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별명산고(別名散考)

소요유 : 2008. 2. 17. 20:36


전부는 아니더라도 닉을 보면 당자의 형편을 짐작할 수 있을 때가 있다.

가령 내가 잠시 빌려 쓰며, 임시로 이용하곤 하는
‘과객’이란 닉만 하더라도 들른 곳에서 붙박이 노릇을 하겠다는 심산이 아니고,
잠깐 지나쳐가려 하였음을 얼추 추측할 수 있다.
定名(또는 正名)을 쓰지 않고 임시 빌린 외투를
걸치고 나타난 행객임이 ‘과객’이란 글 뜻에 비추면,
단박 헤아려진다.

그런데, 들린 곳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옷자락이 잡혀,
글이 이어져 오래 지체하다 보면, 이게 조금 결례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도대체 제까짓 것이 과객 일반을 대표한단 말인가 ?
과객이란 말은 누구나 사용할 수도 있는데, 혼자 독점하고 있게 되니,
본의 아니게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
그렇다고 하여, 뒤늦게 닉을 바꾸자니,
연속성을 잃어 자신의 정체를 되밝혀야 하는 번거로움과 혼란이 있게 된다.

게시판에 가끔 보게 되는
‘과객’이라든가, ‘의사’, ‘농민’, ‘나그네’ 등등
이런 범칭의 닉은 다 그런 소지가 있어, 오래 두고 쓸 닉으로는
남에게 예의를 제법 그르치는 폐단이 있다.
또 다시 새겨보자.
예컨대 말이다.
가령 의사 한 사람이 ‘의사’란 닉을 먼저 쓰고 있을 때,
뒤에 참여한 또다른 ‘의사’는 그럼 무엇이란 말인가 ?
제놈이 의사 전체를 대변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
이쯤되면 닉도 가벼이 지을 것이 아니란 게 지펴지지 않는가 ?

다만, 가끔 대하게 되는 ‘나그네5’, ‘과객2’라는 따위의 경우,
예컨대, 이미 ‘나그네’란 닉이 있어 부득불
그리 피해가며 지은 것인지는 몰라도 ‘5’가 덧붙여지는 순간
일반 범칭이 아니라 가려 한정한 특칭이 되고 있으니
여기 지적하는 범위는 벗어났다 하겠다. - (此限에 不在)

이런 나의 감수성을 더욱 확장하면,
두루 일반명사에까지 미쳐 예민한 경계의 호루라기질을 할 우려가 있다.
예컨대, 꽃 이름, 산 이름, 지방 이름 등등이 그것일 터인데,
여기에 이르러서는 현실적으로 대표성과 중첩성에 따른 다툼의 소지가 적으니,
놔둬도 그저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닉이 있다.
의외이되, 어쩌다 접하게 되는 ‘바보’란 닉이 그것이다.
예전엔 일부로 ‘쇠똥이’, ‘개똥이’, ‘돌쇠’란 이름을 짓기도 하였는가 본데,
이런 분은 자청하여 흔치 않은 닉을 지녔다.
이게 보통은 두가지 경우가 있다.
예컨대 실제는 천재인데,
빛을 은휘하여 귀신의 해꼬지로부터 방비하려는 원려심모(遠慮深謀)인 경우가 그 하나요.
실제도 바보인즉, 차라리 자복(自服)하여 뱃속이나 편하자는 배짱인 경우다.

그 어떠한 경우라도 ‘바보’란 닉은 서로 쓰겠다고 다툼이 일지는 않을 터이니,
앞에서 지적한 남에게 폐를 끼칠 우려는 적다.
하니 이 닉은 먼저 선점한 사람에게 명토박이로 독점의 권한을 주어도
무방하리라 생각된다.

닉 중에는 이런 닉도 있다.
'...',
‘^^’,
'@',
‘ㅂㅂ’
이런 닉들은 기호의 추상성 뒤에 숨으려는 의도가 읽혀져,
일견, 어둡고 음흉한 인상을 자아낸다.
글 내용도 그리 시원치 않을 경우가 많다.
무엇인가 떳떳한 구석이 없어 보인다.
혹간,
길게 살려 닉을 짓는 번거로움을 꺼려
그저 임시로 차용한 경우도 있긴 하겠다.

하지만,
이들도 한곳에 오래 머물며,
그리 고정화 되어버리다 보면,
여늬 닉처럼 항구적인 identity를 확보하게 된다.
이 정도에 이르면, 정상적인 닉으로 대접하여도
흠이 되지 않으리라.

그렇지만, 보통은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마는 닉인 경우,
대체로 자신의 글에 대한 책임을 담보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많기에,
적이 염려스러운 닉이라 하겠다.

한편 남의 닉에 가탁하여 지은 닉은 더욱 가관이다.
예컨대,
‘중권이는 싫어’라든가 
(이게 진중권을 두고 이르는 것인데,
나는 진중권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논리적인 글쓰기를 좋아한다.)
‘반xx’,
‘비xx’

일반화 하는 게 조금은 위험한 소지가 있지만,
보통 이런 닉이 쓴 글들은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갖곤 한다.
즉,
우선은 글이 짧다는 것이다.
그저 단말마의 비명처럼 한마디 툭 던져내놓고 부르르 혼자 떨다가 사라지곤 한다.
동지 섣달 엄동설한에 뒷간 가기 싫어 마당가에 엉뎅이 까내리고,
쉬할제, 고 계집 엉뎅이에 서리가 내리자,
얼추 추수리고 일어나 체머리 흔들며 오도방정 떠는 형용이 그러하리라.
그저 욕이나 하지 않고 도망가면 극히 다행이다.
가끔은 퍼온 글로 도배를 하며,
헛배를 잔뜩 불리며 자기 만족에 겨워하는 축도 있다.

제 주장이 타당한 이치에 근거하여 풀려져, 논리적으로 結構된 것이 아니라,
그저 감정에 기대어 잠깐 배설하고 마는 정도다.
보통 지능도 낮으리라 짐작된다.
제 닉이 아니고 남의 닉에 기대고 섰다는 것부터가,
위인이 사뭇 질정찮을 것으로 한몫에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사내라면 졸장부라 할 터이고,
계집이라면 거칠어 도시 고은 심성의 소유자는 아닐 것이다.

한편 제 이름 자를 닉으로 당당히 밝히고 쓰는 경우도 있다.
‘박문수’,
‘홍길동’
이런 분들은 대체로 꾸밈이 없고, 솔직한 성격이다.
남에게 떳떳하니 굽힐 이유가 없으니,
자기 주장이 강한 측면도 있다.

닉하고는 상관없으나,
늘, 마이너스 평가를 받으면서도
줄기차게 글을 올리는 분도 있다.
강한 신념의 소유자로,
남의 평가 따위로 제 뜻을 쉽사리 굽히지 않는다.
대체로 종교적인 신념을 피력하는 경우가 많다.
독특한 자기 신념을 전파하는데 불굴의 노력을 경주하는 그 모습이 경탄스럽다.
이런 분들은 본글로 많이 등장한다.
아무래도 댓글만으로는 뜻을 펴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리라.

반면 만년 댓글족, 또는 눈팅족도 특별히 새겨 볼만 하다.
이런 분들은 보통 두가지 부류가 있다.

그 하나는,
본글로 나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저 글 쓰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거나,
그럴 시간, 정력에 여력이 없는 경우.
때로는, 세상사의 번거로움을 진작 여위어,
어디 한곳에 머물지 않고, 지나치시는 음풍농월객(吟風弄月客)도 있으시랴 싶다.

다른 하나는 시려 펼 뜻을 제대로 갖지 못한 형편이거나,
뒷구멍으로 남을 헤살 놓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우다.
의외로 이런 부류가 적지 않다.
후자의 경우라면, 조금씩 전면에 등장하여,
떳떳함을 갖추길 권한다.

끝으로 여담 하나를 더하면 마무리 한다.
사물의 극단에 위치한 상황을 표시하는 닉들은 주의를 요한다.
예컨대,
‘지화자좋네’,
‘얼씨구’,
‘왜이리좋노’
이런 닉들이 마침 조상을 하여야 할 경우에 임하여 어찌 하겠는가 ?
가령 어느 누가 돌아가셨는데, 거기 댓글을 남긴다 하자.

‘지화자좋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왜이리좋노: 영전에 국화 한송이를 바칩니다.’

닉을 바꿀 수도 없고,
그렇다고 조문을 아니 드릴 수도 없고,
민망한 노릇이라 할 것이다.

이렇듯 감정의 극단을 빌린 닉은,
스스로 처신을 제한하는 위험에 봉착하곤 한다.
뭐 가끔은 이런 재미있는 닉이 있다한들,
이 거친 세상, 시름을 잃게 하는 공덕이 있겠거니 하고
나는 그냥 너그럽게 대하곤 한다.
하지만, 일면 점잖치 못한 구석도 있으니,
널리 살펴 참고하였으면 좋겠다.

닉이든 이름이든,
작명시 옛사람의 조신히 삼가는 뜻대로,
너무 드러내면 귀신이 시기하고,
너무 감추면 옹졸해지니,
중용의 도리를 지키는 것이 어떨까 ?

정월 열하루
아직도 야기(夜氣)가 쌀쌀하다.
하지만 보름이 며칠 남지 않았다.
봄이 바로 앞에 오셨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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