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의 삶
소요유 : 2014. 3. 23. 10:58
어떤 이가 관성대로 삶을 영위하는 것에 대하여 경계의 말씀을 주시다.
그러하지니 관성대로 아니 사는 것이 옳겠거니 하며,
이를 쪼르르 따르는 이들이 생길 터.
내 이에 그 한자락 이리 남겨 이를 다시 경계하고자 한다.
***
임제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러하지니 관성대로 아니 사는 것이 옳겠거니 하며,
이를 쪼르르 따르는 이들이 생길 터.
내 이에 그 한자락 이리 남겨 이를 다시 경계하고자 한다.
***
임제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卽是現今 更無時節
바로 지금외 별다른 시절은 없다.
here and now.
ditthe va dhamme,
지금, 여기.
바로 이 이야기에 와 닿는데,
노상 관성대로 흘러가며 사는 것은 문제이겠으나,
이 말씀에 또 다시 갇혀,
과거, 미래를 무작정 부정하게 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책임(과거)과 전망(미래) 역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만약 부정하기로 작정한 이가 있다면,
차라리 삼세를 모두 부정하는 것이 좀 나을걸요.
혜능의 말씀을 일러봅니다.
不思善不思惡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마라
卽是現今 更無時節
不思善不思惡
이 둘의 차이를 모른다면,
차라리 관성대로 사는 것이 나을걸요.
요는 말씀의 고삐에 낚아 채여 길을 떠나면,
제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이라도 영영 마부에 끌려다니는 말 신세를 면치 못할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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