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신답리 고분(漣川 薪畓里 古墳)
연천 신답리 고분(漣川 薪畓里 古墳)
경기도기념물 제210호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신답리 17-42, 17-43번지 일원에 소재
연천군 전곡읍에 내가 일시 머물고 있는 농장이 있다하나,
예서 서울을 오갈 뿐, 지역 사정에 대하여는 아는 바가 깊지 않다.
때때로 고대산, 동막계곡, 내산리, 재인폭포 등등 명소에 다녀온 적은 있으나,
그저 잠깐 풍광을 즐겼을 뿐 게서 깊은 감상은 일지 않았다.
하지만, 신답리 고분은 며칠 전 다녀왔으되,
마음에 잔잔한 감상의 여진(餘震)이 남아 며칠을 이어갔다.
하여 재우쳐 그곳을 찾아갔다.
농장이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도 않다.
자동차로 고작 10여분 상거(相距)할 뿐이다.
신답리(薪畓里)의 지명에서 신(薪)은 땔나무를 뜻한다.
하여 나는 여기 지대가 높은 편이니 옛날 땔나무를 많이 하던 곳인가 짐작을 하였다.
하지만, 산도 아닌데 땔나무가 얼마나 많이 나왔을려고?
하며 의아심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차후 조사를 해보니 원래 이 지명은 섶논에서 유래하였다 한다.
섶논은 순순한 우리말로서 ‘큰 강 옆에 있는 논’을 뜻한다 한다.
한편, 신(薪)은 땔나무를 의미하는데,
섶이란 우리말은 잎나무, 풋나무, 물거리 따위의 땔나무를 통칭하는 말이기도 하니,
신(薪)은 곧 이 ‘섶’에 통한다.
그러하니 애초의 섶논에서 한자말로 바꿀 때,
섶은 섶‧신(薪)에서, 논은 논‧답(畓)을 취한 것이다.
논을 畓으로 바꾼 것은 옳다 하되,
섶은 다만 발음이 같을 뿐, 뜻이 다른데, 이를 취했다는 것은,
너무 엉터리라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처사라 하겠다.
화가 난다.
섶논이란 아름다운 우리말이,
무식한 행정관리에 의해 봉욕(逢辱)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근처에선 아우라지란 지표지(地標識)를 가끔씩 만나게 된다.
왜 그런가 하니,
신답리 남쪽의 한탄강(漢灘江)과,
포천군 백운산에서 발원하는 영평천(永平川)이 합류하기 때문이었다.
아우라지란 두 물길이 한데 아우러진 곳(아우라+지)이란 뜻이다.
고분 아래쪽 너머 이 강이 흐르고 있다.
고분군 내역엔 크고 작은 두 기(基)가 모셔져 있다.
음양으로 고저를 고르고 있으니,
젖무덤처럼 솟은 봉토 자락을 따라,
나지막하니 깔려 흐르고 있는 선율(旋律) 한 가락이 문득 귓가에 들려온다.
나는 무덤 주인의 천년 고독과 한(恨)을 함께 나눈다.
하지만, 저 토역(土役) 일에 얼마나 많은 민중의 아픔이 녹아 있을까?
하는데 이르러서는 권력자들의 폭압에 치를 떨고 만다.
죽은 이를 위해 동원된 민중들은 한 그릇 죽에,
죽음보다 더 고통스런 현생의 노역을 팔 수밖에 없었으리라.
나는 저들이 극복하지 못한 현실의 강고한 질곡에,
이제라도 힘 보태 저항한다.
내가 무덤 주인의 고독을 잠시 함께 하다,
이내 한 생각 일어 그 미침이 민중에 가닿자,
저 산더미처럼 높은 봉분이란 고독의 크기가 아니라,
고쳐, 곧 고통의 무게로 다가왔다.
민중의 고통 말이다.
여기 고분의 발굴 조사는 2001년 토지박물관에 의해 이뤄졌는데,
이미 무덤 정상부엔 수직으로 구멍이 나있어,
도굴이 한참 전에 이뤄졌었다고 한다.
하여 발굴 조사시 별반 유물을 수습하지 못하였다 한다.
아무리 장대하게 무덤을 쌓는다한들,
크면 클수록 더욱 도굴꾼들을 불러 모을 뿐인 것임이라.
만약 저리 도굴꾼들의 손을 타게 되면,
소리 소문도 없이 산하에 뿌려져,
흔적조차 찾을 길 없는 서민들보다 더 못한,
험한 꼴을 당하게 되고 만다.
허나, 인심이란 말 타면 경마를 잡히고 싶은 법이다.
여기 경마란 말 경주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견마(牽馬)에서 유래한 것으로,
남이 탄 말의 고삐를 잡고 말을 모는 일을 뜻한다.
하니 ‘말 타면 경마를 잡히고 싶다’는,
걷다가 말을 타게 되면,
이젠 말을 몰아줄 견마잡이를 원하게 된다는 말이다.
견마잡이의 아픔을 함께 공감할 때,
그이는 이내 진보가 된다.
아무렴,
설혹,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살아가더라도,
뒷간에 가서나마,
세상을 살필 터이니까.
하지만, 견마 잡히고 싶은 마음과 함께 할 때,
우리는 달콤한 꿀을 탐하는 보수가 된다.
보수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공감 능력을 상실 할 때,
우리는 맹목(盲目)이 된다.
나는 이 어둠을 슬퍼한다.
天子墳高三仞,樹以松;諸侯半之,樹以柏;大夫八尺,樹以欒;士四尺,樹以槐;庶人無墳,樹以楊柳。
(白虎通德論)
“천자의 무덤은 높이가 세 길이며, 소나무로 봉(封)한다.
제후의 무덤은 그 반 높이며, 측백(잣)나무로 봉한다.
대부의 무덤은 8척 높이며, 모감주나무로 봉한다.
사(士)의 무덤은 4척 높이며, 회화나무로 봉한다.
서인은 봉분을 만들지 않으며, 버드나무를 심어 표지로 삼는다.”
(※ 참고 사항
길(仞) : 8척(尺) 또는 7척)
우리가 흔히 말하는 봉분(封墳)에서,
봉(封)은 본디 흙 위에 나무가 높이 자라 무성한 모습을 가리킨다.
이리, 흙을 모아 북돋은 것으로써 표식으로 삼게 된다.
하여 내가 위에서 ‘oo나무로 봉(封)한다’라고 번역한 것은,
바로 이런 사정을 드러내기 위한 표현이다.
옛날엔 본디 묘를 높게 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높이 봉분을 만들어 올리니,
동서남북 모든 사람이 저게 곧 무덤인지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다.
게다가 신분에 따라 높이를 달리하였으니,
신분이 높을수록 높이 쌓아올려,
뭇 사람들이 더욱 우러러보게 한다.
여기 신답리 고분도 높디 높이 쌓아올렸기에,
천 수백 년 지난 지금에 와서도 국가가 기념물이라 닦아 세우며 기리지 않던가?
높이 쌓지 못한 서민의 무덤이라면 이제껏 남아 있지도 않았겠지만,
설혹 남아 있다한들 이리 귀한 대접을 받겠음인가?
하지만, 봉분을 태산처럼 높이 쌓았다한들,
신답리 고분처럼 이미 도굴을 당하여 부장품은 다 빼앗기고,
유골은 흩어져 골편들만 주변에 널브러지고 말았다.
설사, 천행으로 유물, 유골이 남아 있다한들,
파렴치한 후인들은 이것 다 캐내어 박물관에 전시를 하지 않던가?
차라리 산하에 다 흩어지고 마는 것이 낫지,
구경꾼들의 중인환시(衆人環視)에 전시물이 되고 말았으니,
빼도 박도 못하고 영영 천만년 욕을 보게 되었다 할 것이다.
그러함이니, 기념물로 기린다한들,
그게 어찌 망자의 소망일 것이며, 장차 영광이 될 것인가?
그러함이니,
나라면,
차라리 한줌 먼지가 되어,
바람과 함께 산천을 노닐다,
기분이 나면 하늘로 올라 구름이 되고 지고.
龍聞雷聲則起,起而雲至;雲至而龍乘之。雲雨感龍,龍亦起雲而升天。
(論衡 龍虛)
"용이 뇌성을 들으면 일어나 움직이며, 이내 구름에 이른다.
구름에 가닿으면 용은 구름을 타고 노닌다.
비구름이 용에 감응을 하면,
용 역시 구름을 일으키며 하늘에 오른다."
내 이리 구름이 되어 용을 벗하리라.
장자에도 보면,
不食五穀,吸風飲露。乘雲氣,御飛龍,而遊乎四海之外。라,
신선은 오곡을 먹지 않고, 바람을 마시고, 이슬을 먹으며,
구름을 타고, 날으는 용을 길들여,
사해 밖을 노닌다 하였음이라.
내,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려 함은,
용을 이기려 함이 아니라,
열자(列子)의 저 웅혼한 말씀처럼,
乘風而歸이라,
바람 타고, 저 안짝의 그윽한 길로 돌아가고자 함이요,
隨風東西이라,
바람 따라 우주를 떠돌려 할 따름이라.
별도로 달리 구함이 없기 때문이다.
혹여 흙 높이 돋아,
죽어서도 명리(名利)를 취할 형편이 아니 되기에,
지레 이리 물러섬이 아님이라,
-어림없다-
나는 대체 저 따위 도깨비 놀음에,
마음이 매이지 않기 때문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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