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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과 Negative Feedback

소요유 : 2019.08.23 09:11


조국과 Negative Feedback


정치인은 왜 타락하는가?

아니, 왜 정치에 입문하면, 본색이 폭로되는가?

이리 물어야 옳을지도 모르겠다.


스마트하고, 정의로운 이로 세간에 알려진 조국.

장관에 임명되려는 순간, 

그의 이미지에 가려졌던 갖은 의혹이 노출되고 있다.


자동제어(automatic control)


이는 공학의 한 분야로,

그 쓰임이 폭넓어 아니 미치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다.


여기 그의 핵심인 Negative Feedback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출처 : aspencore)


그림에 보면 출력단(Vout)을 입력단(Vin)으로 되돌린 부분에 주목하자.

만약 이리 되돌리는 회로를 만들지 않는다면,

출력은 그저 OP AMP의 증폭률만큼 키워져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이리 일부를 되돌리면(feedback, 饋還) 출력의 크기에 따라,

다시 자신의 크기를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된다.

가령 목표치보다 크면 줄이고, 작으면 키워지는 게 자동으로 이뤄진다.


농부들이 고추 묘판에 자동 온도조절기를 설치하곤 하는데,

묘상의 온도가 설정된 수준으로 자동 조절되는 기능 역시,

바로 이 자동제어 기술의 이치가 적용되고 있다.


나의 앞선 글에선 negative feedback에 대해 다룬 것이 적지 않다.

그 중 하나를 여기 소개해둔다.


☞ equilibrium


여기서 잠깐,

저 되돌린 부분을 OP AMP의 -가 아니고 +에 물리면,
자동 제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증폭이 거푸 일어나,

종내는 시스템이 파괴되고 만다.

이를 positive feedback이라 하며,

이 때 일어나는 현상을 divergency라고 하는데,

이는 진영 논리에 빠져,

자신의 식구를 변호하는데 함몰되거나,

음해까지 일삼으며, 상대를 거꾸러 뜨리는데 몰두하는 경우에 당한다 하겠다.

결국 이러할 때, 정치 사회 시스템은 공멸하고 말 것이다.


조국의 청문회를 앞두고,

야당에선 전 방위적으로 그를 체크하고 있다.

그러자, 감춰졌던 그의 치부가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그 동안 negative feedback없이 그는 한쪽 진영에서,

그저 일방적으로 보호되고, 키워졌다.

허나, 이제 밖으로 나오자,

갖은 검증을 넘어, 음해로 얼룩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를 negative feedback의 사회적 기능 효과로 보고 있다.


이 글에선, 그의 자녀에 얽힌 비리를 세상이 다 아는 것인즉, 굳이 다시 논하지 않겠다.

(참고로, 다만 약간의 언급을 해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조국 자신이 저지른 증거가 없으니, 책임이 없다는 이가 있다.

허나, 어린 이가 이 일을 주도할 수는 없을 터이니, 

부모인 조국 후보 배우자 또는 조국에게 책임이 없다 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측면만 조명하며, 이야기를 이끌어내 보고자 한다.

노파심에서 말하거니와, 이는 객관적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의 그에 대한 사적 인상기 정도로 여겨주기 바란다.

이로써, 이번 사태에 하나의 이야기내지는 관점 꺼리를 보태 두려 할 뿐이다.


담대자우(澹臺子羽, 본명 澹臺滅明)란 인물이 있다.

사기에선 이 인물을 두고, 못 생겨서 공자가 무시했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한비자에선 반대로 잘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인용의 편의를 위해 한비자 편만을 끌어들여 본다.


澹臺子羽,君子之容也,仲尼幾而取之,與處久而行不稱其貌。宰予之辭,雅而文也,仲尼幾而取之,與處而智不充其辯。故孔子曰:「以容取人乎,失之子羽;以言取人乎,失之宰予。」故以仲尼之智而有失實之聲。今之新辯濫乎宰予,而世主之聽眩乎仲尼,為悅其言,因任其身,則焉得無失乎?是以魏任孟卯之辯而有華下之患,趙任馬服之辯而有長平之禍;此二者,任辯之失也。夫視鍛錫而察青黃,區冶不能以必劍;水擊鵠雁,陸斷駒馬,則臧獲不疑鈍利。發齒吻形容,伯樂不能以必馬;授車就駕而觀其末塗,則臧獲不疑駑良。觀容服,聽辭言,仲尼不能以必士;試之官職,課其功伐,則庸人不疑於愚智。故明主之吏,宰相必起於州部,猛將必發於卒伍。夫有功者必賞,則爵祿厚而愈勸;遷官襲級,則官職大而愈治。夫爵祿大而官職治,王之道也。

(韩非子·顯學篇)


“담대자우(澹臺子羽)는 군자다운 용모라 공자가 그럴싸하다 여겨 그를 취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함께 있어 보니, 행이 그 용모를 감당치(어울리지) 못했다. 

재여는 언사(言辭)가 우아하고 문채(文采)로웠다. 

공자가 이를 보고 그럴싸하다 여겨 그를 취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함께 지내다 보니 지혜가 그 언변을 채우지(충당치) 못했다. 

그러므로 공자 왈,


‘용모로써 사람을 취했다, 

자우(子羽)에게서 그르쳤고, 

언변으로써 사람을 취하다가,

재여에게서 그르쳤다.’


고로, 공자의 지혜로도, 실제를 놓쳤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오늘날의 변설은 재여보다 더 넘치고,

세상 군주의 듣는 귀는 중니보다 더 현혹되어 있다.

그 말이 듣기 좋다하여, 그를 임용한다면,

어찌 실수 없이 (그 뜻한 바를) 얻을 수 있으랴?


이런 까닭에 위(魏)가 맹묘(孟卯)의 변설을 믿고 맡겨,

화하(華下)의 우환이 있었으며,

조(趙)가 마복(馬服)의 변설을 믿고 맡겨,

장평(長平)의 재화가 있었다.

이 둘은 변설을 믿고 맡겼던 실수다.

...........”


아아, 그러함이니,

얼굴을, 말을, 글을 믿을 일이 아니다.

다만, 실제의 현실에서, 행해진, 구체적 사실, 진실에 의지하여,

사물을 판단할 일이다.

(※ 참고 글 : ☞ 링컨의 얼굴)


그가 흘러내린 머리를 슬쩍 추켜올릴 때마다,

부녀자들의 가슴이 철렁거렸음인가?


허나, 나는 상학적(相學的)으로는 이게 그리 마땅치 않아 보였다.

이런 행동은 곧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고 할 터인데,

이리 마음을 밖으로 빼앗기고서야, 어찌 장부가 안을 단속하고,

충실히 영글릴 틈이 있으랴?


굳이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계집사람이 나타나, 연신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슬쩍 거둬 올리느라,

말을 제대로 다 할 수 없거나, 하는 일을 온전히 하지 못하는 경우를 보곤 한다.


우리 같으면 성가셔라도 머리를 싹둑 잘라버리거나, 묶어 버리리라.

허나, 저들은 저것을 외려 즐기기라도 하는 것일까?

아니면, 필사적으로 저런 고통을 견디지 않으면 아니 될,

열두 고개 넘는 곡절이라도 있는 것일까?


치마를 입고 말을 타기는 쉽지 않으며,

머리를 뒤로 묶지 않고서는 일에 열중할 수 없다.


허나, 치마를 입고 말을 타거나,

머리를 연신 흐트러뜨리며 일을 하는 이가 있다면,

이는 이로써, 뭇 대중의 눈길을 사서,

도모하려는 무엇인가가 숨어 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이에겐 말을 탄다든가, 일을 하는 데 뜻이 있지 않다.

다만 짧은 치마를 입는다든가, 연신 머리카락을 치켜 올리는 행위를 통해,

별도로 겨냥하는 바가 있을 따름이다.


헌데, 이런 이미지를 만들면서,

세상에 영합하고, 인기를 획득하는 것은,

수고에 비해 제법 수지가 맞는 일이다.

그런즉, 부절(不絶)하니, 치마를 입고 말을 타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좋다.

이 또한 살아가는 방편이자, 재주일 것이니.


허나, 이로써, 말을 제대로 타거나, 맡은 일을 온전히 다하기엔,

제법 큰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나는 이를 염려하였음이다.


단순히 그 행위만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저 행위 뒤에 숨은 심리가,

성실함을 기르는데 장애가 되지나 않을까 저어하는 것이다.


아버지 곤(鯀)에 이어 치수 사업을 맡은 우(禹)는,

제 아비의 실패를 교훈으로 새로운 치수책을 고안하였다.

그게 소위 소도법(疏導法)이라는 것이다.

이게 무엇인가?


홍수가 오기 전에 물길을 열어 트는 것이다.

하천 길을 연다는 것은 가둔 물을 강으로 내리 끌어들이고,

이를 대해로 다시 뽑아내는 것이다.

그간 우(禹)는 풍찬노숙(風餐露宿)을 불사하였고,

물길을 뚫기 위해 진흙탕물에 들어가길 꺼리지 않았다.

산을 넘고 고개를 넘어 온 천하를 돌아다니며 물길을 살폈다.


그는 자기 집 문 앞을 3번이나 지나면서도 집에 들르지 않았다.

이를 삼과기문불입(三過其門不入)라 한다.

이런 노력이 13년이나 지속됐다.

종내는 치수가 성공하고 만다.

비로소 백성들은 홍수 피해로부터 벗어났고,

이 공으로 결국 순(舜)으로부터 제위를 선양받게 된다.


나랏일이라는 게,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 삼과기문불입(三過其門不入)할 수는 없다하지만,

짧은 치마 입고 말을 탈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禹親自操稿耜而九雜天下之川,腓無胈,脛無毛,沐甚雨,櫛疾風,置萬國。禹,大聖也,而形勞天下也如此。」使後世之墨者多以裘褐為衣,以跂蹻為服,日夜不休,以自苦為極,曰:「不能如此,非禹之道也,不足謂墨。」

(莊子)


“우임금은 친히 삼태기와 가래를 들고, 

천하의 강물을 모아 구주에까지 통하게 하였다.

(※ 참고 글 : ☞ 홍수와 소도법(疏導法))

장딴지에 솜털 하나 없었고, 정강이에 털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쏟아지는 모진 비에 목욕하고, 질풍에 머리를 빗으면서,

온 나라를 바로 세웠다.

우임금은 큰 성인이라, 

천하를 위하여 몸의 수고를 아끼지 않은 것이 이와 같았다.”


모름지기 공인이란,

나라와 사회를 위하여 바른 뜻을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해, 갈심진력(渴心盡力)하여야 한다.


명예를 탐하고, 돈을 구하려면,

교수 행세를 하거나, 장사의 길로 나아갈 것이지,

공연히 정치 현장을 기웃거릴 일이 아니다.


***


이로써, 모용(貌容)을 들어 사람을 논하는 일을 두고,

비약이 있다는 꾸중을 받을 수 있다.

허나, 나는 진작부터 이를 미심쩍게 생각하였다.

중이 머리 기르고 도를 닦을 수 있음인가?

나는 그를 아끼기에, 이런 의문을 일으키곤 하였었다.

그가 이리 결단이 나고 만 것 내내 안타까운 노릇이다.


사법 개혁도 사뭇 그 추진 동력이 손상되었을 터,

이만한 인재를 다시 기르는 것 용이치 않다.

허나, 이로써, 저이의 본색이 다 드러나,

세상에 큰 천둥소리로 경종을 울린 것이니,

마냥 허망하다 탓할 노릇만도 아니다.


진보고 보수고 간에,

나는 어느 한 진영에 부역하지 않는다.

다만, 사실에 입각하여, 판단하고, 평가할 뿐이다.


설혹, 자신이 지은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공의로움에 어긋난 일이 직간접적으로 자신과 얽혀있다면,

부끄러움을 일으켜야 한다.


出門大步


무릇 장부는 대문 밖을 나서며 큰 걸음으로 걸어야 한다.


부끄러움이 있다면,

이를 어찌 갚을 것인가를 고민하여야 한다.

이를 안다면, 오늘의 수치가 어찌 마냥 죽을 (노릇) 일인가?

장부에겐 10년도 늦지 않았으니, 다음을 기약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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