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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이 석상과 빠돌이

소요유 : 2024. 2. 20. 16:36


- 개혁신당 합당 철회와 관련한 단상 하나 -

과도한 기대가 부른 비가역적 예정된 참사라 하겠다.
사람들은 한 인물의 조그마한 성과에 취하여,
자신의 원망을 투사하며 거대한 신기루를 쌓는다.
자신은 이루지 못하지만,
그는 나를 대신하여 뜻을 이룰 것이라 생각한다.
거대 석상은 이렇게 하여 고대부터 지금까지 조성된다.
미망들.
이육사의 광야 역시 이런 형식을 밟는다.
...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가난한 자는 이명박의 부자 되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그에게 표를 주었는가?
아니다.
정작은 자신은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지만,
천고 뒤 초인이 백마 타고 나타나리라 믿는 것이다.
속은 게 아니라, 자신이 자진하여 천국행 티켓을 구매하였을 뿐이다.
그 믿음이란 언제나 그러하듯 현실을 방기한 판타지에 불과하다.
석빠, 개딸, 종말론자들은
초인을 기다리는 모아이 석상들이다.
한 곳을 응시하는 저 미망들이라니 도대체가.
패거리에 부역하는 일부 평론가들은,
이들을 이끌며 연신 가난한 노래의 씨앗을 뿌리는 주술사에 불과하다.

(출처 : 圖片來自網絡)

千人千色 萬人萬色
천 사람이 한 곳을 보고 있다든가,
한마음으로 묶어 무엇을 도모하려는 자가 나타난다면,
묘향산 구시월 독사를 보듯 의심하여야 한다.
도대체가 사람이 어찌 하나로 같아질 수 있단 말인가?
흔히 마음을 한데 모아,
이 일을 완수하자.
이리 꾄다.
그리고 바지저고리들은 이런 상태를 지고지순하다고 여긴다.
어림없는 짓이다.
저런 상태의 최종 수혜자는 국가이거나, 주창자 하나에 귀속되고 만다.
大醉 역시 철 지난 적하이론을 들먹이며,
부자 감세를 해야 네들 좁쌀들 주머니가 두둑해진다 꾀지 않든?
그는 국어 무용론까지 펴고 있다.

 
종말이 일어나지 않아도,
교주는 뻔뻔하게 다시 다음 회차 종말을 세일한다.
그는 왕국행 티켓 팔아 모은 돈으로,
강가에 그림 같은 왕국의 성을 쌓고,
아리따운 젊은 여인과 함께 지상의 삶을 즐긴다.
일이 일어나기 전 열심히 석이를 띄워주며,
남조선 땅에 위대한 수령님이 나타났다 손나팔 불었던 치들이 있다.
특히 정치 평론가 중엔 신명을 다 바쳐 빨아주던 자가 있다.
이제 선전이 실패로 돌아갈 조짐이 일어나자,
‘바닥에 엎지른 물은 다 똑같은 엎지른 물일 뿐이다.’
이리 말하며, 비장한 톤으로 장한가를 부르며,
제가 예언한, 그러나 실패한 현실을 조상하는 상객 노릇을 하며,
유유히 만장輓章 따라 골목길을 빠져나간다.

그들이 진정 어리석기 짝이 없는 석빠와는 다른,
평론가임을 자임하고 있다면,
만장 뒤를 따라 나설 일이 아니라,
과오를 반성하고 상여 안으로 들어가 망자와 함께 자리를 나눠야 하리라.
부처가 가섭에게 마음을 전한 소위 삼처전심三處傳心 가운데,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란 게 있지.
부처가 급고독원에서 설법을 할 때,
가섭이 뒤늦게 찾아왔다.
그러자 부처는 앉은 자리 반을 내주며 앉으라 하였다.
대개 법을 나눴다 보지만,
기실은 세가 고단한 가섭의 면을,
대중 앞에서 세워주기 위한 무대 장치 중 하나일 것이다.
석이처럼 인성에 한계가 있는 자가 자리를 스스로 내줄리는 만무한즉,
그들 평론가는 비집고 들어가서라도 그 상여 자리를 나눠야 하리라.
책임을 숨길 일이 아니다.
 
고대 제왕학 중 으뜸은 한비자와 면상학 즉 관상학이었다.
정치나 예법은 차라리 그 다음이었다.
왕이 모든 일 직접 다 할 수 없는 법.
그러니 두고 부릴 아랫 사람 간별하는 일처럼 중요한 게 없었을 터.

세상엔 교언영색으로 티켓을 판매하는 이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너무도 교묘하고, 달콤하여,
대부분 우민들은 홈빡 빠져 들어 옷고름 풀고, 전씨 말대로 팬츠 내리며,
기꺼이 속살을 내어준다.

우시장, 말 시장을 가보라.
하다못해 진돗개 우수종 선발 대회를 가보라.
모두 관상을 보며 품종의 우열을 가린다.

마왕퇴 한묘에서 고전이 쏟아졌다.
여기 상마경相馬經이 출토되었다.
말 감별하는 법이 쓰여진 책이다.거기 한 구절을 볼까?
法曰:眼,大盈大走,小盈小走
말의 눈이 크면 잘 달리고, 작으면 잘 달리지 못한다.

말 못하는 짐승은 말로써 사람을 꿰지 않는다.
그런즉 그의 相을 보고 품성을 엿본다.
사람은 의식을 가지고 있기에,
말, 얼굴, 행동을 꾸밀 수 있다.
그러니 외려 이게 정확한 사람 됨됨이를 가리는 데 방해가 된다.
그런즉 관상학이야말로 본바탕 사람의 모습을 잘 가려내는 술법이 될 수 있다.

나는 정치인들의 관상을 살피곤 한다.
석이 역시 이미 판정이 끝났다.
나의 관상법은 이제껏 1할 이상 어긋난 적이 없다.

하지만 설사 관상법을 모르는 일반인들이라 하여도,
한 인물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만 보아도,
그 인물의 됨됨이를 얼마든지 엿볼 수 있다.

이를 게을리 하고 뒤늦게 장탄식을 뱉어내고,
복수불반覆水不返 넋두리를 쏟아내고 있을 뿐인 것을.
어리석은 미망들.

分久必合,合久必分
나눈 게 오래면 필히 합치게 되고,
합친 게 오래되면 반드시 나뉜다 하였음이다.
헌데 석가 무리들은 가을 바람에 바르르 흔들리는 잔물결처럼,
아녀자 눈 흘기는 짬도 되지 않아,
합치고 나뉘기를 되풀이 하고 있음이니,
과시 반복무상反覆無常한 무리들이라 할 밖에.

관상법 이것을 들어 외부에 옳다고 강변할 생각 추호도 없다.
다만, 한 인물의 언동, 그리고 평론가들의 말이란 게,
얼마나 허망한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는 말만은 강조해두지 않을 수 없다.

축생 보고 똥오줌 제대로 가리라 혼을 내 줄 수는 없듯이,
넋줄 놓고 개소리 찌걸이는 석빠들이야 원래 그런 미물들이니 놔둔다하겠지만,
떡하니 평론가란 직함 걸고 석이 빨며 일용할 국밥 해결하던 자들은,
이들을 옳게 이끌지 못하고,
세상에 바른 도리를 전하지 못한 허물이 있음이니,
되우 반성해야 하리라.

***

立時雞叫了第二遍.彼得想起耶穌對他所說的話、雞叫兩遍以先、你要三次不認我。思想起來、就哭了

'바로 그 때에 닭이 두 번째 울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는 땅에 쓰러져 슬피 울었다.'
(마르코의 복음서 14장 72절)

어제를 버리고, 오늘을 감추듯,
예수를 배반한 베드로가,
초가삼간 방 구석에서 삼태기로 종일 부려도 그치지 않을 빈대처럼 쏟아져 나오겠군.

실제 합당 철회 사태가 벌어지자, 이 지저분한 현실 앞에서,
바로 어제까지 그리 두 손 비비며 연신 석이를 추앙하던 치들이,
안면 싹 바꾸며 거꾸로 까대기 바쁜 인간들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그래 석이 빨던 사이비 정치 평론가는 깃발 흔들며 선두에 서서,
석빠 쩌리들을 이끌며 수범이 되라.
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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