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 변검술

그의 변설을 듣자니,
여러 생각이 주마등처럼 지난다.

우선 노신의 다음 말이 떠오르더라,

蜜蜂的刺， 一用即喪失了它自己的生命
犬儒的刺， 一用則苟延了他自己的生命。
(魯迅 - 而已集 小雜感)

‘벌은 침을 한번 쏘고는 자기 생명을 잃지만,
견유의 침은 한번 쏘고는 자기 명을 늘린다.’

그 특유의 변설 수법은,
A를 두고 B로 슬쩍 빗겨 가며,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데,
과시 천하제일이라 하겠다.

머리가 좀 멍청한 이라면,
A가 아니라 B로 옮겨간 자리에서,
펴는 변설에 혹하여 고개를 주억거릴 수도 있겠다.
당연 B를 자신이 꺼내었은즉, 거긴 그럴싸한 논리가 있으리라.
하지만, 아무리 옳아 보여도, 아직 A를 다루었다 할 수 없으니,
도로무익徒勞無益한 작업일 뿐인 것을.

마치 변검술變臉術처럼 모용을 순식간에 바꾸니,
그는 천하에 보기 드문 재주꾼이라 일러야 하리라.
하지만, 아무리 모용을 바꾸는 재주에 능하다 한들,
어찌 제 본 얼굴 가죽까지 벗길 수 있으랴?

허나, 사람들은 가면을 진짜로 알고,
믿고 따르기도 하는 법이다.
그렇지만, 현인賢人은 가면 속에 숨겨진 본 얼굴을 쏘아 밝히 알아본다.

그러함이니 침을 아무리 현란하게 쏘아댄들,
세상에 푸른 눈을 가진 이들이 많아진다면,
어찌 벌이 침을 거푸 쏘며 생명을 장구히 늘릴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