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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곡자를 통해 본 negative feedback

소요유 : 2019.09.17 12:55


귀곡자를 통해 본 negative feedback


귀곡자(鬼谷子)는 본명이 왕선(王禪)이고, 호는 후(詡), 도호(道號)는 귀곡이다.

전국시대 맹활약한 인물인데, 종횡가(縱橫家)의 비조(鼻祖)로 추앙받고 있다.

종횡가는 전국 시대 진(秦)을 중심으로, 나머지 6국의 갈등, 긴장 관계 속에서,

펼쳐지는 외교술사, 속칭 세객(說客)들의 사상, 술수 등을 근간으로 형성된,

사상 집단을 이른다. 

다만, 귀곡자는 과연 실존한 인물인지 의심을 받고 있다.


그의 제자론, 종횡가인 소진(蘇秦), 장의(張儀)는 물론,

병가의 손빈(孫臏), 방연(龐涓)이 흔히 거론되는데,

이들의 생몰 연대를 기초로 추산해보면 대략 기원전 4세기 인물로 여겨진다.


그는 정치 외교는 물론, 병법, 음양, 예언술의 대가로 그려지고 있다. 

나는 소싯적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를 통하여 처음 그를 접하게 되었는데,

늘 궁금함을 억누를 수 없다가, 

후에, 귀곡자란 책을 읽고는 놀라운 감흥에 휩싸인 경험이 있다.


智用於眾人之所不能知,而能用於眾人之所不能。


보통 사람들이 아지 못하는 것,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것을 넘어,

지혜를 내고, 능력을 발휘하는 귀곡자 사상은,

흑도(黑道)인 양 싶다가도, 그 깊이에 놀라고,

정치(精緻)한 미침에 이르러, 아연 감탄을 금할 수 없게 된다.

가령, 손자병법은 총체적 전략을 밝혔다면,

귀곡자는 구체적 전술 기교에 철저하여,

흔히 이야기하듯 귀곡자가 위서란 비판을 무색하게 만든다.


나는 곧잘 반성(反省)에 대하여 논한 적이 있다.

이를 negative feedback(負反饋, 負饋還)이라 영역할 수 있는데,

본디 이는 공학적 용어이다.

특히 자동제어(automatic control)의 핵심 기술이다.


하지만, 이 양자는 내용상의 상사(相似)는 물론,

이해의 영역에서 상호 매칭이 잘 되어,

나는 늘 이를 꺼내어 인용하곤 하였다.


귀곡자엔 마침 이에 대한 아주 인상적인 글이 나온다.

하여, 오늘은 이를 여기 기록으로 남겨 두고자 한다.


古之大化者,乃與無形俱生。反以觀往,覆以驗來;反以知古,覆以知今;反以知彼,覆以知此。動靜虛實之理不合於今,反古而求之。事有反而得覆者,聖人之意也,不可不察。

(鬼谷子 反應)


“옛날 대화(大化)를 이룬 자는 무형의 것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되돌아가(反), 지난 것을 살피고, 되돌아와(覆), 앞으로 다가올 것을 증험할 수 있었다.

되돌아가, 옛 것을 알고, 되돌아와, 현재를 알게 된 소이가 이러하다.

되돌아가, 상대를 알고, 되돌아와, 나를 안다.


동정허실의 이치가 현재와 부합되지 않으면,

과거로 돌아가 이를 구한다.

일에는 반(反)과 복(覆)이 있다.

이것이 성인의 뜻이다.

살피지 않을 수 없음이다.”



(출처 : aspencore)


여기 대화(大化)란 만물을 화육시키는 작용을 말한다.

이를 이룬 자는 무형의 것을 갖추고 있다는 말은,

어떠한 일이라도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가령 유형의 것을 가지고 있다면,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무한의 사태에 대응을 모두 할 수 없다.

오로지 무형이라야, 모든 사태에 장애 없이 자유자재로 응변할 수 있다.


그 구체적 실현 요체는 바로 반(反), 복(覆)이 되겠다.

반은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을,

복은 미래로 되돌아오는 것을 지시 상징한다.


이는 그림에서 보는 바로 negative feedback의 도식에 딱 맞아 떨어지고 있다.

Vout 현재 결과치가 예상, 목표치를 벗어나면, - 動靜虛實之理不合於今

과거로 되돌아가, - 反古而求之。

gain 오차만큼 재조정하여,

현재를 교정(recorrection)하여 기대 만족해를 구한다.


헌데, 귀곡자의 이 말씀은,

단순히 시간적 편차를 교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動靜虛實을 살피되, 

상대를 겨냥 가늠하여, 

공간적 정보 취합, 평가를 거쳐,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전략적 병법내지는 외교적 종횡술에 미치고 있다.


反以知彼,覆以知此。


이는 곧, 손자병법의 지피지기(知彼知己)에 가닿고 있다.

귀곡자에선, 

반(反)으로 상대를 알고,

복(覆)으로 자신을 안다 하였다.

헌데, 이 과정은 마치 저 그림의 negative feedback system처럼,

일회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단 없는 지속적(持續的) 즉 반복(反覆) 측정, 평가의 연속체이다.

이렇듯, 손자병법에 비해 귀곡자의 경우엔,

보다 구체적이며, 미시적 접근 태도를 갖는다.


이를 상호 우열관계로 보기보다는,

상보적(相補的) 위치를 갖는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귀곡자의 반응(反應)편을 보면,

과시 negative feedback의 보고(寶庫)라 할 정도로,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심층적 접근을 통해, 깊은 이해에 도달하고 있다.


反聽, 反辭, 反默 ....


나는 특히 이 반(反)에 대한 섬세한 이해, 해석에 감탄을 하고 만다.

여기 반(反)은 여러 가지 함의를 갖고 있지만,

그 중 특히 중심 뜻은, 바로 반(返)에 가닿아 있다.

返은 辶+反으로 되어 있는데,

辶는 ‘쉬엄쉬엄 갈 착’으로,

走之旁 즉 ‘간다, go’란 동작태를 그려내고 있음에 주목하여야 한다.

하니까, 그저 고정적인 과거를 지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리로 직접 움직여 접근하는 모습을 함의(含意)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영어로 하자면, 

‘go back’ 또는 ‘go there and back’에 가깝다 하겠다.

물론 차후엔 복(覆)이 뒤따라 현실로 복귀하여야 하지만,

기실 반(反)엔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지적하듯, 覆也임이라,

이런 뜻도 이미 함장(含藏)되어 있기에,

복(覆)을 이어 더하여 나눠 다루지 않을 때에는, 반(反) 하나로써 모두를 아우룬다.


내가 바로 앞글에서,

 (※ 참고 글 : ☞ 표리부동(表裏不同))

여기 촌놈들이 잘못을 저지르고는,

이를 지적하자 하나 같이 ‘알겠다’라는 말 밖에 뱉어내지를 못했다 하였다.

이게 문제는 무엇인가?


知不足,然后能自反。


“아는 것으로 부족하다.

연후에 스스로 반성할 수 있어야 한다.”


‘go there and back’


하니까, 그들은 잘못 된 지점으로 가지도 않았고,

그러했음이니, 돌아올 바도 없다.

다만, 나는 ‘알고 있다.’라는 가치판단부재의 화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무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책임 자리로부터 자신을 거세해버리는 이 문법,

얼마나 비겁하고, 비열한가 말이다.

反躬自問(反問自己)

하니까, 여기엔 도대체가 엇그제 멀쩡히 살아 있었던 자신에 대한 물음조차 일어나지 않고 있음이니,

얼마나 인격들이 허름한가 말이다.


이들에겐 근본적으로 feedback회로가 오장육부에 장착되어 있지 않다.

심신 장애자들인 것이다.


故善反聽者,乃變鬼神以得其情。其變當也,而牧之審也。牧之不審,得情不明。得情不明,定基不審。變象比必有反辭以還聽之。欲聞其聲,反默;欲張,反斂;欲高,反下;欲取,反與。欲開情者,象而比之,以牧其辭。同聲相呼,實理同歸。


“고로 반청(反聽)에 능한 자는,

 (※ 反聽 : 자신을 비우고, 말을 하는 것보다, 상대의 말에 집중하는 상태를 뜻한다.)

귀신처럼 변화하여 그 실정을 파악한다.

상대에 맞춰 변하는 까닭에, 그 실정을 깊이 다뤄 살필 수 있다.

그 살펴 다룸이 깊지 못하면, 상대의 실정을 밝히 볼 수 없고,

실정을 바로 밝힐 수 없으면, 바른 기초를 닦을 수 없다.


상징과 비유를 바꿔 대응하면,

반드시 반사(反辭)가 나오는 즉, 이를 다시 들어(還聽) 분석 평가하여야 한다.

 (※ 反辭 : 나의 태도(말)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말)을 뜻한다.)


상대의 진의를 들으려면 반대로 침묵하여야 한다. - 反默

상대가 속마음을 드러내게 하려면, 외려 자신은 감추고 있어야 한다. - 反斂

상대를 높이려면, 자신은 낮춰야 한다. - 反下

상대로부터 취하려면, 자신은 주어야 한다. - 反與

상대의 실정을 열어젖히려면,

상징과 비유로써 그의 말을 끌어내어야 한다.

같은 소리가 서로 호응하듯,

실질 이해가 한 곳으로 귀착되게 된다.”


여기 등장하는 반(反)은

병법, 외교술, 논쟁, 인간살이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실로 반(反)은 우주적 수레를 굴리는 자연의 이치, 장치와 같은 것이다.


古之善揲蓍灼龜者,能于今中示古,古中示今;高中示下,下中示高;小中示大,大中示小;一中示多,多中示一;人中示物,物中示人;我中示彼,彼中示我。是道也,其來無今,其往無古;其高無蓋,其低無載;其大無外,其小無內;其外無物,其內無人;其近無我,其遠無彼。不可析,不可合,不可喻,不可思。惟其渾淪,所以為道。

(文始真經 八籌)


“옛날 점을 잘 치는 자는,

오늘 가운데 과거를 보이고,

과거 가운데 오늘을 보이며, 

높은 가운데 낮은 곳을 보이고,

낮은 가운데 높은 곳을 보이며,

작은 가운데 큰 것을 보이고,

큰 가운데 작은 것을 보이며,

...

내 가운데 상대를 보이고,

상대 가운데 나를 보인다.

이게 도의 본 모습이다.


왔다한들 오늘이 없고,

간다한들 과거가 없으며,

...

그 큼에 밖에 없고,

그 작음에 안이 없으며,

...”


도의 본 모습은 혼륜(渾淪)되어 있는 것.

귀곡자는 이를 반(反)이란 글자 하나를 들고,

이리 종횡무진 거침없이 헤집고도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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