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개떼가 되어야 하는가?
왜 개떼가 되어야 하는가?
선물을 받고 즐거워하지 않을 사람도 있을까?
있다.
즐거워하기는커녕 아예 받지도 않고 물리치는 이도 있는 것이다.
오늘 왕망(王莽) 그를 먼저 생각한다.
왕망은 원래 한(漢)나라 사람인데, 한나라 왕위를 찬탈하고는 신(新) 왕조를 세운다.
후에 유수(劉秀-후한의 光武帝)가 다시 한나라를 되찾게 되는데,
이에 따라 그 전의 한은 전한(前漢), 다시 되찾은 한을 후한(後漢)이라고 부르게 된다.
왕씨 일가는 황제의 외척으로서 권세를 잡았으나,
왕망만큼은 아버지가 일찍 죽는 바람에 어렸을 적에 불우하게 자라게 된다.
하지만, 정치적 야욕이 큰 그는 자신의 인척은 물론,
백성, 관료 등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구할 목적으로
수십 년간 본심을 숨기고 여러 가식적인 행동을 꾸며 위장한다.
급기야 이게 효과를 발휘하여 대사마(大司馬)까지 이르게 되며,
차츰 야욕을 드러내게 되는데,
그는 그 와중에 자신의 아들 둘까지 죽음에 이르도록 한다.
이게 다 세상 사람들의 인심을 얻기 위한 것인데,
평생을 오로지 자신의 야욕을 위해,
자신의 본심을 속이고,
혈육까지 희생한 그의 집념이 보통 놀라운 것이 아니다.
결국 그는 평제(平帝)를 독살하고, 2살배기 유영(劉嬰)을 내세우고는
자신이 실질적인 황제 역할을 다 수행했다.
하지만, 유영(劉嬰)은 정식으로 황제의 위를 받지는 못했고,
그저 황태자 신분으로 머물게 했다.
이는 다 후에 일을 꾸미기 위한 왕망의 복안 때문이다.
때가 무르익자 왕망은 거짓으로 각종 서조(瑞兆)를 꾸며,
즉 부명(符命)을 만들어, 진천자(眞天子)가 나타날 것이라는 여론조작을 꾀한다.
이미 조정은 그의 손아귀에 들었고,
서민들도 그의 포퓰리즘 정책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왕망의 인기는 한껏 높았다.
왕망은 급기야 시초(始初)로 개원하고 황제의 자리에 앉는다.
이게 신(新)나라다.
거칠게 죽 훑어보았다.
내가 오늘 글을 쓰게 된 중심 주제를 위해,
왕망의 포퓰리즘 정책의 내용을 조금 더 언급해본다.
굶주린 백성들에게 빌려준 곡식을 가을에 되돌려 받을 때는,
반만 받는다는 식으로 인심을 끌어 모은다고 생각해 보자.
나중에 황제가 되면, 이까짓 것은 아무런 손해가 되지 않는다.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복심을 숨기고 잔뜩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얻는 행동을 한 후,
또 한편으로는 도참설에 의지하고, 선동질을 꾀하곤 하였다.
이것 대명천지 지금 깨인 세상에도 일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일당 몇 푼만 손에 쥐어주어도 제 영혼까지 팔 허름한 인간 널려 있다.
물경 50만의 청원 운동을 일으켜,
그에게 구석(九錫)을 내려야 한다고 평제(平帝)에게 요구하였다.
반고(班固)는 한서(漢書)에서 당시를 고증하여,
이게 487,572(四十八萬七千五百七十二人) 명의 사람이 상서를 올렸다고,
정확히 밝히고 있다.
당시 인구라야 수천만을 넘지 못하였고,
문자를 아는 이라야 몇 명 되지도 않았을 터이니,
저 숫자가 실로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구석이 무엇인가?
당시 이것은 제후에게 내리는 것이로되,
일반 신하라면 아주 공이 큰 자라야 받을 수 있었다.
차마, 의복, 악기, 납폐, 부월, 제삿술 ....
(車馬、衣服、樂、朱戶、納陛、虎賁、斧鉞、弓矢、鬯)
예기(禮記)에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오는데,
한마디로 서민들은 감히 꿈도 꿔볼 수 없는 아홉 가지 예물인 것이다.
이는 실질과 상징을 모두 아루르고 있는 물건들인 것이다.
왕망은 대개 역사가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다.
황제가 되고 난 후,
왕전제(王田制)라든가 노비 매매제한과 같은 사속제(私屬制) 등,
개혁 정책을 폈지만, 실제는 기득권의 벽을 넘지 못하여,
외려 인민들의 삶을 더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가 황제가 되고 난 후,
백성들은 다시금 한(漢)나라로 돌아가길 꿈꾸었다.
그 지긋지긋한 한나라 말기가 차라리 좋았던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분단장 하고 애교 떨며 나타나는 계집을 경계하여야 한다.
재물 뿌리는 현장,
되로 주고 말로 빼앗을 녀석이 아닌가 의심하여야 한다.
그래야 핫바지 저고리가 되지 않는다.
이제 글이 길어지고는 있지만,
먼저 인기에 영합하고,
나중에 천하를 빼앗을 궁리를 텄던 모습을 보다 확실히 그려보기 위해,
주공단을 이에 대비시켜 보련다.
공자는 주공단을 성인으로 추앙하였다.
신권국가인 은나라가 지고,
주나라가 들어섰을 때,
예악과 제도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기초를 놓은 것은 주공단이다.
공자는 시대의 역할모델을 신화시대의 요순으로 끌어올리기 전에,
구체적 현실인 주공단에서 찾아 모셔 올렸음이리라.
게다가 주문왕(周文王)의 64괘와 더불어 주공단은 괘효사(卦爻辭)를 지었다 하니,
부자의 지혜가 모두 수승(殊勝)하였음은 여축없다 하겠다.
신권정치가 어둠이라면,
예악과 제도에 의한 정치는
무지몽매한 역사현실을 밝히는 등불과 같았으리라.
하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최소한 은나라의 신하로서 주공단을 놓고 본다면,
그는 결코 충신 또는 성인이라고 부를 수 없다.
나는 지금 그 장면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보고자 한다.
은말(殷末)에 주(周)는 이미 상당한 실력을 가진 집단이었다.
그들은 당시 은(殷)을 집어 삼킬 야욕이 무릇 무릇 솟아올랐음에 틀림없다.
게다가 주(紂)는 탐욕과 주색에 찌들어 가고 있었다.
주공단은 이를 더욱 가속화하려고 공작을 하기로 하였다.
그는 유소씨(有蘇氏)와 교섭하여 미모가 뛰어난 그의 딸을
주(紂)의 비(妃)로 헌상하는 작전을 짠다.
이 때 등장한 주인공이 천하의 요부로 알려진 달기(妲己)다.
이 부분은 야사(野史), 이설(異說)에 따라,
여러 가지 이야기가 섞여드는데,
이를테면, 달기의 아버지인 소분생(蘇忿生)이 주(紂)에게 죄를 얻어,
이를 면하려고 달기를 바쳤다는 설도 있고,
이를 주공단이 의도적으로 기획했다는 설도 있다.
하여간, 주(紂)의 비가 된 달기는,
주(紂)를 황음무도(荒淫無道)한 폭군으로 이끄는데 일조를 한다.
주(紂)를 폭군으로 묘사하는데 동원되는
주지육림(酒池肉林), 포락지형(炮烙之刑)이란 말은 누구나 잘 안다.
이 모두 그 중심 배역에 달기 역시 맡아 자리했다.
달기를 주(紂)의 비로 침투시켜서 주(紂)를 타락시키고,
민심이 이반되도록 만든 것이 주공단이란 설이 제법 설득력이 있다.
가령 주공단의 아버지인 주문왕은 주(紂)에게,
포락의 형을 중단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낙서(洛西)의 땅을 바치겠다고 탄원한다.
주(紂)는 이 제안을 받아 들였으니,
낙서의 땅을 받아들이고, 그 대신 포락의 형을 폐지하였으며,
주문왕을 서백(西伯)으로 임명한다.
이런 소식은 빠르게 백성들에게 전파되었다.
“주문왕은 어질다.”
아마도 이 뉴스는 주문왕 측에 의해 의도적으로 전국에 적극 흩뿌려졌을 것이다.
역시 지혜가 뛰어난 주공단의 원려심모(遠慮深謀)의 결과라 하겠다.
주문왕이 비록 지금은 낙서 땅을 잃었지만,
천금보다 귀한 민심을 얻었음이며,
나중에 천하 대권을 훔쳐오면 까짓 낙서가 문제랴?
게다가 원래 민중은 당장의 한 뼘 이익만 주어져도,
바로 엎어져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제 딸까지 바치려 드는 것이다.
이것 물경 80%에 육박하게 대학교육을 받고 있다는,
오늘날 이 땅의 시민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주고 빼앗는다."
將欲奪之,必固與之。
(老子河上公章句)
"장차 빼앗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것을 주어야 한다."
先與之者,欲極其貪心。
먼저 주는 자는,
그 탐하는 마음이 극에 다달랐음을 알아야 하는 법이다.
이것 설이 분분하지만,
전국 말기 또는 서한(西漢) 때의 저술로 알려지고 있다.
어쨌든 수 천 년전의 말씀이다.
내 이르노니,
공짜 앞에 서면,
이 말을 상기할지라.
***
이 이중 복선의 구조를 알게 되면,
왕망, 주공단의 행위의 이면에 숨은 뜻을 바로 추적해 들어갈 수 있다.
이러할 때,
그들이 천하의 악당이든, 성인이든,
또는 그를 따르든, 저버리든,
그 무엇이 되든 간에,
저들의 행위 아래에,
그대 자신이 제물이 되지 않고,
농락을 당하지 않게 된다.
747 공약,
757 기부,
767 추천,
...
이게 과연 민중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제 일신의 안녕과 사적 이익을 위해,
기도하는 바, 다른 뜻이 숨겨져 있는가?
***
공짜면 양잿물도 받아먹는다 하지 않았던가?
사흘 굶은 짐승에게 옛다 먹어라 하고,
뼈다귀 던져주면 그야말로 개떼처럼 달려든다.
예전에 선거철 민중들을 향해,
출마한 자들이 높은 단상에 올라,
아래로 고무신, 고구마 마구 내던졌다.
마치 뼈다귀 던지듯.
그러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아귀처럼 달려들어 먼저 채가느라 혈안이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
일제 때,
까마득히 높은 기둥 위에 무엇인가를 설치하는 작업을 일본인이 주도하고 있었다.
죽 늘어선 중국인들에게 몇 푼을 걸며, 일을 마치고 내려오면 주겠다고 꾀었다.
연신 올라가다 떨어지며 부상을 당하는데도, 꾸역꾸역 몰려들며 지원을 하더란다.
선생님은 중국인들을 폄하(貶下)하고 있었다.
나는 비록 어리지만,
저 불쌍한 중국인들이 처지가 아팠었다.
그런데 지금 배도 곯지 않고,
가진 것도 제법 넉넉한 처지가 아닌가?
그러함인데,
어떤 때,
왜 개떼가 되어야 하는가?
公儀休相魯而嗜魚,一國盡爭買魚而獻之,公儀子不受,其弟諫曰:「夫子嗜魚而不受者何也?」對曰:「夫唯嗜魚,故不受也。夫即受魚,必有下人之色,有下人之色,將枉於法,枉於法則免於相,雖嗜魚,此不必能自給致我魚,我又不能自給魚。即無受魚而不免於相,雖嗜魚,我能長自給魚。」此明夫恃人不如自恃也,明於人之為己者不如己之自為也。
(韓非子)
“공의휴는 노나라 재상인데 고기(생선)를 좋아하였다.
온 나라가 다투어 물고기를 사서 바쳤다.
공의휴는 받지 않았다.
그 아우가 간하여 말하였다.
‘물고기를 좋아하시면서 왜 받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대답하여 말하였다.
‘이는 오로지 내가 물고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받지 않느니라.
만약에 물고기를 받는다면, 필시 남에게 낮추는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다.
남에게 엎드려지는 처지에 놓이게 되면,
법을 굽히게 될 것이다.
법을 굽히게 되면 재상 자리를 잃게 된다.
비록 물고기를 좋아하나,
이리 되면 내게 물고기를 보내줄 리가 없으며,
나 또한 물고기를 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만약에 물고기를 받지 않으면,
재상 자리를 잃지 않을 것이며,
비록 물고기를 좋아하나,
내가 능히 오래도록 물고기를 얻을 수 있느니라.’
이는 남을 믿는 것이 자신을 믿는 것만 같지 못함을 밝힌 것이다.
남이 자기를 위해준다는 것이,
자기가 스스로 자신을 위함만 못하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던져진,
뼈다귀 앞에서,
이 말씀을 되새기면,
욕을 당하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