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쓰레기 전대(纏帶)

소요유 : 2010. 10. 13. 18:55


파티클 보드, MDF 따위로 만든 가구는 무늬목 따위를 표면에 붙여대어 꾸민다.
그래서 일견 외양이 매끄러워 그럴 듯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접합된 무늬목이 떨어져 나가면서 흉물로 변하게 된다.

못 쓰는 박스 하나를 얻어다 밭 한 귀퉁이에다 놓아두었는데,
이게 비바람을 맞고 햇빛에 노출되면서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
이것을 버리려고 읍사무소에 가서 쓰레기 스티커를 주십사 했다.
그랬더니 여기는 서울과 달라서 스티커를 팔지 않는단다.
그냥 접수하고 가시면 나중에 차량으로 직접 방문한단다.

100cm*40cm*35cm짜리 조그마한 것인데,
부러 차량까지 수배할 필요가 있는가? 너무 과한 부담이 되지 않겠는가?
나중에 근처를 지날 때 처리를 하는 게 좋지 않은가?
이리 말하였더니 상관없단다 어차피 지나는 길이니,
오늘 중에 들리겠단다.

이게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는가 보다.
접수 여직원은 연신 담당자에게 가서 상황을 설명하며 도움을 구한다.
그러자 담당자가 창구로 직접 나선다.
얼핏 보니 예전에 한 번 대한 이다.
올봄 밭에서 나온 농사용 폐비닐 자루를 수십 개를 쌓아놓고 저들을 불렀었다.
그러자니 저 담당자가 와서는 이것은 재활용이 아니 된다고 한다.
멀칭용 폐비닐이 재활용이 되지 않으면 도대체 그럼 무엇이 되는가?
이리 말하자,
그는 이것엔 흙이 묻어 있으니 털어내지 않으면 그냥 가져 갈 수 없다고 한다.
도리 없이 금원을 치루고 처리를 부탁했던 적이 있다.

올봄 농사일도 미루고, 보름 동안 쉼 없이 땅을 기다시피 하며 주어낸 것인데,
버리느라고 또 공연히 적지 않은 헛돈을 들였었다.
지금도 나는 밭일을 하다가 콩알보다 작은 폐비닐일지라도 보는 족족 낱낱이 주어내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는 사진에 보이는 저것을 전대(纏帶)라고 부른다.
밭에 나갈 때는 저것을 허리에 차고 나선다.
3년 전 주말농사를 지을 때는 급한 대로 혁대에다,
저리 비닐봉투를 달고는 밭일에 임하였었다.
그 때부터 지금에 이르도록 나의 전장(田場) 제일의 농기구는 저 전대라 부르는 것이니,
아마도 저것은 내가 여기 밭일을 그만 둘 때까지 함께 하지 않을까 싶다.
그 뿐인가 손수레에도 비닐봉투를 달아두고 눈에 띄는 대로 오물을 주어내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처음엔 너무 힘들어,
그저 밭에 주저앉아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
대를 물려 산을 옮기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나는 밭일을 하지 않고 서울로 돌아가면 갔지,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 한 저 폐비닐을 모두 제거하지 않고는,
절대 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요즈음은 식재가 다 끝나 자주 다니는 지역은 거의 조각 비닐 하나 찾아 낼 수 없다.
하지만 저 아래 쪽 앞으로 심을 곳은 간간히 눈에 띄는 대로 주어낼 정도로 한결 깨끗해졌다.

오늘 밭일을 하는데 밭 가장자리 뚝변에 모종용 포트가 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풀이 뚫고 올라와 거의 분해 직전의 상황이다.
갖은 용을 써가며 캐어내다시피 흩어진 파편까지 추적하여 모두 제거하였다.
오늘은 더 이상 일을 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작파하고 뚝방 아래로 내려가 도로가를 거슬러 올라가 돌아가는 중,
또 문제의 곳에서 쓰레기를 발견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봄, 쓰레기를 캐어내고 토사 유실 방지를 위해 천막으로 덮어 두었다.)

저 지역은 올봄에 폐가구를 버린 것을 모두 캐어낸 곳이다.
나는 캐낸 것을 한동안 그 밑 도랑에 방치해두었었다.
버린 자의 가슴에 모종의 각인을 해두고 싶었던 것이다.
그랬던 것인데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보통 막일을 하는 분들은 이런 방면에 의식이 희박하다.
농원에 일하러 들리는 트럭기사, 막일꾼, 하우스 짓는 이들 ...
이들은 하나 같이 쓰레기를 아무데나 막 버린다.
도대체가 저들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나로서는 저들이 막감당이다.

이제야 눈에 띄는 것을 보니 아마도 풀숲에 가려 미처 챙기지 못했던가 보다.
보았으니 아무리 피곤해도 치어내야 한다.
한참을 치어 내다보니 역시나 오늘 일은 여기서 작파해야 한다.
오늘 하루 일정이 남이 저지른 쓰레기 치우느라고 반 토막이 나고 만다.

바로 맞은편 판잣집에서 버린 것일 터.
나는 쓰레기 문제로 이웃에게 한 번도 불평을 한 적이 없다.
밭에 방치한 멀칭용 폐비닐, 뚝방변에 쌓아놓은 폐가구,
이것들을 버린 그 당자가 눈이 성하다면,
내가 밭에서 저리 뒹굴고 기어가며 보름간 쓰레기를 줍는 것을 당연히 보았을 터이다.

“앞으로 이 밭은 내가 접수하니,
다시는 쓰레기를 버릴 생각을 하지 마시라!”

이런 시위 아닌 시위를 저들이 마음 속 깊이 느껴 차후론 삼가길 바랐던 것이다.

그러한데 판잣집 대문을 마주한 밭 뚝방가엔 늘 쓰레기가 버려진다.
내가 뚝방변을 거닐며 수시로 담배꽁초, 휴지, 음료수 병을 치어내고 있으나,
도로가를 지나는 행객들을 일일이 막아낼 수는 없다.

하지만, 유독 저 판잣집 대문 맞은 편 우리 밭에 늘 버려지는 담배꽁초, 일회용 라이터,
음료수병은 저 집 주인의 소행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증거가 없어 아무런 말을 하고 있지는 않으나,
언제 현장을 내게 들키면 아마도 큰 봉욕을 당하고 말 것이다.
내가 북한산에 있을 때는,
소장에게 직접 고정하여,
온 공원 직원들이 비상이 걸려 산을 훑어 쓰레기를 지고 내려오기도 하였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용서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내가 그 동안 서울에 있다가 이곳에 내려왔은즉,
조용히 동네 풍속을 살피고 저들의 일상을 존중해주는 것은 당연한 것.
그러하니 이리 묵연히 내 할 도리를 다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 면전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목격되면,
적절한 대접을 해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사귄 아저씨 한 분은,
역시나 농민들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것을 마땅치 않게 생각한다.
실제 내가 여기저기 남의 농토를 들여다보면,
여기서 어찌 작물을 심을 수 있을까나 싶은 곳이 지천이다.
도시 사람들아 그대들은 아시는가?
저 쓰레기 밭에 나는 것들을 그대들이 뭣도 모르고 잡숫고 계신 것이다.
게다가 농약, 제초제 따위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저 오물, 독 범벅인 곳에 유전자변형 식물들이 속속 자라고 있다.
하기에 내가 이리 전심전력 밭을 정갈하게 관리하는 것은,
결코 결벽증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기도 한 까닭인 것이다.
내 권하노니 어디 텃밭이나 주말농토 한 조각이라도 분양을 받아 직접 농사를 지어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단 한 귀퉁이 일각(一角)이라도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책임지는 일에 도전하는 일은 뜻이 크다.

그가 며칠 전 술자리에서 내게 말한다.
나를 안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지난번 밭에서 쓰레기를 줍는 것을 보고나서부터라고 한다.

읍사무소 쓰레기 담당자에게 왜 여기서는 폐비닐을 태우는 사람들이 많은가?
저들을 교육하고 홍보 좀 하시라고 청하였다.
그는 말한다.

“아직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그럼 신고해주세요.”

지난번에도 내가 지적하였던 것을 두고 하는 의뭉을 떠는 말이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일은,
여기 시골은 삼이웃 거개가 쓰레기봉투를 사용하지 않고, 폐비닐 따위를 그냥 태워버린다.
공무원들이 많이 산다는 소위 패키지 마을이라는 제법 산뜻한 집단 거주지가 근처에 있다.
여기를 지나다 보면 쓰레기봉투가 집 앞에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 시골에선 상당히 생경스런 풍경이다.

“내가 사는 곳 주변은 나를 빼고는 모두들 쓰레기봉투를 사용하지 않고,
폐비닐, 플라스틱 따위를 태워버리는데,
내가 신고하면 누가 신고하였는지 뻔히 알지 않겠는가?”

그래도 직원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무조건 신고하란다.

답답한 노릇이다.
모아놓으면 거저 치워 가는데 왜 이런 짓들을 태연히 하고 살아가는가?
혹자는 이르길 폐비닐 태우면 청산가리보다 만 배는 더 독한 독이 나온다고 한다.
하기사,
서울에서 내려온 이웃도 그냥 태워버리고 있다.
그리 서울에서 훈련을 하고도 뭣이 모자라 저런 짓을 저지르는가?

대학교육을 받았다는 터키 유민(流民) 하나를 이곳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 다니는 처지이기에 고국엔 들어가지 못한단다.
그 외인 노동자는 일하러 한국을 아니 가본 데가 없다.
그가 말한다.

“역시 서울 사람들이 시골 사람들보다 하이클래스다.
여기 시골 사람들은 억지를 많이 쓰고 합리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자신이 거쳐 온 또는 놓인 조건에 따라 층하가 지는 것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아니 된다는 것쯤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이리 뻔한 것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경향(京鄕), 도농(都農) 클래스를 불문,
지탄받아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내가 쓰레기를 이리 정성을 들여 치우는 것은,
결코 우리 밭이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도대체가 밭에서 우리들 먹을거리가 소출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한데 거기 쓰레기 단 한 톨이라도 버릴 염량이 생길 수 있는가?
밥을 지으면서 거기 안에다 뉘, 돌을 넣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한데 어째서 밭을 저리 홀대 할 수 있음인가?
참으로 상스러운 짓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저런 사람들은 식당을 하여도 설거지도 대충, 조리도 얼렁뚱땅해버리고,
제 잇속만 눈이 벌게져 챙길 것이다.

나는 이런 위생적인 측면에서 그리 하는 것만도 아니다.
나는 앞에서 사귀었다는 아저씨에게 그날 말했다.
황토를 보면, 마치 처녀 속살 같다.
감히 저 정갈한 것을 어찌 훼(毁)할 수 있음인가?
그는 말한다 후손에게 깨끗한 땅을 물려주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물려줄 후손도 없지만,
후손을 생각해서 그럴 까닭조차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그냥 저 말간 황토를 대하자면 자연 귀하게 대하지 않을 수 없을 뿐이다.
저 정(淨)한 것을 차마 어찌.

나는 꿈꾼다.
언제 적절한 기회가 되면 경품 대회를 열까 한다.
우리 밭에서 만약 비닐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는 이가 있으면,
여기서 소출된 된 것을 잔뜩 선사하겠노라.
이리 경품을 걸고 싶다.
그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는 내일 역시 전대를 차고 쓰레기를 줍는 길에 나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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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10. 10. 13. 18: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