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찔레꽃

소요유 : 2008. 6. 7. 22:18


찔레꽃

요즘 밤(栗子)을 보면 크고 맛이 있다.
당연 개량을 한 결과이겠다.
어떻게 개량을 하느냐 하면,
밤이 크고 단 것을 내놓는 가지를 취하여 이를 접수(椄穗)로 하고,
대목(臺木)에 접을 붙여 수량을 늘려간다.

그런데, 접목(椄木)시 대목은 대개 토종을 사용하게 된다.
토종은 비록 과실이 작고 맛이 적지만 제 땅 적응성이 좋아,
생명력이 강하고, 병충해에도 강하다.
제 땅에 누천년 뿌리 박고 살아남은 것인즉,
추위, 더위, 가뭄 등에 강할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하니, 이를 대본으로 삼아 생명력을 뿜어 올리는 일을 담당케 하고,
접수만 살짝 덧붙여 과실만 원하는대로 맺히게 도모하는 것이다.

지금은 주위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지만,
우리의 토종인 고염, 능금 역시 감나무, 사과나무의 대목으로 사용된다.
세상은 모두 감, 사과의 맛과 달콤함을 지향하여 개량되어 가지만,
떫고(澁), 신(酸) 맛의 본령을 외면하고 감, 사과가 존재할 수 있으랴 ?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잎사귀와 같아 허장성세로 거죽으로 화려하고,
요란스럽지만 속은 공허하다.
고염, 능금은 언뜻 떫고 시어 맛이 없어 보이지만,
제 생명의 본질을 머금어 감춰두고 있다. - 함장(含藏)

제 아무리 여우처럼 재주넘기를 수백번 한다한들
감나무 대목으로 소나무를 쓸 수 없고,
사과나무 대목으로서, 참나무로 능금을 대신할 수 없다.
그러한즉 고염, 능금이야말로 귀하디 귀한 것이다.

사람들이 제 아무리 명품으로 90근 살덩이를 두른들,
제 본성이 한치인들 달라질까 ?
우리 어렸을 때는 상품을 두고 사치품이라는 말은 써도 명품이라는 말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치품이라는 말은 없어지고 그 자리를 대신 명품이 차지하고 있다.
저 오연(傲然)히 똬리를 틀고 들어앉은 변신의 자리에,
천하 사람들의 은밀한 합의가 있음이다.

“벌건 백주대낮에 사치품이라고 부르는 것은 민망한 노릇이다.”
“명품이라고 부르기로 작정한 순간 꿈같이 달콤한 럭셔리한 세상이 열린다.”
“이 때라서야, 부끄러움은 실종되고 모두 우아한 교양인이 된다.”

이정권의 표장(標章)이 되버린, 실용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게 실인즉, 경제라는 말을 은폐하는 기술이 되고,
한 발 더 나아가면, 점잖게 경제라는 말을 쓰지만,
실인즉 이게 '돈 좀 벌자'라는 말의 둔갑어임이듯이
말을 바꿈으로서 세상을 속이고, 나를 속인다.
허갈진 욕망이 나쁘다, 좋다라는 뜻이 아니다.
그 이전에 말의 전화(轉化)를 통해 세상을 건너려는 그 영악함이
퍽이나 재.미.있.다라는 말이다.

***

찔레꽃 역시 장미의 대목으로 이용된다.
토종 찔레꽃 뿌리의 강인한 생명력과 아름다운 장미꽃의 협력 ?
아니 이게 인간 입장에서라야 협력이지, 식물 입장에서 보면 동원 당한 것이리라.

사람들은 여자를 꽃에 비교하곤 한다.
어떤 여인을 두고 장미같은 여자 하고 이르면
장미를 꽃의 여왕이라고 부르듯 지상 최대의 찬사가 될까 ?
그렇다면, 만약 장미가 아니고 찔레꽃 같다고 한다면 실례가 될까 ?
대목과 접수의 관계를 두고 본다면 이게 허(虛), 실(實) 관계인즉,
장미라고 이르지 않고, 찔레와 같다고 이를 경우,
은밀히 중의(重意)적인 표현임을 정녕 알아 챌 수 있을런가 ?

만약, 자신을 장미와 같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는데,
남들이 찔레라고 부른다고, 가랑잎 타듯 바르르 화를 냄이 바를까 ?
아니면, 생명의 본령을 간직한,
즉 장미가 장미다울 수 있는
그 원형질을 지닌 순수함을 찬(讚)한 것임으로 알아 들을 수 있을까 ?

혹은 거꾸로, 장미라 하여 화려함을,
찔레라 하여 소박함내지는 수수함을 이르는 것인지,
화자(話者)의 마음 안으로 들기 전에는 알 수가 없음이다.

한즉, 어떤 여인네가 있어, 남으로부터 찔레라고 부름을 받았다면,
교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 은근함을 음미하며,
삼감(愼)을 길어 올리리라.

도대체, 이 땅엔
찔레, 고염, 능금같은 고귀한 것들이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아니, 그 언표(言表)는 고사하고,
고염이 무엇인지, 능금이 무엇인지
그 자체를 아예 모르고 있다.
기이한 노릇이다.

나는, 번거로움을 여의고, 그저,
그 정신의 본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 환고향(還故鄕)

***

작취미성(昨醉未醒)
어제 먹은 술이 아직 깨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정작은 사나운 세상이 무서워 깨어나길 두려워하고 있는 게 아닐까 ?

술은,
가끔 내게 회한과 분노를 일으킨다.
이제, 밭으로 돌아가,
찔레같이 소박한 농사,
그 농심(農心)을 배우고, 기르는데 오로지 하고 싶다.


'소요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형 만한 아우는 없는가 ?  (2) 2008.07.03
富와 貴  (6) 2008.06.27
성황당(城隍堂)  (3) 2008.06.22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0) 2008.06.07
interrupt & poll  (0) 2008.06.05
낙석주의와 나의 판타지  (0) 2008.05.26
Bongta LicenseBongta Stock License bottomtop
이 저작물은 봉타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3.0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행위에 제한을 받습니다.
소요유 : 2008. 6. 7. 2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