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웰빙과 힐링

소요유 : 2012. 11. 6. 11:23


나는 세태의 흐름에 그리 민감한 사람이 아니다.
시대의 조류에 재빨리 편승할 만한 재주도 없고,
그러한 세상에 마음을 심을 뜻조차 갖고 있지 않다.

그러함이나 뚫린 귀에 열린 눈이라 자연 듣고 본 것이 어찌 없으랴?
얼마 전까지 웰빙(well-being)이란 말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더니만,
요즘엔 힐링(healing)이란 말을 자주 접하게 된다.

나는 TV를 보지 않은지 십여 년이 넘는다.
그러한데 이즘엔 힐링캠프란 말도 들리는 바, 이게 필경은 TV 프로그램쯤 되리라.
내가 그 내용을 알지 못하니 혹여 내가 말하는 힐링이 이것과 상치될 수도 있겠고,
일정분 비슷한 부분도 있겠지만 전혀 관련이 없다.
이렇듯 도대체가 힐링캠프에 대하여는 아는 바가 전혀 없음이니.
혹여 이와 연관 지어 내 글을 평하지 않기를 바란다.

웰빙이든 힐링이든 말만 다르지, 그 뿌리가 매 한가지라는 인상을 나는 갖고 있다.
평소 이런 말들에 기실 나는 별 가치를 두고 있지 않다.
그런즉 잘 알지도 못한다.
하지만 오늘은 피상적이나마 말 하나를 남겨두고 싶었다.
모 카페에서 우연히 내어 달린 힐링 云云이란 글을 보자 문득 이러한 생심(生心)이 일으켜졌다.

사람들이 사는 게 너무 지치니까,
애초엔 이젠 좀 더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몸부림치며 나선 것이,
웰빙이란 catch-phrase가 태어난 소이(所以)이리라.
그러하던 것인데 이것으로 극복이 되지 않자,
종내는 나자빠진 사람들의 심신을 어루만지고 고쳐보자 하고 꾀한 것이,
힐링이란 조어가 나타난 소종래(所從來)일 것이다.

여기, 재물을 누가 더 많이 취하는가 하는 경주에 뛰어든 이들이 있다 하자.
하기사 이런 가정을 굳이 할 필요도 없다.
여기가 바로 한국이고,
그러한 사람들이 바로 오늘의 한국인이 아니던가?

그러하기에 엊그제만 하여도 돈만 벌게 해주고, 부자 되게 만들어주는 이라면,
그가 어떠한 인격이든 상관없이 앞장 세워 밀어주겠다고 하지 않았음인가?
이 때 등장한 것이 바로 웰빙이란 그럴싸하게 위장된 위무(慰撫)의 말씀들이었다.
이런 동원된 광고, 선전술로써 우리는 가여운 스스로의 처지를 구원하고자 했다.
그러함인데 과연 이 꿈이 이루어졌는가?
남은 것은 남루(襤褸)한 몰골과 비루(鄙陋)한 우리의 인격밖에.
이 스스로의 모습에 우리는 절망했지.

그리고는 오늘 우리는 헤진 우리의 영혼을 달래고자 한다.
이 때 웰빙은 힐링이란 말씀으로 자리를 내주고 만다.
웰빙 시절엔 그나마 꿈이라도 꿔볼 수 있었다.
기대와 희망을 부풀릴 수 있었지.
거긴 막연하나마 찬란한 미래를 향한 전망(展望)이 있었다.
비록 오도(誤道)된 것일망정.

헌데 힐링은 미래를 겨누는 것이 아니라,
다만 과거로의 안전한 복귀를 기원하고 있을 뿐.
더 이상의 전진(前進), 욕망, 기대가 부재하다.
다 망그러져 재만 남았음인데 구할 바 그 무엇이 더 남아있으랴?

엊그제만 하여도

‘부자 되세요’

이런 천박한 말씀이 우리네 인사법이었다.

닉에도 ‘부자’, ‘대박’ 이란 말의 씨들이,
스스럼없이 틀어박혀 있었지 않음인가?

그러함인데 왜 이게 천박하다고 나는 말하고 있음인가?
내가 과연 부자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짐짓 부자 되기를 바라지 않는 양 위선을 떨기 때문인가?

‘부자 되세요’

부자란 것 자체에 시비를 걸자는 것이 아니다.
저 문법은 ‘어떻게’란 과정이 거세되어 있다.
오로지 부자란 결과만 앞장 세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자라면,
그가 부정부패를 저지르든 말든 상관없다.

부자가 될 수만 있다면,
내가 친구를 팔든, 계집을 팔든 무슨 짓을 할 수도 있다.

‘부자 되세요’

이 얼핏 무색투명한 말이듯 보이는 이 말이 나는 무서웠던 게다.
저 말 뒤에 숨은 뜻과, 곧 저지르고 말 짓들이 위험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그저 단순히 부자가 나쁘다, 옳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종내,
저들은 부자라면,
그 내력이 여하하든,
모두들 일떠일어나 만세 삼창을 부르고도 말 위인들이 아니었던가?

이 어찌 천박하다 이르지 않을손가?

웰빙을 거쳐 이젠 모두 지쳐 나자빠졌음인가?
요즘 대세는 힐링인 바라.
나는 웰빙 시절에 이미 예견하였다.
모두 힐링캠프로 들어가게 될 것임을.

그런데 참으로 남우세스러운 것은,
웰빙, 힐링을 간절히 원하던 이들은 온데 간데 없고,
저들이 스러져 버린 그 빈자리엔,
상품과 상인들만 난장(亂場)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웰빙에 좋은 상품들,
그리고 이를 아우성치며 팔아재끼는 상인들만 넘쳐나고 있는 거리.

힐링에 좋은 프로그램,
그리고 이를 운용하는 명상 센터, 캠프만 요란한 골목.

이 시대의 희화(戱畵)가
갈바람에 우쭐거리는 허재비처럼,
오늘의 겨울 목전 앞에 빛바래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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