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농법 유감(遺憾) 2
고등학교 때 물리 선생님이 해준 이야기를 기억한다.
그것은 영구기관(永久機關)에 대한 것이다.
물에 수레바퀴가 반쯤 잠겨 있고,
한쪽은 부력에 의해 위로, 한쪽은 중력에 의해 아래쪽 방향으로 힘을 받아,
영구적으로 수레바퀴가 돈다는 식인데,
이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씀이었다.
열역학 제 1 법칙(The first Law of Thermodynamic)은
곧 에너지보존법칙이기도 한데,
닫힌계(closed system)에서 에너지 총합은 일정하다는 것이다.
이쯤은 이젠 누구라도 다 아는 상식이다.
어느 날 밭에서 일을 하는데,
예전에 잠깐 스쳐지나간 인연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게 컴퓨터에 관해서 조언을 구하려 한단다.
이야기를 다 마치자,
그는 자기가 영구기관을 발명했는데,
그 장치를 설치할 부지가 필요하다며 열을 내며 설을 풀어낸다.
보통 한 번도 물리를 제대로 배운 바 없는 사람들이 이런 궁리를 잘 튼다.
이 지경이면 냉정해져야하는데,
차마 그의 달뜬 열정 앞에 찬물을 끼얹기도 난감하다.
적당히 응대하고 얼버무려 사리며 가까스로 전화를 마쳤다.
내가 최근 자연농법에 대해 이리저리 공부를 하다 보니,
자연농업에도 여러 가지 계파랄까, 분파가 있는 것 같다.
일본의 경우엔 최근 탄소농업이라든가 예술자연재배 따위가,
한국엔 무투입, 무관수(無灌水)를 주장하는 송 씨의 초자연재배가 알려져 있다.
나는 무투입이란 말을 듣자 내내 열역학 제 1법칙을 상기했다.
일정 면적의 경작지일지라도 결코 닫힌계(close system)일 수가 없다.
저들은 무투입이란 말을 앞잡이 삼아,
경작지 안에 외부로부터의 자원을 전혀 투입하지 않는다고 기염을 토한다.
물론 이는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우선은 태양 빛을 받을 터이며, 공기, 강우, 강설과 접촉을 할 터이니,
열린계(open system)를 벗어날 수 없다.
물론 십분 양보하여 光, 공기, 강우 따위는 용인해줄 용의는 있다.
저들 자연농업자들은 흔히 관행농이나 유기농에서 투입하는,
농약(유기농에선 천연 농약이라 칭하는 것을 사용.), 비료 따위를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저들은 비료를 비독(肥毒)이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관행농이나 유기농을 한 땅에는 비료 성분이 남아 있는데,
이를 저들 자연농업자들은 독이라 고쳐 부른다.
이런 비독을 제거하려면 짧게는 5년 길게는 10여년이 걸린다고 한다.
남아 있는 비료 성분을 모두 제거하는 일변,
추가로 비료를 투입하지 않고 농사를 지으니,
과시 외부로부터 투입되는 것은 태양 빛 말고는 없다.
뭐 이런 정도를 무투입이라면 그 용어 사용에 대해,
굳이 엄격한 의미의 잣대를 들이대며 나무랄 정도로 각박할 까닭은 없다.
일응 저들의 뜻을 알아들을 수는 있으니까.
그러하다면 빛을 통한 광합성만으로 식물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모두 얻을 수 있는가?
게다가 열매, 뿌리, 잎 따위의 수확물은 인간에 의해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이 의문에 저들은 답해야 한다.
저들 중 혹자는 전작물(pre crop)을 외부로 반출하지 않고 재투입한다는 것이니,
이로부터 적절한 양분 회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엔 토양 미생물의 분해 작용에 대한 보충 설명이 따르곤 한다.
또 어떤 혹자는 식물호르몬 작용의 놀라운 효과를 강조하기도 한다.
내가 이런 이야기들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할 정도의 전문지식을 갖추지 못하였지만,
자연순환방식의 농법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여겨지긴 한다.
그러하니 무투입이라기보다 재순환농업 정도로 순화하여 표현한다면,
나로선 얼마든지 수긍을 할 수 있겠다.
외부로부터는 최소 광 에너지내지는 강우(降雨)가 들어오고,
수확물이 반출되니 얼추 에너지 유출입 수지가 맞아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나머지 전작물들은 다시 경작지에 재투입된다면,
아주 착한(善) 순환계가 완성되리라 본다.
덧붙인다면 경작 규모에 걸맞는 가금류라든가, 가축류가 한쪽에서 키워지며,
저들의 축분이 재활용되고, 농작물 일부는 저들의 사료로 제공되는,
동-식물에 걸친 순환계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 정도라면 이제껏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기농의 철학적 바탕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연농업에서 특히 강조하는 무농약, 무비료, 무경운, 무투입 따위의
無字 행렬은 사람을 은연중에 달뜨게 하며,
뭣인가 그럴듯한 신비의 세계 속으로 뭇사람을 한껏 유인한다.
마치 영구기관이라는 것이 몽상가들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지켜보는 이들을 환상적인 동화의 나라로 인도하듯이.
요즘 어린 아이들에게 장래의 희망을 물어보면,
연예인이 되는 것이란 대답을 많이 한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의 세계 속의 스타플레이어는 수 십만 중에 하나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혹여 자연농업에 성공하였다는 이들이 있다한들,
여기 뛰어든 이들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외려 지금까지는 실패한 이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가령 세인들에게 잘 알려진 태평농업만 하여도 그것이 그리 훌륭한 것이라면,
어찌 하여 아직도 전국에 그 농업이 퍼지지 못하고 극소수에 그치고 있는가?
기무라의 기적의 사과만 하여도 그가 그 농업을 완성하기까지 10년이 걸린 것이 아니던가?
초자연농업 한다는 한국의 송 씨는 저만의 농법을 고수하고 기술을 열어놓지 않고 있다.
게다가 송 씨류의 자연농법은 무관수이니,
무농약, 무비료를 넘어 물까지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하자니 자연 강우를 피하고자 비가림 재배가 필수이다.
열역학 제 1법칙 조건에 보다 엄격하니 접근하고 있으니,
이이야말로 최소한 제 말에 성실한 분이라 일러야 할까나?
저들이 제시하는 그림을 보자하니 이파리도 별로 달리지 않았는데,
열매가 가히 극성스럽게도 많이 달려 있다.
나는 그 그림을 보고 남들처럼 탄복하는 것이 아니라 소름이 돋았다.
저것은 자연농업, 아니 그가 말하는 초자연재배가 아니고,
외려 현대의 냉혹한 축산업처럼 식물을 쥐어짜는 ‘학대농법’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저 자리에 식물 대신 동물을 환치해놓고 보면 여실히 그 실상을 느껴볼 수 있다.
당연 식물은 철, 돌처럼 무생물이 아니다.
우리가 동물의 부리를 자르고, 꼬리를 자르며,
좁은 우리 안에 가두고, 밤에도 전등을 켜서 불을 밝히면,
억지로라도 증체량 따위의 기도(企圖)하는 output을 늘릴 수는 있을 것이다.
식물 역시 저리 가혹하게 내몰면 때론 소출이 많아질 수는 있을 것이다.
허나, 잊지 말아야 한다.
동물, 식물은 명(命)붙이인 것을.
유마(維摩)는 중생은 아프다고 하였다.
아니, 중생이 아픈 것을 보신다.
모든 중생이 아픈 한, 자신도 아플 수밖에 없음이니,
이게 불교에서 말하는 참 보살정신인 것임을.
생명을 저리 몰아가며 쥐어짜며 악업 짓는 것을 어찌 옳다고 할 것인가?
나 역시 유기농, 자연농업을 지향하지만, 저런 짓만큼은 결단코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짐작하는 바가 적지 않지만,
여기서는 저들 농법의 한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않으련다.
다만 저들이 설혹 일정분 양적인 실적을 낸다한들,
무한동력기관처럼 언젠가는 열역학 제1법칙의 고리 안으로 갇히고 말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무투입의 신화가 아닌 유투입의 현실로 복귀하리라 예상해본다.
저런 정도의 강퍅한 조건을 역사적 일관성을 유지하며 지속하려면,
필경은 제 조건을 위배하는 무리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옷솔기가 터지는 것을 파탄(破綻)이라고 한다.
구제역, 조류독감 따위의 괴질이 현대에 이리 창궐하는 것은,
나는 현대식 축산업의 ‘파탄’의 증거라고 해석한다.
마찬가지로 일각에서 자행하고 있는,
자연농법이란 이름을 빌은 관행농 이상의 식물 쥐어짜기를 나는 단호히 경계한다.
반면 일본의 예술자연농법은 충분히 가능한 작법이라고 여겨진다.
비록 저들 역시 비독을 말하고 무비료를 주장하지만,
(* 나 역시 이 부분엔 일정분 동감하고 있다.)
강우를 자연스럽게 대하고, 전작물의 환원을 당연시 하니,
생육 또는 수지(收支) 순환 사이클에 별반 무리가 없다.
무엇보다도 저들은 식물을 스파르탄 식으로 혹독하니 몰아가진 않는다.
기무라의 경우 나무 하나 하나를 찾아가며 기도를 드리듯 말을 걸지 않던가?
혹간 이것을 비웃는 사람도 있지만,
저것을 믿고, 믿지 않고를 떠나,
한 성실한 인간의 표상(表象)으로 보아주는 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히 아름다운 정경으로 다가온다.
천.지.신.명(天.地.神.明)에 간절히 기도하는 장면은,
그게 무엇이 되었든 사람들을 원초적 영성의 자리로 이끈다.
나 같이 특정 종교를 갖고 있지 않는 사람에게도 저러함은 마음의 옷깃을 가다듬게 한다.
나는 이들을 나의 농업 작법 표준으로 삼아 공부하여 나갈 것이다.
무리하지 않고 divide and conquer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검증해갈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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