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개를 키우지 마라

생명 : 2012. 1. 6. 17:39


추운 겨울을 잘 지내라고 비닐하우스를 강아지 헤미에게 내주었으나,
농원으로 내려가 볼 때마다 녀석이 말썽을 일으킨 것을 목격하게 된다.
(※ 참고 글 : ☞ 2011/11/29 - [농사] - 보헤미안(강아지))

한번은 슬리퍼 한 짝이 없어졌기에 한참을 찾았으나 못 찾았다.
필경은 녀석이 물고 나가 어디엔가 흘려놓았을 것이다.
다음번에 가보았더니 남아 있는 슬리퍼 한 짝마저 없어져버렸다.
아마도 봄이 되어 날이 풀려야 농원 풀밭 어디 한 구석에 처박힌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우스 안에 설치된 중문엔 커다랗게 구멍을 뚫어놓았다.
매번 갈 때마다 하나씩 구멍이 늘어나더니만 요즘엔 다행히 그쳤다.

바깥바람이 들이치지 않는 장소에 자리를 마련해주었으나,
굳이 내게 조금이라도 가까이 하겠다고 방문 앞에 또아리를 튼다.
도리 없이 문가에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드나들 때마다 까치발을 하고 몸을 외로 틀어야 할 판이다.

녀석은 최근엔 암컷을 새로 사귀어 날밤을 지새운다.
이 추운 날에도 밖에서 지들끼리 사랑놀음을 한다.
하지만 헤미는 키가 작아 커다란 저 암컷과는 짝짓기가 어려울 상 싶다.

어젠 커다란 수컷 한 마리가 그 암컷과 함께 나타났다.
평소와는 다르게 헤미가 안에서 짖으면서도 밖으로 나가진 않아 의아하게 생각했다.
내가 저들을 살피러 밖으로 나갔더니만,
헤미가 나를 믿고 밖으로 따라나오다가,
저 큰 수컷에게 된통 당했다.
필시 그동안에도 몇 차 당하였기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안에서 짖기만 한 것일 것이다.

커다란 수컷은 나를 무시하고,
뒤를 따르던 헤미에게 쏜살같이 들이닥쳐 덮쳐버렸다.
마당가엔 순간 단말마의 비명 소리가 찬바람을 찢고 허공을 가른다.

나는 나무더미에서 기다란 장대를 급히 찾아들고,
녀석을 겨냥하며 내리쳤다.
깜짝 놀란 수컷은 헤미를 내버려두고 줄행랑을 친다.
내가 내달려가며 호통을 치니 암수가 저 멀리 달아난다.
빚쟁이 두 양주가 어둑새벽을 달려 야반도주하듯,
저들이 몸에 묻은 아침 이슬을 털며 도로가로 튀어나간다.
큰 녀석 둘이 허둥지둥 달려가는 모습을 보자하니,
이 또한 아스라하니 번지는 슬픈 정경임이라.
쫓고 쫓기는 삶의 질곡에 갇힌 저들 그리고 중생들.

저들을 저리 내보내고,
고개를 돌려 주차장 마당가를 둘러보며 헤미를 연신 찾아 부르나 행적이 묘연하다.
녀석은 이미 하우스 안으로 뺑소니를 친 게다.
내가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니 헤미는 오들오들 떨며 구석으로 몸을 숨긴다.
걱정 없다고 아무리 달래도 자꾸 구석으로 파고든다.

졸지에 그동안 사귀던 여자 친구도 잃고,
게다가 빼앗아간 녀석에게 폭행까지 당한 헤미.
이 엄동설한에 참으로 가련하다.
녀석이 오들오들 떠는데,
저게 추워서만도 그런 것이 아니라,
실연의 상처에, 분한(憤恨)이 사무쳤기 때문이리라.

이리 생각이 드니,
내 마음도 덩달아 언짢기 짝이 없다.
나는 구석에 새로 자리를 마련해 주고 난로를 가까이 당겨주며,
녀석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저들은 틈만 나면 암수가 그리 사랑에 목을 매어 잔명(殘命)을 불태운다.
녀석들은 짧은 생애를 저리 애달프게 지우개로 지우듯 건넌다.
부나비가 불에 달겨들듯,
저들은 저 잔인한 삶의 바다를,
색욕을 기름 삼아 불 당겨, 불 당겨 제 생명을 불꽃으로 산화시키며,
고통에 젖은 삶을 애써 잊듯 저리 건넌다.

갑자기 나타난 수컷은 이웃집 개다.
그는 일 년 내내 짧은 줄에 매어져 지낸다.
단 한 번의 산책도 못하고,
찬바람 맞으며 밖에서 개집 하나에 의지하여 홀로 겨울을 난다.
겨울엔 집주인이 서울로 가기 때문에,
녀석은 거의 홀로 지낸다.
여기 연천은 서울보다는 한참이나 추운 동네다.
그러한데도 개집 안엔 하다못해 지푸라기 하나 깔려있지 않다.
맨바닥에서 겨울을 나는 저들을 멀리서 쳐다보면,
참으로 모질고도 박한 인연에 옭혔음이라,
나는 무망하니 그저 안쓰러워할 뿐이다.

어쩌다 줄을 풀고 뛰쳐나오면,
그게 유일한 해방의 시간이다.
한참을 두고 보며 ‘그래 마음껏 자유를 누리거라’ 하면서도
한편으론 앞일이 걱정이 되어,
지난여름에는 애써 잡아 제 집에 다시 묶어주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으론 이게 과연 잘하는 짓인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나는 천하의 모든 갇힌 개들이 자유롭게 풀려 영원 속으로 잠행하길 꿈꾼다.

주인은 아마도 이 일을 모를 것이다.
저집 마당가에 부려진 개집은 뒤쪽으로 뒤뚱 기울어져 바닥이 한쪽으로 쏠려 있다.
내가 몇 년 동안 이를 보면서도 늘상 답답하게 생각하고 있던 차라,
당시 지나던 젊은 부부의 도움을 받아,
차제에 뒤를 벽돌로 괴어,
얼추 평평하니 바닥을 바로 잡아주기도 하였다.

당시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내게,
젊은 부부가 묻길 돌아다니는 저 개가 뉘 집 개이냐고 하여 거래를 텄다.
자기네가 개를 여러 마리 키우는데 임자가 없으면 데려다 키울 셈이었다 한다.
나는 임자가 있는 개라고 일러주었다.
연필에 침을 묻혀 꼭꼭 눌러쓰듯 그리 힘주어 밝히며.

저 집엔 들어갈 일이 없는데,
나중이라도 행여 잡혀가는 불상사가 일어날까봐,
짐짓 저들 부부를 앞세우고 개를 잡아 저 집에 묶어주었던 것이다.
허나,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니 다른 집이라한들 불행히 잡아 먹히지만 않는다면,
예보다 더 나쁠 것도 없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아니 잡아먹히면 차라리 이 고통스런 삶을 일찍 끝낼 수 있는 호기로 생각해보는 것은 과연 그른 것일까?

개를 기를진대,
제대로 건사를 못할망정,
단속이나 잘하던지,
툭하면 개줄이 풀려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게 만든다.
조그마한 개도 아니고 덩치가 제법 큰 풍산개인지라,
자칫 인사 사고라도 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터인데,
주인은 오불관언 무심하다.
뭐 하기사 '돈이 되는 일이 아니니까.' 그럴 만도 하리라.

나는 세상 사람들이 일없이 개를 키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천하엔 개를 키울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한 여름 외양간에 날아든 하루살이, 똥파리처럼 참으로 많고도 많다.
여기 시골은 더욱 더 그러한 몰인정한 위인들이 많다.
차마, 어찌 개들을 저리 고통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음인가?
저들 혈관엔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저들 가슴엔 아픈 정한(情恨)이 가을비처럼 추적추적 나리고,
머리엔 슬픈 기억이 기왓장처럼 켜켜로 쟁이고 있음이라.

단 한번만이라도 돌려 생각하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을 왜 저들은 아지 못하는 것인가?
참으로 모질고도, 어리석은 이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개에게 크나 큰 고통을 안겨주고,
아울러 사뭇 무거운, 그리고 무서운 죄를 짓는 일인게라.

내 이르노니,
개를 책임지지 못할 양이면, 행여라도 키울 생각을 하지들 말라.
저리 개들, 동물들을 마구 대하는 각다귀 같은 자들을,
천하인은 모두 입을 한데 모아 꾸짖고, 손가락을 들어 나무라야 한다.
이게 저들 가련한 개, 그리고 저들 죄많은 인간들을 구하는 일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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