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되길 꿈꾸지 마라.
나는 한 때, 무속 관련 책을 많이 읽었다.
대학 2학년 때쯤 학교 도서관에서 마주친 책 하나,
이를 시발(始發)로 도서관에 있는 관련 서적 모든 책을 독파해버렸다.
급기야, 당시 제일 큰 서점인 종로서적까지 진출하여,
몇몇 책을 사들이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거지반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세월이 많이 흐른 것이 아니라,
실은 내 머리가 삭고 있는 것이다.
마하카라(maha-kala, 大時)
大黑天이라 부르는 시간의 신, 즉 파괴의 신,
그의 주술을 벗어날 수 없음이다.
헌데, 오늘 우연히 동영상 하나를 보게 되었는데,
감옥에 갇힌 이들이다.
그들은 새가 되고 싶다 하였다.
아, 그런가?
그리했지,
무당들도 새에 관련된 꿈을 많이 꾼다 하였다.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물로써,
새를 상정하고,
꿈에 새가 되는 꿈을 꾼다 하였다.
그런가?
내가 농부가 되어,
새를 가까이 접하며, 저들을 관찰할 기회가 많다.
블루베리가 익어 가면,
용케도 제일 잘 익은 것만 골라 쪼아 먹는다.
저들이 한 번 훑고 지난 것을 나는 수확한다.
어느 여름 날,
숨이 넘어갈 듯이 헉헉 대며,
전깃줄 위에 앉은 녀석을 보았다.
한참 익어가는 블루베리지만, 이를 먹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겠구나 싶다.
저들의 노고란 도대체가.
서울로부터 데려온 길고양이 두 마리 중 하나는,
이곳 시골 개들의 습격으로 절명(絶命), 죽고 말았다.
정 많고, 사람을 개처럼 잘 따랐던 아이.
엘사.
어느 날, 이곳 시골에 사는 들고양이가 갓 나은 새끼들을 데리고 농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어미는 사라졌지만, 남은 아이들 다섯은 모두 잘 자랐다.
이듬해 이들은 모두 새끼를 배고 몸을 풀었다.
모두들 암컷이다.
다시 다 자란 이들이 낳은 아이들이 도합 예닐곱이 되었다.
이어 뒤늦게 또 한 배가 나와 한 때 어미 아이 총합 스물 예닐곱이 넘었다.
냄새도 심하고,
사료를 대기도 벅찰 지경에 이르렀다.
서울에서 데려온 녀석이 똥질을 연일 해댄다.
더렵혀진 몸을 편히 해주려고, 한 차례 목욕을 시켰지만,
녀석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시 두 번째 목욕을 시키다가 손을 크게 물렸다.
수확 철에 손을 마음껏 쓸 수 없어 제법 고생을 하였다.
고양이는 물을 싫어한다.
녀석이 내 손을 물자,
나는 부지불식간에,
들고 있던 샤워기로 그를 내쳤다.
그에게 심대한 타격이 되었을 것이다.
며칠 후, 그는 사라졌다.
지금껏 나타나지 않고 있다.
탈이 난 것일까?
그가 죽었다면,
그는 내가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
용모가 예뻐 그는 예쁜이란 이름을 가졌다.
예쁜이.
오글오글 늘어난 고양이들이,
농장 안을 휘젓고 다녀,
묘목도 적지 아니 죽고,
냄새도 심하다.
녀석들이 두더지, 뱀도 잡아들이고,
특히 새들을 잡아다 먹고는 깃털만 흘려놓는다.
어느 날, 노란 깃털이 바닥에 뿌려진 것을 보았다.
필경은 꾀꼬리 종류일 것이다.
이들은 겨울철엔 볼 수 없으니,
아마도 남국으로 날아가 지내는 철새일 것이다.
자유를 꿈꾸는 이들은 새를 곧잘 부러워한다.
그런데 내가 비교적 가까이 접하고 보니,
저들은 삶은 고단하다.
늘상 위험에 처하여 있다.
저들이 지저귀는 아름다운 노래 소리에 취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저들의 삶을 온전히 대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고양이들은 내가 사라진 방문 앞에서 기다리며,
야웅 소리를 낸다.
밥 달라는 소리다.
저들은 매양 배가 고프다.
새들 역시 배를 곯는다.
고양이도, 새도, 두더지도, 뱀도, ...
중생은 모두 배가 고프다.
살아 있는 중생들은 늘 허기(虛飢)에 시달린다.
사람이란 요사스러운 종족이라,
타자를 억누르고, 물질을 조작하여,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무릎 밑으로 복속시킨다.
하여 허기를 다스리고, 욕심을 채운다.
하지만,
이를 위해 자연을 결단내고,
가여운 짐승을 좁은 우리에 가두고,
항생제, 성장 촉진제 따위로 태심(太甚)한 고통 속으로 몰아넣길 마다하지 않는다.
飢餓寒凍,求死不得
실로 배곯기를 밥 먹듯 하고,
살을 에는 겨울 추위는 견딜 수 없이 심하다.
하지만 죽으려 하여도 죽을 수 없는 질곡에 빠져 있다.
내가 실제 이들을 가까이 관찰하니,
바로 이들은 이리 지내고 있다.
중생은 모두 아프다.
天地不仁,以萬物為芻狗
(道德經)
그 때마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을 생각한다.
노자는 실로 대단하다.
중생이란 실로 제사 때 쓰이는 풀강아지와 무엇이 다른가?
감옥에 있는 이가 새가 되고 싶다 하자,
나는 이내 천지불인(天地不仁)을 떠올렸다.
저들이 풀려나 새가 되었다 할 때,
저들은 과연 또 무엇이 되고자 할까?
얼마 전 실타래에 목이 걸려 죽은 아기 고양이 이야기를 하였다.
내가 그 이후, 그곳을 다 정비하였다.
헌데 그 이후, 근처에 가보니 또 한 마리 아기 고양이가 죽어 있다.
아기들 중 제일 약하고 체구가 작은 녀석이었는데,
아마도 세상을 이기기엔 더 이상은 힘에 부쳤는가보다.
녀석을 거둬 벚나무 밑에 묻어주었다.
그에게 당부의 말을 하였다.
‘다시는 태어날 생각을 말거라.’
그를 그리 떠나보냈다.
내가 여기 시골에 들어와,
거둔 고양이, 강아지들만 얼추 십여 마리가 넘는다.
새를 꿈꾼다고?
결코 새가 되려 하지 마라.
박상륭은 '죽음의 한 연구'에서 이리 말했다.
‘나거든 죽지 말고, 죽거든 태어나지 마라.’
아가야,
그래 행여라도 다시 꿈꾸지 마라.
‘죽거든 태어나지 마라.’
새조차 되려 하지 마라.
人之受生,生死因緣,以多因緣,致有罪根。
사람이 생을 받으면,
생사의 인연이란 많이도 얽히는 바로,
죄의 뿌리가 되고 만다.
인연을 짓지 말고,
이에 얽히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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