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구견인심(日久見人心)
소요유 : 2013. 7. 31. 09:12
人不知自醜, 馬不知臉長
사람은 자기가 못생긴 것을 모르고,
말은 제 얼굴이 긴 것을 모른다.
거울이 만들어지자,
사람은 비로소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이러자 대개는 자신의 얼굴에 불만을 갖게 되었고,
특히나 여자들은 온갖 화장술로 미태(媚態)를 꾸미게 된다.
요즘은 사내 녀석들도 여기에 가담하고 있다.
링컨의 말중에 “40대의 얼굴은 자신이 책임 져야한다”.라는 것이 있다.
난, 이 말이 대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얼굴을 보고 판단하는 일이 있다 할 때.
그에 따라 일어나는 후발적 책임 결과는,
얼굴의 임자가 아니라,
그 얼굴을 읽은 자에 귀속할 뿐이다.
하니까,
얼굴을 두고 일어나는 책임의 공방은,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있다.
관상학이란 곧 이를 객관화한 학문인 것이다.
포커페이스.
이 경우 역시 얼굴의 모습을 두고,
책임질이 있다면,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릴 위치에 있는,
죽 둘러선 객들에게 있을 뿐인 것을.
얼굴 임자는, 객들을 농락함으로써 이(利)를 취하고,
객들은 얼굴에 숨겨진 암계(暗計)를 간파함으로써 책(責)을 면한다.
人不說不知, 木不鑽不透
사람은 말을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고,
나무는 뚫지 않으면 구멍을 낼 수 없다.
말로써 사람을 가늠할 수 있다고?
이 또한 설익은 말씀이다.
얼굴은 칼을 대고 져미고 꿰매 고칠 수 있다.
그런즉 人不可貌相,海水不可斗量。임이라,
즉 사람은 용모로 판단할 수 없고, 바닷물은 말로 될(계량) 수 없다.
人心莫測이라 사람의 마음은 검고 깊어 감히 측량할 수 없다.
路遙知馬力, 日久見人心 인 바라,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세월이 흘러야 사람 마음을 알 수 있는 것.
얼굴로도, 말로도 사람은 제대로 알 수 없다.
다만 시간의 세례를 받아야 겨우 그 끄트머리 단서를 엿볼 수 있을 뿐이다.
흉한 녀석도,
끼리끼리 모인 모임에선 착하다.
웃으며 권커니 잣커니 하는 자리에서,
제 아무리 악당이라도 제 본심을 헐어 나쁘게 보일 까닭이 없다.
웃으며 권커니 잣커니 하는 자리에서,
제 아무리 악당이라도 제 본심을 헐어 나쁘게 보일 까닭이 없다.
하지만,
사람은 비상한 때, 비상한 곳에서라야,
사람은 비상한 때, 비상한 곳에서라야,
비로소 진면목이 드러난다.
비상한 때, 비상한 곳은,
세월이 흘러야 어쩌다 맞이할 뿐이다.
그러함이니, 사람은 애시당초 제대로 본 모습을 알기 어려운 것이다.
삼가고 경계할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