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새벽 신음 소리

소요유 : 2008. 7. 2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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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ukeprog.com)

새벽께에 긴 신음 소리가 가끔 들린다.
보지는 않았아도 목을 길게 빼고 하늘 높이 꺼억꺼억 우는 모습이 짐작된다.
비오는 날에는 더욱 청승스럽게 들린다.

내 집 창문을 지나 산기슭엔 네군데에서 개를 키운다.
모두 큰 개들이라 어느 집 개들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는다.
이들 모두 열악한 환경에서 그 기나긴 삶의 여정을 지나고 있다.

저 서러운 소리라니,
때마다, 내 가슴도 덩달아 물기가 흐르고 만다.
도대체 저들의 서러움은 얼마나 크기에,
하늘가를 맴돌며 서성거리는가 ?
어찌 할 바 없는 이승의 질곡,
아, 중생의 삶은
왜 이다지도 질겨 괴롭고,
벗어날 수 없어 슬픈가 말이다.

하루는 등산 길에 내려오다,
그 문제의 신음 소리를 들었다.
드디어 그 현장을 확인한 것이다.
그 개는 언젠가 글 쓴 고물할아버지 개다.
다 사라지고 하나 남은 개 말이다.
(※. 참고 글 : ☞ 2008/04/29 - [소요유] - 낮달)

집에 들러 배낭을 내려놓고는,
먹을 것을 챙겨 갖다 주었다.
시베리안 허스키, 그 커다란 개가 진 땅에 그냥 방치되어 있다.
짧은 쇠사슬에 묶여 천근만근 삶을 지고 있다.
그래서 그리 툭하면 하늘가를 향해 울부짖었는가 ?

잠깐 먹는 동안만이라도,
이승을 잊으라고 맛난 것을 준다.
하지만, 그 열악함을 언제 벗어날까나 ?
내가 대들어 자리를 새로 만들어주려 하여도,
이것저것 불비한 것이 많아 늘 마음속으로 끙끙 앓을 뿐이다.

나는 먹이를 주고는 할 일없이 돌아서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씻고 나서, 쉬고 있는데,
개를 패고 있는지,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급히 옷을 챙겨 입고 달려갔다.

아까는 없었던 고물할아버지가 개 옆에 나타나 있다.
필경은 개를 때렸을 것이다.
의뭉을 떨며 아니라는 듯, 횡설수설한다.
마당가에 버려진 쇠파이프가 얼핏 눈에 띈다.
알고 보면 나는 성질이 아주 고약하다.
개가 걸린 문제가 아니었다면, 한바탕 드잡이라도 해도 시원치 않을 위인이다.
하지만, 잘못 건드렸다간 그 동티가 모두 개에게 뒤집어 씌어지고 말 터.
나는 애써 좋은 말로 거래를 튼다.

“개가 땅이 질은 곳에서 지내니 스트레스가 심한 것 같습니다.”
“제가 땅 좀 고르고 손 좀 봐주면 안 되겠습니까 ?”
이 참에 아예 가슴팍 부여잡듯 가깝게 들이밀어 해결을 봐야겠다.
개 패다 틀켜, 자신도 무안하였음일까 ?
용케 허락을 한다.

개가 개집도 없이 한데에서 서성거리던 곳 옆은 천막이 쳐져 있다.
그 천막 안, 고물 상자들을 한켠으로 밀어넣고, 공간을 확보했다.
고물 상자는 이제껏 천막 밑에 있었지만, 개는 거의 한데 방치되어 있었다.
이런 박정한 인간도 다 있음인가 ?
참으로 고약한 인간이다.

울퉁불퉁한 곳을 고르려니 삽으로는 되질 않는다.
곡괭이를 청해 달라고는 바닥을 고르게 정비했다.
그 위에 못 쓰는 커다란 상을 깔아 덮으니,
이제 비로서 진 땅이 가려진다.
이만 만해도 한결 지내기가 수월하리라.

이 때, 동네 아주머니도 개 패는 소리를 듣고, 나타나셨다.
우리 아파트에 사시는 아주머니시다.
나와 엇갈려 가며, 여기 개를 챙겨 주시는 분이시다.
그 분 역시 죄인 앞에 두고, 마치 죄인이라도 된 양,
좋게 좋게 어르며 사정을 살피고 만다.

이제껏 한데 꽂혀 있던 개 묶는 말뚝을 무시하고,
나는 천막 옆에 새로 말뚝을 박기로 한다.
키를 넘는 Φ2인치 쇠파이프를 의자를 딛고 올라, 오함마로 박았다.
땀이 비오듯 떨어진다.

버려진 개집도 천막 안으로 들여놓으니, 한결 낫다.
이제껏 개집도 주지 않고 그냥 방치하였으나,
자리가 얼추 갖추어지니, 주인이 어느 구석에선가 개집을 가져온다.

산기슭으로 면한 곳은 판자로 가렸다.
하지만 판자와 천막 사이가 떠서 빗물이 들어올 판이다.
오늘은 장비가 여의치 않으니, 일단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미진한 것은 차차 보완하기로 한다.

그 날이후,
개 신음 소리가 나지 않는다.
마른 자리가 조금 도움이 되었는가 ?
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개 목줄이 짧아 이게 종시 마음에 걸린다.
나는 두개를 연결하여 길게 하여주었는데,
주인은 그러면 달겨들어 성가시니, 짧게 하여야 한다고 이른다.
그러면 갑갑하지 않겠는가 하여도,
이 주인은 자신의 편의가 먼저다.
한 마디로 주인에게 개는 유정물이 아니라, 그저 한낱 무정물에 불과한 것이다.

이 또한 시간을 두고, 좋은 방책을 구할 예정이다.

***

판자를 천막 지붕 높이까지 바짝 올려 묶어주려고 다시 들렸다.
휴대용 가스렌지를 준비하여 갔다.
못을 불에 달구워 판자에 구멍을 뚫고,
철사로 꿰어 천막 지붕 밑에 매달려는 계획이다.

그 집 대문을 들어서니, 현관문이 열려 있다.
이제껏 드나들어도 처음으로 현관문이 열린 것을 본다.
늘 적막하니 괴기스럽기까지 한 형편이라,
나는 아무도 없는 집을 홀로 드나들었었다.
물론 사전에 양해를 미리 얻어 두었던 바다.

“계십니까 ?”

이리 부르며 인기척을 내어본다.

드르럭 베란다 문을 열며 젊은 청년이 몸을 현신(現身)한다.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애띈 얼굴이다.
이리저리 형편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하였다.
이집 식구란다.

처음 보는 이다.
이 집 식구들은 모두 그림자처럼 평소 눈에 띄지 않는다.
부인 쯤 돼 보이는 여자 분도 하나 있던데,
두어번 길에서 본 것 말고는, 여지껏 그 집을 내가 그리 드나들어도 집 안에서 본 적은 한번도 없다.
짐작컨데, 내가 마당가를 거래(去來)해도,
알고는 있지만, 집안에 틀어박혀 쳐다도 보지 않는 것이리라.
그저 모든 것에 무심한 사람들이다.
고물할아버지야 늙어 힘이 부친다 치더라도,
저 젊은 인간은 힘이 한창인 때가 아닌가 ?
게다가, 감정이 메말라 푸석거릴 나이이기에는 아직 이르지 않은가 말이다.
제 집 개의 울부짖는 소리가 가엽지도 않았단 말인가 ?

아무리 얼굴이 애띠면 무엇하며,
그럴듯이 착하게 생기면 무엇하나,
그러하길래 나는 일찌기 말했다.
글도, 말도, 얼굴도 결코 믿음의 표상(表象)이 아니다라고.
(※. 참고 글 : ☞ 2008/02/22 - [소요유/묵은 글] - 링컨의 얼굴)

제 집안에 생명 들여 놓고, 저리 무심할 수 있었던 말인가 ?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
오죽 어련할까나 ?

그러나마나,
나는 내 일을 할 뿐,
저들을 어찌할손가 ?
그저 나로서는 부족한 내 힘대로 내 길을 갈 뿐인 것을.

***

마침 고물더미 속에서, 기다란 정을 발견하여, 불 꼬챙이 대신 이것으로 판자 구멍을 뚫었다.
계획대로 판자를 천막 천장 위로 바싹 당겨 매달으니,
비가림이 제대로 되겠다.

천막 옆으로 터진 또 한쪽 편은,
답답할 터니 바로 막을 수 없다.
집 밖 고물 쌓아둔 곳에 가서,
큰 판자를 두 개 주어왔다.
이들을 개집 쪽으로 면한 집 울타리에다 세워두었다.
울타리는 철망으로 되어 있어, 비가 들이친다.
판자를 높이 세워 가려두면 한결 나으리라.

구조상, 바람이 통하여야겠기에,
완전히 비를 막을 수는 없는 형편이나,
얼추 7-8할은 처리가 되리니,
우선은 이리 견디어 보기로 한다.
내 집이 아니라 쉽지는 않겠지만,
나중에 지붕을 연장하여 넓히는 공사를 계획해본다.

현재 상태라 하여도,
비가 많이 오면 천막 쳐진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젠 비를 맞지 않을 공간이 확보되니,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이제 대충 비가림이 되겠거니,
내 마음도 한결 놓인다.

(※ 참고 글 : ☞ 2008/04/29 - [소요유] - 낮달
                   ☞ 2008/08/06 - [소요유] - 궁즉통(窮則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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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08. 7. 29. 21:40 :