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과 힐링
나는 세태의 흐름에 그리 민감한 사람이 아니다.
시대의 조류에 재빨리 편승할 만한 재주도 없고,
그러한 세상에 마음을 심을 뜻조차 갖고 있지 않다.
그러함이나 뚫린 귀에 열린 눈이라 자연 듣고 본 것이 어찌 없으랴?
얼마 전까지 웰빙(well-being)이란 말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더니만,
요즘엔 힐링(healing)이란 말을 자주 접하게 된다.
나는 TV를 보지 않은지 십여 년이 넘는다.
그러한데 이즘엔 힐링캠프란 말도 들리는 바, 이게 필경은 TV 프로그램쯤 되리라.
내가 그 내용을 알지 못하니 혹여 내가 말하는 힐링이 이것과 상치될 수도 있겠고,
일정분 비슷한 부분도 있겠지만 전혀 관련이 없다.
이렇듯 도대체가 힐링캠프에 대하여는 아는 바가 전혀 없음이니.
혹여 이와 연관 지어 내 글을 평하지 않기를 바란다.
웰빙이든 힐링이든 말만 다르지, 그 뿌리가 매 한가지라는 인상을 나는 갖고 있다.
평소 이런 말들에 기실 나는 별 가치를 두고 있지 않다.
그런즉 잘 알지도 못한다.
하지만 오늘은 피상적이나마 말 하나를 남겨두고 싶었다.
모 카페에서 우연히 내어 달린 힐링 云云이란 글을 보자 문득 이러한 생심(生心)이 일으켜졌다.
사람들이 사는 게 너무 지치니까,
애초엔 이젠 좀 더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몸부림치며 나선 것이,
웰빙이란 catch-phrase가 태어난 소이(所以)이리라.
그러하던 것인데 이것으로 극복이 되지 않자,
종내는 나자빠진 사람들의 심신을 어루만지고 고쳐보자 하고 꾀한 것이,
힐링이란 조어가 나타난 소종래(所從來)일 것이다.
여기, 재물을 누가 더 많이 취하는가 하는 경주에 뛰어든 이들이 있다 하자.
하기사 이런 가정을 굳이 할 필요도 없다.
여기가 바로 한국이고,
그러한 사람들이 바로 오늘의 한국인이 아니던가?
그러하기에 엊그제만 하여도 돈만 벌게 해주고, 부자 되게 만들어주는 이라면,
그가 어떠한 인격이든 상관없이 앞장 세워 밀어주겠다고 하지 않았음인가?
이 때 등장한 것이 바로 웰빙이란 그럴싸하게 위장된 위무(慰撫)의 말씀들이었다.
이런 동원된 광고, 선전술로써 우리는 가여운 스스로의 처지를 구원하고자 했다.
그러함인데 과연 이 꿈이 이루어졌는가?
남은 것은 남루(襤褸)한 몰골과 비루(鄙陋)한 우리의 인격밖에.
이 스스로의 모습에 우리는 절망했지.
그리고는 오늘 우리는 헤진 우리의 영혼을 달래고자 한다.
이 때 웰빙은 힐링이란 말씀으로 자리를 내주고 만다.
웰빙 시절엔 그나마 꿈이라도 꿔볼 수 있었다.
기대와 희망을 부풀릴 수 있었지.
거긴 막연하나마 찬란한 미래를 향한 전망(展望)이 있었다.
비록 오도(誤道)된 것일망정.
헌데 힐링은 미래를 겨누는 것이 아니라,
다만 과거로의 안전한 복귀를 기원하고 있을 뿐.
더 이상의 전진(前進), 욕망, 기대가 부재하다.
다 망그러져 재만 남았음인데 구할 바 그 무엇이 더 남아있으랴?
엊그제만 하여도
‘부자 되세요’
이런 천박한 말씀이 우리네 인사법이었다.
닉에도 ‘부자’, ‘대박’ 이란 말의 씨들이,
스스럼없이 틀어박혀 있었지 않음인가?
그러함인데 왜 이게 천박하다고 나는 말하고 있음인가?
내가 과연 부자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짐짓 부자 되기를 바라지 않는 양 위선을 떨기 때문인가?
‘부자 되세요’
부자란 것 자체에 시비를 걸자는 것이 아니다.
저 문법은 ‘어떻게’란 과정이 거세되어 있다.
오로지 부자란 결과만 앞장 세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자라면,
그가 부정부패를 저지르든 말든 상관없다.
부자가 될 수만 있다면,
내가 친구를 팔든, 계집을 팔든 무슨 짓을 할 수도 있다.
‘부자 되세요’
이 얼핏 무색투명한 말이듯 보이는 이 말이 나는 무서웠던 게다.
저 말 뒤에 숨은 뜻과, 곧 저지르고 말 짓들이 위험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그저 단순히 부자가 나쁘다, 옳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종내,
저들은 부자라면,
그 내력이 여하하든,
모두들 일떠일어나 만세 삼창을 부르고도 말 위인들이 아니었던가?
이 어찌 천박하다 이르지 않을손가?
웰빙을 거쳐 이젠 모두 지쳐 나자빠졌음인가?
요즘 대세는 힐링인 바라.
나는 웰빙 시절에 이미 예견하였다.
모두 힐링캠프로 들어가게 될 것임을.
그런데 참으로 남우세스러운 것은,
웰빙, 힐링을 간절히 원하던 이들은 온데 간데 없고,
저들이 스러져 버린 그 빈자리엔,
상품과 상인들만 난장(亂場)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웰빙에 좋은 상품들,
그리고 이를 아우성치며 팔아재끼는 상인들만 넘쳐나고 있는 거리.
힐링에 좋은 프로그램,
그리고 이를 운용하는 명상 센터, 캠프만 요란한 골목.
이 시대의 희화(戱畵)가
갈바람에 우쭐거리는 허재비처럼,
오늘의 겨울 목전 앞에 빛바래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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