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作亂) 농사
천하의 학문은 모두 배울 만하다.
과연 그러한가?
내게 시간이 남아 있다면,
화엄경의 선재동자처럼 만행(萬行), 만학(萬學)하고 싶다.
재주도 없고,
총명하지도 않지만,
六祖 혜능과 같이 디딜방아를 찧으며 때를 겨냥하고 싶다.
아니 때를 기다린다는 표현은 그르다.
거기엔 용익(用益)이란 과녁을 의식하고 있다.
혜능은 때를 겨냥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현재를 의식하고 있었을 따름이다.
그저 나는 소박하니 호학(好學), 學而時習之하는 삶을 이어가길 바란다.
그런데 호학은 양반이나 하지 노비가 할 형편이 되겠는가?
하루 종일 밭 갈고, 때감 해대기 바쁜데 그럴 틈이 있을 턱이 있나?
王侯將相寧有種乎
왕후장상 어찌 따로 씨가 있는가?
진승내지는 오광은 이리 외쳤지만,
그들은 결국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여기 촌에도 이마트가 들어선다느니,
롯데가 모모기업을 인수했다느니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들이 들어서면,
조그만 구멍가게들은 모조리 문을 닫아야 하리라.
그러한데,
다른 한 편에서는,
땅값이 오르고, 로칼 경제가 상승하리란 기대들이 높다.
제들 땅값은 오르겠지만,
삼촌, 이모가 운영하는 구멍가게는 다 박살이 날 터인데도.
내가 최근 다니는 농민대학은 거개가 ‘돈 버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학생을 부르길 사장님이라 하고,
강사는 강의 중에, 이렇게 하는 것이 돈 버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마케팅을 가르치는 선생은 만 가지 모두 돈을 버는데 연결시킨다.
마케팅은 학이 아니라 내가 보기엔 술인 것 같다.
마케팅學이 아니라 마케팅術이라 부르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돈을 잘 벌기 위해선,
적당히 자신의 성질을 죽이고, 지조를 구부러뜨릴 수밖에 없다는,
취의의 말씀을 듣고 나니 더욱 더 이것은 학이라 부르기엔 과한 것이 아닌가 한다.
곡학아세(曲學阿世)라 이르기엔 좀 지나친 감이 있지만,
나는 순간 저것은 學을 구부러뜨리고, 세상에 아첨하는 술수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만다.
다만 저들의 고심참담한 가운데 일군 경로를 살펴보곤 싶다.
해서 조만간 관련 서적을 몇 권 사서 통독해볼 요량이다.
저것을 저들은 학이란 이름하에 저리 치열하게 닦고 연구를 하지 않았겠는가?
인간 심리를 파고들며 그 惑하고 迷하는 실마리를 찾아 쫓아다녔으리니,
나는 부쩍 그 소종래(所從來)를 엿보고 싶어졌다.
강사가 말한다.
“일본 농부는 자존심이 세다.
그래 농산물 가격이 만만치 않다.
일본 농부는 속이질 않는다.
하지만 한국은 좀 속이는 편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유기농 농산물이라고 재배를 하여도,
소비자들이 그리 깊게 신뢰를 하지 않으니,
제 값을 쳐주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내가 일천한 상태지만,
주변을 두루 접해보니 저 강사의 말씀이 과연 그러 하고나 싶다.
그래 나 역시 평소에 그리 주장하지 않았던가?
“도대체가 땅을 이리 홀대하고도 감히 농부라 이름할 수 있는가?
농부가 땅을 귀히 여기고, 제 농사에 자부심을 가질 때라야,
소비자들은 농민을 귀히 여기고 농산물도 제 값을 받게 된다.”
제 밭에 폐비닐 태우지 않고, 농약병 잘 치우고,
깨끗이만 지으면 관행농일지라도,
유기농보다 한결 정갈한 농산물이 소출될 것이다.
유기농을 백만 번 입으로 지어도,
바른 농심이 없다면 그것은 다 거짓 엉터리 장난농사일 뿐이다.
장난(作亂)
난을 일으키는 몹쓸 짓거리란 말이다.
며칠 전 우리 농원 후문 쪽 주차장 입구에 가보니,
농약병이 나뒹굴고, 담배꽁초가 수두룩하며, 기타 수다한 쓰레기가 버려져 있다.
이웃 논에 모내기를 하고서는 거기 쉬어갔다 간 꼬락서니가 이리도 험하다.
이 짓거리 하고서 농사를 짓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게다가 그게 누구 짓인지 내가 바로 알 터인데도,
이리 저질러놓고 그냥 내빼고 있다니,
이들은 부끄러움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들이 아닌가 말이다.
그저 메뚜기 떼처럼 휭하니 천지사방을 돌아다니며,
온갖 오물들을 토해내는 저들 깡패농부들을 볼짝시며,
저들은 모조리 농토에서 몰아내야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농사는 쌍놈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엄격한 자격 심사를 거친 진짜배기 양반 농민에게만 맡겨야 한다.
이러고서야 비로소,
천하 만민의 생명이 바로 길러질 것이다.
지금 상태라면,
저 농산물은 농산물이 아니라,
그저 돈 벌기 급급한 무늬만 농부인 장돌뱅이가 만드는 저질 공산품에 다름 아니다.
내가 재작년에 산 물통은 20L 자리가 두 개, 10L짜리가 두 개였다.
그런데 금년에 이 중 두 개가 깨져버렸다.
물을 담고 들어 올리는데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말 그대로 과자처럼 깨져버렸다.
제조회사(국산)가 무슨 종교와 관련이 있는지 안내서에 표지까지 새겼던 것인데,
이것은 그저 중국산 정크가 아닌가 말이다.
이러하고도 저자들이 공산품 제조사라 이름할 수 있는가?
온 천하를 저리 돌아다니면서 자원을 낭비하고 쓰레기를 양산하고 있질 않은가?
밭에다 폐비닐을 방치하고, 태우는 따위로 땅을 홀대하는 농민들이,
제아무리 때깔 좋고 겉보기 그럴싸 하니 큰 것을 생산해낸들,
저것이 사람 몸에 들어가 과연 온전하니 생명을 길러낼 수 있겠는가?
이들을 어찌 농민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그러함이니 이리도 국산 농산물 가격이 똥값이고,
농민들이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지 못함을 어찌 그르다고 할 수 있음인가?
그저 똥구멍에 불침 달린 듯,
달려 내빼기에 급급하며,
허겁지겁 돈 벌기에 눈이 시뻘건 날건달들.
농사란 모름지기 양반이 지어야 한다.
그래야 천하 양민들이 건강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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