐놓고는 저리 무던히도 견디어낼 재간이 그대에겐 있는가?
저것은 제 아무리 고문을 해대어도 절대 불지 않는 투사인 게다.
아, 저들은 얼마나 위대하고 엄숙한가?

하지만, 현실에선 저들은 더럽고 징그럽다는,
그리 추한 오명을 혼자 뒤집어쓰고 만년 고독을 견딘다.
반면, 나머지 것들은 특히 인간은 저들과 선을 긋고,
멀찌감치 물러나 우아하니 멋진 폼을 잡는다.
마치 이슬 먹고 천상에 노니는 양 갖은 야살을 떤다.

하지만 뒷간에 가면 더러운 똥을 그 누구보다도 적지 않게 싸대며,
요즘엔 땅에 버리지도 않고 물로 버리며 온갖 하천을 어지럽힌다.

그뿐인가?
그도 모자라, 여기 시골 동네 사는 무지렁이 ‘촌것’들은 제들 밭이며 마당을 가리지 않고,
폐비닐, 치약껍데기, 화장품통, 라이터, 건전지 ... 따위를 시도 때도 없이 태운다.
엊그제 추석 하루 전에는 저 몹쓸 고약한 할망구는
제 집 안마당에 잔뜩 쓰레기를 모아놓고는 흉한 냄새를 피우며 태우고 있었다.
그리고는 추석 때에는 제 귀한 아들놈, 며느리, 손자들을 햇살처럼 맞이 할 것이다.
선과 악, 미와 추과 하루 저녁사이에 자반뒤집기를 한다.
이 어찌 천하고 천하다 하지 않을손가?

내겐 ‘촌것’들이 ‘날것’, ‘물것’보다 하나도 귀하지 않다는 것을,
여기 시골에 들어와서 깨달았다.
한참이나 늦은 터이다.
내가 도시에 살 때는 ‘촌것’들을 사회적 약자라고,
무슨 이슈만 터지면 한껏 응원하며 한 편이 되었었다.

하지만, 여기 와서 살아보니 거개는 환경파괴자이며,
경우 없는 무지렁이가 태반이다.

나는 이내 농부는 경외의 대상이지만,
‘촌것’은 상대할 것들이 아니라는 알게 되었다.

나의 과제.
나는 여기 와서 참 농부를 찾아내 ‘사귐’과 ‘모심’의 인연을 지어야 한다.
아니 정작은 내가 농부가 되는 것이 먼저일 터임이라.

千行百行,種莊稼才是正行

이 세상에 천 가지 만 가지 행함이 있지만,
농사처럼 바르고, 크고, 순수한 것이 없다.

이러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온 천하인이 이 말을 믿지 않게 된 것이 이미 오래 전이다.
이젠 그나마 노루꼬리만하니 남은 이것조차 미국, 호주, 프랑스 등 외국에 다 줘버리려고 한다.
그것도 위정자라는 치들이 앞장서서.

거미에서 시작하다가 결국은 예까지 이르렀다.
그래 나의 의식은 매운 고추 먹고 맴돌듯,
이리로 흘러든다.

저치들이,
이게 실인즉 내 말이 아니라,
호질(虎叱)인 듯,
지주노호(鼅鼄怒號)라고 여길 수나 있을런가?

행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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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은유시인 2011.09.17 17:03 PERM. MOD/DEL REPLY

    저도 불자는 아니지만 이유 없는 살생을 자제하지요.
    그래서 거미나 귀뚜라미 등 익충이 방 안에 들어왔을 경우
    그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풀밭에 데려다 줍니다.
    그런데 죽일 수밖에 없는 생물이 있지요.
    모기나 파리, 바퀴벌레는 발견 즉시 죽입니다.
    그러니... 살생을 너무 많이 해서 죽어 천국 가기는 틀린 것 같습니다.
    한편 모기나 파리, 바퀴벌레보다 더 못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들을 몽땅 처죽일수만 있다면 죽어 지옥가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2. bongta 2011.09.17 19:36 PERM. MOD/DEL REPLY

    수호지에 흑선풍 이규(李逵)란 인물이 있습니다.
    도끼를 잘 다루지요.
    상대의 목을 마치 매운바람이 동백꽃 따듯 싹둑 잘라버립니다.

    이자를 그 누가 도부수(刀斧手)라 이를 터인가?
    이는 광정(匡正) 즉 굽은 것을 곧게 펴 다리는 정의한(正義漢)이지요.
    사천왕 역시 그 험상궂은 얼굴을 하며 악을 다스립니다.
    부처가 위광으로 이들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실인즉 이들의 노고를 앞잡이 세워 뭇중생을 위령(威令)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묵자(墨子), 양주(楊朱)는 유가(儒家)에선 별로 치질 않습니다.
    같은 유가이지만 맹자(孟子) 역시 아성(亞聖) 정도로 할인해서 대우해줄 뿐입니다.
    모두 다 한쪽으로 치우쳐 편급되었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기도가 없다면 동네 극장은 이미 양아치 소굴이 되었을 것이며,
    사천왕이 없었다면 불당은 저 이스라엘의 예배당처럼 진작 환전상 소굴이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는 본인이 기도도 되고 극장주도 되고,
    안팎으로 활약한 열혈한(熱血漢)이지요.
    정말 존경스럽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분입니다.

    신을 저는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기독교인 중에서 제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직 예수 한 분뿐입니다.

    저는 묵자, 순자를 제대로 대우해주었다면,
    서양 못지않게 동양에서도 과학이 빼어나게 발달하였을 것이라 믿습니다.
    제가 보기에 저들은 편급되었던 것이 아니라,
    일가(一家)를 이룬 전문가 엘리트였을 뿐인 것이지요.
    반면 공자와 같은 이는 다만 중용지덕을 지키고,
    전체를 종합적으로 아우르며 균형을 잡는데 뛰어났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마다 다 제 목청으로 제 노래를 잘 불렀던 것이지요.
    여기 우열은 없다는 것이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저의 소신입니다.

    저는 제가 진흙 바닥에서 꽃을 피어내는 연꽃은 될 수 없을지라도,
    늘 피로 칠갑을 한 흑선풍 이규란 캐릭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규는 가는 것마다 피를 부르지만,
    상대의 목이 따일 때마다 그 자리엔 탁련(托蓮)하듯,
    새 세상이 열리며 연꽃이 피어오릅니다.

    저 더러운 것들, 흉하고 악한 것들을 향해 저도 도끼를 휘두르고 싶습니다.
    하지만, 다만 글로나마 저의 나약함을 구휼할 뿐,
    현실에선 마냥 약렬(弱劣)한 사람인 것이 가여울 뿐이지요.

    바로 우리 농원 앞,
    뜬장에 갇힌 저 가여운 중생을 구하지도 못하며,
    폐비닐을 마구 태우는 이웃 하나 막지 못하고 있지요.
    그저 눈뜬 봉사, 청맹과니 당달이며,
    접시에 담긴 허울 좋은 문어 우끼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언제 여기 언덕 위에 바람이 불면,
    그에게 저의 고배(苦杯)를 닦아 맑은 술 한 잔 올리며 함께 떠나고 싶습니다.
    안타까움도 위선도 없는 유리광불국토(琉璃光佛國土)로.

    질병도 두려움도 없는 그곳.
    얼마 전 제가 감히 말씀드린 장량과 황석공.
    그 인연.
    지병인 당뇨에다 결핵이 겹치셨다는군요.

    유마거사(維摩居士)이어든, 약사여래(藥師如來)이어든
    이들 모두 다만 이야기책에서만 나툴 뿐,
    현실은 언제나 어둡고 춥다.

  3. 은유시인 2011.09.19 00:04 PERM. MOD/DEL REPLY

    칠팔년 전인가 사하구청과 의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하구에는 아파트 단지가 많아서 더불어 회색빛 볼성사나운 옹벽이 많습니다.
    높이가 4~5미터, 길이가 수백미터에 이르는 옹벽이 열 군데가 넘습니다.
    그래서 저희 사하신문사는 전국 벽화대회를 추진할 계획을 세웠고
    사하구청에서 주관하고 예산 1500만원을 보태라고 요구했고,
    저희는 기업체 스폰서를 구해 1천만원 정도 조달하려 했지요.
    전국 응용 미술대학생들에게 공문을 보내
    1차 시안을 제출토록하고 그중 20개 팀을 선별하여 벽화를 그리게 할 계획이었지요.
    1등 팀에겐 상금 1천만원, 2등에겐 500만원, 3등에겐 300만원 등
    상금으로만 2천만원이 나가는 그런 대회입니다.
    대회만 잘 성사된다면 사하구는 전국적으로 벽화그리기대회로 유명해질 것이고
    사하지역의 옹벽들이 그 가치를 메길 수 없는 대작들로 볼만했을텐데...
    그런데 사하구청장은 거듭 좋다고 했으나 공무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반대하여 무산됐습니다.

    그 2년후쯤 동래천 옹벽에 몇몇 대학생들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어느 순간 명물이 되어 많은 주민들이 찾는 공원이 되었다는 언론 보도를 접했습니다.
    그저 몇몇 대학생들이 취미로 그렸을 뿐인데....

    엊그제 부산권 신문에서
    사하구청이 관광홍보차 옹벽에 부조물을 설치하는데 12억원이 들었다 하여
    어제 찾아가 보았습니다.
    길이 100여미터 옹벽에 갈매기와 파도 등의 그림들이 마치 우윳빛 아크릴 간판처럼 돌출되게
    그리고 휘황하게 옹벽을 장식했더군요.

    12억원이라....

    하긴 다대포해수욕장 개발이랍시며
    얄궂은 분수대와 화장실 하나 달랑 만들어놓고 그게 326억원 들인 기네스북에 올릴만한 작품이랍니다.
    제가 아는 사하구 공무원들은 어찌나 손이 큰지 12억원 정도는 애들 군것질값 정도로 아는지
    서슴없이 쓴다는 겁니다.
    그리고 관에 아이디어 제공해봐야 이를 대하는 공무원들은 시큰둥하게 여기지요.
    자신들의 아이디어나 가치가 있다 여길 뿐이지 민초들의 아이디어는 우습게 알고 관심조차 갖질 않는 다는 겁니다.

  4. 사용자 bongta 2011.09.20 10:35 신고 PERM. MOD/DEL REPLY

    벽화라면 그럴듯한 것인데요.

    Graffiti도 인상적이더군요.
    스프레이를 아이들이 가지고 다니면서,
    자신의 정치적 소신 또는 문화적 일탈을 야밤에 그려놓고는 도망가지요.
    무엇인가 가슴에서 샘솟는 것, 머리에서 피어오르는 것들을,
    밖으로 표출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성 중에 하나일 터인데,
    아파트 옹벽 벽화의 경우에도,
    저들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리고,
    그들의 에너지를 선용하면 의외로 좋은 효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Graffiti artist가 남에게 이용당하는 것을 용인할런지는 모르지만.

    저희 서울 북한산의 경우,
    얼마 전 목재로 바닥을 깔고 난간을 둘러쳐서 산책로를 만들어놓았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수억은 들었을 터인데 거기는 제가 전에 늘 다니던 길입니다.
    얼마 전 둘러보았는데 화가 엄청 나더군요.
    두 사람이 서로 스쳐 지날 때면 서로 부딪힐 새라 몸을 엇갈리게 틀어야 하니,
    서로는 서로에게 거추장스런 존재로 전락하지요.
    게다가 거대한 회랑(回廊)에 갇힌 듯,
    이것은 뭐 시민을 수인(囚人)으로 가둬둔 느낌이더란 말입니다.
    예전에 흥이 나는대로 샛길로 얼마든지 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꼼짝없이 출구까지는 나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설혹 샛길로 가지 않더라도,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유보하고 있다는,
    자유, 그리고 해방감이 관청으로부터 도적질 당한 것이지요.

    이를 책(柵)이라 하는 것 아닙니까?
    柵이 무엇입니까?
    무엇인가 안팎을 가르고, 밖에 것이 안으로 침범하지 못하게 막는 장치인 것이지요.

    너와 나를 가르는 책략, 장치.

    저 柵으로 인해 자연과 사람이 분리가 된다는 것을,
    저들 관청 작자들은 알지 못하는 것일까요?
    설마 저들도 사람인데 그럴 리는 없을 것입니다.
    수억 짜리 관급공사하면 업자가 돈을 버는 것은 틀림없지만,
    저들에게도 어떤 기대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대체가 지방의회는 왜 만들었단 말입니까?
    처음엔 의원들 명예직으로 한다고 하더니만,
    지금은 수천만 원씩 돈까지 주면서 기르지요.
    그런데 저들이 저런 부정부패를 블러킹만 하여도 그나마 조금 용서를 할 터인데,
    그들은 아마도 사우나탕에 가 있을 것입니다.

    아니 시민이 산에 왜 갑니까?
    도시 아스팔트, 콘크리트 건물에 지친 사람들이,
    잠깐이나마 흙을 밟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려는 것 아닙니까?
    멀쩡한 흙길에 왜 그 비싼 나무 널을 깔고 울을 친단 말입니까?
    이치들 필경은 내년엔 비단으로 만든 카페트 깐다고 기고만장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산에 가서 흙을 발로 느끼고 싶을 따름인 것을!

    참으로 통탄스런 일입니다.

    일개 구청인데 12억씩 탕진한다면,
    이들이야말로 탐관(貪官)이요 오리(汚吏)라 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그런데 이게 전국적인 현상이니 정말 하수상한 시절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먼저 제안하신 것이 채택 아니 된 것은
    아마도 예산이 너무 적은 것이 원인이 아니었을까요?
    가령 12억보다 많은 15억쯤 되는 안을 가지고,
    저들과 접촉하였으면 바로 진행이 되었을 터인데 말입니다.
    군것질이라도 12억은 조금 흡족스러운 양은 아니지요.

  5. 은유시인 2011.09.21 01:11 PERM. MOD/DEL REPLY

    이제 날씨가 확연하게 늦가을 날씨로 변했더군요.
    간밤엔 추워서 이불을 덮고 잤습니다.

    남이 하면 퇴폐요, 자신이 하면 로맨스....
    그런 의식이 너무 뿌리깊게 퍼져있어서...

  6. bongta 2011.09.21 08:54 PERM. MOD/DEL REPLY

    여긴 야간엔 6~7도라 이미 겨울 날씨입니다.
    첫서리가 10월 16일 경에 옵니다.
    포항은 이보다 한달 늦은 11월 16일지요.
    년중 일조량도 아랫지방보다 낮지만 일교차도 아주 심하지요.
    그래서 과수의 경우 당도가 높습니다.
    일교차가 크면 식물이 밤에 활동을 하지 못하니,
    양분이 소모량이 적고 이게 과실에 축적되어 그렇다 합니다.

    풀방구리를 매일 산책 시키면서 알게 된 것인데,
    여기 논두렁가에 심어놓은 콩이 9월 들어서자,
    하루가 다르게 급속하게 비대하더니만 콩이 여물고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저게 언제 자라나 할 정도로 그저 별 볼 품이 없었거든요.
    막판 가을에 힘을 바짝 내고 있는 것이지요.
    다음 생을 예비하고 있는 것은 이렇듯 치열하군요.

    이를 일러 옛 사람들이 숙살지기(肅殺之氣)이니 금화교역(金火交易)이니 하는 것일 것입니다.
    스스로를 불살러 다음을 기약할 때 슬픔과 희망이 교차합니다.
    어미는 죽고 자식은 살아가는 윤회가 면면 이어지는 것.
    가을이 쓸쓸한 것은 현 존재가 모두 나중을 기약하며 스러져야 할 운명임을 자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중은 자식도 없는데 무엇을 기약하려는 것일까요?
    스스로 거세한 자로서 저들은 석가의 자식이 됩니다.
    중 중엔 석(釋)씨 이름을 가진 자가 적지 않지요.
    가령 석지현, 석요원 등이 그들이지요.
    제 아비를 버리고 석가의 아들이 되었음을 자임하고 있는 것이지요.

    가을엔 나무들들이 단풍이 들며 치열했던 자신의 기억을 회상하며,
    마지막 남은 제 존재를 붉게 불질러 불질러 산화합니다.
    하지만, 제 아비를 죽이고 석가가 되겠다는 저들의 기약은 너무도 크고 높아,
    사시장철 잿빛 승복 속에 자신을 옭가둡니다.
    저는 걸어가는 스님의 잿빛 뒷모습을 보면,
    우주적인 가을, 우주적인 슬픔을 느낍니다.

    우주적 단풍의 색깔은 잿빛인 것을.

    아마도 정토(淨土)엔 유리, 호마 등 금은 보석의 빛으로 찬란한 것보다,
    저들이 건너와 북적이는 나룻터엔 잿빛이 넘실대고 있지나 않을까 싶군요.

  7. 은유시인 2011.09.24 17:01 PERM. MOD/DEL REPLY

    다음 달에 소형차 한 대 뽑습니다.
    7~8년동안 차 없이 지냈는데 편하더군요.
    여행 좀 하려고 뽑는데 큰 탈 없이 잘 탔으면 합니다.
    국도 따라 슬슬 움직일까 하는데
    계속 가다보면 혹 봉타 선생님 농장까지 가게될 것 같습니다.

  8. 사용자 bongta 2011.09.27 07:11 신고 PERM. MOD/DEL REPLY

    저는 지난 주 대구를 갖다왔습니다.
    실로 31년 만에 고속버스를 타본 턱입니다.
    그런데 서비스 수준이 그 때보다도 더 못하더군요.
    갈 때 기사가 14분이나 늦게 나타났습니다.
    배차 담당자들은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남의 일 대하듯 하는군요.
    정중히 사과하고 자초지종을 알리기만 하여도 양해할 수 있으련만,
    모두들 꽁무니를 빼고 슬그머니 눙치며 덮어가더군요.

    올 때 역시 또 문제가 발생합니다.
    발차 시간에 차가 오지 않더군요.
    그래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니 표에 적혀 있는 시간은,
    서대구역이 아닌 동대구역 기준이라고 합니다.
    표를 판 곳도 서대구역, 출발하는 곳도 서대구역인데,
    발차 시간은 동대구역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정 편리를 위해 그리하였을 터인데,
    그쪽 형편을 십분 받아들여 양해를 할 수도 있으련만,
    그 내용을 승객에게 적절한 수단을 써서 사전에 알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가령 그 시차 내용을 크게 게시를 하던가 하였어야지요.
    묻지 않고 있었더라면,
    15~20분 정도 늦추어진 표를 들고 그동안 서성거려야 했을 판입니다.
    그 때 포항공대생 하나가 나타나 똑같이 이런 사정으로 묻고 있더란 말입니다.
    초행인 사람은 모두 저와 같이 어리둥절하니 헤매었을 것입니다.

    도대체가 나사가 빠진 치들이지요.
    이런 것 하나 살피지 못할 고속버스 회사라면,
    도대체 이들이 바퀴 나사는 제대로 조이고 운행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돈 버는 데는 모두 야차처럼 이악스런 사람들이,
    이런 데는 느슨하기가 오뉴월 염천 늘어진 쇠불알 같으니,
    우리네 삶이 산뜻해지긴 아직 멀었지요.

    꼴보수의 고장이라 내심 저들의 내막을 잘 엿보고 관찰해야지 하고 갔는데,
    미처 이럴 시간은 없었습니다.
    사투리가 억세 가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였지만,
    인심은 여느 고장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고 친절하더군요,

    예전에 시인묵객들이 낯선 곳으로 여행을 하게 되면,
    글을 남겨 저들의 빼어난 문향(文香)을 꽃잎처럼 떨구어둡니다.
    자동차를 장만하시고 전국을 유람하시게 되면,
    편지개화(遍地開花)라,
    들리시고 머무르시는 곳 모두 꽃이 핀 듯,
    처처유청산(處處有靑山)이라,
    곳곳이 푸르른 묏동산인 듯,
    좋은 인연 거두시고, 꽃같은 소식 떨구어두시길 빕니다.

    여긴 황진이는 가고 없지만,
    벽계수(碧溪水) 임진강, 한탄강의 고장입니다.
    청산(靑山)이 있고, 벽계(碧溪)가 있으니,
    벗을 기다리는 일만 남은 듯.

  9. 은유시인 2011.09.28 20:00 PERM. MOD/DEL REPLY

    1982년부터 차를 소유했지요.
    그리고 1984년에 운전면허를 취득했고요.
    그러니 20년 넘게 운전을 했고 자연히 녹색면허라 1종 보통을 취득했습니다.
    그렇게 자가운전만 하다가 차를 처분하고 난 뒤 처음엔
    지하철료나 버스료를 몰라 물어봐야 했지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때 첨엔 내 자신이 거지처럼 느껴져 멋쩍고 창피했지요.
    근데 이후론 아주 편해졌습니다.
    운전하랴 주차하랴 신경쓸 필요가 없이
    그저 운전자가, 아니면 원래 운행코스대로 데려다 주니 말입죠.
    차가 생기면 편리하기도 하겠지만
    또 피곤하고 졸려도 운전해야죠,
    지리 잘 모르면 거듭 물어가며 운전해야죠,
    사고날까 늘 조마조마해야죠,
    주차비용 신경써야죠....

  10. 사용자 bongta 2011.09.29 13:31 신고 PERM. MOD/DEL REPLY

    제가 군대 제대하고 처음 배운 것이 운전입니다.
    그게 1978년도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대학만 입학 하여도 바로 배우는 것이며,
    식구 사람 수마다 차 한대가 있을 형편에 이르렀지요.
    예전에 차마(車馬)를 둘 정도면 권세가나 가능했습니다.
    차마가 있으면 차부(車夫)가 따르고, 벽제(辟除)잡이가 잡인을 물렸지요.
    우리 대만 하여도 자가용이 있는 집엔,
    차부 즉 운전기사가 별도로 있었습니다.

    그러한 것인데,
    인제 아이들도 차를 척하니 몰고 길을 나섭니다.
    어느 순간 모두 권세잡이가 되었더란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네 삶도 영광과 위엄을 갖춰 그리 승격하였는가?
    마음만 내면 달나라까지 우주선을 내몰아 달려갈 수 있는 세상이지만,
    과연 달을 노래하던 이태백의 시심이,
    우리네 현대인의 가슴 우물에 한 줌인들 괴어 있을거나?

    명박처럼, 강바닥 퍼내고, 거기 깃든 뭇생명 쫓아내며,
    흑색 천지를 녹색 혁명이라 거짓 선동하며,
    황금광을 캐내기 바빠,
    우리네 가슴엔 한 줌 시심은커녕,
    욕심이 시뻘겋게 쇳물처럼 덩이져 흐르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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