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과 계도(鷄刀)
이재명의 농지 조사란 어처구니 없는 일탈을 보고,
나는 전부터 할계언용우도(割鷄焉用牛刀)의 고사를 생각했어.
'닭을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느냐?'
이런 뜻이지만, 이재명의 헛발질을 두고는,
할우언용우도(割牛焉用鷄刀)로 고쳐잡고 실소를 지었지.
그는 계곡물 사업 그리고 코로나19시대에 신천지를 압박해들어가는 행동력을 통해,
일 잘하는 행정가로 인민들 머릿 속에 새겨졌어.
하지만, 조그만 경기도가 아니라 큰 나라 살림을 맡자 미덥지 않은 모습을 노정하며 여러 사람들을 실망시켰어.
그 중 농지 조사는 대표적인 헛발질이지.
그래 '소 잡는 데 어찌 닭 잡는 칼을 쓰겠느냐?'란 의문을 일으킨 것이야.
기실 할계언용우도(割鷄焉用牛刀)는 논어에 나오는 말이지만,
공자가 자유가 무성이란 조그마한 읍장 노릇을 하는데,
게를 지나자 거문고와 노래 소리(예악)를 듣고 던진 말이다.
이러자 자유는 즉각 이리 반문하였지.
"예전에 저는 스승님에게서 '군자가 도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 쉬워진다'라고 들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예악과 도(道)는 지위나 마을 크기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어느 곳에나 적용되어야 하는 보편 가치란 의미지.
그러자 공자는 제자들을 향해 자유의 말이 옳다며 농담을 한 것이라 말했지.
즉 큰 일, 작은 일을 따질 것 없이,
관리는 인민을 위해 갈심진력해야 한다는 말이야.
공자의 옛 가르침을 들어 공자의 할계언용우도를 반격한 셈야.
이재명은 경기도지사 시절, 갖은 범죄 혐의로 구설수에 올랐어.
그래도 그의 지지다들은 이를 검찰의 농간으로 치부하였지.
계곡물 사업 등 그의 행정력은 놀라운 것이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라 살림을 맡자,
그야말로 닭 잡는 칼이 소 잡자고 나댄 격으로 여러 문제점이 노정되고 말았지.
이재명의 실패는 그가 소잡는 칼인지 아닌지는 치지도외(置之度外)하더라도,
문제는 스스로 닭 잡는 역할을 자임한데서 예정된 것이야.
만기친람은 대단히 위험하다는 말을 나는 여러 번 하였어.
그는 입 싸게 전면에 나서 혓바닥을 털고 나섰음이니,
어찌 실수가 나오지 않을 도리가 있으랴?
게다가 밤을 패가며 sns와 씨름을 하니,
더욱 실수할 가능성이 많을 수 밖에.
내가 그를 두고 노무현 때 NATO(no action, talk only) 그 2기라 한 것이 전혀 과한 것이 아니거든.
노무현은 시도 때도 없이 화난 수탉처럼 아무나 붙잡고 토론하자고 덤볐어.
이재명은 토론에 그보다 못한지, 토론 하자고 설치지는 않았지만,
대국민 무대를 열고 그 위에서 만기친람 갖은 쇼를 다 벌이고,
밤을 패고 sns질로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자판을 두들겼어.
어찌 칼이 나지 않을 도리가 있으랴?
그러함인데도 그는 그 짓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어.
노무현의 말로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할 밖에.
이재명에게는 기실 논어의 저 말보다,
후한 왕충(王充)이 지은 논형(論衡)에 나오는 말이 더 귀하리라.

牛刀可以割鷄,鷄刀難以屠牛;剌繡之師能縫帷裳,納縷之工不能織錦;儒生能為文吏之事,文吏不能立儒生之學。文吏之能,誠劣不及;儒生之不習,實優而不為。禹決江河,不秉钁鍤;周公築雒,不把築杖。夫筆墨簿書,钁鍤築杖之類也,而欲合志大道者躬親為之,是使將軍戰而大匠斲也。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을 수는 있으나, 닭 잡는 칼로는 소를 잡기 어렵다.
자수를 놓는 재봉사는 장막과 치마를 바느질할 수 있으나, 실을 꿴 바느질꾼은 비단을 짤 수 없다.
유학자는 관리의 행정 업무를 해낼 수 있으나, 관리는 유학자의 학문을 세울 수 없다.
관리의 능력은 진실로 뒤떨어져 미치지 못하는 것이요, 유학자가 행정 업무를 익히지 않는 것은 실로 뛰어남에도 하지 않을 뿐이다.
우임금이 강과 하천을 소통시킬 때 몸소 가래나 괭이를 잡지 않았고,
주공이 낙읍을 건설할 때 몸소 공사용 흙다짐 몽둥이를 잡지 않았다.
무릇 붓과 먹, 문서 관리는 가래, 괭이, 흙다짐 몽둥이와 같은 부류인데,
원대한 도(大道)에 뜻을 품은 자로 하여금 이를 직접 하게 하려는 것은,
장수에게 직접 전투를 하게 하고 뛰어난 목수에게 직접 나무를 깎게 하는 것과 같다."
아아,
牛刀可以割鷄,鷄刀難以屠牛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을 수는 있으나, 닭 잡는 칼로는 소를 잡기 어렵다.'
징수가 직접 전투에 나섰음이니,
어느 틈에 전략을 세우고, 전술을 짤 수 있으랴?
이재명은 鷄刀임을 스스로 자임하고 있음이니,
나라 살림을 그 누가 있어 제대로 돌 볼 수 있으랴?
실로 불행한 일이라 하겠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책을 나는 여기에서 한비자의 형명참동(形名參同)을 예로 들며 여러 차례 언급하였지.
그는 공부가 충분치 않은즉, 어찌 이 이치를 깨우칠 수 있으랴?
참으로 안타깝다.
그에게 기대를 하였으나,
역시나 쭉정이에 불과하였단 말인가?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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