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개 연
한글의 자음엔 평음(平音), 격음(激音), 경음(硬音)으로 나눠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가령 ㄱ은 평음, ㅋ은 격음, ㄲ은 경음이다.
난 연(鳶)의 영어 말인 kite[kait]에서 그 첫 발음이 격음임을 새삼 확인하곤 한다.
영어는 유기음과 유성음만 존재한다고 하는데,
한글에서 ㅋ은 무성유기음에 해당된다.
※ 참고
유성(有聲)과 무성(無聲)은 목청(성대)의 떨림 여부로 구별된다.
유기(有氣)와 무성(無氣)은 폐쇄음을 낼 때 거센 바람을 터트리며 내면 유기,
아니면 무기음이다.
한글의 연이 아니라, 영어의 kite를 발음할 때,
나는 그 소리 형용이 연을 연상시키기에 퍽이나 그럴듯하다는 인상을 갖는다.
kite를 발음할 때,
유기음(有氣音)이 공중에 소리를 터뜨리며 나아가는데,
순간 그 소리 바람이 연처럼 하늘을 가르고 나는 것이 연상되는 것이다.
실제 kite는 그 어원이 새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매나 수리 같은 포식자 새가 하늘에서 끼익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본떠서,
조어(造語)를 했다는 설도 있다.
내가 새 피해를 막기 위해,
오래 전부터 매 형상을 한 연을 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이게 구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두 점을 구하였다.
조립을 해보았는데 외양 형상은 그럴싸하지만,
얇은 천으로 만든 것이라 햇빛에 노출되면 한두 해나 버틸까나 싶다.
한비자(韓非子)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실려 있다.
墨子為木鳶,三年而成,蜚一日而敗。弟子曰:「先生之巧,至能使木鳶飛。」墨子曰:「吾不如為車輗者巧也,用咫尺之木,不費一朝之事,而引三十石之任致遠,力多,久於歲數。今我為鳶,三年成,蜚一日而敗。」惠子聞之曰:「墨子大巧,巧為輗,拙為鳶。」
묵자가 나무 솔개(연)를 만드는데 삼년이 걸렸다.
하지만 하루 날리고는 실패하고 말았다.
제자가 말하길,
‘선생이 재주가 나무 솔개를 날 수 있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라 하였다.
묵자가 말한다.
‘나는 수레 끌채 마구리를 만드는 장인(匠人)의 재주만도 못하다.
그는 짧은 나무로 하루아침도 걸리지 않아 만들어 삼십 섬 짐을 나른다.
게다가 견고하고도, 오랜 세월을 견딘다.
나는 지금 솔개를 만드는데 삼 년이나 걸렸고,
단 하루 만에 실패하고 말았다.’
혜시가 그를 듣고는 말한다.
‘묵자는 큰 재주꾼(大巧)이다.
끌채 마구리 만드는 일을 교(巧)라 하고,
솔개 연 만드는 일을 졸(拙)이라 한다.’
여기 마지막 혜시가 말하는 장면은,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의 다음 글을 참고하여야 이해하기 쉽다.
大直若屈,大巧若拙,大辯若訥。
크게 곧은 것은 구부러져 있는 양,
큰 재주는 졸렬한 양,
큰 변설은 어눌한 양.
大成若缺,其用不弊。
큰 이룸은 결함이 있는 양 보인다.
하지만 그 쓰임엔 폐가 없다.
하니깐 혜시는 묵자의 실패를 적극 변호하고 있는 셈이다.
묵자는 대교(大巧), 수레 장인은 대졸(大拙)이며,
묵자는 약졸(若拙), 수레 장인은 약교(若巧)라 이르고 있는 게다.
하지만 정작 한비자의 본글에선 묵자를 비판하고 있다.
행동은 옳지만, 변설만 장황하여 그 실속이 없음을 경계하고 있다.
가령 이러한 것이다.
진백(秦伯)이 그 딸을 진(晉) 공자에게 시집보내는데,
신부 의상은 진(晉)에 가서 꾸미도록 하고,
함께 보내는 잉첩(몸종) 칠십 명은 화려한 옷을 입혀 진에 보냈다.
그러자 진(晉) 공자는 잉첩을 좋아하고 정작 신부는 좋아하지 않았다.
묵자가 솔개연을 만들 때 삼년이 걸렸다 함은,
그게 그리 간단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갖은 궁리(窮理)를 다하였을 터이다.
하지만 정작 하늘을 하루 날고는 망가지고 만다.
반면 수레 장인은 간단한 나무 막대로 수레 끌채를 완성한다.
요긴함은 요원(遼遠), 아득하니 먼 것을 취할 것이 아니라,
당장 가까이 있는 간단한 것만으로 족하다.
3년씩이나 궁리를 틀 것이 무엇인가?
가령 내가 구한 솔개연을 긴 장대에 매달아,
새를 쫓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쏜가?
‘꿩 잡는 게 매’인 게다.
그러함인데 묵자처럼 3년씩이나 궁리를 틀 일이 있겠음인가?
나는 을밀 조류 퇴치기를 만들면서 30년을 작정한다고 하였다.
묵자는 고작 삼 년을 만들고는 혜시로부터 대교(大巧)란 소리를 들었다.
과연 혜시가 살아 있다면,
을밀을 보고 무엇이라 이를 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