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산투르

소요유 : 2020. 7. 27. 14:41


험한 세상이다.


수십 년 우정을 나눈 친구가 어느 날 나를 배신하는 일은 적지 않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형제 간, 상충된 이해를 이유로 서로 등을 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모두가 왕족들은 아니기에,

다툴 것이 크지 않음에,

일반인들은 이런 경계를 두고,

제법 점잖은 양 혀를 찬다.


어림없는 소리.

그대가 그럴 일도 없지만,

만에 하나 설혹 이런 처지에 놓인다면,

제 어미, 누이를 겁탈하고, 아비를 척살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을 걸.


내가 아는 이에게 흔히 말하곤 한다.


‘설혹 앞으로 척이 지는 때가 있다한들,

오늘 내가 오늘 이 일에 있어, 유일한 증언자임을 잊지 말라.’


무슨 이야기인가?

장삼이사, 사람들은 거죽을 두고 이야기 하고,

피상적인 일상 삶을 두고 논할 뿐이다.

언제나 저들은 평가의 기준을 결과에 두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이와 무관하게,

그의 현재 상태, 결단, 꿈을 어디에 매임 없이 평가하였다.


‘그리스인 조르바’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 해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차후, 성패와 상관없니,

나는 그의 현재에 박수를 보내고, 미래를 격려하였음이다.

나는 그의 키스질을 찬양하고 있을 뿐인 것을.


이는 다만, 그의 현재를 사랑하고 있는 것임이라,

그 자체만으로 광영(光榮)의 빛내림이다.


이제, 이 말 앞에 서며,

하나의 입장을 더 소개해두고자 한다.


우연히 감정을 교감하고, 현실에서 경험을 교차한 사람이 하나 있다.

그 만남의 현장.

짜릿하고, 격렬한 삶의 체험 실장(實場).

여기 그 어떠한 계산, 고려는 없다.

다만, 그 빛나는 환희, 작렬하는 생명의 순수함이 있다.


그가 말한다.



(utube, 이 여자가 지옥같은 일상을 견디고 억만장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 (결말포함))


‘서로한테 약속하죠.

우리가 경쟁자가 돼도 친구로 남기로,’


사람은 다차원의 세계에 거(居)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적인 이해나, 그 무게 칭량(稱量)에 묶이지 않고,

그만 그 자리, 빛날 순간이 과연 몇 번이나 있는가?


나는 평생토록 처세술 관련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어쩌다 이것 하나 들쳐보면, 당의정 입힌 얄팍한 술수에 불과한 것이기 십상이라,

더는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헌데, 내가 최근 어느 날,

동영상을 보는 데, 데일 카네기의 처세술 책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침 나는 그 때 술 한 잔 걸쳐 거나해진 상태였다.

그럴싸하여, 바로 알라딘에 주문을 넣었다.

나는 아직도 도가 익질 않았다.


귀신이 어둔 밤숲에서도 나를 범하지 못하고,

도깨비가 낮에 나타나도 나를 해하지 못하여야 하는데,

기껏 술 한 잔에, 이리 마음의 뱃대끈을 풀어버렸다니,

나는 한참 못났구나.


술에서 깨어난 날.

도착한 것을, 실실 비소(誹笑) 날리며,

우격다짐으로 이 책을 지금 거지반 다 읽어나가고 있다.


art

이것은 일종의 인간관계 기술(technique)이라,

차갑고, 기능적일 뿐,

인간의 진실된 마음의 바탕에 대한 기술(記述)로 보기는 어렵다.

(※ 기술을 걸고, 여기에 걸려, 그럴싸한 효과가 일어난다한들, 이게 발라보이지 않는 것이다.

설혹 기술에 걸린 이가 만족한다한들, 저 술수에 핸들링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이는 주체적 인격 간의 거래가 아니라, 어떤 목적에 수단화되었다는 혐의가 남아 있다.

나는 이를 경계한다.)


‘우리가 경쟁자가 돼도 친구로 남기로,’


만약 이 발화자가,

이리 친구로 남기를 기약함에 있어,

저 책처럼, 

남을 잘 부리기 위해, 수주를 잘 따기 위해, 장사에 보탬이 되기로,

이리 말하였다면, 그는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처세술을 다룬 책들은,

미래의 지옥을 염려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의 천국을 겨눌 뿐이다.

그것도 젖과 꿀이 흐르는 오늘을.


‘우리가 경쟁자가 돼도 친구로 남기로,’


이 순간,

그는 현재의 감동을 미래로 연장하고 있을 뿐이다.

그 사이에, 사춤은 없다.

하기에 그 사이에 사적 이해, 계산이 들어올 공간이 없다.

하나니까.

영원 지속이 있을 뿐이다.

전일(全一)한 감정


이런 순간을 겪은 적이 있는가?

사내가 계집을 앞에 두거나,

계집이 사내 품에 안겨서가 아니라,

(공정을 위해 존재론적 자기학(磁氣學)적 음양의 꼴림은 젖혀두자.)

사내가 사내를,

계집이 계집을,

그래 인간이 인간을 앞에 두고,

다 커서,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는가?


조르바는, 이리 말했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는,

젊은 시절에 산투르에 꽂혀서는 결혼하려고 마련해둔 돈을 몽땅 털어다가 산투르를 산다.


(utube, Σολο σαντουρι ταξιμι)


나는 어이하여, 어려서 산투르를 사지 못하고,

이리 공동묘지의 홀아비 귀신처럼, 

아직도 온 산하를 찾아 헤매고 있는가?


조르바 책을 세 번은 읽었는데,

아직도 그를 다 배우지 못하고 있고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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