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것은 감추는 법
나는 지난 80년대부터 인터넷 첫 페이지를 a로 고정하여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이리 오래도록 사용한 까닭은 이게 익숙해져 있는 바도 있지만,
다른 것으로 바꾸기엔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한데 요즈음엔 다른 것으로 바꾸어야겠단 생각을 자주 일으키곤 한다.
a에 가장 불만이 있는 것은,
전면 중심부에 배치되어 나타나는 계집 관련 사진이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벗은 계집 사진을 올려두고,
사람들을 호객하여 유인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나온다면 그려러니 하고 두고 보련만,
일관되게 이들을 전면에 배치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저들의 편집과 관련된 세계(인간, 사물) 인식능의 한계와,
정책 집행의 천박성을 나는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수일 내에 다른 포털을 점검하여 이제는 과감히 바꾸려 한다.
인터넷 초창기 때부터 a에 신세를 진 폭이다.
헌데 이제는 부득불 결별을 고해야 할 시간이다.
저기 등장하는 계집들은
대부분이 제 살을 드러내 남을 꾄다.
혹 어떤 때가 되어 옷을 입고 나올 때일지라도,
그게 모피 옷이기 일쑤이다.
면면 피가 뚝뚝 흐르고,
절절 고통에 찬 심음 소리가 부절하던 가련한 증물(證物)로서의 모피.
다음 링크를 따라가 보면,
벌건 대낮에 계집들이 옷 벗고 저리 분탕질을 쳐도 되는가?
이런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누구라도.
하나의 삶이 저리 인간에 의해 무참히 뭉그러지는 마당에,
한 편에서 제 몸뚱이 벗어재껴가며 저 지랄을 떨 수 있음인가?
이 극명한 콘트라스트가 참으로 한편으론 안타깝고, 일변으론 역겨워지는 것이다.
어제 등산하면서 만난,
말끔하게 생긴 40대 등산객 하나는 분탕질이라는 말을 못 알아 듣는다.
허우대만 멀쩡했지 요즘엔 가성(假性) 문맹자가 참으로 많다.
분탕이란 한자로 焚蕩 이리 쓴다.
焚이든 蕩이든 이게 모두 태어버리다, 일소(一掃)한다는 자의를 갖고 있음이다.
옥석구분(玉石俱焚)이란 말에도 焚이 들어간다.
옥이든 돌이든 모두 태운다는 뜻이니,
즉 귀한 것이든 천한 것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 없애버린다는 뜻이다.
火炎崑岡 玉石俱焚
옥이 나는 산인 곤강에 불이 나면 옥이든 돌이든 모두 다 태워버리니,
임금이 덕을 잃으면 사나운 불길보다 더 매섭다는 뜻이다.
분탕질이란 이리 방종스럽게 모든 것을 없애버린다는 뜻이다.
계집들이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종일 저리 벗고 설치니 도의는 땅에 떨어지고,
천하에 패륜과 폭력만이 난무하게 된다.
세모시 옥색치마를 입고,
오월 단옷날 계집들이 그네를 탄다.
보이들 듯 감춘 듯 모시 적삼 안에 살이 아침 이슬인양 뽀얗게 일렁인다.
유월 유둣날,
맑은 개울에 흑단 같은 머리를 감는다.
이 때 슬쩍 드러난 계집사람의 살쩍(鬢毛)은,
마치 깊은 숲속에 어린 물안개인 양 사내 사람의 정신을 혼몽케 한다.
바로 엇그제까지만 하여도,
일년에 단 몇 차밖에 이럴 기회가 없었다.
때문에 계집사람이 사내사람에게 정녕 귀하고 귀한 것이다.
요즘엔 사시장철, 일년 열 두달 계집들이 벗고 지낸다.
그러하니 사내녀석들이 저들을 귀히 여길 수 없게 되었다.
오로지 마비된 녀석이거나 미쳐 발광한 녀석밖에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하기에 요즘엔 초등학생들조차도 선생 알기를 우습게 알고,
제 동무들을 노예 다루듯, 장남감 삼듯,
인성이 망가져버린 것이 아닐까 싶은 게다.
자고로 귀한 것일수록 감추는 것.
그러하기에 良賈 深藏若虛라 했음이다.
일등 장사꾼은,
귀한 물건을 깊숙이 감춰두고,
아닌 양 앙큼을 떠는 것이니라.
드러내놓고 자랑하는 물건은 다 허름한 것이니,
지금 천하의 계집들 역시 제 자신을 저리 값싸게 내돌리고 있음이다.
(※ 참고 글 : ☞ 2009/06/12 - [소요유] - 노류장화(路柳墻花))
천하의 계집들,
옷 벗고 나와 저리 제 몸뚱이를 팔아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음이다.
도대체가 저것을 낮도깨비(晝出魍魎)라 일러야 옳은가?
아니면 꼬리 아홉달린 구미호(九尾狐)라 불러야 함인가?
천하의 계집들이라니,
이 더럽고 메스꺼운 것을 어찌 분탕질이라 이르지 않을손가?
이젠, 더 이상,
이를 적극 방조하고, 견인하여 무엇인가를 꾀하는 이들과 마주하지 않으려 한다.
내 그래도 그 간의 정리가 깊어, 그 인연을 소중히 여겼음이나 인내에 한계가 왔다.
도리 없이 저들과 헤어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