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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뱃바닥의 두 글자

소요유 : 2011. 2. 13. 15:24


진(秦)나라에 백기(白起)란 장수가 하나 있었다.

조(趙)나라 장수 조괄(趙括)이 그를 평한 글을 먼저 대하자.

趙括曰:「武安君數將秦軍,先敗韓魏於伊闕,斬首二十四萬;再攻魏,取大小六十一城;又南攻楚,拔鄢郢,定巫黔;又復攻魏,走芒卯,斬首十三萬;又攻韓,拔五城,斬首五萬;又斬趙將賈偃,沉其卒二萬人於河;戰必勝,攻必取,其威名素著,軍士望風而慄,臣若與對壘,勝負居半,故尚費籌畫。如王齕新為秦將,乘廉頗之怯,故敢於深入;若遇臣,如秋葉之遇風,不足當迅掃也。」

“무안군, 즉 백기는 수차 진나라 장군 노릇을 했습니다.
이, 궐 땅에서 한나라, 위나라 군사를 패퇴시켰는데  당시 24만을 참수했습니다. 다시 위나라를 무찌를 때는 .... 또 다시 위나라를 공격했을 때는 13만을 참수했습니다. .....”

내가 여기 등장하는 대로 백기가 적군을 죽인 숫자를 합해보니,
24만 + 13만 + 5만 + 2만
도합 44만이 되더라.

그런데 그 후 다시 조나라와의 싸움에선 또 다시 40여만을 죽인다.
(※ 이 전쟁을 역사에선 長平之戰이라 부른다.)
조괄이 이끈 조나라 군사가 져서 모두 투항하고 말았는데,
백기는 이들을 산채로 모두 찔러 죽이고 만다.
그러하니 백기가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인 것은 44만 + 40만, 즉 합이 84만이 된다.
그러한데 조괄의 항복 군사는 40여만이 아니라 일설엔 45만이라고도 하니,
실로 90여만을 죽였다고 하리라.

후에, 백기는 진나라 중앙의 권력암투에 휘말리고,
급기야 진왕의 미움을 받아 자결을 강요받게 된다.

武安君持劍在手,嘆曰:「我何罪於天,而至此!」良久曰:「我固當死!長平之役,趙卒四十餘萬來降,我挾詐一夜盡坑之,彼誠何罪?我死固其宜矣!」乃自剄而死。

무안군 백기는 진왕이 보낸 칼을 받아들고 탄식하여 말한다.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지경에 이르렀는고!”

한참 있다 다시 말한다.

“내 마땅히 죽어야지! 장평 땅에서 항복한 조나라 군사 40여만을 내가 속여 하룻밤새에 다 묻어버렸다. 그들에게 어찌 죄가 있으리오? 내가 마땅히 죽어야지!”

그리고는 이내 자기 목을 찌르고 죽었다.

後至大唐末年,有天雷震死牛一隻,牛腹有白起二字。論者謂白起殺人太多,故數百年後,尚受畜生雷震之報。殺業之重如此,為將者可不戒哉!

그 후 당나라 말년 때의 일이다.
갑자기 하늘에서 벼락이 내려 소 하나가 죽었다.
그 소 뱃바닥에 백기(白起)란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논자가 이르기를 백기가 사람 죽이는 것을 하도 많이 해서,
수백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축생의 몸을 받고 태어나 벼락을 맞고 죽은 것이다.
살업(殺業)의 무거움이 이러하느니.
장수된 자는 아무려면 마땅히 경계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

내가 이즈음 세태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백기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임이라.

장평의 싸움터에선,
포로로 잡혀 있어 무장 해제된 사람을 모두 무자비하게 죽여 버린다.

一夜俱盡。血流淙淙有聲,楊谷之水,皆變為丹

하룻밤 새에 모두 죽여 버렸다.
피가 흘러 시냇물처럼 찰찰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
양곡이란 냇물이 모두 붉게 변했다.

長平之戰
어찌 그날 그 때만 이를 것인가?
오늘날 입으로만 국격(國格) 높다 하고, 국운(國運)이 도래하였다는 한국의 땅에선,
도도처처가 모두 장평 아닌 곳이 없음이라.

나는 기억한다.
일찍이 김영삼 정권 때 취임 초부터
육. 해. 공. 지하를 순번 정하듯 차례로 돌며 대형 사고가 터졌다.
그러더니만, 그 정권 말기에 치욕의 IMF 경제 신탁통치 시대로 들어갔다.

현 정권은 어떠한가?
취임 초부터 숭례문이 불에 타더니만,
용산 사태가 벌어지고,
사대강이 파헤쳐지고,
작금엔 축생 300여만 살육지변(殺戮之變)이 외눈 하나 깜짝 않고 벌어지고 있다.
과히 살업(殺業)의 연속인 게라.

아, 물론,
육.해.공.지 사고는 그것을 모두 김영삼 정권 탓이라 돌리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나는 당시 이를 그리 탓하는 지인들을 나무라기도 하였으니까.
하지만 무슨 일을 앞두고 하늘이 미리 전조(前兆)를 드러내는 일이 있다는 동양식 사고를 빌자,
이제와서 생각하니 이게 혹 IMF 신탁통치를 미리 예고하였던 게 아닌가 싶은 게다.
이와는 다르게,
현정권에 들어와 일어난 숭례문 화재 이하 일련의 것들은,
모두 현 정권 수임자와 거의 100% 관련이 있다.

나는 두렵다.
생명을 이리 허투루 여기는 사람의 마음보란 게 아무 댓가없이 멀쩡할 이치가 없다.
업(業)을 지으면 보(報) 갚음이 따르는 것.

大智度論 - 諸餘罪中,殺業最重,諸功德中,放生第一。

대지도론에서 가르치길,
죄 중에서 살업이 최고로 무거우며,
공덕 중에선 방생이 제일 으뜸이라 하였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중생의 삶이란 자기 생명을 제일 귀하게 여기는 것.
그러하니 자신이 죽임을 당하면 원망이 최극성에 이르르게 되며,
이게 어찌 한(恨)이 되고, 원(寃)이 되지 아니하랴.
(※ 참고 글 : ☞ 2009/03/29 - [소요유] - 원(怨)과 원(寃))
옛사람은 이 경우 저들이 원귀(寃鬼)가 되어 나타난다고 말한다.
반면, 다른 생명을 구하여주면 최고도로 감격하여 귀의하게 되는 법.
제 아무리 악인이라한들 은혜를 입고 어찌 그 고마움을 잊겠는가?

그러하니,
실로, 자비(慈悲)야말로,
업장(業障)을 소멸시키고, 복덕을 짓는 수승(殊勝)의 법문(法門)이다.
방생은 못할망정 살업을 예사롭게 저지르며 살겠음인가?

이번 참에 식육자(食肉者)는 육식을 삼가,
쌓인 업을 조금이라도 눅이며,
겁살(劫殺)을 피해갈지니.

***

수년전 이화여자대학교에 김활란의 동상을 세우자고 난리를 칠 때,
기사 하나를 읽은 적이 있다.
김활란이 눈이 아파 잘 보이지 않게 되자,
그의 측근에게 일제 강점기 때 나쁜 일을 한 죗값이라고 하였다던가?

그의 발언록 일부를 들춰본다.

“이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징병제라는 커다란 감격이 왔다. …(중략)… 이제 우리에게도 국민으로서의 최대 책임을 다할 기회가 왔고, 그 책임을 다함으로써 진정한 황국신민으로서의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생각하면 얼마나 황송한 일인지 알 수 없다. 이 감격을 저버리지 않고 우리에게 내려진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 기회에 대동아 건설을 위하여 동아 10억의 민족을 저 앵글로 색슨의 손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하여 우리 황군이 도의의 싸움을 하고 있는 이 때에 반도 청년에 이러한 영예를 내리옵심은 더욱 기쁜 바이며, 또한 행복된 일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배속으로부터 대화혼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존엄하옵신 황실을 받들어 모시고 생사를 초월하여 대군을 위하여 순국 봉사하는 그 마음 오직 우리 황국신민만이 특히 제국 군인만이 경험할 수 있는 바이다.”

오늘날 이 땅엔,
구제역이란 핑계로 해망(駭妄)히 300여만 마리의 가여운 축생들을 생매장했다.

축생들이 아직도 까마득히 먼 백기의 업신(業身) 노릇을 할 이유는 없다.
요즘 사람이란 종자들이 얼마나 영악한데,
당인 처럼 글 하나 건지기 위해,
소 뱃바닥에다 일일이 백기란 두 글자를 새길 노고를 치를 정도로 우직하지는 않을 터.

내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김활란은 혹여 동상을 눈병으로 갚았을 뿐,
아직 친일의 죗값을 다 치렀다고 할 순 없다.
하기사,
이게 기리는 동상인지, 드러내어 자청하여 욕이 되는 것이어든,
혼백이라도 흩어지지 않고 아직 남아 있다면 본인은 가려 알지니.

그렇다면,
이 땅에서 오늘을 멀쩡하니 건너는 우리들은,
생떼같은 파란 생명들을 단박에 검은 어둠속으로 몰아넣고,
저 피비린내 나는 죽음의 제단 앞에 무엇으로 어찌 갚을 셈인가?

牛腹二字
소 뱃바닥의 두 글자.
牛腹一億二千萬字
소 뱃바닥의 일억이천만 자.

나는 文도 잘 모르는 위인이지만,
책상 앞에 엎드려,
4천만 곱하기 셋,
일억이천만 자를 소 뱃바닥에 꾹꾹 적어넣으며,
이 땅의 백기들, 그들의 殺業之重을 셈한다.

백기가 자결한 칼은,
당시의 왕인 진소양왕(昭襄王)이 내린 이검(利劍) 즉 썩도 잘 드는 칼이다.
검이란 본디 퍽도 영검(靈驗)한 것임이라,
아무려면 오늘이라고 영검(靈劍)이 마냥 꼭꼭 숨어 있을까?

獲罪於天,無所禱也

하늘에 죄를 얻으면, 감히 엎드려 빌 곳도 없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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